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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호인 변호사가 본 中南美 시장] 한국기업 철저한 준비 없이 출장…성급하게 양해각서 요구도

    법무법인 세종 선임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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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즘은 조금 덜 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레코드점에 가서 음반을 구입하느라 주머니에 가진 돈을 탕진해 버리는 일은 내게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경우 전문잡지나 지인의 소개를 통해서 새로운 음악을 접하는 일이 많았지만, 때로는 음반의 재킷을 보고 모험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게 구입하게 된 음반 중에 'Stereophonics'라는 영국 얼터너티브 밴드의 'You Gotta Go There to Come Back'이라는 앨범이 있다. 그 표지에는 젊은 아버지와 아직 채 열 살이 안돼 보이는 아들이 식탁에 나란히 앉아있는데, 어린 아들의 얼굴에는 뭔가 심술이 가득 차 보인다. 단념한 얼굴의 젊은 아버지는 앨범의 표지에 적힌 대로 "그래, 맘대로 다 해봐, 시행착오 없이 배움이 있을 수는 없지"라고 말하는 것 같다. 정말 본인이 직접 실패를 맛보지 않고는 성공을 이룰 수 없는 것일까.

    한국과 라틴아메리카 간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점차 많은 한국기업들이 중남미의 주요국들로 진출하고 있다. 주한 브라질 영사관에 의하면 최근 사업비자 발급 건수가 2010년에 비해 200%나 증가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우리 기업의 중남미 실적을 조사하다 보면 그 결과물이 다른 외국 기업들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부진 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이에 대하여 거시적 차원에서의 여러 가지 경제적 그리고 정치적 분석이 가능하겠지만, 필자는 오늘 기업 차원에서의 개선이 가능한 이슈 세 가지를 지적하고자 한다.

    첫 째는 대부분 한국 기업의 체계적이지 못한 접근방법이다. 현지 기업인들은 한국 회사들이 "사전 준비 없이 효율성 없는 출장을 자주 온다", "중요한 사항들에 대한 합의가 없는 상태에서 급하게 양해각서만을 요구 한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어떤 사람들은 반 우스갯소리로 이러한 접근방법을 "pedestrian approach"라고 부르기도 한다. 마치 보행자가 우연히 지나가는 길에 있는 상점에 들른 것처럼 행동한다는 말이다. 중요한 사안들의 진전을 위해서 해외 출장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구체적인 조사 및 목적 없이 결정권이 없는 직원을 지구 반대편에 그것도 짧은 일정으로 출장 보내는 것은 하지 않느니만 못하다. 시차적응으로 심신이 지친 직원은 현지에서 보고 들은 것을 회사에 보고하는 것만으로 에너지를 소진하기 십상이다. 요즈음은 대부분의 준비 작업을 이메일 또는 화상 회의로 수행하는 것이 가능하고, 양해각서 조차도 양측 변호사들이 관여하여 이메일이나 팩스로 체결하는 것이 때로는 더 효율적이다. 서울에서 상파울로까지의 비행시간은 무려 24시간이다. 경유일정 및 시차를 고려하면 왕복 나흘이 걸리는 체력소모적인 여행이다. 이런 먼 길을 여러 번 갔는데도 소기의 송과도 없이 돌아온다면 분명 문제가 있는 것이다. 출장 전에는 정확하고 현실적인 목표를 설정하는 등 필요한 사전준비를 하고, 현지에서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충분한 시간을 가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두 번째는 파트너 리스크에 대한 인식 부족이다. 아무런 실사 없이 현지 파트너를 잘못 선택하여 가능성 많은 프로젝트가 무산되는 것을 여러 번 본 적이 있다. 신뢰하였던 현지 파트너가 본사의 허락도 없이 회사명을 도용하여 본인과 그 배우자를 사원으로 하는 현지법인을 설립함으로써 본사의 현지 진출의 발목을 잡았던 경우도 있었으며, 해당국 헌법상 공개 입찰이 요구되는 플랜트 프로젝트를 수의계약을 통해 이미 확보한 것처럼 거짓 홍보하여 국내에서 투자가들을 모집한 적도 있었다. 현지 파트너가 그 역할을 잘 담당하지 못하면 이것은 마치 눈을 감고 오지를 누비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런 상태로는 사업기회를 제대로 포착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잘못된 법률 해석으로 한국투자자가 법적인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도 올 수 있다. 특정 업무경험과 언어능력을 보유한 사내 인력이 없다면 국내에 있는 지역전문가를 통하여 현지 파트너 실사 등의 현지 업무를 수행하도록 의뢰하는 것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영미계 다국적기업들이 오래 전부터 세계 방방곡곡에 성공적으로 진출할 수 있었던 것은 자국의 해외투자자문(outbound advisory service) 전문가들을 투자 초기 때부터 적절하게 활용하였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중남미 국가들의 법과 제도에 대한 무지 및 편견이다. 유럽인들이 대서양을 건너와서 건설한 이 나라들의 법과 제도의 토대 및 정교함은 프랑스 또는 독일과 다를 바가 없는데 현재 우리나라가 조금 유복하다고 해서 이것들을 무조건 후진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그야말로 난센스다. 헤이그국제사법회가 개최되기 전인 1889년에 일부 남미 국가들이 체결한 몬테비데오조약은 세계 최초의 국제사법조약이었으며, 오스트리아 법학자 Hans Kelsen이 1936년에 수립한 순수법학에 자아학적인(egological) 비판을 하고 결국은 이를 수정하게 만든 법학자 Carlos Cossio도 아르헨티나 사람이다. 이렇든 서방 세계는 오래 전부터 중남미 법학의 전통과 학술적 깊이를 인정해왔다.

    우리 법에 없는 중남미 노동법의 의제해고(constructive dismissal)도 그러하다. 의제해고란 '사용자가 고용인이 사직을 하지 않으니, 해고를 시키지는 않고 사직을 하도록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여 어쩔 수 없이 사직을 하도록 유도한 경우에 이를 사직으로 보지 않고 해고라고 본다'는 개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학술적인 논의는 있었지만 아직 입법화 되지 않은 개념이다. 중남미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은 직원들이 말도 안 되는 논리로 의제해고를 주장해서 손해배상을 요구한다며 불만을 토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사실 중남미 국가들의 노동입법이 명시하는 손해배상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퇴직금을 가리키는 것이다 (물론 다른 명목의 퇴직수당도 있음). 이것을 손해배상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들 국가들에서는 직원이 자의에 의해 사직할 경우에는 퇴직금이 지급되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로 대한민국의 노동법은 해고와 사직을 구분하지 않고 퇴직금을 지급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즉, 중남미 보다는 대한민국에 퇴직금 혜택을 받는 근로자의 비율이 더 높다는 얘기가 된다. 물론 집행 단계에 있어서 이런 성급한 결론은 현실에 대한 정확한 묘사가 아닐 수도 있으나 각 국가의 법과 제도에는 그 나름대로의 배경과 논리가 있음을 항상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서두에서 언급한 앨범에는 'Maybe Tomorrow'라는 곡이 있다. 이제는 우리 기업들도 체계적인 접근, 적절한 파트너 리스트 운영 및 현지법과 제도에 대한 이해를 통하여 불필요한 시행착오를 줄이고 빠른 시일 내에 우리나라와 중남미 국가들의 사회에 이바지하는 건전한 기업문화를 창출하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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