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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헌법판례열람] 용기와 자제라는 사법부의 미덕

    임지봉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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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 사법권과 관련한 논의에서 1803년의 Marbury v. Madison 판결(1Cranch 137)을 빼놓을 수는 없다. 1803년이면 미국 연방대법원의 초창기다. 1787년의 미국 건국헌법에 의해 대통령 관저, 연방의회와 함께 연방대법원이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연방대법원이 독립건물도 없이 연방의회 건물 한 켠을 쓰고 있을 정도로 확고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던 때가 이때다. 이런 초창기에 겁 없이 국민의 대표기관인 입법부가 만든 법률을 사법부가 위헌무효화 시킬 수 있다는 위헌법률심사권을 세계최초로 들고 나온 판결이 이 Marbury v. Madison 판결이다. 이 판결의 이런 역사적 의미 때문에 미국의 모든 헌법교과서들에서 이 판결을 제일 첫번째 판례로 등장시킬 정도다. 미국 로스쿨 학생들에겐 첫 바이블에 해당하는 판례인 것이다.

    이 사건은 연방파와 주권파(州權派)간의 치열한 정치 헤게모니싸움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흥미롭다. 미합중국 건국을 이끌었던 미국 초창기의 정치세력은 강력한 연방정부를 표방하던 연방파와 각 주(州)의 권한이 우선이라는 주권파로 크게 나뉘어져 있었다. 차기 대통령선거에서 제퍼슨이 승리하자 연방주의자였던 아담스 대통령이 주권파인 제퍼슨 대통령 당선자에게 대통령직을 물려주기 직전, 사법부에서만이라도 연방파의 세력을 계속 유지할 목적으로 퇴임일을 불과 하루 앞둔 1801년 3월2일에 법원조직법을 통과시켜 연방판사들의 수를 늘리고 같은 날 Washington D.C. 구역의 연방법원판사 42명을 한꺼번에 임명한다. 이들 42명 전원이 충실한 연방파들이었음은 물론이다. 마베리도 이 42명 중 한 명이었다. 이들 연방법원 판사들의 임명장은 아담스 대통령의 재직 마지막 날인 3월3일에 아담스 대통령에 의해 서명되고 마셜 국무장관에 의해 서명겫응慣沮?되었지만 공식적으로 교부되지는 못한 채 국무장관실의 책상서랍에서 잠자게 된다. 대통령 집무를 시작한 직후 이 임명장을 발견한 제퍼슨 대통령은 연방파들의 사법부 장악 의도에 격분하게 되었고 새 국무장관인 메디슨에게 42명 판사들의 임명장을 교부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그러면서 아담스 대통령의 임기만료일인 3월3일까지 이 임명장이 교부되지 않았으므로 그 임명행위는 무효하고 주장했다. 이에 마베리 등은 새 국무장관인 메디슨이 임명장을 교부토록 강제하는 직무집행영장(writ of mandamus)의 발부를 구하는 소송을 연방대법원에 제기했다.

    마셜 대법원장에 의해 집필된 판결문은 원고인 마베리에게 임명장 교부를 요구할 법적 권리가 있음은 인정했지만, 직무집행영장 발부의 권한이 연방대법원에게 주어져 있지는 않다고 보았다. 또한, 연방헌법이 연방대법원에게 연방법률을 심사해서 그 연방법률이 연방헌법에 위배될 경우 무효를 선언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고 판시했다. 다음은 그 추론의 요지이다.

