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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헌법판례열람] '정치적 문제’와 사법부

    임지봉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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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에서는 연방헌법 규정에 근거하기보다는 연방대법원 스스로의 판결을 통해 사법권 행사의 한계가 설정되기도 했다. ‘재판가능성(Justiciability)’의 개념이 그것이다. 우리 법제에도 적용가능한 개념인 이 ‘재판가능성’은, 어떤 사건이 재판에서 다루어지기 위해 충족되어야할 전제조건들이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미국 연방헌법 제3조 제2항이 연방법원의 관할권을 “사건과 분쟁(cases and controversies)”에 한정하고 있는 데에서 연유한다. 이 조항에 의해 연방법원은 추상적이고 가정적인 문제들에 의견을 낼 수 없는 것이다. 원·피고 적격에 관한 ‘당사자적격(standing),’ 가정적 사건이 아니라 현실에서 발생한 실제의 분쟁만이 사법권 행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구체적 사건성(mootness),’ 그 분쟁이 미래의 분쟁이어서는 안 되고 이미 권리·의무관계가 성숙되고 확정될 것을 요하는 ‘사건의 성숙성(ripeness),’ 사법부가 판단하기 적합치 않은 ‘정치적 문제(Political Question)’가 아닐 것 등을 포괄하는 넓은 개념이 바로 재판가능성이다. 특히 이 중 맨 마지막 조건인 ‘정치적 문제’에 해당하는 사건이냐, 그런 사건은 꼭 사법적 판단의 대상에서 제외되어야 하느냐의 문제가 미국사회에서 한 때 크게 논란이 된 적이 있었고, 이런 논란을 일거에 정리해버린 유명한 판결이 바로 1962년에 연방대법원에 의해 내려진 Baker v. Carr(369 U.S. 186)판결이다.

    테네시주의 주의회 의원선거를 위한 선거구 획정에는 문제가 많았다. 선거구간 유권자 수에 극심한 불균형이 존재했던 것이다. 1901년부터 본 사건 발생시점 사이에, 테네시주는 현격한 인구이동에도 불구하고 법개정을 통한 어떤 선거구 재획정 조치도 취하지 못했다. 그 결과 33명의 주상원의원 중 20명이 전체 유권자 중 37%의 유권자들에 의해 뽑혔고, 99명의 주하원의원 중 63명이 40%의 유권자에 의해 선출되었다. 극단적으로, 한 선거구에서의 한 표의 결과가치가 다른 선거구 한 표의 19배에 달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에 선거구 재획정을 요구하기 위해 본 소송이 제기되었다. Brennen대법관이 집필한 다수의견은 연방헌법에 근거해 주(州)공무원이 소송을 제기하더라도 이것이 소송불가능한 ‘정치적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판시했다. 다음은 그 추론의 요지이다.

