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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재수첩

    [취재수첩] 지금은 'AI 법정'을 준비할 때

    홍윤지 기자 hyj@lawtimes.co.kr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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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광희 변호사의 소설 《인간의 법정》은 인공지능(AI) 판사가 보편화된 22세기의 법정을 무대로 한다. 인간 변호사 호윤표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소설은 독자들을 미래의 AI 법정으로 안내한다.

    소설 속 미래에서는 AI 덕분에 재판 진행이 빨라진다. '대법원 지하의 거대한 서버에 연결된' AI 판사가 1심 재판을 맡게 되자 "유사 이래 비판을 받아왔던 재판절차 지연 현상이 인간 판사를 증원하지 않고도 거의 해소됐다"는 대목이 나온다. 여전히 인간 판사가 진행하는 2심과 대법원 재판은 재판 병목 현상에 시달린다. 밝은 면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법이다. 호윤표는 '판사가 인간이 아닌 기계라는 것' 그 자체에 번민한다. 소설의 제목이 'AI의 법정'이 아니라 '인간의 법정'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재판은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인간의 절차인데 인간적인 무엇이 배제돼 있는 것이 과연 올바른가'라는 것이다.

    생성형 AI '챗GPT'가 출시된 지 반년 만에 세상을 바꾸고 있다. 챗GPT를 비롯한 생성형 AI 서비스는 고도의 언어 및 추론 능력에 기반해 골치 아픈 문서 작업도 몇 초 만에 뚝딱 완성한다. 법률 사무 영역도 당연히 예외가 아니다. 수 년안에 AI가 배석 판사와 어쏘시에이트 변호사가 담당하던 업무 대부분을 대신할 거란 전망이 나온다. 《인간의 법정》처럼 AI가 인간 판사를 대체하는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인간 판사가 AI의 도움에 의지해 판결을 내리는 날이 곧 온다는 것이다.

    'AI의 법정'이 가까운 미래가 된 지금,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능력은 상상과 가정(假定)이다. 미래에 대한 상상과 가정이 구체적일수록 그 부작용에 대해서도 발 빠르게 대비할 수 있다.

    'AI가 인간을 심판하는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인간은 AI의 법적 판단을 어디까지 받아들일 수 있을까.' 얼마 전 일본 도쿄대 학생들은 이러한 상상에 기반해 챗GPT 판사가 등장하는 모의재판을 열었다.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삼권의 하나인 '사법권'을 AI에게 맡겨야 하는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방청객들이 미래 사법의 모습을 체험해볼 수 있도록 행사를 기획했다." 모의재판을 주최한 도쿄대 법대생 오카모토 준이치 씨의 말에서 국가와 사회, 기술에 대한 통찰이 엿보인다. 모의재판 다음날에는 첨단과학, 사회학을 가르치는 교수들과 SF 작가들이 준비한 'AI 시대의 윤리와 법에 대한 고찰' 심포지엄이 열렸다. 이틀간의 행사에는 일본 최대 리걸테크 기업 '벤고시닷컴'도 후원 단체로 참여했다.

    한국은 어떤가. 'AI 법정'을 준비하기에는 아직 부족한 듯하다. 로스쿨 학생들 대부분은 변호사시험 준비에 바빠 법률 AI에 대해 상상할 겨를이 없다. 《인간의 법정》처럼 인간 판사의 업무를 돕는 AI를 도입한다면 재판 지연 현상이 해소될 것이란 전망은 몇 년째 나오고 있지만, 법원에서 이를 전향적으로 검토하려는 움직임은 아직 감지되지 않는다. 리걸테크 업체들은 한국형 법률 AI를 개발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지만 AI에게 학습시킬 판결문 등 법률 정보와 데이터가 부족하다는 점이 절대적 한계로 꼽히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대로 가다가는 미국, 일본 등 AI 선진국의 기술에 한국 법률산업이 잠식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국 법조가 다같이 AI와 법의 미래를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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