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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주말

    음악 감상 마니아 박규은 부장검사

    "사시합격 보다 희귀음반 구해 듣던 순간 더 감동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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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미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별다른 취미가 없는 사람들의 답변은 '독서'나 '음악 감상' 둘 중의 하나로 나타난다는 얘기를 언젠가 듣고서, 그럼 위 두 가지 모두를 취미로 삼고 살아가는 나는, 곱빼기로 무취미한 인간이란 말인가라는 의문이 들면서 혼자 웃음 지었던 적이 있다. 요즘에도 주말에 특별한 일이나 약속이 없으면, 혼자서 음악을 들으면서 책을 읽는다.

    바쁜 업무 중 휴식을 취할때 음악 감상을 즐긴다는 박규은(48·사법연수원 23기) 법무연수원 교수. 그는 사무실 한켠에 블라인드 페이스, 나자레스, 무소르그스키 등 다양한 종류의 음반들을 수집하고 있다.

     학창시절 음반 찾아 세운상가 누비던 기억 생생
     뉴욕서 '돈 카를로' 관람 순간 아직도 가슴 벅차
    '버킷 리스트'로 당장 떠오르는 것도 모두 음악

    누군가 내게 왜 음악을 듣느냐고 묻는다면 딱히 할 말은 없는 것 같다.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오페라를 감상하는 이유에 대해 '망각을 위하여'라고 답했다고 하고, 아인슈타인은 "내게 죽음이란 모차르트를 더 이상 들을 수 없다는 것"이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결국, 골치 아픈 일상을 잠시 잊어버린 상태에서 뭔가 감동을 맛보기 위하여 음악을 듣는다는 얘기가 될 것 같은데, 내 경우도 별반 다르지는 않아 보인다.

    지나온 인생을 돌이켜 보면, 미래를 위하여 현재를 희생하여 집중적인 노력을 기울인 끝에 원하던 것을 얻었던 때도 있었고, 위와 같이 노력은 했으나 뜻한 바를 이루지 못해 아쉬웠던 적도 있었으며, 게으름을 피운 탓에 목표에 근접조차 하지 못한 때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에 이르러서는 성취 당시의 기쁨이나 실패한 순간의 아쉬움, 자책 등의 감정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지난 주말 음악을 들으며 양재천변을 산책하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대학교 합격과 사법시험 합격 당시의 뿌듯한 성취감, 딸아이가 대학교에 합격하던 순간의 기쁨 등을 잠시 회상해 보려 했으나, 당시의 느낌이 어땠었는지는 전혀 떠오르지 않았고, 대신에 뜬금없이 중학생 시절, 세운상가에서 오랜 시간 발품을 판 끝에 Blind Faith, Nazareth, Jethro Tull 등의 희귀 음반을 찾아내어 구입한 뒤 집에 돌아와 턴테이블에 음반을 끼우고 바늘을 올려놓던 순간의 가슴 설레임과, 뉴욕 메트 오페라 하우스에서 보았던 베르디의 '돈 카를로'와 차이코프스키의 '예프게니 오네긴', 카네기홀에서 들었던 '브루크너 교향곡 9번',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 등 훌륭한 공연을 감상하던 당시의 가슴 벅찼던 감동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아마 먼 훗날 임종의 순간에도, 성공의 뿌듯함이나 실패의 아쉬움, 회한 같은 것보다는 좋아하는 음악을 감상하던 당시의 순간이 눈앞에 스쳐지나가지 않을까 싶다. 이것이 내가 음악을 즐겨 듣는 이유라고 하면 말이 되려나?

    몇 해 전부터 Bucket List(죽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이나 하고 싶은 일들의 목록)라는 말이 유행이다. 아직은 버킷 리스트에 대해 생각할 때는 아닌 것 같아서 구체적으로 목록을 작성하지는 않았지만, 성능 좋은 음향기기를 갖춘 음악감상실을 집과는 별도로 마련하여 보유하는 것과 유럽을 비롯한 세계 각지를 주유하며 오페라나 콘서트 공연을 관람하는 것 두 가지 정도는 어렴풋하게나마 뇌리에 기재해 두었다.

    하지만, 위 두 가지 모두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다 하더라도 아쉬울 것은 없다는 생각이다. 좋지 않은 성능의 음향기기와 DVD로 음악을 감상하는 현재로서도 충분히 행복하고 감동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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