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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고구마

    최기식 부장검사(법무부 통일법무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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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며칠 전 둘째 아들 생일날이었다. 저녁 때 아내와 케익을 사러 나섰다. 가는 길에 치킨도 사기로 했다. 치킨을 주문하고 빵집으로 가는데 군고구마 냄새가 난다. 돌아보니 청년 셋이 통에 장작불을 피워 고구마를 굽고 있었다. 과천에서 함께 자란 친구들이란다. 고구마를 꺼내주는 청년들의 표정이 참 밝았다. 돈을 많이 벌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돌아서는데 아내는 큰 아들 친구네가 생각난다면서 5천원어치를 더 샀다. 케익에 치킨, 따끈따끈한 고구마까지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싶어 뿌듯했다. 축하노래를 부르고 둘째가 촛불을 껐다. 아이들의 손은 부지런히 치킨으로 가는데 고구마는 별 인기가 없었다. 사오긴 했지만 아이들은 치킨을 좋아하고 나는 군고구마를 좋아한다. 그것은 아버지와 나와의 추억 때문이다.

    먹을 것이 부족했던 어린 시절, 농촌에서 고구마는 중요한 식량이었다. 겨울 온돌방에는 늘 고구마를 저장하고 있었다. 겨우내 쪄 먹고 구워먹었다. 아버지는 쇠죽을 끓이고 남은 불에 늘 고구마를 구워서 작은방 앞에 놓아두셨다. "니 낸중에 배고프면 고메 까 묵으래이." 이 한마디를 남기고는 고단한 몸을 끌고 잠자리에 드셨다. 공부를 하다가 시장하면 마루로 나와 군고구마의 살점이 떨어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껍질을 벗겨내었다. 그리고 그 노릇노릇하고 당도 높은 고구마를 단숨에 먹어 치웠다. 나는 그 시절 아버지로부터 사랑한다는 말은 전혀 듣지 못했다. 그래도 안다. 아버지가 진짜로 나를 아끼고 사랑하셨다는 것을.

    그날 저녁 군고구마를 까먹으면서 마음은 올해 90세인 아버지가 계신 밀양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18세에 할아버지를 대신해 강제징용을 다녀오시고, 6·25 전쟁을 겪는 등 가난한 소작농으로 6남매를 키워 오시면서도 정직과 성실로 평생을 살아오셨던 내 아버지…. 몇 해 전 어머니를 하늘나라로 보내고 큰 형님과 고향집을 지키고 계신 아버지. 올 해도 건강하게 행복하게 잘 지내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올 한해 우리 가정과 직장 동료들은 물론 북한이탈주민을 비롯한 우리 사회의 소외된 이들에게 그 옛날 내 아버지가 구워주셨던 그 군고구마와 같이 가슴 따스한 사랑들이 더 많이 전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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