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egalinsight
  • Legaledu
  • 법률신문 오피니언

  • 상시채용
  • 기사제보
  • 목요일언

    텃밭

    최기식 부장검사(서울중앙지검 총무부장)

    입력 :
    글자크기 : 확대 최소
  • 인쇄
  • 메일보내기
  • 기사스크랩
  • 스크랩 보기
  • 토요일 아침부터 일찍 눈이 떠졌다. 일주일 전 텃밭에 심은 고추, 토마토, 상추, 오이, 호박이 잘 살았을까, 얼마나 자랐을까 하는 궁금한 마음에 옷만 챙겨 입고 곧장 청계산 자락으로 갔다. 이 텃밭은 작년에 우연히 그곳에서 농사를 지으시는 동네 할아버지를 알게 되어 구했었다.

    잔뜩 기대를 하고 밭에 도착했는데, 모종은 거의 심은 상태 그대로였다. 아마도 '사름'을 하느라 성장은 못했나 보다. 우선은 흙이 말라 있는 것 같아 충분히 물을 주었다. 그런 다음 딱딱해져 있는 흙을 모종삽으로 부드럽게 부수면서 북돋아 주었다. 30여분이 지났을까, 땀이 눈에 들어갈 정도로 줄줄 흘러내렸다. 알레르기로 충혈이 된 눈이 다 깨끗해지는 느낌이 들 정도로 상쾌했다.

    해거름에 다시 텃밭을 찾았다. 감기 기운이 있는 첫째만 빼고 아내와 둘째, 셋째와 함께였다. 둘째는 낑낑대며 물을 떠 오고, 셋째는 고루 물을 뿌려주었다. 나는 할아버지로부터 쑥갓과 들깨 모종을 몇 포기 얻어 남은 공간에 심었다. 아내는 할아버지 밭에서 이미 먹을 수 있을 만큼 자란 상추와 쑥갓을 뜯었다. 그 신선한 쌈거리들로 그날 저녁에는 삼겹살 파티를 열었다. 첫째와 둘째는 물론이고 채소를 잘 먹지 않는 막내까지도 접시에 상추를 깔고 그 위에 노릇노릇 구운 삼겹살, 쌀밥, 쌈장을 차례로 얹어 두 손으로 들고 맛있게 먹었다. 온 식구가 한 상에 둘러앉으니 여기가 낙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텃밭에 올 때면 어릴 적 학교를 마치면 늘 뛰어올라가던 우리 산밭이 생각난다. 그 밭에는 언제나 부모님이 계셨다. 잘 익은 토마토를 따서 입에 베어 물면 싱그러운 토마토의 향이 그대로 전해왔었다. 산밭은 나에게 성실과 사랑과 자연의 이치를 가르쳐 주었다. 이제 상추가 제법 자라면 주인 할아버지와 동네 어르신들 몇 분을 모시고 작년처럼 소주에 삼겹살로 자리를 한번 만들고 싶은데, 이 모종들이 튼실하게 자라줄까? 자신은 없지만 어릴 적 내 부모님처럼 각 채소가 가진 고유한 특성을 잘 살리고 관심을 많이 가져주면 되겠지…. 이것은 어쩌면 이제 사춘기의 정점을 지나고 있는 우리 큰 아들을 비롯한 나의 자식들도 마찬가지리라.

    최근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