    본 사건이 정치적 권리보호에 관련되었다는 사실이, 곧 본 사건이 ‘정치적 문제’에 관한 것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미국 연방헌법 제4조 제4항은 “미합중국은 합중국내의 모든 주(州)들에게 공화국 정부형태를 보장하며…”라고 규정한다. 공화국 주(州)정부형태의 헌법상 보장은 비록 연방사법부와 연방입법부 및 연방행정부 사이의 논쟁을 ‘정치적 문제’로 만들 수는 있지만, 연방사법부와 주(州)정부간의 관계에서도 당연히 추론되는 것은 아니다. ‘정치적 문제’는 주요 영역의 기초가 되는 중요한 쟁점이지만, 선거구 재획정이 아무런 지침없이 주(州)에게 남겨져 있다는 주장을 본 법원은 지지하지는 않는다. ‘정치적 문제’는 다음의 여섯가지 요소들 중 적어도 하나 이상의 요소를 지니고 있는 사건들에 적용된다. 첫째 그 쟁점에 관해 입법부나 행정부에서 다룬다고 헌법에서 명시적으로 규정한 경우, 둘째 법원에 의해 발견되어지고 다루어질 수 있는 기준들이 결여된 경우, 셋째 비사법적(非司法的) 자유재량에 의한 최초의 정책적 결정 없이는 판단이 내려질 수 없는 경우, 넷째 입법부나 행정부에 대한 불경(不敬)을 범하지 않고서는 법원이 독립된 결정을 내릴 수 없는 경우, 다섯째 이미 내려진 정치적 결정에 대한 절대적인 추종이 특히 필요한 경우, 여섯째 한 가지 문제에 관해 여러 기관이 각기 다른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있는 경우가 그것이다. 그러므로, 연방헌법에 근거해 주(州)공무원이 선거구 획정과 관련한 소송을 제기하더라도 이것이 곧 소송불가능한 ‘정치적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 판결이 가지는 중요한 의미는 무엇보다 미국 연방대법원이 ‘정치적 문제’원칙의 적용을 가능케 하는 여섯가지 요소들을 처음으로 나열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정작 이 사건은 ‘정치적 문제’원칙이 적용되지 않는 사건으로 보았다. Baker사건에서 미대법원은 선거구에 있어서의 의원정수 배분의 불균형이 평등권을 침해한다는 원고의 주장이 ‘정치적 문제’가 아니라고 하면서, ‘정치적 문제’를 ‘정치적 사건들(poltical cases)’과 구분했다. 즉, 한 사건이 정치적 이해관계를 띤다거나 정치적 논쟁을 발생시킨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이 곧 재판가능성이 부정되는 ‘정치적 문제’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정치적 문제’는 헌법의 명문규정들을 놓고 봤을 때, 일반적으로 사법부보다는 다른 부(府)에 의해 해결되는 것이 더 바람직한 문제들을 말한다. ‘정치적 문제’와 사법부 이외의 다른 부(府)와의 관련성은 항상 평가하기 쉬운 것은 아니다. 특히, 관료주의가 성장하면 더더욱 그렇다. ‘정치적 문제’원칙이 적용되기 위한 요인들이 1962년의 Baker사건에서 열거된 이후 ‘정치적 문제’원칙은 미국 대법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필자는 ‘정치적 문제’와 관련해 우리 대법원이 내린 획기적 판결이라 일컬어지는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에 관한 사건 판결(大判 1997. 4. 17, 96 도 3376)을 곧잘 떠올린다. 두 전직대통령에 대해 군사반란죄, 내란죄, 수뢰죄 조항들을 또박또박 적용하여 중형을 선고한 이 사건은 당시 ‘성공한 쿠데타도 법적으로 처벌할 수 있는가’라는 화두를 우리 사회에 던지며 뜨거운 논쟁을 불러 일으켰었다. 어떤 이들은 이 사건을, 자기 자신을 시대의 희생양이라 칭하는 피고인들과 정치적 사건을 형사적으로 처벌하려는 세력간의 투쟁이라 규정짓기도 했다. 성공한 쿠데타를 다루는 정치적 사건으로 이 사건을 규정할 경우, ‘정치적 문제’원칙이 적용될 수 있는가·법원이 성공한 쿠데타를 심리할 수 있느냐의 여부는 성공한 쿠데타의 법적 처벌가능성이라는 정치적·정책정 결정을 중요한 전제로 하고 있으므로 위 Baker판결의 세 번째 요소인 ‘비사법적(非司法的) 자유재량에 의한 최초의 정책적 결정 없이는 판단이 내려질 수 없는 경우’에 해당될 수 있고, 두 전직대통령의 정부가 비합법적인 군사반란과 내란에 의해 세워진 불법(不法)정부인 것은 아님을 전제로 한 많은 정치적 결정들이 최소한 두 전직대통령의 재임기간인 12년 동안은 줄곧 내려져왔기 때문에 다섯 번째 요소인 “이미 내려진 정치적 결정에 대한 절대적인 추종이 특히 필요한 경우”에 해당될 수도 있다. Baker판결에서 선언된 ‘정치적 문제’원칙이 적용될 수 있는 요소들을 가지고 있었으며, 따라서 미국에서라면 이 사건이 ‘정치적 문제’에 해당된다는 이유로 각하되기가 쉬웠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이 사건에서 우리 대법원은 1970년대 이래로 견지해왔던 극심한 사법소극주의적 모습을 벗어던지고, 갑작스레 미대법원보다 더 적극적으로 정치적 사건을 사법적 판단의 대상으로 받아들이는 과감성을 보여주었다. 그러한 태도 급변의 진짜 이유가 그 때도 궁금했고 지금도 여전히 궁금하다.


    서강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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