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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미술 이야기

    (25) 농수정(籠水亭)

    김영복 KBS 진품명품 감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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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미술품을 만지다 보면 가끔은 팔고 싶지 않은 작품이 있다. 이런 작품은 가격이 많이 나가서가 아니고 나의 품성과 무언지 연관이 되기 때문일 것이나, 이 때문에 본의 아니게 좋은 관계의 단골손님과 사이가 벌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다른 여러 작품과 함께 들어온 진경산수 농수정(籠水亭·사진) 그림이 나에게는 이런 작품이다.

    조선후기에 오면 겸재 정선(謙齋 鄭敾: 1676-1759)이라는 특출한 화가가 나와서 우리의 강산을 새롭게 표현하기 시작한다. 이를 일러 진경산수라 부른다. 이런 그림은 겸재 이후로는 겸재만큼 뛰어난 화가가 없었지만 후대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여기 농수정(籠水亭)을 그린 진재 김윤겸(眞宰 金允謙: 1711-1775)이라는 화가도 겸재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겸재가 잘 쓰지 않았던 수묵 담채의 가벼운 터치를 가하여 서양의 수채화 분위기를 내거나, 전체의 모습을 강조하고 부분적인 것은 과감히 생략하는 방법은 진재 그림의 장점이자 진재만의 새로운 방식이 아닐까 한다. 이런 모습 때문에 얼핏 보면 진재의 그림은 그리다 만 그림이라 하는 이도 있고, 겸재의 빽빽한 붓 터치나 현재(玄齋)의 화려한 채색 그림에 비해 너무 담백하여 그리 탐탁하지 않게 여기는 이가 많다. 하지만 이런 그림이 오래 두고 볼수록 정이 든다.

    농산정은 지금의 강원도 화천군 산내면의 용담천 하류에 진재의 큰할아버지인 곡운 김수증(谷雲 金壽增: 1624-1701)이 낙향하여 살 터전으로, 1670년 터를 잡아 세운 농수정사(籠水精舍)의 정자이름이다. 곡운이 처음 터를 잡았을 때의 지명은 화천군 사내면 영당동이였고, 1675년 가족을 이끌고 가서 살면서 용담천 아홉 구비에 주자(朱子)의 무이구곡(武夷九曲)을 본받아 그 계곡을 사탄(史呑)에서 곡운이란 새 이름으로 명명하고 곡운구곡(谷雲九曲)을 경영한다. 이렇게 7~8년을 공들여 구곡을 완성한 후에 평양 출신의 화가 조세걸(曺世杰: 1635-?)에게 부탁해 곡운구곡도를 그린다. 1682년쯤으로 여겨진다.

    이 그림은 전체적인 모습보다도 동네의 집 하나하나까지 매우 세밀하게 그린 김명국(金明國)의 제자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당시로는 그 류가 없는 독특한 발상인데 아마도 곡운의 특별한 요청 때문에 이런 그림이 이루어진 것 같다. 겸재도 이곳 풍경을 그렸으나 기록만 있을 뿐 그림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진재가 겸재 그림을 보았을 수도 있다. 조세걸의 농수정 그림에는 앞 계곡보다는 농수정이 있는 옆과 뒤의 동네를 중심으로 그렸기 때문에 이 그림과는 전혀 딴 그림처럼 여겨지나 이 그림의 양편 중심 산과 조세걸의 중심의 두 산은 누가 봐도 비슷하다.

    양편의 산을 중심으로 왼편에 농수정을 앉히고 오른편에 소나무 사이로 동네 모습을 스케치하듯 하였는데 오른편 작은 산 밑에 기와집이 혹 김수증이 살던 곡운정사(谷雲精舍)가 아닐까? 멀리 보이는 산에는 안개가 약간 낀 듯 다른 세상처럼 느껴지고, 가까이 농수정 앞 냇가는 아주 맑은 물이 소리도 없이 흐르고, 마을은 한낮이 되어도 아무 인기척이 없다. 아마도 도연명의 글에 나오는 도화원 속에 마을이거나 노자에서 말하는 개나 닭울음소리만 들리는 이상향의 마을일 것이다. 멀리서 조망하여 그린 이 그림은 농수정보다도 그 일대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잘 살렸다. 그린 연대는 1770년 전후가 아닐까 한다. 진재의 말년 필치가 그대로 살아있는 '영남기행화첩'의 그림과 매우 흡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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