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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의 나라와 화려한 휴가

    박기주 부장판사(서울중앙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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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 꿈의 나라’

    80년대 후반 어느 겨울 밤, 기록을 통해 이 영화를 보았다. 광주의 폭도들이 등장한다고 하였다. 줄거리의 상당 부분은 유언비어라고 하였다. 게다가 공연윤리위원회의 심의도 받지 않았고, 공연장 등록을 하지 않은 극장에서 상영하고 있었다.

    ‘압수대상 필름의 내용이 국가·사회의 안녕질서를 해치거나 반사회성이 있다고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압수 수색영장 청구를 기각하였다.

    ‘오! 꿈의 나라’는 당시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에 있는 ‘예술극장 한마당’에서 상영되고 있었는데,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16mm, 90분짜리 영화였다. 문화공보부는 이 영화가 제작신고와 공연윤리위원회의 심의를 거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영화제작자와 극장대표를 공연법위반 혐의로 고발한 상태였다.

    “그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서 국가·사회의 안녕질서를 해치지 않는다고 단정할 수 있습니까?” “반사회성이 없다니요. 아직도 대한민국에 이런 판사가 있느냐고 물어왔습니다.” “영장 기각 이유를 그렇게 한 것은 신중하지 못한 처사였습니다.”

    선배들은 말을 쏟아 부었다. 나는 대답하지 못하였다. 안타깝고 슬퍼서….

    그러나 위안도 있었다. 1달 후 다가온 설 무렵, 극장 대표로부터 연하장을 받았다. “감사의 마음을 뒤늦게나마 전합니다. 어려움 속에서 민족영화를 키워나가고자 노력하는 우리들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결정에 이러한 편지를 드리는 현실을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지금도 간직하고 있는 그 연하장이 오히려 내게 힘이 되었다. 하지만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은 그가 아니라 내가 아니었던가…. 결국 꿈의 나라는 보지 못했다.

    지난 여름, 극장에서 또 다른 광주를 만났다. ‘화려한 휴가’

    등장한 사람들은 더 이상 폭도가 아니었다. 총 들고 절규하는 젊은이들 속에 내 친구 L군의 모습이 보이는 듯 했다. 그 누구도 줄거리가 유언비어라고 하지 못하였다. 더 이상 공연윤리위원회의 심의를 거부할 것도, 등록하지 않은 극장에서 상영할 이유도 없었다.

    영화는 끝나고, 내려오는 자막에 낯익은 이름이 보였다. 아, 그 연하장의 주인공이었다. 내게 힘을 주었던 그가 ‘화려한 휴가’의 제작자로 돌아와 내 앞에 있었다.

    하지만 그 때 선배라는 사람들은 어디 갔는가.

    그 때 그들이 쏟아 부었던 말들은 다 어디 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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