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egalinsight
  • Legaledu
  • 법률신문 오피니언

  • 상시채용
  • 기사제보
  • 헤이그통신

    [헤이그통신] (14) 캄보디아 특별재판부

    권오곤 UN ICTY 재판관

    입력 :
    글자크기 : 확대 최소
  • 인쇄
  • 메일보내기
  • 기사스크랩
  • 스크랩 보기
  • 1. 글머리에

    필자는 지난 2월초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린 ‘캄보디아 법원 내의 특별재판부(Extraordinary Chambers in the Courts of Cambodia, 이하 ECCC)’ 판사들의 연수 목적을 위한 워크숍에 다녀왔는데, 한국에서는 그 조직과 제도에 관해 별로 알려지지 않은 것 같으므로 이 기회에 소개하고자 한다.

    2. 역사적 배경

    가. 크메르 루지의 만행

    폴 포트(Pol Pot)의 크메르 루지(Khmer Rouge)가 1975년 4월 무력으로 정권을 장악한 때부터 1979년 1월 베트남의 침공에 의해 축출되기까지 3년 8개월여의 이른바 ‘민주 캄푸치아(Democratic Kampuchea)’의 기간 동안, 우리에게는 영화 킬링필드로 생생하게 기억되고 있는 바와 같이, 많은 양민이 학살됐다. 당시 600만의 인구 중 170만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하고 (아직 이 통계에 관해서는 100만명에서 300만명까지 사이에서 논쟁 중이라고 한다), 특히 고문으로 악명 높았던 프놈펜 시내의 투올 슬렝(Tuol Sleng) 감옥에서는 14,000명의 수감자 중 생존자가 7명뿐이었다고 하니, 그 엄청난 규모와 잔혹함에는 말을 잃을 뿐이다.

    나. 사법처리 및 평화정착의 지연

    크메르 루지가 축출된 후, 태국 국경 밀림지역으로 은신한 폴 포트와 외무장관이었던 이엥 사리(Ieng Sary)에 대한 궐석재판에서 두 사람에 대한 사형판결이 선고됐지만, 그 판결이 집행된 바는 없고, 실제로 구체제 인사들에 대한 사법처리를 하려고 한 노력도 거의 없었다. 오히려 당시 베트남의 침공을 인정할 수 없다고 한, 불합리하기 짝이 없는 국제정치의 현실에 따라, 서방 사회에서는 베트남에 의해 구성된 캄보디아 정부를 인정하지 않은 채, 크메르 루지를 여전히 정통성이 있는 정부로 취급하기까지 했다.

    결국 1990년대에 파리평화회의 등 국제사회의 노력에 의해 유엔평화유지군이 파견된 가운데 1993년 총선이 치러지고, 그 결과로 연정이 구성됐지만, 내전은 여전히 계속됐다. 그러다가 1997년 크메르 루지 자체의 내분으로 폴 포트가 가택연금이 되고, 1998년에 이르러 크메르 루지가 와해되면서, 비로소 캄보디아에 평화가 정착하게 됐다. 폴 포트는 가택연금 후 9개월 만에 사망했는데, 자살설도 없지 않다.

    다. 유엔과의 협상 및 ECCC 설립

    그러한 과정 중에 캄보디아 연정의 두 총리가 1997년 연명으로 유엔 사무총장에게 크메르 루지 지도자들에 대한 재판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것을 요청하게 됨에 따라 유엔과 캄보디아 사이의 협상이 시작됐다. 유엔 측에서는 ICTY 등과 같은 순수한 국제재판소를 설치할 것을 선호했지만, 그 후 쿠데타로 단독으로 정권을 잡게 된 훈 센(Hun Sen)은 국제사회로부터 지원을 받더라도 재판은 캄보디아 법원 내에서 캄보디아 법에 따라서 할 것을 고집해서, 2002년도에는 유엔 사무총장이 협상결렬을 선언하기도 하는 등, 협상과정이 험난했다.

    우여곡절 끝에 2003년 6월 유엔과 캄보디아 사이의 협정이 체결되고, 2004년 10월 캄보디아 국회가 국내법적 효력을 갖는 위 협정을 비준하면서, ‘민주 캄푸치아 시기 동안 저질러진 범죄의 처벌을 위한 캄보디아 법원 내의 특별재판부 설치를 위한 법률’(이하 ECCC법 또는 법)을 개정해, 제도를 갖추게 됐다. 그 후 국제사회의 자금 모금과정을 거쳐, 2006년 7월 캄보디아인 및 외국인 판사ㆍ검사가 취임 선서를 하고, 2007년 6월에 이르러 판사 전원회의에서 재판소의 조직과 절차에 관하여 상세히 규정한 내부 규칙(Internal Rules, 이하 규칙)이 통과됨으로써 ECCC가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3. ECCC의 조직과 권한

