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취임 1년이 지났습니다. 윤 대통령이 리더십을 발휘한다면 '1987 체제' 이후 45년만에 대한민국의 낡은 틀을 바꿀 '2032 체제'를 만들 수 있는 역사적 기회를 맞았습니다. 대선과 총선이 만나는 2032년 봄이 다시 안 올 역사적 기회입니다. 이 기회를 또 놓치면 안 됩니다.
저는 ‘촛불’보다는 ‘투표’가 힘이 세고, 투표보다는 ‘제도’가 힘이 세다고 생각합니다. 촛불은 광장을 상징합니다. 우리는 1960년 4월, 1987년 6월, 2016년 12월 광장에서 권력을 끌어내린 경험이 있습니다. 그러나 1960년 이승만 대통령 하야와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서거 후에 기대했던 민주주의는 쿠데타에 짓밟혔습니다. 촛불과 광장이 권력을 무너뜨릴 수는 있어도 새로운 체제를 보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촛불보다 투표는 더 많은 변화를 가져옵니다. 누가 대통령이냐에 따라 정치·경제·외교·안보 정책이 크게 달라집니다. 문재인 정부와 윤석열 정부의 외교·안보·경제·산업·부동산·노동·재정 정책은 180도 다릅니다. 정권이 바뀌면 정책은 원점으로 돌아갑니다. 아무리 대통령이 힘이 있어도 ‘불가역적’ 변화를 만드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패러다임을 바꾸는 ‘제도’만이 불가역적 변화를 가져옵니다. 제도는 법입니다. 특히 ‘새로운 체제’는 헌법을 바꿔야 합니다. 그래서 ‘1987 체제’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 이후 새로운 체제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탄핵 연대’를 ‘개혁 연대’로 발전시켜 ‘2017 체제’를 만들 역사적 기회를 허망하게 날려 보냈습니다.
체제는 불가역적입니다. 안착되면 그 이전으로 되돌아 가지 못합니다. 이제 쿠데타는 불가능합니다. 제도는 시스템을 바꾸고, 시스템은 패러다임을 바꿉니다. 시스템은 공정하고 예측가능한 ‘대기번호표’ 같은 것입니다. 대기번호표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이 다시 한 번 도약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체제가 필요합니다. 새로운 체제는 낡은 법과 제도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개헌 없이는 안 됩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 가져온 뜻밖의 선물은 2032년 봄에 대통령 선거(3월)와 국회의원 선거(4월)를 일치시킨 것입니다. 절호의 기회입니다. 9년 남았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치 지도자 연석회의’를 소집해 대한민국 리빌딩을 위한 초당파적 ‘개헌특위’ 구성을 제안해야 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리더십을 발휘한다면 역사적 업적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만일 ‘1987 체제’를 만들지 못했다면 극단적 정치적 대립으로 탈냉전과 세계화의 역사적 전환기에 기회를 잡지 못했을 것입니다. 중국·러시아와 수교, 남북기본합의서, 남북한 동시 UN 가입 같은 역사적 결정은 ‘1987 체제’였기 때문에 가능했을지 모릅니다. 지금 다시 역사적 대전환기를 맞았습니다. 미·중 패권 전쟁과 공급망 재구축,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대만에 대한 중국의 군사적 위협, 북한의 핵 위협, 기후위기, 저출생과 고령화에 대응하고 노동·연금·교육 개혁을 하려면 새로운 체제가 불가피합니다.
정치의 본령은 ‘국가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과 ‘국민 통합’입니다. 우리 정치는 이 두 기능이 작동 불능 상태입니다. 극단적 진영 전쟁으로 ‘비토크라시(vetocracy)’ 늪에 빠져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정치가 상대를 ‘죽일’ 적으로 보는 전쟁이 아니라 ‘이길’ 경쟁자로 보는 스포츠처럼 되려면 개헌과 선거제도로 정치의 룰을 바꿔야 합니다.
저는 한국 민주주의가 1·0, 2·0, 3·0 세 단계로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 1·0’은 쿠데타와 혁명을 동시에 폐기하고 (선거를 통한) ‘평화적 정권교체’가 가능한 ‘1987 체제’입니다. 이젠 다음 단계로 가야 합니다. ‘민주주의 2·0’은 다당제를 통한 갈등 해소입니다. 선거제도 개편을 통해 적어도 4당 체제로 재편해야 합니다. 저는 비례대표를 없애고 4인 선거구 60개, 3인 선거구 20개를 두는 ‘중선거구제’를 지지합니다. 한국에서 선거제도 개편은 국회의장이 아니라 대통령 어젠다입니다.
한·일 정상회담, 한·미 정상회담에 이어 한·미·일 정상회담을 마친 6월에 윤석열 대통령이 ‘정치 지도자 연석회의’를 소집해서 국제 정치의 새질서에 대응하고 대한민국이 ‘G5 글로벌 중추국가’로 가려면 정치가 이대로는 안 된다고 설득해야 합니다. 저는 ‘선출 권력(정치)’이 ‘비선출 권력(관료)’을 통제하는 내각제가 ‘민주주의 3·0’이라고 생각하지만 꼭 내각제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2032 체제’를 목표로 ‘개헌특위’를 발족시키고, 내년 총선을 위한 선거제도 개편을 합의한다면 윤석열 대통령 최대 업적으로 남을 것입니다. ‘2032 체제’를 위한 윤석열 대통령의 결단을 기대합니다.
박성민 대표 (정치컨설팅 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