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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미술 이야기

    (26) 고사한거도(高士閑居圖)

    김영복 KBS 진품명품 감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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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해로 태어 난지 300년이 되는 표암 강세황(豹菴 姜世晃: 1713-1791)은 여러 시점에서 두루 연구하여야 할 인물이다. 그가 태어나서 살아간 시기가 내적으로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지나면서 혼란하고 어려웠던 상황을 극복하고 나라의 기강이 잡혀가고 전쟁의 후유증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우리 문화의 새로운 싹이 태동될 시기였다.


    외적으로는 그 당시 새로 발돋움한 청나라가 강희라는 걸출한 황제가 나타나면서 이전까지의 중국 영토의 확장뿐만 아니라 문화까지도 저 당나라의 융성함 보다 뛰어난 정치, 문화의 전성기를 누리던 시기였다.

    덩달아 조선에서는 연행(燕行)을 통해서 청나라의 그 유성한 문화가 유입되어 새로운 학문풍토와 문화예술이 골고루 발달하고 있었다. 이때에 이 예술가들을 지도해 나갈 집안도 좋고 벼슬도 어느 정도를 지낸 인물이 필요한 시기였다. 조금 앞서 겸재 정선(謙齋 鄭敾)을 중심한 일련의 화가와 시인의 모임에 중심역할을 안동 김문(安東 金門)의 삼연 김창흡(三淵 金昌翕) 형제가 했다면, 조금 뒤에는 표암 강세황이 그 역할을 하였다.

    표암 그림은 남종화 계통의 그림이라 먹의 농담(濃淡)을 주로 사용하면서 여기에 약간의 담채(淡彩)를 쓰기도 하였는데 대부분 너무나 담백한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 그림 또한 언뜻 보면 약간의 담채를 한 듯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먹의 농담으로만 사물의 윤곽을 살포시 들어냈다. 매우 오래되어 보이는 굵은 나무에 약간의 가지에 새 싹이 움트고, 옆의 버드나무로 보이는 축 늘어진 가지 밑으로는, 겨우 뼈대만 남은 초가 정자에 한 선비가 앞 냇물을 아무런 생각 없이 굽어보고 있다. 위로 보이는 먼 산은 진한 먹과 옅은 먹으로 세 봉우리의 원산과 가까운 산을 나타냈고 산 밑에서 정자 앞까지는 보일 듯 말 듯 하게 옅은 안개인지 아니면 냇가를 그렸는지 구별이 되질 않는다. 표암도 꿈꾸는 동시에 동양 선비들이라면 누구나 지향하는 전원생활의 이상향이 이 한 폭 그림에 그대로 녹아있는 듯싶다.

    표암은 표암 이외에 박암(樸菴), 당호는 산향재(山響齋), 또 홍엽상서(紅葉尙書)란 별칭도 썼는데, 그 중 하나가 첨재()다. 왜 그리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이 호를 사용할 때는 막연하게 벼슬하기 이전(회갑 이전)이라 여겼는데, 이 그림을 보면서 노년에도 이 호를 사용한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표암의 또 다른 그림 벽오청서도(碧梧淸暑圖)에도 첨재란 관지가 쓰여 있는데, 그 그림도 이 그림과 비슷하게 맑고 깨끗하며 담백하다. 이 두 그림이 모두 붓을 댄 느낌이나 그림 속의 분위기 등이 젊어서 그렸다고 보기에는 너무나 무딘듯 하지만 노련미가 풍기기 때문이다. 이를 시문이나 글씨를 표현하는 술어로 고졸(古拙)이나 졸박(拙樸)이란 단어를 사용한다. 어떤 이는 이를 잘못알고 '무디다' 혹은 '못하다'는 우리말로 번역하는데, 이는 매우 잘못알고 있는 것이다. 고졸은 동양에서 글이나 글씨에서는 최고의 찬사다. 이렇기에 이 그림이 노년 작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그림을 무엇이라 이름 부칠까 고민하다 고사한거도(高士閑居圖·사진)라 하였다. 여기에서 고사는 당연히 주인인 표암이며 표암의 마음의 쉼터가 아마도 이런 곳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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