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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미술 이야기

    (24) 전가진완(傳家珍玩)

    김영복 KBS 진품명품 감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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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605년 강첨(姜籤: 1557-1611)은 중국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황제 신종에게 붉은 비단 두필을 하사받는다. 이는 강첨이 입고 온 조복에 수놓은 흉배의 아름다움에 감탄한 황제가 누가 만든 흉배냐고 묻고, 며느리 김씨라고 대답하자 비단을 내리며 두 폭의 흉배를 부탁한 것이다. 이를 받아온 강첨은 며느리에게 주어 네 폭의 십장생 수를 놓게 하여 두 폭은 다음 해에 중국 황제에게 보내 드리고 나머지 두 폭은 집안에 대대로 전하는 보물로 삼았다. 며느리는 퇴계선생의 제자인 안동김씨 김충남(金忠男)의 따님이며 부군은 강첨의 큰아들 강학년(姜鶴年: 1585-1647)이다.

    이 십장생 수(사진)는 무늬가 있는 고급 비단 두 폭으로 이루어 졌지만 연결되는 한 폭이다. 오른 쪽 자수에는 오른쪽부터 늙은 소나무 두 그루가 크게 그늘을 드리우고 그 밑 물가 언덕 위에는 암수 사슴 두 마리가 한가롭게 서있으며, 왼편 위로는 구름과 해가 밑으로는 바위가 농담으로 수놓아져 있다. 왼편 자수에는 위로는 달이, 그리고 그 밑으로 웅장한 산이, 맨 왼쪽으로는 대나무가 그 밑 얕은 언덕에는 학 두 마리가 나란히 먼 곳을 쳐다본다. 물가에 머리를 든 신령스런 거북은 입으로 상서로운 기운을 내 품고 있어 전체 그림의 운치를 한껏 빛낸다. 한 폭에 십장생 다섯 종씩을 멋있게 표현한 것을 보면 필시 화원출신의 화가가 밑그림을 그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무늬가 있는 고급 비단에 수놓은 십장생 두 폭 위에는 글씨를 쓸 수 있게 노란 비단을 붙여 첩을 만들고 겉표지에 강첨은 집안에 영원히 전해져 보배로 여기라는 뜻으로 전가진완(傳家珍玩)이라 쓰고, 아들이자 부군인 강학년은 이 자수첩을 첫째에게 주지 않고 넷째 아들 강옥(姜鈺: 1631-1688)에게 준다는 유서를 남겨 이 집안에 지금까지 전해지게 되었다.

    강옥의 아들 강세정(姜世鼎: 1644-1733)은 1726년 이 자수첩을 받은 뒤에 첩을 만든 이유와 목적, 얽힌 사연을 자세히 적은 서문을 쓰고, 1729년 성호 이익(星湖 李瀷: 1681-1763)에게 발문을 받는다. 이 때 이익은 퇴계선생 학문의 맥을 찾아 각 지역으로 퇴계의 제자들을 수소문하여 찾으러 다니다가 수를 놓은 당사자인 김씨 부인의 아버지 김충남이 퇴계의 제자임을 알고 김씨 부인의 손자인 강세정을 만나 자수첩의 내력을 듣고 발문을 쓰게 된 것이다. 또 세월이 흐른 뒤 강세정의 손자인 강원복(姜元復)이 강학년의 종증손으로 당대 시서화 삼절이자 최고의 서화감식가로 이름을 날리던 집안 어른 표암 강세황(豹菴 姜世晃: 1713-1791)을 찾아가서 십장생 두 폭 위에 비워 놓았던 노란 비단에 발문을 받으면서 전가진완의 약 300년 역사가 마무리된다.

    이 자수첩의 역사는 다시 근대로 들어 와서 또 한번 세인의 주목을 받는다. 1915년 조선총독부는 시정(始政)5년 기념으로 그 동안의 발전을 우리 국민에게 보여준다는 명분으로 조선물산공진회를 경복궁 안에서 개최할 때 이 자수첩이 처음으로 일반에게 공개된 것이다. 고고자료 참고품으로 출품되었고, 비록 일본인에 의해 된 일이라 할지라도 한국자수의 우수성을 세상에 알려 그 의미가 컸다.

    지금까지 신사임당의 작품으로 전하는 자수가 한두 점 전해지기는 하지만, 이 자수첩처럼 정확한 내력과 연대를 알 수 있는 것은 필자도 일찍이 본적이 없다. 비록 크기는 작지만 자수의 수준과 예술이 이 만큼 뛰어나고 무궁한 이야기(STORY TELLING)가 있으며, 당대 최고의 학자인 성호 이익과 표암 강세황의 발문이 이를 증명하고 있으니 이 자수첩은 보물 중의 보물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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