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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자의 자기결정권

    이하나 변호사(법무법인 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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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미국 대법원 판례를 중심으로

    1. 서론

    2009년 대법원의 연명치료 중단판결에서 자기결정권 문제가 부각된 후 아직 관련논의가 진행중이다. 환자의 신체상의 자기결정권(right of bodily self-determination)은 어디까지 보호되는가? 사소한 치료에서부터 심각하게는 연명치료에 이르기까지 국가나 의료진이나 가족은 나에게 "더 나아보이는" 의료상 처치를 강제할 수 있는가? 미국에서는 자기결정권에 대한 많은 판례가 또한 수혈과 같은 특정 의료상 처치를 거부하는 경우와 관련되어있고, 덕분에 많은 판례가 집적되어 모든 환자의 자기결정권의 보호범위에 대한 가치있는 자산이 되어왔다. 주로 대법원 판례와 일부 항소심 판례를 중심으로 살펴보면서 사전의료지침인 Health Care Proxy에 대해서도 간략히 다루겠다.

    2. 환자의 자기결정권 보호

    가. 일반성인(Competent Adult)


    의사결정능력이 있는 일반성인의 의료상 처치에 대한 자기결정권은 온전히 보호된다. 일찍이 Union Pacific Railway Company v. Botsford(1891)에서 "어떤 권리도 모든 개인이 자기 자신을 소유하고 통제할 권리 및 타인의 간섭과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보다 더 신성하거나 common law에 의해 더 보호된 적이 없다"는 원칙이 선언되었고, Schloendorff v. Society of New York Hospital(N.Y.1914)에서도 "모든 성인은 자기 몸에 대한 결정권을 가지며 환자의 동의 없는 수술을 한 의사는 배상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단 초창기에는 생명보존, 미성년자녀 등 제3자 보호, 자살방지, 의료인의 직업윤리 등 4가지 국익(compelling State interests)이 특정처치를 거부할 환자의 권리보다 우선할 수 있다고 여겨졌다. 그러한 취지로 D.C.항소법원의 In re President and Directors of Georgetown(1964) 및 뉴저지주 대법원의 John F. Kennedy Memorial Hospital v. Heston(1971)에서 강제수혈명령이 내려졌으나, Georgetown 판결은 절차상 하자로도 많은 비판을 받다가 오히려 같은 주 최고법원인 D.C.Court of Appeals (New York Court of Appeals처럼 주최고법원임)는 1972년 환자의 권리를 옹호한 Osborne 판결을 내놓았으며 JFK Hospital 판결도 1985년 번복되었다.

    그외에는 일리노이주 대법원의 In re Estate of Brooks(1965), D.C.최고법원의 In re Osborne(1972) 판결 등을 시작으로 미국 각주 대법원에서 거의 언제나 일반성인의 수혈거부결정을 존중하는 판례가 확립되었다. 먼저 Brooks 판결은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지지하면서 많은 관련 판례를 검토하고 인용하는데 그중 일부는 다음과 같다.

    "우리는 국가가 개인의 종교적 신념으로부터 비롯된 행동을 금지하는 문제와, 국가가 개인의 종교상 원칙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도록 강제하는 문제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혼동하면 안된다. (중략) 우리 헌법 제정자들은 미국인을 신념, 생각, 감정면에서 보호하고자 했기에 국가에 대하여 혼자 있을 권리(as against the Government, the right to be let alone)권리들 중 가장 포괄적이면서도 시민에게 가장 소중한 그 권리를 부여했다. 오직 합리적인 신념, 타당한 생각, 합리적인 감정을 가진 개인만 그 권리를 갖는 것이 아니다."

