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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주말

    합스부르크 왕가 이야기

    조대환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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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유럽은 인류역사의 커다란 발자취를 간직한 문화유산의 보고로, 연수원시절 다녀온 후 지난 연말 정말 오랜만에 가족들과 함께 다시 갈 수 있었다. 서유럽 민족이나 국가의 개별 역사문화를 얘기하자면 수십 권의 책으로도 부족하겠지만, 우뚝 솟은 알프스산맥과 광활한 설원의 오스트리아는 그 대자연의 아름다움 못지 않게 가슴 저미는 황실의 사연들과 이를 극화한 뮤지컬의 감동으로 긴 여운을 남긴다. 유럽최대 명문가였던 합스부르크가는 카를 5세때 친가 막시밀리안 1세로부터 신성로마제국을, 외가 아라곤의 페르난도 2세와 카스티야의 이사벨 1세로부터 스페인을 물려받아 프랑스 이외 유럽의 거의 전역을 다스렸다. 카를 5세는 아들 펠리페 2세에게 스페인을, 동생 페르디난트 1세에게 신성로마제국을 물려줘 스페인 합스부르크왕가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왕가로 나뉘었다. 19세기 60년 넘게 오스트리아를 통치해 합스부르크가의 수호신으로 불린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의 부인 엘리자벳의 격정적인 삶에 대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그녀의 드라마틱한 삶을 소재로 한 뮤지컬 '엘리자벳'은 초현실적 존재 토드(죽음)를 황후의 매력적인 연인으로 의인화한 판타지적인 소재와 호소력 짙은 아리아로 관객들과 소통하며 1992년 빈에서 초연된 이후 유럽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바이에른의 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살던 그녀는 결혼 후 빈 황실의 엄격한 법도를 못 견뎌 몸과 마음에 병을 얻어 왕실을 떠나 방랑한다. 그녀는 모든 것을 가졌지만 자신이 가장 갈망했던 자유를 얻지 못해 방황하다 무정부주의자의 칼에 찔려 불행했던 삶을 마감한다. 뮤지컬 '엘리자벳'에서 잠깐 볼 수 있었던 그녀의 아들 루돌프의 비운의 스토리는 소설 '황태자의 마지막 키스(A Nervous Splendor)'를 극화한 뮤지컬 '황태자 루돌프'를 통해 더 생생히 확인할 수 있다. '황태자 루돌프'는 유럽의 격동기에 현실을 바꾸는 미래를 꿈꾸었지만, 강력한 왕권아래 무기력함과 어머니의 사랑에 굶주린 황태자의 고뇌와 슬픈 사랑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허무함으로 쾌락에 탐닉하고 우울증에 시달리며 결국 그를 이해해 주는 구원자였을지 모를 십대의 아름다운 소녀 마리베체라와의 위험한 사랑으로 끝내 함께 황실별장에서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다.

    인스브루크 마리아테레지아거리의 황금지붕.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배경이 되었던 짤츠부르크에서 태어나 36세의 짧은 일생을 빈에서 마감했던 오스트리아의 천재작곡가이자, 하이든, 베토벤과 함께 고전주의 음악을 완성한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의 어린 시절 첫사랑의 얘기도 잊을 수 없다. 빈의 쉔부른궁전에서 6세 때 연주를 한 모차르트는 넘어진 자신을 일으켜 준 공주 마리앙뚜아넷에 반해 그녀의 어머니 마리아테레지아에게 커서 그녀와 결혼하고 싶다고 청혼을 했지만 이룰 수 없었다는 사연은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한다. 부족한 정치력으로 무기력했던 프랑스 황제 루이 16세와 결혼을 했지만, 프랑스혁명으로 권자에서 쫓겨난 뒤 콩코드광장의 단두대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던 마리앙뚜아넷이 모차르트의 연인이 될 수도 있었다니 참으로 신기하다. 지금 비록 무덤조차 찾을 수 없지만, 역사에 가정이 있어, 모차르트가 보잘 것 없고 병약한 콘스탄체가 아닌 합스부르크왕가의 공주 마리앙뚜아넷과 결혼했더라면 두 사람은 좀 더 오랜 동안 서로 행복한 삶을 즐기고, 많은 이들이 찾아가 기릴 수 있는 장소에 편안히 잠들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았다.

    흥미로운 사연들로 가득한 합스부르크가는 나폴레옹에 패해 신성로마제국이 해체되고, 넓은 영토에 게르만, 헝가리, 유대인 등 다양한 민족과 인종간의 충돌로 쇠락한다. 드넓은 제국을 일군 500년 왕가는 19세기말 해체되기 시작해 페르디난트 황태자부부의 암살로 발발한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오늘날 빈의 화려한 건물들과 더불어, 오스트리아인들 뿐 아니라 인류의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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