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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요법창] 미묘한 균형

    민성철 부장판사(서울동부지법)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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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8. 6. 23. 제헌의회 제17차 회의. 제헌헌법의 초안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진 유진오는 제79조(법관의 임기는 10년으로 하되 법률의 정하는 바에 의하여 연임할 수 있다)의 배경에 관하여, “사법의 민주화에 대해서 상당히 저희들은 머리를 썼다고 생각합니다. … 종래 사법관의 신분을 종신관으로 하는 것이 통례였읍니다만 법관의 임기를 10년으로 하고 … 그래서 우리는 법관의 신분을 보장하는 동시에 … 일종 청신한 민주주의 공기를 불어넣어보려고 한 것입니다”라고 설명했고, 전문위원 권승열은 “오래 가지고 있으면 분기(紛起, 여기저기 말썽이 생김)할 염려도 있고, 좋은 후진이 성장을 못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법관 임기제의 기원은 이같이 제헌헌법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대법관 아닌 법관의 임명권자는 대통령이었는데, 1958년경 대통령이 임기를 마친 일부 법관에 대해 연임결정을 하지 아니하여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후 그 임명권자가 대법원장으로 바뀌었지만, 여러 차례 개헌에도 법관 임기제는 현재까지 그대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헌법 제정 당시 법관 임기제의 배경이 된 ‘사법의 민주화’, ‘분기할 염려’ 등의 의미가 무엇인지, 현시점에도 여전히 유효한지 그리고 법관 임기제가 현시점에서 최선의 선택인지에 대해 다양한 견해가 가능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법관 임기제는 헌법 제정 당시 ‘의도적인 선택’이었고, 그 선택은 현재까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법관의 독립과 책임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법관이 연임을 지나치게 의식하게 되면 재판의 공정을 해할 우려가 있고, 다른 한편 권승열이 제기한 우려도 전혀 합리성이 없다고 할 수 없으므로, 법관의 독립과 책임 사이의 균형은 자칫 깨질 수 있는 ‘미묘한 균형’입니다. 그리하여 법관 연임은 여러 비판에도 불구하고 네거티브 방식, 즉 건강·근무성적 등의 이유로 정상적인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매우 제한적인 경우에만 연임을 거부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습니다. 그리고 법관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뒷받침되어 대체로 신속하고 합리적인 재판이 이루어졌고, 그렇게 법관의 독립과 책임 사이의 일정한 균형점이 형성되어 유지되었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 특히 법원 내부에서 법관의 자율성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졌고, 여러 제도적 변화가 있었습니다. 한편 최근 재판의 지연 등과 같은 비판이 제기되고 있고, 이러한 비판의 핵심은 법관의 책임을 향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균형점이 완벽할 수 없고 여러 문제가 있겠지만, 이로부터 옮겨 가려는 새로운 지점도 헌법이 예정한 ‘미묘한 균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개인의 희망과 기대를 잠시 접어두더라도 법관의 책임에 대하여 진지하게 돌아볼 때가 아닌가 합니다.


    민성철 부장판사(서울동부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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