    가. 개관

    ECCC는 프랑스에서 유래한 대륙법적 제도를 따라 검사 이외에 수사판사(Investigating Judge)를 두고 있고, 수사단계에서의 분쟁 해결을 위하여 예심 재판부(Pre-Trial Chamber)를 두고 있다. 기소된 사건의 재판은 제1심 재판부(Trial Chamber)가 담당하고, 그 상소심은 대법원에 둔 상소심 재판부(Supreme Court Chamber)가 담당한다. ECCC의 판사 및 검사는 캄보디아 국내법에 따라 최고사법위원회가 임명한다. 다만 외국인 판사 및 검사는 유엔 사무총장의 추천에 따라 위 위원회가 임명한다.

    나. 관할

    ECCC는 1975년 4월17일부터 1979년 1월6일까지 사이에 저질러진 캄보디아법상의 범죄 및 국제법상의 범죄에 중한 책임이 있는 민주 캄푸치아 지도자 등을 처벌하기 위하여 설치된 것이다. ECCC가 관할하는 캄보디아법상의 범죄는 살인, 고문 및 종교적 박해의 세 가지이고, 이들에 대해는 공소시효가 30년간 연장된다. 한편 국제법상의 범죄로는 집단 살해죄(genocide), 인도에 반하는 죄(crimes against humanity), 제네바협약의 중대한 위반죄, 문화재 보호를 위한 헤이그협약 위반죄 및 외교관계에 관한 비엔나협약상의 피보호자에 대한 범죄 등 다섯 가지를 규정하고 있다.

    다. 재판부의 구성

    예심 재판부와 제1심 재판부는 각각 5명씩의 판사로 구성하고, 그 중 각 3명은 캄보디아 판사, 나머지 2명씩은 외국 판사로 임명한다. 상소심 재판부는 7명의 판사로 구성하고, 그 중 4명은 캄보디아 판사, 3명은 외국 판사로 임명한다. 각 재판부에는 판사의 유고에 대비하여 내국인과 외국인 각 1명씩의 예비판사를 둔다. 각 재판부는 전원 일치의 결론을 내도록 노력하여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그 결정에는 예심 재판부와 제1심 재판부의 경우에는 적어도 4명, 상소심 재판부의 경우에는 적어도 5명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이는 각 재판부 내에서 캄보디아 판사들의 찬성만으로 결론을 낼 수 없도록 적어도 외국인 판사 1명의 찬성이 필요하도록 하기 위해서 고안된 것으로, ‘압도적 다수결의 원칙(super majority rule)’이라고 불리고 있다.

    라. 공동 검사 및 공동 수사판사

    수사판사는 스스로 사건을 인지할 수 있는 권한이 없고, 검사만이 입건(prosecution)을 할 수 있다. 한편 검사는 입건을 하기 위한 준비단계로서의 초기 수사(introductory investigation)를 할 수 있지만, 증거 수집 등을 위한 본격적인 사법적 수사(judicial investigation) 및 기소(indictment) 여부의 결정은 수사판사의 권한이다. 검사가 초기 수사 결과 범죄혐의가 있다고 인정하여 그 요지를 적은 최초 의견서(introductory submission)를 수사판사에게 송부하면 이로써 수사가 개시된다. 수사판사가 수사를 마친 후 사건기록을 검사에게 보내면, 검사가 이를 검토하여 최종 의견서(final submission)를 수사판사에게 송부한다. 수사판사는 이에 기초하여 기소 여부를 결정한다(closing order). 기소된 사건의 송무 수행은 검사가 담당한다. 검사 및 피의자는 위 최종 결정을 비롯해 수사 과정상의 여러 가지 결정에 대해 예심 재판부에 항고할 수 있는데, 예심 재판부의 결정에 대해는 상소할 수 없다.

    한편 ECCC에는 검사 및 수사판사를 2인씩 두는데, 캄보디아인과 외국인을 각 1인씩 임명한다. 이들 공동 검사(Co-Prosecutors) 및 공동 수사판사(Co-Investigating Judges)는 합의제로 운영하되, 만약 이들 사이에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에는 예심 재판부에 그 해결을 신청해 그 결정에 따라 해결하고, 이러한 신청이 없는 경우에는, ‘입건(prosecution)’ 또는 ‘수사(investigation)’를 하는 방향으로 진행한다. 예심 재판부에서는 이러한 신청에 대해 압도적 다수결에 의하여 결정을 하되, 예심 재판부가 압도적 다수결에 이르지 못하는 경우에는 입건 또는 수사를 하는 방향으로 진행한다.

