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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순철 검사가 본 유럽 법조계] 현대판 아편전쟁

    권순철 검사(주 제네바 법무협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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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30년대 청나라와 무역을 통해 다량의 차를 수입하던 영국은 무역적자를 겪게 되자 당시 지불수단인 은을 확보하기 위해 인도에서 재배된 아편을 중국에 팔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은 값이 뛰기 시작하고 아편 중독환자가 급격히 증가하게 되자 청나라는 아편금지령을 내리고 아편 수입을 철저히 막기 시작했다. 이에 반발하여 영국이 청나라를 공격한 것이 1840년 아편전쟁이다. 정치적인 요소를 제외하면 두나라간의 대립의 현대적 표현은 '통상 분쟁'이다. 170여년이 지난 오늘날에는 어떻게 이러한 대립이 해소될 수 있을까? 전쟁이 아닌 세계무역기구(WTO) 통상분쟁 해결절차를 통해서다.

    금년 4월 4일 WTO 상소기구는 담배 무역에 관해 상당히 의미있는 결정을 내렸다. 사건은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9년 오마바 행정부는 청소년의 흡연을 예방하고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가족흡연예방 및 담배규제법'(The Family Smoking Prevention and Tobacco Control Act)를 시행하면서 청소년의 흡연율을 낮추기 위해 당시 청소년에게 인기가 많았던 정향담배(clove cigarettes)의 판매를 금지시켰다. 정향담배의 최대 생산국인 인도네시아가 문제를 제기했다. 미국이 향담배 판매를 규제하면서 인도네시아 생산제품(정향담배)은 규제대상으로 하면서도 자국이 생산하는 박하향담배(menthol cigarettes)를 허용한 것은 차별적인 조치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상소기구는 미국의 담배규제법이 인도네시아에서 수입된 정향담배보다 미국에서 생산된 박하향담배를 우대함으로써 기술장벽(TBT)협정 제2조 제1항을 위반했다고 판정하였다. 미국정부는 박하향담배의 주 소비층이 성인인데 반해 인도네시아 정향담배의 주 소비층이 청소년이므로 청소년의 흡연율 감소를 위해서는 정향담배 규제가 더욱 필요하며, 이미 시장에 광범위하게 확산된 박하향담배를 규제하게 되면 암시장이 들어설 위험만 늘어난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상소기구는 "담배의 중독성을 일으키는 요소는 향이 아닌 니코틴이므로 박하향담배 판매가 금지된다면 박하향담배 흡연자들은 일반 담배를 피게 될 것이다. 따라서, 미국정부가 박하향담배의 시장유통을 허용함으로써 암시장이 만들어질 위험성을 최소화시킨다고 주장하지만, 지금과 같이 일반 담배가 계속 유통되고 있는 한, 박하향담배 판매를 금지한다고 해도 그 위험성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없다."라고 결정문에 적고 있다.

    이 결정에 대해 미국내에 비난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이 법안을 발의한 Waxman 의원은 "매우 실망했다"는 표현까지 사용하면서 "정향담배 규제가 계속되도록 헌신하겠다"고 공언했다. 미국내 금연단체들은 "미국 의회가 향담배에서 흡연을 배우기 시작하는 미국의 청소년들을 어떻게 하면 보호할 수 있는지 최선의 결정을 내렸음에도 WTO가 이를 국가의 통상 의무(trade obligation)위반이라고 결론내린 것은 오류이다"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제소국인 인도네시아의 외무장관은 법질서 존중의 모습을 보여준 미국이 WTO의 결정을 따를 것으로 신뢰한다고 점잖게 훈계하고 있으나, 전례에 비추어 보면 미국이 WTO의 결정에 따라 법률을 개정할 것인지는 미지수이다.

    이 사건은 우리에게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우선 국제규범에 있어서 한 국가의 주권은 어느 정도까지 제한될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국제법은 국가의 주권을 보호하고 주권의 평등을 수립하는 일련의 규칙에 기반을 두고 있다. 주권은 국가가 국가 내에서 공적 권한을 수행하는 불간섭의 영역이다. Waxman 의원이 WTO의 결정에 대해 잘못된 '간섭'이라고까지 표현한 것은 이와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한 나라는 다른 나라의 주권을 존중할 의무가 있는 것이고 국제화시대에는 주권의 충돌 위험에 노출되는 환경하에 놓이게 되므로 현대에서는 전통적인 주권행사 개념 수정이 불가피하다. 자국민의 건강을 보호할 권한을 갖는 국가가 최선의 정책을 수립했음에도 다른 나라에 의해 시정요구를 받게 되고 있고, 보편규범인 기본적 인권을 침해하는 국가에게는 국제사회에서 보호책임을 발동하게 되었다. 하지만, 국제정치의 역동성 속에서 앞으로도 논란이 계속될 수 밖에 없다. 둘째, 공공정책 수립시 고려 요소로서 '통상'이라는 변수가 대두되었다는 점이다. 2009년 미국에서 담배규제법을 만들면서 정부당국은 청소년의 흡연을 촉진시키는 것이 콜라, 딸기, 정향과 같은 맛과 향이 들어간 특수담배라는 점을 인식하고 이를 규제하였다. 그리고 규제방식도 제품 특성에 따른 것이지 생산국에 따른 규제가 결코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번 사건과 같이 공공정책의 수정 요구가 자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 의해 제기될 수 있는 것이다. 최근 영국 정부가 과도한 음주소비를 줄이기 위해 술 최저가격제를 도입하자 유럽집행위원회가 시장경쟁을 훼손하여 EU협약에 어긋난다는 의견을 영국총리에게 통지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현재의 통상규범체제가 국가의 환경이나 보건정책과 갈등관계에 놓이게 되고 있는 것이다.

    영국이 아편전쟁을 앞두고 의회에서 선전포고안을 두고 격론을 벌였다. "청나라에게는 아편을 금지시킬 정당한 권리(주권)가 있다"면서 전쟁을 반대한 글래드스턴과 "50년간 공직생활을 하면서 광동에서의 치욕(아편몰수사건)은 본적이 없다"는 워털루 전쟁의 영웅 웰링톤공작의 논쟁은 현재 진행형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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