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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주말

    뮤지컬 조승우의 '헤드윅'을 보고

    진형혜 변호사(법무법인 지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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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일같이 주룩주룩 이어지는 장맛비가 심란하다. 이젠 적당히 그쳐줄 때도 되지 않았을까... 장맛비 만큼이나 지루한 일상의 탈출을 꿈꾸던 7월 중순의 어느 날 저녁, 자타가 공인하는 이 시대 최고의 티켓 파워, 조승우의 '헤드윅'(사진)을 만났다. 짙은 무대화장과 긴 금발의 가발을 뒤집어쓰고 바로보기 민망한 속옷 위에 황금박쥐와 같은 망토 하나만을 두르고 등장한 조승우의 모습은 헤드윅이라는 작품에 대해 아무런 지식없이 관객석에 앉아 있었던 나를 충격 속으로 몰아넣었다. 지금까지의 공연과 드라마에서 보여준, 강한 남성미와 고상한 분위기의 조승우는 잊어라!!!

    뮤지컬이라기 보다는 모노드라마 같다고 해야 하나. 하지만 줄곧 혼자서 독백을 내뱉다가도 노래를 시작하는 그 순간 무대와 관객을 한순간에 장악해버리는 폭풍같은 카리스마, 음... 과연 조승우다.

    '헤드윅'은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수술을 하였으나 실패한 후, 자신의 엄마의 이름을 딴 '헤드윅'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 남성(?)이 자신이 사랑하였던 소년이 자신의 곡을 가지고 유명한 가수가 되자 그 가수가 공연하는 화려한 대규모 공연장 옆 허름한 모텔을 무대삼아 매일 밤 여장을 한 채 공연을 하며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관객들에게 두런두런 털어놓는 모노드라마 같은 다소 특이한 뮤지컬이다. 지금까지 보아 온, 브로드웨이 풍의 기승전결 뚜렷하고 대규모 군중씬과 화려한 무대, 감미로운 멜로디들이 가득한 뮤지컬에 귀가 젖어온 나로서는 실로 충격과 경악이었다. 여자들도 부담스러울 정도의 짙은 화장과 과장된 가발을 뒤집어 쓴 여장남자의 언행이 공연 내내 관객들을 불편하게 함에도(적어도 나 같은) 이러한 뮤지컬이 2005년 이후 지금까지 1300회 이상 공연되었다는 사실과 더불어 노래되고 연기되는 남자 배우라면 꼭 한번 해보고 싶은 뮤지컬 1순위에 올랐던 그 힘이 무엇인지 뮤지컬을 보는 내내, 그리고 공연이 끝난 후 하염없이 내리는 장맛비 속을 걸어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궁금했다. 그 힘은 과연 무엇일까.


    며칠 후 뇌리를 스치는 한가지 생각. 아~ 그것은 바로 '솔직함'이었다. 매혹적인 스릴러도, 화려한 무대장치도(붉은 색 네온사인이 힘없이 내걸린 모텔의 간판과 밴드의 악기 배열이 무대 구성의 거의 전부이다), 대규모 군중들이 등장하는 춤도, 노래도 없이 심지어 관객에 대한 시각적 테러라 할 만큼 과장된 화장과 가발을 뒤집어 쓴 남자주인공이 홀로 털어놓는 이야기와 노래가 전부인 헤드윅의 힘은 바로 '솔직함'이다.

    헤드윅의 주인공은 여성이 되려 하였으나 돌팔이 의사의 실수로 남성도 여성도 아닌 어정쩡한 제3의 성이 되어버린 사람이다. 성전환 수술이 실패한 후 그래도 자신이 되고자 하였던 다른 성의 모습으로 살며 때로는 나직한 목소리로, 때로는 절규하며 관객들에게 들려주는 자신의 인생, 상처, 실연 등의 이야기가 쉴 새 없이 계속되는 공연 중간 문득 이 사회에서 성소수자로 분류되는 사람들의 절규가 생각나는 것은 왜였을까. 자의로 성전환을 선택하였으나 타의로 제3의 성이 되어 버린 그는 분명 성소수자다. 그런데 객석에 앉아 그가 털어놓는 독백을 들으며 그에게 조금씩 마음을 여는 어느 순간부터 그의 기괴한 분장과 가발, 의상이 더 이상 부담스럽지도, 기괴하지도 않다.

    공연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 한 줄의 시가 나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 시인 나태주의 '풀꽃'

    ps: 두시간 반이 넘는 이 공연에서, 간간히 연주를 하는 밴드 뮤지션을 제외하면 조승우는 공연 시간 내내 홀로 무대에 서서 마치 오늘이 그의 생에서 마지막으로 허락된 날인 듯 그야말로 혼신을 다해 연기하고 노래했다. 그 공연이 그가 무대에 서는 마지막 기회인 듯 그가 가진 모든 열정과 땀을 쏟은 후 싱그러운 미소와 함께 당당한 발걸음으로 관객보다 먼저 퇴장하는 조승우의 뒷모습을 보며 문득 나의 일상이 부끄러워졌다.
    마세라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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