    미합중국은 사람이 아니라 법에 의해 지배된다. 국민의 권리와 관련된 특정 직무수행의 권한이 고위직 공무원들에게 주어진 경우, 그러한 직무집행으로 피해를 입은 국민은 권리구제를 위해 법에 호소할 수 있다. 본 사건에서 마베리는 임명장을 교부받을 권리를 가지며 신임 국무장관인 메디슨이 그 임명장 교부를 거부한 것은 마베리의 이러한 적법한 권리를 침해한 것이다. 그러나, 과연 연방대법원이 직무집행영장을 발부해야만 하는가? 1789년에 제정된 법원법은 연방정부의 공무원들에게 연방대법원이 직무집행영장을 발부할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규정한다. 반면에 연방헌법 제3조는 대사, 영사, 공사에게 영향을 주거나, 주(州)가 소송당사자인 사건들에 대해서만 연방대법원이 원심관할권(原審管轄權)을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른 모든 연방대법원 사건들은 연방대법원이 상소관할권을 가지는 사건들이다. 행정부 공무원으로 하여금 어떤 문서를 교부토록 강제하는 직무집행영장의 발부는 그 문서 교부를 위한 첫 번째 조치를 취하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원심관할권에 해당하는 사항이다. 그러나, 연방헌법이 직무집행영장 발부를 연방대법원의 원심관할권 대상으로 열거하고 있지 않다. 법원법은 직무집행영장 발부의 권한을 연방대법원에 주고 있지만 헌법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이 사건에서 연방대법원이 직무집행영장을 발부한다면 그것은 헌법이 연방대법원에게 부여한 권한 이외의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 된다. 헌법은 법률보다 상위에 있다. 헌법개정절차가 법률의 개정절차보다 까다로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따라서, 연방의회가 만든 연방법률을 포함한 어떤 법률도 상위법인 연방헌법에 위배되면 무효이다. 이때, 어떤 법률의 위헌여부를 심사할 권한은 법원에게 있다. 법률과 헌법 중 ‘그 사건에 적용될 법이 무엇인가(what the law is)’를 결정할 권한이 기본적으로 법원에 주어져 있듯이, 그 사건에서 법률이 헌법과 충돌을 일으키는지의 여부도 법원이 판단토록 하는 것이 옳기 때문이다. 직무집행영장의 발부를 거부한다.

    연방파 정치인들의 글을 모아 만든 ‘연방주의자 논문집 78(The Federalist Papers 78)’에서 해밀튼이 이미 위헌법률심사제를 언급한 바 있었다. 그 후 해밀튼의 이러한 아이디어는 의회나 하급법원에서 산발적으로 논의되었는데, 본 판결에서 연방대법원이 위헌법률심사권을 명시적으로 인정함으로써 확립된 법원칙으로 선언되었던 것이다. 이 판결이 내려진 후, 연방의회는 분노로 들끓었다. 감히 국민의 대표인 의회가 만든 법원법을 선출된 권력도 아니고 임명된 권력에 불과한 대법원이 위헌선언을 통해 휴지로 만들어 버렸다는 사실에 의원들은 분개했다. 연방대법원 폐지론까지 제기될 정도로 미국 연방대법원은 당시 연방의회로부터 엄청난 정치적 공격을 받았다. 이에 존립의 위협마저 느낀 연방대법원은 이후 약 50년간 단 한 건의 위헌판결도 내리지 않았다. 약 50년 후 어느 정도 연방대법원의 존립이 안정궤도에 진입했을 때 1856년의 Dred Scott v. Sanford판결에서 비로소 두 번째 위헌판결을 내렸던 것이다. 연방대법원은 현재까지 약 100개가 넘는 연방법률들을 위헌판결로 무효화시킬 만큼 위헌법률심사권의 행사에 적극적이다. 각각의 삼부(三府)는 다른 부(府)를 견제해 권력 균형을 이룰 수 있을 정도로 강해야 한다. 사법부의 권한을 법 해석의 수동적 책무에만 한정시키는 것은 삼권분립의 구조 속에서 사법부의 힘을 취약하게 만드는 우를 범할 수 있다. Marbury v. Madison판결은 사법부를 행정부나 입법부와 동등한 힘을 가지는 부(府)로 만드는 기반을 닦았다.

    우리 사법부도 이런 미국 연방대법원으로부터 배울 점이 많다고 믿는다. 적극적인 헌법해석을 통해 위헌법률심사권이라는 법원의 권한을 연방대법원 스스로 용기있게 만들어낸 점, 그래서 사법부가 행정부나 입법부에 뒤지지 않는 동등한 힘을 갖게 한 점, 그러나 연방대법원의 존립이 안정궤도에 오를 때까지 약 50년 동안이나 이 권한의 사용을 자제함으로써 다른 부(府)의 정치적 공격을 피해가는 기지를 발휘한 점 등이 그것이다. 용기와 자제는 일면 상반돼 보이기도 한다. 과연 우리 대법원이나 헌법재판소는 이러한 용기와 자제의 미덕을 적절히, 적재적소에 발휘하고 있는가.

    서강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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