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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인권재판소와 헌법소원

    김성진 헌법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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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터키의 헌법소원 도입을 축하하며 -

    1. 들어가며

    2012년 9월 23일은 우리의 형제 국가이기도 한 터키에게 특별한 날이자 유럽인권재판소와 유럽평의회가 위치한 스트라스부르(Strasbourg)에서도 기대와 관심 속에 주목하고 있는 날이기도 하다. 터키가 오랫동안 도입을 추진해 왔던 헌법소원제도가 드디어 시행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특히 터키 헌법재판소는 2년 전인 2010년 10월 헌법연구관 2명을 한국 헌법재판소에 파견해 헌법소원제도에 관한 연수를 상당기간 받도록 한 바 있다. 즉 우리 헌법재판소가 터키에 헌법소원제도를 전수시켰다고 볼 수 있어 의미가 더욱 깊다. 당시 터키 헌법재판소는 독일 헌법재판소에도 헌법연구관을 보내 이 제도를 연수시킨 바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터키의 헌법소원 도입과 이곳 스트라스부르와는 과연 어떠한 관계가 있는 것일까?

    2. 유럽의 평화를 위한 시스템

    제2차 세계대전의 공포와 충격을 겪은 후, 두 차례에 걸쳐 세계대전의 발원지가 되었고 가장 큰 피해를 입었던 유럽 국가들에게 유럽의 평화를 보장해줄 수 있는 시스템의 구축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였다. 이에 지금까지 두 가지 큰 줄기로 이러한 시스템이 운용, 발전되어 왔다.

    제2차 세계대전 후, 하나의 개별국가가 독자적으로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물질적 토대가 되는 산업, 즉 석탄 및 철강을 비롯한 중공업을 국가 간에 공유케 함으로써 유럽의 평화를 구현하려고 했던 것이 현재 연방제적 성격의 단일국가로의 이행 과정에 있는 유럽연합(European Union)이다. 이 모델은 경제적 기반을 공유케 함으로써 개별국가에 나타날 수 있는 국수주의 정권의 위협을 통제하려는 시도였으며 여기에는 현재 유럽 27개국이 가입되어 있다.

    이러한 통합국가 모델에 우호적이지 않았던 영국의 주도 하에 유럽의 항구적 평화를 위해 국가 간 기구(inter-governmental organization)로 만들어진 것이 이곳 스트라스부르에 본부를 두고 있는 유럽평의회(Council of Europe)이다. 유럽평의회가 취한 방법은 개별국가의 자기 통제 능력을 불신하여 유럽의 공통된 가치로 추구하는 인권 및 민주주의, 법치주의에 대한 공동의 감시 체제(monitoring system)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 유럽인권협약(European Convention on Human Rights) 위반을 이유로 개인이 개별국가의 공권력 행사를 직접 유럽인권재판소(European Court of Human Rights) 제소 할 수 있는 개인청구권이다. 여기에는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던 나치정권이 유태인에 대한 차별정책을 시작하였을 때, 이에 대한 경고음을 울리고 대학살을 미연에 방지하지 못했던 국제적 시스템의 부재(不在)에 대한 반성이 담겨 있다. 개별국가의 아무리 선출된 권력이라 할지라도 이것이 넘어서서는 안 되는 공통의 가치를 지키는 것, 유럽인권재판소가 유럽의 헌법재판소로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현재 EU 27개국을 포함하여 유럽의 거의 모든 국가인 47개국이 회원국으로 가입되어 있다.

    3. 유럽인권재판소와 터키의 헌법소원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뼈저린 반성의 결과가 유럽인권재판소와 같은 지역인권기구를 탄생시켰다면 이것이 국내적으로 발현된 모습이 헌법소원이다. 국가의 공권력 행사에 대한 개인의 기본권적 관점에서의 검증 절차인 헌법소원은 유럽인권재판소의 개인청구권과 상호보완적으로 작동한다. 유럽인권재판소는 헌법소원제도가 있는 국가에서 이러한 국내적 절차를 거치지 않고 제기되는 사건에 대하여는 보충성원칙의 위배를 이유로 각하하고 있다. 이는 국내에 기본권 보호를 위한 구제절차가 있는 경우 국내적으로 먼저 이를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판단에서이다. 이것과 관련하여 가장 크게 문제가 되고 있는 나라가 터키이다.

