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egalinsight
  • Legaledu
  • 법률신문 오피니언

    나의 주말

    연극 '나는 너다'를 보고

    조대환 변호사

    입력 :
    글자크기 : 확대 최소
  • 인쇄
  • 메일보내기
  • 기사스크랩
  • 스크랩 보기
  • 오랜만에 연극얘기를 하고 싶어졌다. 희곡 속의 캐릭터로 변한 배우가 관객 앞에서 몸짓과 대사로써 만들어 내고, 아무리 되풀이 되어도 다른 느낌의 공연예술, 연극은 사건을 말하기 보다 보여주고 현장무대에서 이야기를 재현하는 배우와 이를 마주보고 직접 느끼는 관객이 있어, 보다 실제적으로 창작되고 새롭게 해석될 수 있는 예술인 것 같다.

    신록이 푸르른 지난 6월, 일제침략에 맞서 아낌없이 목숨을 바친 영웅 안중근과 그 아버지의 그늘에 가려 어느 누구도 기억해 주지 않는 고난의 삶을 살아야만 했던 아들 안준생의 엇갈린 삶을 그린 연극 '나는 너다'를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보았다. 지난해 안중근 서거 100주년을 맞아 국립극장에서 초연되었던 이 공연은 안중근이 아닌 그 아들 안준생의 삶에 초점을 맞춘 다소 남다른 시각의 이야기로, 연극배우 윤석화가 연출을, 송일국이 안중근과 안준생의 2역을, 연극계의 대모라 할 수 있는 박정자가 안중근의 어머니 조마리아역을 맡아 그 스토리 못지않게 공연의 안정감과 무게감을 더해 주었다.

    안준생이 시공을 알 수 없는 막막한 공간을 떠돌며 아버지의 이름을 더럽힌 친일파로 비난받는 장면으로 극은 시작한다. 안중근은 1909년 삼십대초반의 젊은 나이에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고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고, 항소를 하여 목숨을 구걸하느냐, 의로운 죽음을 택하냐의 기로에 선다.

    극은 이러한 안중근의 고민과 함께 남겨져 고통받는 그 가족, 노모, 아내와 아이들의 아픔을 교차시킨다. 조마리아는 항소를 하여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하지 말라 하고, 안중근은 이에 항소하지 않은 채 당당히 교수대에 오른다. 일제식민통치의 재판권을 인정할 수 없다는 안중근의 의연한 모습에 고개가 저절로 숙여지는 대목이다.

    사실, 일제식민주의 법체계는 당시 일본법령을 제국주의의 경제적 요구를 충족하고 그에 대한 사회적 저항을 봉쇄할 수 있도록 자의적으로 재편되어 만들어졌거나 해석되어 운용되었고, 법정에서는 대부분 일본인 판사와 검사, 심지어 변호사가 일본어로 된 법령에 따라 일본어로 재판을 진행하였으니 법질서실현을 위한 국가의 권능인 재판권이 제대로 실현될 수 없었던 건 당연하였는지 모른다.



    한편, 안준생은 그 의지와 상관없이 비참한 상황으로 자신을 몰아넣은 아버지를 원망하고 절규하는데, 그 때 아들에게 답하는 안중근의 목소리가 들리고, 그 깊은 뜻을 알게 된 그는 아버지를 찾으며 울부짖는다. 말할 수 없는 갈등과 고통 속에 일제를 단죄하고 의로운 죽음을 택한 안중근은 민족의 영웅이 되었지만, 그 아들에겐 너무나 큰 시련과 인간적 고통의 근원이 되었는지 모른다. 우리가 흔히들 알고 있는 연극의 4대 요소, 배우, 무대, 관객, 희곡 이외에, 요즘은 조명, 무대장치, 음향효과, 춤 등 부대적 요소가 더욱 중요해지고 연극공연을 보다 실감나게 하고 있는 것 같다.

    이 공연에선 위인전기나 역사극으로 진부하게 느낄 수 있는 무대를, '하이퍼 파사드(Hyper Facade)'란 첨단입체영상기술을 사용해 광대한 만주벌판, 뤼순감옥, 하얼빈거리 등 우리 역사 속 치열했던 질곡의 현장들을 마치 영화를 보듯 움직이는 배경 스크린에 담아 연극이 갖는 시공간의 제약을 극복하고 사실감을 더해 준 것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영웅적인 아버지의 모습과 보다 인간적인 아들의 처지가 비록 다른 운명일지라도 '나는 너다'라는 의미로 하나가 된 느낌이었다.

    최근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