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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日 제7차 아시아계약법 포럼을 다녀와서

    제철웅 교수(한양대 로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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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ACL 규정, 유명 해외출판사 통해 출판" 결의는 가장 큰 성과

    지난 3월 4일부터 6일까지 일본 게이오대학교에서 제7차 아시아계약법원칙(이하 'PACL') 포럼(이하 '도쿄 포럼')이 열렸다. 도쿄포럼에는 일본, 한국, 중국, 대만, 홍콩, 싱가폴, 태국의 학자들이 참석하였다. 한국에서는 한중일민상법통일연구소 이영준 변호사, 서울대 최봉경 교수 그리고 필자가 참석하였다. 필자는 제6차 서울포럼부터 PACL 모임에 참석하였다.

    도쿄포럼의 가장 큰 성과는 PACL 규정을 유명 해외 출판사를 통해 출판하기로 결의하였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계약법 총칙(제1장 총칙 제2장 계약의 성립 제3장 계약의 무효와 취소 제4장 채무이행 제5장 채무불이행)의 각 장별 규정, 그리고 이들 규정에 대한 관할보고서(Jurisdictional reports)가 여러 권의 책으로 출판될 것이다. 국가라고 하지 않고, 관할(Jurisdiction)이라고 표현한 것은 PACL 모임에 참가하거나(홍콩, 대만) 참가할 가능성 있는 마카오의 특수한 지위를 고려한 것이다. 약 15개 이상의 관할지역이 PACL에 참여할 예정이다.

    다른 한편 도쿄포럼에서는 PACL의 운영체계에 대해서도 합의하였다. 이영준 변호사를 비롯한 4명의 책임편집자를 두고, 각 장별로 PACL의 규정과 그 취지를 설명할 보고자(Reporters)를 두고, 각 관할지역의 관련 법을 설명할 보고자(Jurisdictional Reporters)를 두기로 하였다. 이것은 작업을 보다 효율적으로 수행해서 빠른 시일 내에 PACL의 성과물을 출판하기 위한 것이다.

    도쿄포럼의 가장 중요한 의제는 PACL 규정에 관한 토의였다. 의제로 예정된 것은 지난 서울포럼에서 토의하지 못한 부분(채무불이행에 관한 한국 측 초안)과 베이징포럼에서 다루지 못하였던 부분(채권자대위권 및 채권자취소권), 그리고 대리에 관한 부분(일본 측의 초안)이었다. 채무불이행 관련 규정은 이영준 변호사가 마련한 초안이 검토대상이었다. 이 초안은 국제적 모델법을 반영하면서도 아시아의 여러 나라의 법원칙으로 적용될 수 있게끔 변형을 가한 것이었다. 도쿄포럼에서는 그 중에서 3개 조문의 검토에 상당한 시간을 소요하였다. 첫째, '손해배상은 금전채무상의 해당 통화로 하거나 손해가 발생한 곳의 통화로 하되, 더 적절한 통화로 한다'는 부분이었다. 국제적 성격이 있는 계약상 채무가 불이행된 경우 어떤 통화를 기준으로 손해를 산정할 것인지를 규율하는 규정이다. 이 규정과 관련해서 여러 가지 쟁점이 검토되었다. 먼저 반대급부가 금전채무인 경우 그 통화를 계약으로 정하기 마련인데 그 통화로 배상하면 충분하지 않는지가 검토되었다. 가령 매수인이 위안화로 지급하되 물품은 한국에서 인도되고,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도 한국에서 발생한 경우 그 손해배상은 한국통화로 하는 것이 더 적절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의견의 일치가 있었다. 그런데 매수인의 채무불이행이 있는 경우 대금채무상의 통화와 손해발생지의 통화가 다른 경우도 있는지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었다. 금전채무의 불이행이 있을 때, 법률 또는 당사자의 합의로 달리 정하지 않았다면, 지연이자의 배상만 인정하는 주의를 채택하는 법제에서는 대금채무상의 통화와 손해발생지의 통화가 달라지는 일을 상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PACL의 채무불이행법은 손해배상의 범위에서 금전채무불이행과 다른 채무불이행을 구분하지 않고, 확대손해 또는 결과손해도 예견가능성의 범위 내에 있으면 이를 배상하도록 하였기 때문에, 금전채무의 불이행에서도 확대손해 또는 결과손해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재확인하였다. 그 결과 확대손해 또는 결과손해의 발생지의 통화가 대금의 통화와 달라지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재확인하였다. 끝으로 '더 적절한 통화'라는 표현을 둠으로써 당사자 간에 불필요한 분쟁을 발생시키지 않겠는가라는 점도 검토되었다. 결국 다른 분쟁과 마찬가지로 적절성은 재판관할권 있는 법원 또는 중재재판소에서 최종적으로 판단할 것이기 때문에 별다른 문제는 없다는 점이 확인되었다. 다만 관할법원마다 '적절성'에 대한 판단이 달라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PACL 내재적 해석원칙의 확립이 필요할 것이다. 이 부분은 계약해석을 다루는 제1장의 관할 사항이므로 더 상론은 하지 않는다.