    지금 유럽인권재판소는 유럽 47개국 8억 명의 시민으로부터 쏟아져 들어오는 사건 때문에 고민에 빠져있다. 현재 약 15만 건의 사건이 계류 중이며 효율적인 사건 처리를 위한 여러 가지 개혁 작업에도 불구하고 연간 약 6만 건의 사건 접수, 약 4만 건의 사건 처리에서 오는 차이만큼 사건 수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이에 대해서는 법률신문 2012년 2월 16일자 13면 '유럽인을 위한 특별한 보호 - 유럽인권재판소' 참고, 유럽인권재판소의 판례 경향에 대해서는 2012년 5월 7일자 10면 '인권보호를 위한 국가의 적극적 작위의무' 참고).

    이 중 터키를 대상으로 제기되어 계류 중인 사건은 약 17,000건으로 전체 사건 수의 약 12%를 차지하며 현재까지 2,400여건의 사건에서 협약 위반 판단을 받아 유럽인권협약 최다 위반국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이는 터키가 오랫동안 가입을 추진해 왔던 EU 가입에도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데 EU 가입조건으로 인권에 대한 심사가 강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유럽의 가장 보편적인 인권의 척도로 여겨지는 유럽인권협약이 제대로 준수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내외부적 비판과 EU 및 유럽평의회의 조언에 따라 터키는 헌법의 기본권 조항을 강화하고 헌법소원 도입을 주요골자로 하는 헌법 개정안을 2010년 9월 12일 국민투표를 통해 통과시켰고, 마침내 2012년 9월 23일 헌법소원을 시행하게 된 것이다.

    유럽인권재판소는 터키가 헌법소원을 통해 자신들의 인권 문제를 국내적으로 처리하여 한해 약 8,000건씩 유럽인권재판소에 직접 제기되고 있는 사건청구 건수와 위반 건수를 감소시켜 줄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이를 위해 새롭게 헌법소원을 처리하게 된 터키 헌법재판소와 특별프로그램을 체결하여 작년 11월부터 6개월 과정으로 터키 헌법연구관들을 파견 받아 직접 사건 처리의 know-how를 전수시켜 주고 있다.

    그렇다고 터키의 헌법소원 도입이 순탄하게 진행된 것만은 아니다. 헌법소원 도입에 대해 터키 법원은 법원의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은 초상고심이라고 하며 강하게 반발하였다. 그러나 터키가 유럽인권협약 최다 위반국의 불명예를 안은 것은 법원이 재판과정에서 충분히 기본권에 대한 심사를 하지 못했고 법원의 법률 해석 및 적용에 대한 기본권적 통제 절차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동안 헌법소원이 없던 터키에서는 기본권에 대한 심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고 법원을 떠난 사건들은 유럽인권재판소로 직행하였다. 2009년 헌법소원에 관한 국제회의에서 하심 키릭() 터키 헌법재판소장은 터키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터키 국민들이 그들의 기본적인 권리와 자유(fundamental rights and freedoms)의 문제를 국내가 아닌 국제적인 절차를 통해 구제받게 된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이러한 현실은 결국 국내 기관들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약화시키고 나아가 이러한 국민들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한 정치세력의 기반을 흔들 것이다."(이 회의에 대해서는 법률신문 2009년 5월 18일자 15면 참관기 참조)

    4. 맺음말

    제2차 세계대전의 충격은 유럽의 많은 것들을 바꿔놓았다. 한 국가의 인권의 문제는 그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의 평화에 중대한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은 개별국가의 인권 상황을 지속적으로 감시할 수 있는 지역시스템의 구축으로 이어졌고 국내적으로는 모든 공권력의 행사에 대한 감시체계로서 헌법재판의 활성화로 이어졌다.

    유럽인권재판소나 헌법소원 모두 국가와 공동체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왔던 기존의 법체계와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문제를 풀어낸다. 즉, 국가나 공동체로부터 법률의 형성을 통해 주어지는 법률적 권리로서의 개인의 권리가 아닌, 어떠한 선출된 다수도, 어떤 이름의 정부나 공동체도 뺏어갈 수 없는 보편적 권리로서의 기본권의 상정과 이의 실질적 보장을 위한 감시체계의 작동이다. 이는 선출된 권력에 의한 집단적 광기를 보여준 제2차 세계대전이 가져다 준 피 묻은 선물이자 인간 본성에 대한 회의와 반성의 결과물이다.

    터키의 성공적인 헌법소원 시행을 진심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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