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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맞이꽃에 대한 명상

    임익문 법무사(전북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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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느덧 입추가 지나 가을이 성큼 다가왔지만 며칠 전까지만 해도 열대야에 잠 못이루는 밤이 계속됐다. 그 날도 찌는 듯한 무더위를 견디지 못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천변을 거닐었다. 마침 달은 휘영청 밝았고 뚝방길은 뜻밖에 산책하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몇 걸음 옮겼을까. 나는 노란 현기증으로 어찔하였다. 비탈에서 누군가 웃으며 반겨주고 있었던 것이다. 아아, 달맞이꽃, 현기증의 정체였다.

    달맞이꽃은 나에게 최초의 불립문자였다. 푸르고 푸르렀던 청춘의 너덜길에 피어난 꽃이었다. 대학시절 어느 여름방학, 나는 몇 권의 법서를 싸들고 무작정 남행열차를 탔다. 뚜렷한 목적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가열하게 타오르던 젊음을 어쩌지 못하여 도피처를 찾아 숨어버렸다는 것이 솔직한 고백일 것이다. 산사의 밤은 너무나 적막했다. '산에 오면 산소리'만이 반기는 백석 시인의 적막강산 바로 그것이었다. 멀리서 소쩍새 우는 소리가 소쩍 소쩍 간장을 녹여대는 밤이면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방문을 밀치고 뛰쳐나가지 않을 수 없었다. 풍경소리에 쏟아지는 달빛은 눈이 부셔 어지러웠다. 흰 고무신에 보름달이 떴다. 비탈에 노오랗게 피어난 달맞이꽃에도 달이 떴다. 달맞이꽃은 만월의 정기를 밤새도록 흠씬 빨아들이고 있었다. 나도 달맞이꽃과 함께 용광로처럼 뜨겁게 달궈지고 있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스님의 독경소리는 새벽을 부르고 있었다. 나는 비탈길에 불립문자로 서서 천천히 사위어 갔다. 텅 빈 하늘로 날아갔다.

    '달맞이꽃에 대한 명상'은 최승호 시인의 명상집 제목이다. 있음의 신비, 혹은 추억의 분실물 보관소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시인은 달맞이꽃을 '달이 잘 보이는 길가나 언덕에 뿌리를 내리고 서서, 밝은 달이 뜨기를 기다리고 있는 꽃, 향기로운 노란 초롱들을 키 큰 대궁에 촘촘하게 밝히고 있는 이 수줍음 타는 듯한 꽃'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열대야에 잠 못 이루는 밤, 젊음의 고뇌를 되새김질하게 해준 달맞이꽃이여! 고맙고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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