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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청년시대

    [지금은 청년시대] 볕뉘

    이언 변호사(법무법인 강남)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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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습 변호사 딱지를 갓 뗀 2년 차부터, 소년 사건을 자주 맡았다. 그러나 학폭 사건은 아니었다. 학폭위는 부모가 신청하고 학교에서 열리는 절차인데, 내 사건의 소년들 중 연락이 가능한, 그리고 기꺼이 도와줄 부모나 교사가 있는 아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가정 또는 학교라는 울타리에 들어가는 데도 자격이 필요했다. 아이들은 일찌감치 거기서 퉁겨져 나와 있었다.

     
    아이들은 변두리 모텔의 달방에서 가출한 선후배들과 살았다. 선배들이 시키는 일을 하고, 후배들에게 다시 그 일을 시켰다. 그렇게 번 돈으로 아이들은 김밥과 소주를 샀다. 나눠 먹을 수 없는 삼각김밥 대신 한 줄에 이천 원짜리 김밥을 사는 아이들에게, 한 팩에 오천 원짜리 콘돔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나는 현지(가명)를 소년분류심사원에서 만났다. 현지는 선배로서 성매매알선의 공범이었고, 후배로서 절도와 사기의 정범이었다. 현지를 버린 부모와 현지가 도망친 복지시설에서는, 현지에게 미래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지는 아무도 모르는 사이 미래를 품고 있었다. 현지는 체포된 후에야 임신 사실을 알았고, 아이를 미국으로 입양시키고 싶어 했다. 현지에게 미국은 TV 속에만 있는 먼 세상이었지만, 그랬기 때문에 아이를 그곳으로 보내고 싶어 했다. 다행히 나는 카투사 출신이었고, 미군들은 한국 아기를 입양하는 데 적극적이었다. 나는 법원에서 아이의 미래를 최우선으로 고려하여 달라고 말했다. 그 아이가 현지인지, 현지의 아기인지, 나는 정확히 알지 못한 채 말했던 것도 같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브로커’에서 버려진 아기를 파는 입양브로커 동수는 아기를 보내기 전, 마지막으로 미혼모 소영과 관람차를 탄다. 어두운 미래를 이야기하며 소영의 눈에 물기가 맺히는 순간, 동수는 조심스럽게 야윈 팔을 뻗어 소영의 눈을 가린다. 그러나 결코 손가락을 움직이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이 물기를 닦아낼 수 없음을 안다. 다만 소영이 말을 무사히 마칠 때까지, 따가운 햇볕으로부터 축축하고 가끔 구겨질 소영의 눈가를 지켜주고 있을 뿐이다.

     
    입양절차에서 변호사의 역할은 대리인이다. 말을 대신 전하는 사람이다. 친모와 양부모, 그리고 법원 사이에서 나는 수많은 말들을 전달했다. 그러나 아무리 뛰어난 변호사라도, 아기들에게는 말을 전해 줄 수 없다. 내가 변호사 일을 그만두기 전에 그들이 찾아오기를 기다리며, 누군가를 대신하여 오래 간직하고 있을 뿐이다.

     
    현지는 수감된 채 입양 동의서에 지장을 찍었다. 교도관이 서류를 정리하는 사이, 나는 현지에게 혹시 아기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이 있느냐고 물었다. 현지는 조그만 목소리로 건강하게… 라고 중얼거리다가, 나중에 좋은 아빠 되라고 해주세요. 하고는 뒤돌아 걸어갔다.

     

     

    이언 변호사(법무법인 강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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