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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미술 이야기

    (28) 현재 심사정의 수묵산수

    김영복 KBS 진품명품 감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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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대가 어려울수록 인물이 많이 나타나는데, 이는 시대의 아픔을 사람들의 지혜가 모여 이겨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나라가 망하려 할 때는 이런 사람들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웅이 시대를 만드는가. 우리나라는 세종대왕 연간에 인물이 많았고 선조임금 시대에 특히 많았다. 그러나 예술가는 조금 다른 것 같다. 이는 노래나 그림이란 것이 여유가 있을 때에 그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요즈음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 말끝마다 삼원(三園)과 삼재(三齋)를 말한다. 삼원은 단원 김홍도(檀園 金弘道, 1745-?), 혜원 신윤복(蕙園 申潤福, 1758-?), 오원 장승업(吾園 張承業, 1843-1897)을, 삼재는 겸재 정선(謙齋 鄭敾, 1676-1759, 현재 심사정(玄齋 沈師正, 1707-1769), 관아재 조영석(觀我齋 趙榮?, 1686-1761)을 말한다.


    언제부터 누가 이렇게 말하게 되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삼재에 관해서는 오세창의 '근역서화징'에서 언급하고 있어 어느 정도 구전으로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었던 것 같으나 삼원은 아마도 근대의 화가이자 평론가였던 근원 김용준(近遠 金瑢俊)이 1940년대 쯤 어느 잡지에 쓴 글이 그 시초인가 싶다. 삼재 중에 관아재 대신 공재 윤두서(恭齋 尹斗緖, 1668-1715)를 넣는 사람도 더러 있는데 필자는 관아재가 더 잘 맞는다 생각한다.

    삼재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어느 정도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긴 숙종과 영조 때에 그 빛을 발하였고, 삼원은 이들의 뒤를 이어 정조에서 고종까지 이르는 시기에 각각 개성 있는 나름의 꽃을 피웠다. 하지만 삼원은 무엇인지 모르게 삼재와는 그 이름을 붙인 의미가 다른 것 같다. 그러나 삼재는 여러 가지 의미로 아주 적재적소의 선택이라 생각된다. 세 사람이 시대도 비슷하고 그림의 성격이나 사람 됨됨이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관아재는 잘나가는 문벌 좋은 양반 집안사람이지만 그림은 전문 화가들이나 그릴 법한 인물이나 속화가 많이 남아있고, 겸재는 전문 화가이나 양반냄새가 조금은 나는 듯 싶으면서 그림은 새로운 실제 풍경 그림이 많이 남아있고, 현재는 화가 집안이면서도 문인화적인 그림솜씨가 뛰어나면서 아울러 전문 화가답게 모든 장르에 두루 능하고 글씨 또한 그리 떨어지지 않는다. 나는 그림자체로만 말한다면 요즈음 표현으로 전문 화가는 단연코 현재 뿐이라고 생각한다.

    현재는 그림의 구도, 색채 감각, 먹의 농담 등을 다루는데 두루 막힘이 없다. 특히 풀벌레 그림이나 꽃과 새 그림은 하늘의 조화를 뺐지 않았나 싶을 정도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그림보다 문인화적이랄까 사의적(寫意的) 냄새가 나는 그런 작품이 좋다. 어디서 보았는지 기억은 없으나 굽은 매화 가지위에 걸린 달을 그린 월매도가 지금도 눈에 선하며, 여기에 소개할 수묵산수는 현재의 또 다른 조선풍 남종화를 보는 듯 하여 더더욱 좋다.

    중국 송나라 때 화가 미불() 부자가 여름 비올 때의 모습을 먹의 농담만 가지고 너무도 사실적으로 그린 다음부터 이런 그림을 미법산수(米法山水)라 부르는데, 현재가 아니라면 미법필의(米法筆意)로 요즈음 (6~7월) 한국 여름풍광을 이렇게 멋있게 표현할 수 있을까. 어디서나 볼 듯한 먼 봉우리가 구름 속에 솟아있고, 강가 옆 나무들은 비를 머금고 몇 채의 초가집을 감싸 앉고, 강가의 배는 장마에 불은 물 위에 그대로 떠다닌다.(사진) 이런 풍경을 먹의 진함과 옅음만 가지고 표현한다는 것이 동양의 먹과 붓과 종이를 다룰 줄 아는 현재 같은 화가만이 가능한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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