    Osborne 판결은, 병원의 수혈명령신청에 대하여 법원이 한밤중 판사의 집과 환자 병실에서 긴급심문을 진행하여 환자의 결정이 자신의 위험을 제대로 인식하면서 유효하게 내린 결정인지, 환자의 결정에 우선하는 국익이 있는지 검토한 후 병원신청을 기각한 하급심을 D.C.최고법원이 지지한 것으로서, 이 판결은 앞서 언급한 JFK Hospital 판결이 '생명을 유지시켜야 할 국익(the state have a compelling interest in sustaining life)'을 이유로 강제수혈을 명한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개인이 국가를 위하여 존재한다는 이런 개념은, 국가의 역할이 개인의 선택과 행동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데 있다는 우리의 근본 논지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한편 In re Brown(1985)은 형사사건 피해자이자 유일한 목격자인 환자가 수혈을 거부하자 검찰이 국익을 이유로 강제수혈을 신청한 사안인데 미시시피주 대법원은 헌법상 종교의 자유와 자기결정권을 근거로 검찰 신청을 기각하며 다음과 같이 판시했다.

    "종교적 이유에 바탕을 둔 '행위(action)'라는 것이, 적극적이고 대외적으로 나타나는 행동(affirmative, overt conduct)이라기보다, 그저 어떤 행동을 하기를 거절하는 것(a refusal to act)인 때에는 오직 중대하고도 즉각적인 공공의 위험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국가가 그것에 간섭할 권위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나. 자기결정권의 제한?

    기혼이거나 미성년자녀가 있는 환자의 자기결정권은 제한되는가? Public Health Trust v. Wons(1989)에서 플로리다주 대법원은 "양친(兩親)에 의한 양육도 중요하지만 이것이 어머니의 근본적인 헌법상 권리들을 번복할 만큼 충분하지는 않다"고 판단했으며, 항소법원도 "그 어떤 것도 개인의 종교와 삶에 대한 관점보다 더 private하고 신성한 것은 없다. 자신의 양심에 따라 자신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결정을 내릴 권리는 번복되기 어렵다. 왜냐하면, 과장없이 말해서, 바로 그것이 이 나라가 세워진 기초석이기 때문이다"라고 판시했다.

    뉴욕주 최고법원인 New York Court of Appeals (주: New York Supreme Court는 1심법원임) 역시 Fosmire v. Nicoleau(1990)에서 "국가의 최우선 기능은 개인의 자유와 자치권을 보존하고 증진시키는 것이다. 자신의 의료상 처치에 대해 결정할 수 있는 Common law상의 환자의 권리는 환자에게 미성년자녀나 부양가족이 있는지 여부에 달려있지 않다. 성인은 수혈을 거부할 권리를 포함하여 자신의 의료상 처치에 대해 결정할 권리를 가지며, 이 권리행사를 막는 우선적 국익은 찾을 수 없다. 시민은 자신의 신체상태나 부모로서의 지위 여부와 상관없이 자신의 의료상 처치에 대해 선택할 권리를 공고히 가진다"고 판시했다. 위 판결에서 2명의 판사는 결론은 동일하나 근거는 종교의 자유가 되어야 하고 이것은 자녀에 대한 국가의 '국부(國父)'로서의 권익(the state's parens patriae interest)보다 우선한다고 보았다. 메사추세츠주 대법원의 Norwood Hospital v. Munoz(1991), 코네티컷주 대법원의 Stamford Hospital v. Vega(1996) 판결도 같은 취지다.

    플로리다주 대법원의 In re Dubreuil(1993)은 (i)부모로서의 책임 때문에 환자의 권리가 약화되거나 자신의 신념에 따라 살아갈 권리를 박탈당하지 않으며 한부모 가정도 환자의 자기결정권 행사가 자녀에 대한 abandonment가 되지않고, (ii)결혼은 헌법상 권리인 사적자치권을 destroy하지 않으므로 배우자가 환자의 결정을 반대한다고 해서 병원이 환자의 의사에 반하는 처치를 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으며, (iii)병원의 역할은 환자의 의사와 이익에 부합하는 의료상 처치를 제공하는 것이지 환자의 적대자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판시했다. 한편 위 판결은 "병원측 대리인들이 병원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병원이 오히려 환자의 반대편에서 소송을 하게 된다고 지적하면서 병원측이 신의에 기해 환자의 특정 처치 거절의사를 따랐다면 병원측은 정당하게 행한 것이며 이에 대해 민형사상 책임을 질 수 없다는 점을 덧붙였다.

