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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미술 이야기

    (32) 완구유집(宛丘遺集) 2책

    김영복 KBS 진품명품 감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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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담소하다 우연히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조선시대에 나온 책 중에 활자본이나 필사본 중에는 이런 저런 책이 좋다는 말을 하면서도 정작 가장 많이 책으로 나온 목판본 중에서 가장 좋은 책은 무엇을 꼽을 수 있을까?



    나는 묻자마자 10권2책으로 꾸며진 '완구유집(宛丘遺集)'(사진)을 첫째로 꼽을 것이라 했다. 이 책은 조선후기 경학과 문장으로 이름이 났던 완구 신대우(宛丘 申大羽: 1735-1809)의 문집이다. 조선시대에 나온 책은 대부분 그 책이 어떻게 나오게 된 내력에 대해 언급한 글이나 간행기(刊行記)가 있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 이 완구유집에도 책의 발간 경위나 발간에 대한 내용이 전혀 없다. 대부분 다른 책에는 서문과 발문이 있는데 이 책에는 목록만 있을 뿐 그 흔한 서발(序跋)도 없다. 다만 각권 첫머리에 "아들 진과 작과 현이 편집하고 교정하여 펴냈다(男 縉綽絢 編校)"라는 것만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다행히도 이 책을 주로 맡아 했던 둘째 아들 석천 신작(石泉 申綽: 1760-1828)의 일기인 『석천일승(石泉日乘)』이 남아 있어 이 책이 어떻게 이루어 졌는지를 알 수 있다.

    신대우(申大羽)의 원고는 살아생전에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 있었고, 돌아간 뒤에도 아들들이 꾸준히 수집하여 1818년 초에는 편집이 완료되었다. 체재는 10권2책으로 편집하였고, 이를 1818년 10월 초부터 신작(申綽)이 목판에 새길 글씨를 쓰기 시작하여 1819년 정월 초에 쓰기를 마쳤다. 다시 목판에 쓸 나무를 다듬질하고 여기에다 신작(申綽)이 쓴 글씨를 가지고 목판에 새기기 시작한 때가 1819년9월6일이다. 이 때 각을 한 각공(刻工)은 서울의 최호익(崔浩益), 평양의 양우주(梁禹舟) 등 두 사람이며 1820년 9월 초에 목판 158장의 작업이 모두 끝났다. 이 달에 다시 한창택(韓倉澤)이 인쇄를 총괄하여 10권2책(乾·坤) 26질을 찍었다. 여기에 소개하는 두 책이 이 때 찍은 26질(秩) 중에 한질인 것이다. 이 책은 이렇게 책을 만들게 된 과정을 정확하게 기록한 일기가 남아 있어 알 수 있지만, 대부분 옛날 목판본은 만들어 가는 전 과정을 알 수 있는 기록이 매우 드물다.

    그럼 왜 이 책이 가장 좋은 책이라 말하려 하는가? 조선시대 모든 책은 해서(楷書)로 썼는데 이 책은 예서(隸書)로 썼고, 특히 이 책에 글을 쓴 신작(申綽)이 당시에 중국 한(漢)나라 시절의 학문을 연구하는 큰 학자였으며, 한나라 시절에 쓰였던 예서에 정통한 문자학에 조예가 깊었던 서예가이기 때문이다.

    존경하던 아버지의 글이기도 하여 더 공들여 썼겠지만, 일단은 글씨 획의 미려함과 조형미가 매우 뛰어나고, 서각 또한 얼마나 정교한지 글씨를 모르는 사람이 보아도 저절로 감탄이 나온다. 다만 흠이 있다면 예서 공부가 부진한 우리나라 사람들이 읽기에 약간 불편한 점이 있었을 것이다.

    조선 후기에 청나라 고증학의 영향과 자발적 연구가 한나라 초기 경전 연구에의 회귀로 기울어 질 때, 다산(茶山 丁若鏞)이나 추사(秋史 金正喜)와는 다른 견해지만 신작(申綽)은 독학으로 한나라 때의 삼경(三經) 연구에 천착하여 일가를 이루었다. 글씨 또한 한나라 때에 유행하던 예서에 대한 연구로 이어지고 직접 그 글씨를 썼다. 신작(申綽)이 연구한 예서와 그 글씨의 예술성이 아마도 직접 쓴 이 두 권의 책 속에 오로시 무르녹아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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