    둘째, PACL 채무불이행법의 초안은 채무불이행에 대한 구제수단(Remedies)은 채무자의 유책사유를 요건으로 하지 않되, 별도의 면책사유를 정하였다. 초안의 '장애(impediment)'라는 조문에서, '채무불이행이 채무자의 통제를 벗어난 장애에 기인한 것이고 그 장애 또는 장애의 파생물을 피하거나 극복할 것을 합리적으로 예견할 수 없었던 경우에는 채무불이행에 대한 책임이 없다. 그러나 계약체결의 시점에서 그 장애를 합리적으로 고려할 수 있었던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II-6:601 제1항)고 규정하고, 그 장애가 일시적인 경우 장애가 지속되는 경우에만 면책이 된다(同條 제2항)고 하며, 장애를 원용하여 면책되고자 하는 자는 상대방에게 장애의 성격과 그것이 채무이행에 미치는 효과를 알려야 하며, 채무자가 장애를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이 합리적인 기간 내에 통지하지 않은 경우 합리적인 시간 내에 통지가 있었더라면 피할 수 있었던 손해에 대해서는 책임이 있다고 규정하였다(同條 제3항). 그러나 '장애'는 채권자에게 인정되는 구제수단인 반대채무의 이행유보권(withhold performance), 대금감액청구권, 지연이자청구권, 계약해제권의 행사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결과적으로 장애는 특정이행청구권과 손해배상청구권에 대한 면책사유인 셈이다(同條 제4항). 이 규정 형식이 매우 복잡하였기 때문에 많은 시간 동안 토의하였지만 그 내용에 대해서는 참가자들 사이에 큰 이견이 없었고, 자구수정을 제외하면 원안대로 채택되었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로써 계약해제에 유책사유를 요구하지 않는 것에 대해 동아시아 지역의 학자들 사이에 넓은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셋째, 사정변경의 원칙을 PACL에 도입하는 문제가 토의되었다. 초안은 먼저 채무이행에 소요되는 비용의 증가, 반대급부의 가치의 하락 때문에 채무이행이 부담스럽게 되더라도 채무자는 채무를 이행해야 한다는 계약의 구속력을 확인하고 있다(II-6:602 제1항). 그러나 사정의 변경으로 채무이행이 지나치게 부담이 된(excessively onerous) 경우, 당사자는 다음과 같은 요건이 충족되면, 계약수정 또는 해제를 위해 협상할 의무가 있다. 즉 계약체결 이후의 사정변경이고, 계약 체결의 시점에서 사정변경의 가능성을 합리적으로 고려할 수 없었고, 사정변경의 위험이 계약에 비추어 볼 때 그로 인해 영향을 받는 당사자가 부담해야 할 성질의 것이 아닐 때가 그것이다(동조 제2항). 초안은 이어서 당사자가 합리적인 기간 내에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각 당사자는 법원에 정당하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사정변경으로 인한 손실과 이익을 당사자 사이에 배분할 수 있게끔 계약을 수정하도록 신청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 때 법원은 재차 당사자로 하여금 협상과 당사자간의 합의를 통해 계약을 수정하도록 노력할 의무가 있고, 법원이 계약 수정이 적절하지 않을 때 법원이 정한 날짜와 조건 하에 계약을 해소할 수 있도록 하였다(同條 제3항). 사정변경의 원칙을 PACL에 도입하는 것 자체에 대해 다수의 참가자들은 찬성하였다. 그러나 계약수정 또는 해제를 위한 협상을 양 당사자의 의무로 할 것인지, 아니면 사정변경으로 영향을 받은 당사자의 청구권으로 인정할지에 대해 논의한 결과 後者의 관점을 채택하였다. 또한 초안처럼 법원의 권한을 해소에 한정할지, 계약 수정과 해소의 권한 모두를 법원에 인정할지를 두고도 장시간 토의가 있었다. 다수의 참가자들은 後者의 관점을 선호하였다. 초안보다 법원의 재량이 확대된 것인데, 우리나라의 민법처럼 당사자 간의 법률관계는 당사자 스스로가 결정하는 주의를 채택하는 법제도 하에서는, 법원의 주된 역할은 심판관인데 PACL의 사정변경의 원칙은 이런 법제도에는 잘 조화되지는 않을 것이다. 향후 법원의 기능에 대해서도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채무불이행법의 영역 중에는 이 밖에도 PACL 서울포럼에서 토의가 미진했던 것이 있었다. 계약해제의 효과가 대표적인 것이었고, 하자치유와 여타의 구제수단 간의 관계에 관한 부분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 부분의 정비는 채무불이행법의 보고 역할을 맡기로 한 학자가 1차적으로 재검토해서 올 연말 개최될 제8차포럼에서 최종적으로 다루게 될 것이다.