    다. 의료진의 책임

    병원이 성인환자와의 무수혈치료 약속을 위반한 경우 계약위반 또는 불법행위책임이 인정된다. Harvey v. Strickland(2002)에서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대법원은 성인환자의 어머니의 수혈 동의는 환자의 사전 거부의사를 번복할 수 없으며 병원에게 무수혈수술 계약위반의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고, 아이오와주 대법원도 Campbell v. Delbridge(2003)에서 병원측 실수로 (환자가 거부의사를 밝혔던) 환자의 자가혈액이 수혈된 경우 비록 환자에게 물리적 손상이 발생하지 않았을지라도 환자의 정신적, 감정적 고통에 대한 배상책임이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라. Health Care Proxy-자기결정권의 사전표명

    미국 대부분의 주들은 연방대법원의 Cruzan v. Director of Missouri Department of Health(1990) 판결 등 환자의 의식소실 후 환자의 의사가 문제된 사건들 이후로 Health care law를 개정하여 의료지침 및 의료대리인에 대한 상세한 규정을 두었는데, 뉴욕주 역시 1990년 New York Public Health Law 안에 Health Care Agents and Proxies (§§2980-2994) 부분을 제정했다. 주마다 법이 조금씩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성인환자가 작성한 의료지침(Health Care Proxy) 및 의료대리인(Health Care Agent) 지정에 대해 거의 절대적 효력을 부여하였고 배우자나 가족도 환자가 지정한 대리인을 해임할 수 없게 하였다. 의료대리인은 환자의 결정사항을 집행하는 면에서 그 지위가 환자의 가족보다 우선하며, 사임시 주에 따라 법원 허가를 받아야 하는 등 사임도 쉽지 않다. 관련 판례로 펜실베이니아주 항소법원은 In re Duran(2001)에서 환자인 아내가 의료대리인을 지정해두었다면 남편이라 할지라도 환자의 후견인(guardian)이 될 수 없으며 환자의 의사가 존중되어야 한다고 판시했다.

    의료지침에는 DNR(do not resuscitate; 연명치료거부)나 영양공급에 대한 내용을 포함시킬 수 있다. 물론 수혈거부권은 법 개정 이전부터 환자의 선택 및 결정권으로 보호받아 왔다. 의료지침의 효력요건으로 보통 성인증인 2명의 서명이면 충분하고 공증은 필요없으나 증인과 의료대리인의 자격(가족 또는 의료기관 종사자 제외 여부 등)은 주마다 다를 수 있다. 의료지침의 효력은 환자본인이 내용을 변경하지 않는 한 영속적이므로 환자는 응급상황에서 의식을 잃어도 자신의 의사가 존중받을 것임을 확신할 수 있다. 한국에서도 사전의료지침과 관련된 논의가 계속중이다. 의료지침을 미리 작성하여 의료상 처치에 대한 결정사항, 약물부작용, 대리인 지정 등을 명확히 밝혀둔다면, 응급상황에서도 유용하고 대법원 판결에서와 같이 환자의 평소 언행 등을 통해 가정적, 추정적 의사를 추단해야 하는 위험과 번거로움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3. 결 론

    특정처치를 거부하는 성인환자의 자기결정권 문제는 미국의 경우 판례에 의해 오래전 정리되었고, 근래 논의되어 온 추가쟁점들도 거의 정리된 것으로 보인다. 현실적으로도 미국의 140개 병원이 Bloodless Medicine and Surgery Programs(BMSP)를 운영하고 있어서 무수혈 치료를 원하는 환자들은 별 어려움이 없는 듯하다.

    미국 판례를 보다보면 수혈을 거부하는 특이한 환자들에 대한 판례에서 왜 거창하게 헌법의 근본이념과 국가의 역할까지 등장해야 하는지 의아할 수도 있지만, 미국 대법원은 미국인 개인의 자기결정권과 종교적 신념의 보호와 관련해서는 일관되게 헌법과 국가의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의 자세를 보여준다. 소수 환자의 권리를 옹호한 이러한 판례의 축적이 대다수 개인의 권리를 더 확고하게 다져주는 결과를 낳는다는 면에서, 또한 신체상의 자기결정권은 우리 개개인 모두와 관련된 가장 기본적이고도 가장 보호받아야 할 권리라는 점에서 한번쯤 깊이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이것은 내 몸에 대한 나의 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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