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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조 변호사의 해외법조 산책] 출판물에 의한 공무원의 명예훼손

    김민조 변호사(서울지방변회 사무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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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2월1일, 미연방 제10순회 항소법원은 전직검사와 경찰, 범죄학자 3인이 존 그리샴이 집필한 '이노센트 맨'으로 인해 심각한 명예훼손과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는 이유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대하여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한 1심 판결을 그대로 유지했다. 이 사건은 이른바 전직 수사기관과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의 대결이자 '프로 대 슈퍼스타'의 배틀로 불리우며 근 3년간 세간의 주목을 받아왔다. 특히 이번 항소법원의 판결에서는 서적 등의 출판물을 통해 공무원의 직무행위를 비판한 경우 과연 어떠한 기준 하에서 명예훼손 여부를 판단할지 여부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적시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깊다.

    전직검사·경찰 등 3인 작가 '존 그리샴' 상대 명예훼손혐의 損賠청구

    사건의 시발점은 1982년 12월 미국 오클라호마 주의 작은 마을로 거슬러 올라간다. 21세의 클럽 웨이트리스 데브라 카터가 성폭행 당한 뒤 잔인하게 살해되자 겨우 4인의 경찰만이 상주하는 작은 마을은 일대 혼란에 휩싸인다. 경찰들은 어떻게든 범인을 잡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히게 되고 실은 진범이었던 글렌 고어의 거짓 증언에 론 윌리엄스와 데이비드 플리츠는 강력한 용의자로 몰아진다.

    계속되는 심문에 지친 론의 자백 아닌 자백에 검찰 역시 특별한 물증 없이 론을 살인자로 기소하고 잔혹했던 살해방법과 론의 방탕했던 과거사에 배심원은 설득 당한다.

    사형선고를 받고 11년간 수감되었던 론은 사형집행 5일 전에 극적인 재심결정을 받은 후 DNA 검사를 통해 무고함을 확인받아 1999년 석방되었으나, 이미 긴 수감생활을 통해 심신이 극심하게 피폐된 후였다. 론 윌리암스는 2004년에 51세의 일기로 사망했다.

    간략한 개요는 위와 같다. 소설보다 더욱 소설 같은 이 실화는 존 그리샴의 이노센트 맨을 통해 다시 한번 세상에 재조명 되었다. 논픽션이라는 장르적 특성상 존 그리샴의 여타 책과는 달리 지루한 면도 없지 않지만 일련의 과정 속에서 한 사람의 인생이 어떻게 망가져 가는지가 충격적으로 그려진다. 단지 수사기관뿐 아니라 법원, 변호사, 배심원, 교도관, 동료 죄수, 이웃주민 그리고 론 윌리엄스 자신마저도 전체적인 비극의 공범자인 까닭에 읽는 내내 답답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소설 '이노센트 맨' 통해 '무능경찰' '나태한 검찰'로 악의적 비판에 정신적 피해

    이노센트 맨을 통해 실명으로 세상에 공개된 빌 필터슨 전직검사, 게리 로저스 전직경찰, 멜빈 헤트 전직 주 범죄학자는 2007년 9월, 동 책에서 존 그리샴이 사용한 '무능한 경찰', '나태한 검찰' 등의 인신공격성 표현과 악의적이고 무차별적인 비판으로 인해 심각한 명예훼손을 입었음을 주장하며 오클라호마 주 머스코지 지방법원에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1심에서 패소한 원고들은 항소하였고, 빌 필터슨 검사는 지난해 64세의 나이로 퇴직하였다.

    퇴직 사유가 이노센트 맨과 관련이 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는 일면 그렇기도 하다라고 대답한 바 있으며 이후에는 몇몇 인터뷰 등을 통해 평소 사형제 폐지를 강력히 주장해 온 존 그리샴이 이를 관철하기 위해 무리하게 자신들을 글로써 공격한 것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항소법원은 이날 판결을 통해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의 경우 피해자의 일반손해가 추정되어 이에 대한 입증이 불요하다고 할 것이나, 사안과 같이 공무원에 대한 명예훼손이 문제되는 경우에는 특별 손해에 대한 입증책임이 따로 요구된다고 할 것인데 원고들은 이에 대한 입증이 없다" 또한 "오클라호마주법상 공무원의 직무집행에 대한 비판은 특히 보호되는 것으로써 그 비판이 명예훼손에 해당되기 위해서는 당해 공무원이 직무상 범죄행위에 가담하였다는 허위의 사실을 적시한 경우에 한한다"고 전제한 후, "원고들은 피고 존 그리샴이 이노센트 맨을 통해 원고들의 명예를 훼손하였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가설에 불과할 뿐 구체적으로 원고 중 어떤 이에 대하여 어떠한 특정의 범죄를 무고히 전가하는지에 대한 직접적이고도 논리적인 뒷받침이 전혀 불충분하다"고 일축했다. 판결이 선고된 후 필터슨 검사 등은 더 이상 상고하지 않을 것임을 밝혔다.

    '직무상 범죄가담'했다지만 구체적 입증자료 없다, 항소법원서도 일축

    보통법을 기반으로 연방과 주라는 이원화된 시스템을 가진 미국 법조는 우리 법조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하더라도 이른바 선진법조의 표상이라 불리우는 미국에서 불과 30여년 전에 일어났던 이 비극은 지구 반대편에 있는 우리에게도 무언가 강한 울림을 던져준다. 이 사건에서 또 한명의 살인자로 지목되어 종신형을 선고받았던 데니스 프리츠는 다음과 같이 부르짖는다. "결백이 증명될 때까지 유죄입니까? 아니면 유죄가 증명될 때까지 결백한 것입니까?" 정답은 우리 헌법 제27조 제4항에도 명시되어 있다.

    ※ 지면관계상 사건의 개요와 명예훼손 관련 판결의 내용을 최소한으로 압축하여 소개했습니다. 판결문에서는 출판물 및 공무원에 대한 명예훼손 판단 기준의 특칙과 civil conspiracy 이론이 자세히 설시되어 있으므로 관심 있으신 분들은 이노센트 맨 이외에 판결문 전체를 일독하시길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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