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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주말

    '금정산(金井山) 예찬' 김경수 서울고검 형사부장

    산을 오르고 숲 속을 걸으면 작은 평화와 위로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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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산이 서울의 보배라면 금정산은 부산시민의 안식처입니다. 가까운 곳에 친구 같은 산이 있는 서울과 부산은 복받은 곳입니다. 북한산이 하늘을 찌를듯 기개를 뽐낸다면 금정산은 낙동강을 따라 구비구비 흐르는 주능선이 푸근하고 정겹기 짝이 없습니다. 황금빛 개구리가 사는 바위우물이 있다하여 금정산(金井山)이라 불립니다. 선조들의 눈에는 비바람과 세월에 씻기고 깎여 누워있는 금정산의 바위덩이가 천마리의 거북과 만마리의 자라로 보였나 봅니다. 그래서 천구만별(千龜萬鼈)이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습니다.

    자랑거리가 또 있습니다. 백년은 됨직한 노송이 우거진 숲입니다. 바위와 노송이 어우러진 숲에 들어서면 입가에 미소가 절로 떠오릅니다. 여기에 적막감이 더해지는 이른 아침이나 해질 무렵의 풍경은 때묻은 이승의 돈으로는 그 값을 매길 수 없습니다.

    천년고찰 범어사(梵魚寺)를 출발해 북문을 거쳐 고당봉(801m)에 오릅니다. 검푸른 부산 앞바다가 자신있게 모습을 드러냅니다. 팽팽하게 솟은 수평선과 떠도는 흰구름을 보노라면 세월속에 잊혀져간 젊은 시절의 꿈이 떠오릅니다. 정의롭게 살자 억압받는 이들을 위해 살자고 다짐했던 젊은 시절의 꿈 말입니다. 눈을 한번 껌뻑이면 장면은 바뀝니다. 훌쩍 뛰기라도 하면 바로 닿을 듯한 대마도가 수평선위에 펼쳐져 있습니다. 지척에 놓인 대마도가 우리 땅이 아닌 것이 의아했습니다.



    올라왔으면 이제 내려가야 합니다. 굽이친 주능선 길을 따라 남쪽으로 걷습니다. 걸으면서 하는 생각이 앉아서 하는 생각 보다 더 좋은 것 같습니다. 오른쪽엔 낙동강 물줄기가 느릿느릿 바다를 향해 마지막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멀리 함백산에서 발원하여 천리길을 달려온 긴 여정을 마치려 합니다.

    해질 무렵이면 낙동강의 낙조가 일품입니다. 낙동강과 김해평야 너른 들판이 온통 붉은 빛으로 물듭니다. 잔칫집 보다는 초상집에서 배울 것이 더 많듯이 지는 해를 보며 우리는 더 정직해 질 수 있습니다.

    지난 2010년 4월 20일은 당시 제가 근무하던 부산지방검찰청이 발칵 뒤집힌 날이었습니다. 이른바 MBC PD수첩의 '검사 스폰스사건'때문입니다. 함께 근무했던 사람들 대부분의 심정이 참담했습니다.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보며 참담해하기도 하고 광풍속에 억울함을 호소해도 들어줄 이 없어 참담해하기도 했습니다. 들킨 자나, 들키지 않은 자나, 구경꾼이나 모두 연약한 인생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사가 그렇듯이 모두 나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단련 없이 강철이 만들어지지 않듯이 시련은 인간을 고귀하고 심오하게 하는 거의 유일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시련의 시기에 금정산은 친구가 되어 주었습니다. 산에 오르고, 숲속을 걸으면서 작은 평안과 위로를 얻었습니다. 매일 아침 금정산 중턱의 바위 위에 누워 푸른 하늘을 보았습니다. 나뭇잎 사이로 아침 햇살이 보이고 나뭇잎 갈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그곳에 누워 하늘을 보면서 세상사가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인생의 고달픔과 서글픔, 울분이 지탱하기 무겁기는 하나, 그 무게를 과대평가하는 경우도 허다한 것 같습니다. 세상사라는 것이 그리 크지도 않고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도 아니라는 깨달음을 준 금정산과 바위와 소나무, 그리고 이른 아침의 적막함에 감사합니다. 고맙다, 친구 금정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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