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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결문에 자주 등장하는 ‘원 미만 버림’… 그 안에 담긴 판사들의 고민

    유영근 지원장(남양주지원)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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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 미만 버림) ; 판결문에 자주 등장하는 문구다. 손해배상액이나 상속분을 계산하면서 원 단위로 끊어지지 않을 때 산출된 금액 끝에다 관행적으로 쓰는 표현이다. 법률가라면 자주 접하지만 사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말이다. 별 관심도 없는 1원 미만의 돈에 대해 굳이 이렇게 기재하는 이유가 뭘까?

    예를 들면, 사망자가 받을 돈이 1억 원이고 상속인으로 부인과 자녀 2명이 있다면 부인이 받을 돈은 1억 원 x 3/7 = 42,857,142.85… 이기 때문에 ‘42,857,142원(원 미만 버림)’이라고 쓰고, 자녀 2명이 받을 돈은 각 1억 원 x 2/7 = 28,571,428.57… 이기 때문에 ‘28,571,428원(원 미만 버림)’이라고 쓴다.

    이 경우 합계가 99,999,998원이 돼서 2원이 부족해진다. 차라리 반올림을 해볼까? 하지만 이때는 3개 모두 반올림이 되기 때문에 합계가 100,000,001원이 된다. 금전지급의무를 지는 사람에게 1원이라도 더 부담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법리상 허용될 수 없다. 판사들의 마이크로(micro)한 세계에서 판결문의 계산이 맞아떨어지지 않는 것은 용납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를 합리화하기 위해 법관들이 고심 끝에 만들어 낸 표현인 것이다.

    이왕 계산이 안 맞는다면, 어차피 4,285만 원, 2,857만 원씩 정도인데 그냥 ‘만 원 미만 버림’으로 하면 안 되나? 주변에 물어보았지만, 그런 식으로 계산해 1만 원까지 오차가 생기는 것을 용인하겠다는 판사는 없었다. 나도 여전히 계산은 원 단위까지 하고, 주심판사가 판결초고에 ‘원 미만 버림’을 안 쓰면 굳이 부가하지는 않지만, 써 오면 일부러 지우지는 않는다.

    그 밖에도 수학적 정확성을 요하는 판결문에서 변제충당, 호봉승급 등등 판사들을 괴롭히는 난제들이 많지만 당사자는 그 세밀한 계산 내역에 별로 관심이 없다. 계산만 그런 것이 아니다. 예를 들면, 법정형이 징역 5년 이상인 범죄인데 1심에서 정상참작 감경을 해서 징역 3년이 선고된 피고인이 있었다. 항소심에서 유리한 정황이 추가되어 상당한 고심을 한 끝에 처단형의 하한인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했지만 피고인은 화가 잔뜩 나서 들어갔다. 집행유예를 기대했을 뿐 6개월 정도 감형되는 것에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던 것이다.

    정신적 손해에 대한 배상을 뜻하는 ‘위자료’는 판사들에게 골칫거리다. 제반 사정을 꼼꼼히 살피고 기존 판례들과 비교해 나름 세밀하게 액수를 정하지만 일반인들은 수긍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교통사고로 상당기간 입원치료를 받은 피해자에게 위자료로 몇백만 원 정도를 인정해 손해배상액에 더해주면 당사자는 판결문을 보고 더 화가 났다고 말한다. 사망 사건도 위자료만으로는 1억 원을 넘는 경우가 잘 없다. 특히 고령의 피해자는 일실수입이 거의 없기 때문에 대부분 위자료로 구성된 손해배상액을 보면 유족들이 분통을 터뜨리곤 한다.

    최근 한 재벌회장의 이혼 사건에서 혼인 파탄의 책임을 묻는 위자료로 1심에서 1억 원까지 인정된 예가 있다. 판사들이야 고심 끝에 정한 금액이겠지만 일반인들은 거액의 재산분할과 대비되는 위자료 액수를 보면서 이게 뭐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많았다.

    요즘 민사단독 판사들에게 기일마다 오는 사건이 배우자와 부정행위를 한 상대방에 대한 위자료 소송이다. 불법행위로 인정되면 몇백만 원에서 몇천만 원까지 위자료가 부과되지만 위법의 경중을 따지기가 참으로 민망하다. 그렇다고 판사가 행위 하나하나를 집어서 얼마에 해당하는 불법행위라고 특정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세밀한 세상을 사는 판사들에게도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유영근 지원장(남양주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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