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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조 변호사의 해외법조 산책] 아트 크라임

    김민조 변호사(유고전범재판소 파견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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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림에는 문외한이지만, 그리고 물론, 실물은 아니였지만, 반 고흐의 '밤의 테라스'라는 그림을 보고 한눈에 반해 넋을 잃고 한참을 바라봤던 기억이 있다. 마침 고시 공부하던 시절이었는데, 당장에 그 포스터 액자를 하나 사서 독서실 책상 옆에 붙여놓고 답답할 때마다 한 번씩 바라보곤 했다. 초여름 밤 낭만이 모두 거기에 녹아 있었다. 그림이 여행이고 위안이었다. 새삼 반 고흐에 감사한다.

    '명화를 훔치는 것은 인류 전체를 상대로 한 심각한 범죄행위다.'지난 11월27일 독일 전시를 마치고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 미술관으로 이동 중이던 세기의 명화 28점을 한꺼번에에 도난당한 뒤, 스페인 당국 경찰관이 브리핑 도중 격앙된 목소리로 한 말이다. 도난된 그림에는 피카소, 칠리다, 보테로 등의 명화가 포함되어 있어 피해금액만 수백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허망하게도 전 세계 미술계를 발칵 뒤짚어 놓은 세기의 절도범은 엄청난 카리스마를 뿜어내며 최첨단 무기를 장착하고 소리 없이 경계를 풀어내는 피어스 브로스넌이 아니였다. CCTV에 찍힌 세 명의 용의자들은 허름한 후드티에 마스크로 복면하고, 위 명화들을 운반하던 트럭이 스페인 외곽 공업지대에 정차되어 있는 틈을 타 유리창을 부수고 조수석 서랍에 있던 스페어 키를 꺼내 시동을 걸고 사라졌다. 12월2일, 텅 빈 트럭만이 발견되었는데, 스페인 경찰은 당시 범인들이 트럭의 정차위치, 정차시간, 조수석 내 열쇠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었던 점에 비추어 내부 관계자에 의한 정보유출이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운송관계자 모두를 소환하여 조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 아트 크라임 연구협회(Association for Research into Crims Against Art)의 발표자료에 따르면 아트 크라임은 지난 40년간 마약, 무기 밀매에 이어 세 번째로 거대한 조직범죄로 해마다 공식 신고되는 범죄피해 액수만 약 6조원에 달한다고 한다. 아트 크라임은 예술품 절도, 위작, 모작, 손괴 등 예술품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범죄를 총칭하는데, 이 중 예술품 절도가 가장 빈번히 발생하는 국가는 이탈리아다. 이탈리아에서 해마다 접수되는 예술품 도난건수는 2만건 내외로, 1969년부터 현재까지 누적된 건수는 84만건을 상회한다. 그간 아트 크라임은 세기의 예술품 보고인 유럽에서 특히 문제시 되어 왔으나, 최근 들어서는 미국에서도 그 문제점을 크게 인식하고 지난 2004년 FBI에 아트 크라임 전문 수사팀을 구성하기에 이르렀다. 수사팀 보고에 따르면 도난된 그림을 되찾아올 확률은 15% 미만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절취된 희대의 명화들은 과연 어떠한 운명에 처하게 되는걸까. ARCA 회장 Noah Charney는 이를 크게 다음의 두 가지 범주로 정리한다.

    첫째, 명화 자체를 볼모로 하여 피해 미술관과 보험회사에 막대한 금원을 요구하는 예로, 이는 배후에 연계된 범죄조직 없이 천부적인 범행능력으로 명화를 절취한 개인 또는 소규모 절도단이 선호하는 양상이다. 이 경우 미술관에서 금원의 지불을 거부하게 되면 절도단은 스스로 명화를 처리할 능력이 없어 시세보다 헐값에 암상인에게 팔거나, 극히 예외적으로는 그림을 그대로 포기하기도 한다.

    실례로 지난 1991년4월, 네덜란드 반고흐 미술관에서는 반고흐 최고의 명작, '해바라기'를 비롯한 그의 그림 20점을 도난당한 후, 45분만에 되찾은 사건이 있었다. 범인들은 20점의 그림을 실은 자동차를 미술관에서 불과 두정거장 거리인 기차역에 버리고 그대로 도주하였는데 이후 끝내 잡히지 않았다. 때문에 그들이 45분 만에 그림을 두고 도주한 이유 역시 수수께끼로 남았지만, 결국 반고흐 그림 도난사건이 가져올 사회적 파장과 그에 따라 그림의 거래 자체가 사실상 불가할 것임을 깨닫고 늦기 전에 포기한 것이라는 것이 정설로 알려져 있다. 이 사건을 대서특필한 뉴욕타임즈에 따르면 당시 반고흐 뮤지엄은 도난당했던 그림에 대한 보험을 들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각 그림에 대한 보험료 자체가 천문학적이어서 이를 부담하는 것보다는 자체경비를 확충하는 것이 경제적이라는 결정 때문이었다고 한다.

    반고흐 그림의 경우 사경매에 등장하는 것 자체가 극히 드문 사례여서 값을 매기는 것 자체가 쉽지 않지만, 1990년 그의 작품 '가셰 초상화'가 일본인 기업가 료이 사이토에게 8,250만불에 낙찰되었던 점을 고려하면 그 가치를 대충 짐작할 수 있다. 참고로 료이 사이토는 자신이 죽으면 가셰 초상화도 함께 화장해 달라는 발언으로 전 세계 미술 애호가들로부터 큰 비난을 받은 바 있는데, 이후 당시 발언이 농담이었다고 해명하긴 했으나 실제로 그가 사망한 1996년 이후 위 그림의 행방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알려진 바 없다.

    도난된 명화의 두 번째 향방은, 예상되는 바와 같이 배후의 거대 범죄조직과 연계되어 돈세탁, 마약 및 무기밀매, 테러리스트 조성 등의 부당거래에 사용되거나 암흑의 개인컬렉터에게 비밀리에 판매되는 예로, 이 경우 명화회복의 가능성은 전자에 비해 훨씬 희박하다. 대표적인 케이스로는 전설의 아이리쉬 갱스터 '마틴 카힐'의 러스보르 하우스 명화절도사건을 들 수 있다. 1986년, 마틴 카힐을 중심으로 한 갱단은 러스보르 하우스에서 베르메르, 고야, 램브란트 등의 그림 18점을 절취했는데, 이 중 다시 찾은 그림은 현재까지 단 세 점에 불과하다. 카힐은 당초 훔친 그림들을 볼모로 러스보르 측에 2,000만 파운드를 요구했으나 거절당하자, 베르메르의 그림 '편지쓰는 여인과 하녀'를 벨기에의 다이아몬드 판매상에게 담보물로 제공하고 백만불을 차용, 서인도제도 안티과은행에서 돈세탁을 거쳐 마약밀수에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공을 초월하여 사랑받는 세기의 명화가 맥없이 절취된 후 얼마나 암울하게 처리되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다행히 베르메르의 위 그림은 완벽히 복원되어 현재 아일랜드 더블린 국립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불멸의 작품들, 그 안부를 걱정해야 하는 시대…. 불멸의 불멸을 이어가는 것이 남겨진 우리의 숙제일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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