    4. 재판절차

    가. 국내법과 국제적 기준의 조화

    ECCC는 캄보디아 국내 법원조직의 일부이기는 하지만,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외국인 판사를 두면서, 국제법상의 범죄를 관할할 뿐만 아니라, 수사 및 재판절차도 국제적 기준(international standard)에 부합하여야 함을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다. 즉 ECCC법은 수사 및 재판절차는 캄보디아 국내법에 의하되, 국내법 규정이 없거나, 국내법 규정에 대한 해석이나 적용에 불분명한 점이 있거나, 또는 국제적 기준과의 부합 여부에 관한 의문이 있는 경우에는, 국제적으로 확립된 절차적 원칙을 따라야 한다고 규정하는 한편(법 제20조, 제23조, 제33조), 특히 피고인의 권리 보호 및 재판절차와 관련하여서는 1966년의 시민적 및 정치적 자유에 관한 국제협약(International Covenant on Civil and Political Rights, ICCPR) 제14조 및 제15조에 규정된 공정한 재판 및 적법 절차 등 국제적 기준에 합당하여야 함을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다 (법 제33조, 제35조).

    나. 수사 및 재판절차 개관

    ECCC의 수사 및 재판절차는 프랑스식 대륙법제에 따른 직권탐지주의를 취하고 있다. 수사판사의 피의자 신문은 변호인의 참여하에 이뤄진다. 검사도 이에 참여할 수 있는데, 수사판사에게 일정한 사항에 대한 신문을 요청할 수 있다. 한편 수사판사의 증인(참고인) 신문은, 특별히 대질신문을 하는 경우 이외에는, 피의자나 그 변호인의 참석 없이 시행한다(이 점은 프랑스에서의 경우와 다르다). 피의자는 수사판사에게 일정한 증인의 조사를 요청할 수 있고, 수사판사가 이를 거부하면 예심 재판부에 항고할 수 있다.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검사 및 변호인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사건기록을 열람하고 등사할 수 있다. 다만 증인의 보호를 위하여 특히 필요한 경우에는, 피의자 측에게 증인의 인적 사항을 전혀 알려주지 않는 것도 가능한데, 이러한 익명 증인의 증언이 유일한 증거인 경우에는 이를 유죄의 증거로 할 수 없다(규칙 제29조 6항).

    재판은 수사판사 또는 예심 재판부의 기소에 의하여 개시된다. 피고인 신문이나 증인 신문시에는 재판장이 먼저 신문하고, 검사와 변호인은 재판부의 신문이 끝난 후에 재판장의 허가를 받아 신문할 수 있다. 증거법과 관련해서는, 대륙법의 전통에 따라,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모든 증거가 증거능력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규칙 제87조 1항). 한편 ECCC법 제35조는 ICCPR 제14조의 규정에 좇아 피고인은 자신에게 불리한 증인을 신문할 권리(right to examine evidence against them)가 있다고 선언함으로써 피고인의 반대신문권을 보장하고 있고, 이에 따라 규칙 제83조는 피고인은 수사단계에서 자신이 신문할 수 없었던 증인에 대해 재판부의 비용으로 당해 증인을 소환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동 규정은 증인이 소환에 응하지 않는 경우에 관하여는 침묵하고 있어서, 향후 그 운영의 추이에 관심이 간다.

    마지막으로 특기할만한 점은, 피해자 또는 피해자 단체가 당사자(civil party)로서 수사 및 재판절차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수사 및 재판절차에서 의견을 진술할 수 있고, 일정한 도덕적, 집단적 배상을 위한 조치를 구할 수 있다 (규칙 제23조).

    5. 맺으면서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ECCC는 유엔과 캄보디아 사이의 협상의 결과로 탄생한 것으로 그 조직과 제도의 면에서 유례가 없는 절충적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미 위 협상이나 규칙 제정 과정에 있어서 교착상태에 빠진 적이 여러 차례 있지만, 앞으로도 그 실제의 운영과 관련해 걱정스러운 시각으로 지켜보는 견해가 적지 않다. 현재에는 구금된 5명의 피의자에 대한 수사절차가 진행 중인데, 피고인의 고령 및 건강상태 등을 감안할 때, 신속한 재판의 문제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ECCC가 성공적으로 재판을 마치게 된다면, 전통적인 영미식의 모델만으로는 복잡다단한 재판을 진행할 수 없다는 인식이 점차 확산되고 있는 오늘날, 앞으로의 국제형사재판에 대해 가지는 의미가 적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최근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