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egalinsight
  • Legaledu
  • 법률신문 오피니언

    고미술 이야기

    (27) 농암집 속의 위당선생 글씨

    김영복 KBS 진품명품 감정위원

    입력 :
    글자크기 : 확대 최소
  • 인쇄
  • 메일보내기
  • 기사스크랩
  • 스크랩 보기
  • 우연히 A고서점에 들려 이 책 저 책을 펼쳐보다 일제시대에 나온 농암 김창협(農巖 金昌協: 1651-1708)의 농암집을 보다가 주인에게 값을 물어보니 10만 원쯤 달라 한다. 20여 책 중에 제2책으로 내용권수로는 4,5,6권이 실려 있었다. 만약 그 안에 위당 정인보(爲堂 鄭寅普: 1893-1950) 선생의 친필 글씨가 없었다면 고작해야 4, 5만원에도 살 리가 없겠지만, 나로서는 헐값에 사는 처지라 얼른 사가지고 나와, 펼쳐보고 읽어보고 오두방정을 다 떨어본다. 이 기분은 이런 일을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느낄 수 없다.


    아마도 서점주인은 누가 썼는지를 잘 몰랐겠지만, 글씨를 보는 순간 위당선생 글씨요, 내용은 시인데 위당의 문집 '담원문록()'에도 실려 있지 않는 내용인지라 새로운 시 여섯 수를 발견한 기분이란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가 없었다. 위당선생이 주묵(朱墨)으로 깨알같이 이렇게 책에다 직접 써 넣은걸 보면(사진) 이 책 자체가 위당선생이 직접 보시던 수택본(手澤本)이 틀림이 없었다. 근대인물 중에 내가 가장 존경해 마지않는 선생의 손때 묻은 수택본과 친필로 적은 시까지 덤으로 얻었으니, 아마도 존경하는 마음이 신께 전해져서 이루어진 것이지 우연히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 생각된다.

    농암이 김응하(金應河: 1580-1619)장군의 사당을 두고 지은 '김장군사(金將軍祠)'란 제목으로 여섯 수의 시중에, 맨 끝수인 여섯 번째 시에서 김응하 장군과 최영(崔瑩: 1316-1388)장군을 비교한 부분이 있다. 여기에서 최영 장군을 비하한 부분을 보고 기분이 상해 그 옆에 붉은 글씨로 여섯 수의 시를 지어 최영 장군의 위업을 칭송한 것이다. 제목이 '농암집'에 김장군사란 시를 읽다가 최영 장군을 비웃고 손가락질한 말이 있어 이 시를 지어서 그것을 바로 잡는다(讀農巖金將軍祠詩 有嗤點崔都統語 作此正之)로, 첫 수의 한 귀는 이렇다.

    최영 장군은 천추동안 해와 별 같이 빛나거니 (都統千秋赫日星)
    어느 누가 그 꽃다운 향기를 가리려 하겠는가 (何人猶欲掩芳馨)

    위당 선생하면 글은 귀진천이요, 글씨는 유석암이란 말이 따라다닌다. 이 말은 중국 명나라 학자이자 문장가인 진천 귀유광(震川 歸有光)의 진솔성 있는 글과 청나라의 석암 유용(石菴 劉墉)의 부드러운 글씨가 선생의 글과 글씨의 연원을 정확히 평했는지는 모르지만, 선생께서 존주모화(尊周慕華)의 사상과 성리학의 병폐를 극복코자 조선후기 실학자들의 유서(遺書)를 수집하고 간행하면서 쓴 서문을 보면 그 곡진함과 그 행간에 흘러넘치는 안타까운 심정이 읽는 이의 마음까지도 애틋하게 만든다. 글씨로 자부하지는 않았지만 글씨는 안진경을 본바탕으로 하여 유석암의 글씨를 본받은 것은 분명하나, 석암의 납작한 글씨보다는 글씨가 세로로 커지면서 사람으로 말하면 키가 크면 날씬해지듯 더 글씨가 고아하면서도 자태가 횡일(橫逸)함은 석암이 비할 바가 아니다. 우스개소리로 위당 선생이 석암보다 키가 더 크기 때문이란다.

    어떻든 내용을 모르는 사람이 보아도 책속 행간 사이 위에 쓴 선생의 붉은 글씨를 보면, 아름다움이 저절로 느껴진다. 옛말에 글씨는 그 마음에서 나온다고 했다. 이는 선생의 고결한 인품과 매서운 지조를 겸비한 조선조의 마지막 선비이기 때문일 것이다. 올해가 선생이 태어난 120주년이다. 아무 한 일이 없는 후배지만 선생의 대표작인 '조선사연구(朝鮮史硏究)'가 처음으로 주석본이 나와 요즘 사람들도 쉽게 읽을 수 있게 되어, 그나마 위로가 된다.

    최근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