    그 밖 도쿄포럼에서 채권자대위권과 채권자취소권과 대리권에 관한 규정을 계약총론 부분에 포함시킬 것인가의 문제를 깊이 토론하였다. 참가자들의 다수는 두 부분 모두 포함시키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한국, 일본, 중국 모두에 채권자대위권과 채권자취소권 제도가 있기 때문에 아시아법의 특성을 드러나게 한다는 점에서는 PACL에 포함시키는 것이 정책적으로 낫다는 견해도 있었다. 그러나 아직 그 제도의 내용이 충분히 발전해 있다고 볼 수 없고, 계약법 보다는 채권법 일반에 적용되는 성격이 강하다는 이유로 PACL에 포함시키는 것을 반대한 견해가 다수였다. 한편 영미법계 학자들은 대리가 계약법에 고유한 규정이 아니라는 이유로, 대륙법계의 일부 학자는 민법총칙에 해당되는 주제라는 각각 PACL에 포함시키는 것에 반대하였다. 대리는 계약 성립과 관련된 중요한 규율대상이다. 또한 여러 모델법(가령 PICC, PECL, DCFR 등)에서도 계약총론에 대리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다. 이 점을 감안하면, PACL에 포함시키는 것도 설득력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튼 두 영역은 PACL 출판 첫 작업에서는 제외될 가능성이 높다.

    PACL 포럼은 서로 다른 법문화를 가진 아시아의 여러 나라의 학자들이 참여하여 계약법의 내용을 두고 토의하고 있다. 여기서 학자들은 서로의 차이점과 공통점을 발견하고 이를 토론하기 때문에 그 자체로도 의미있는 모임이다. 더구나 참여한 학자들의 나라에 공통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법리를 발견하고 또 형성해 나간다는 점에서 는 매우 의미 있는 작업이기도 하다. 그러나 PACL 포럼의 지속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다. 포럼을 유지하는 것 자체에 많은 비용이 들고, 모두 자비로 참여할 수는 없는 사정도 큰 이유 중의 하나이다. 영어로 회의를 진행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런데 영어는 참여자들에게는 모두 외국어이기 때문에 원활한 의사소통과 생각과 감정의 전달에 불충분한 점도 있는 것 같다. 이러 저러한 이유로 PACL의 미래에 대해 부정적인 이들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난관을 이겨내고 PACL 포럼이 지속된다면, 아시아권의 학자들의 심도 깊은 토의의 장 하나가 굳게 서는 셈이다. 여러 어려움을 견뎌내고 제대로 된 성과가 나올지 여부는 일차적으로 올 연말에 예정된 제8차 포럼에서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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