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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의 불완전성Ⅱ-기억의 고집

    기억의 불완전성Ⅱ-기억의 고집

    지난 주말 정재승 교수의 강의를 들었다. 교수님의 사인을 받기 위해 책을 찾다가 지난 번 월요법창(기억의 불완전성) 챌린저호 일화가 정재승 교수의 '1.4킬로그램의 우주, 뇌'라는 책에 실려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반가운 마음에 그 일화를 다시 읽어보니 아래와 같은 이야기가 있다. 나이서 교수가 챌린저호 폭발사고 다음날 학생들을 불러 사고 당일 무얼 하고 있었는지를 적게 하고 2년 반 후 학생들을 다시 불러 사고 당일 행적을 물어 보았다. 학생들 중 설문지 내용과 비슷하게라도 말한 사람은 10%도 채 넘기지 못했다. 하지만 더 흥미로운 실험결과는 교수가 학생들에게 설문지를 보여 줄 때 나왔다. 학생들은 자신이 작성한 설문지를 보고도 그 설문지가 잘못 되었고 자신의 기억이 맞다고 강변하더라

    임형주 변호사 (법무법인 율촌)
    이웃집 여자

    이웃집 여자

    공판 내내 그녀의 표정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얼굴은 일그러져 잔뜩 화난 사람처럼 보였다. 말투는 거칠고 어눌하며 조리에 맞지 않았다. 다른 피고인보다 입성이 남루했고 거동마저 불편해 보였다. 누군가 그녀를 지목하자 이웃들은 기다렸다는 듯 평소 그녀가 시어머니를 때리는 것을 보았다고 진술하였다. 목격자가 넘쳐났다. 그녀는 경찰과 검찰에서 자백하였다. 갈비뼈 13개가 부러져 사경을 헤매는 여든의 시어머니를 방치하여 사망케 한 패륜며느리 역에 이보다 더 완벽한 캐스팅이 있을까 싶었다. 그러나 변호인의 조력을 받은 그녀는 범행을 부인하였고, 공판이 거듭될수록 한결같던 이웃들의 진술이 하나같이 흔들렸다. 편견에 가려졌던 증거들이 부각되었다. 할머니와 엄마를 함께 사랑한 두 딸과 욕심 없고 눈 밝은 변호사가

    박주영 부장판사 (대전지법)
    상가 임대차와 상생의 길

    상가 임대차와 상생의 길

    홍대 앞거리, 종로 서촌, 신사동 가로수길, 이태원 경리단길, 용산 해방촌 …. 이들은 2000년대 이후 노후한 서울 구도심에 개성 넘치는 이색 상권과 특색 있는 골목 문화권을 형성하면서 살아난 대표적 지역들이다. 그렇지만 그 후 안타깝게도 골목 상권의 주역들인 소상공인들이 임대료 상승을 견디지 못하고 밀려나 이른바 ‘상가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현상으로 주목받은 곳이기도 하다. 상가 젠트리피케이션은 낙후 지역이 경제 활성화로 되살아나고 인구유입으로 지역 평균소득이 향상되는 도시재생이라는 빛의 뒷그림자처럼, 거대 상업자본에 지역 고유의 특성이 상실되고, 소상공인들의 생존이 위협받는 사회문제로 대두되었다. 그래서 정부는 도시 발전의 장점은 살리면서 젠트리피케이션의 부작용을 막기 위해

    김윤섭 부장검사 (법무부 법무과장)
    유비쿼터스 환경에서

    유비쿼터스 환경에서

    블록체인 위에 만들어진 디지털 화폐 비트코인(bitcoin)이 세상에 알려진 덕분에 블록체인은 컴퓨터 과학 영역에만 머물지 않고 대중에게 좀 더 알려지게 되었다. 블록체인의 핵심적인 속성은 보안이 철저하고, 비용이 절감되며, 투명한 정보공개라 한다. 디지털로 된 ‘무엇’을 다른 사람에게 보내도 복사본이 남거나 제3자에게 무단으로 배포되지 않으며. 조작되지 않는다. 블록체인 시스템이 발전되고 안정화된다면 정보를 교환할 때 신뢰성과 안전을 담보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통일적이고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모습을 찾고자 했는지 모른다. 복잡 다양한 현실에서 누구에게나 같은 도구를 이용하면 접근이 가능하고 책임소재도 쉽게 밝힐 수 있었다. 그 중 하나가 특정 기술의 전자인증서를 기반으

    황정수 법무사 (대한법무사협회 법제연구위원)
    Make the right real

    Make the right real

    동계패럴림픽 빙상종목은 컬링과 아이스하키 두 종목뿐이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이번 평창 동계패럴림픽에서 두 종목 모두 준결승에 올랐다. 비유하자면 동계올림픽의 컬링, 아이스하키, 스피드스케이팅, 쇼트트랙에서 모두 준결승에 오른 것이다. 이쯤되면 방송사의 비장한 예고편과 ‘영미야’ 같은 훈훈한 이야기들이 넘쳐날 만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평창 동계패럴림픽 방송시간으로 KBS 25시간, MBC 18시간, SBS 30시간 편성됐었다고 하니 어찌보면 당연하다. 지난 12일 문재인 대통령이 패럴림픽 중계방송 문제를 언급한 후 편성시간이 늘기는 했지만 그마저도 해외방송사들에 비하여 현저히 적다. 우리나라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존재하고 이를 관장하는 국가인권위원회도 존재하며 관련된 의미 있는 판

    임형주 변호사 (법무법인 율촌)
    우리 자기

    우리 자기

    팔순 노파가 이웃집 노인의 바지 뒤춤에서 5만원을 절취한 사건에 대해 즉결심판을 한 적이 있다. 피고인을 호명하니 한 노인이 노파를 부축해 나왔다. 할머니는 거동도 불편했지만 인지능력에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이름과 생년월일을 묻자 ‘뭔 일이래’라는 표정으로 딴청을 피우신다. 법정은 대기 중인 피고인들로 만원인 상황. 속으로 경찰을 원망하면서 할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어떻게든 재판을 마치기로 마음먹었다. 할아버지를 할머니 뒤편에 앉히고 다시 물었다. “할머니, 뒤에 계신 분은 누구세요?” 한순간의 망설임 없는 명랑한 답변이 날아들었다. “응, 우리 자기!” 재판과 기억은 떼려야 뗄 수가 없다. 객관적 증거 없는 재판은 기억을 재구성하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기억이 없으면 사실도 없다. 기억은 존재의 집이

    박주영 부장판사 (대전지법)
    유비쿼터스의 미래 화상공증

    유비쿼터스의 미래 화상공증

    인터넷 태동기인 1988년 미국의 사무용 복사기 제조회사 제록스의 마크 와이저(Mark Weiser) 박사가 '유비쿼터스(‘언제 어디서나 동시에 존재하는’이라는 뜻의 라틴어 Ubique에서 유래) 컴퓨팅'이라는 용어를 주창한 이래 IT기술은 급속히 발달해 왔다. “인류의 가장 심오한 기술은 우리 일상생활 속으로 스며들어 생활의 일부가 된다”라는 와이저 박사의 명언처럼 현대기술은 순간순간 사라지면서도 어느새 우리 생활 속에 깊숙이 들어와 변화를 만들고 있다. 공증 분야에서는 2010년 전자공증제도가 도입되어 컴퓨터로 작성한 계약서 등의 파일도 공증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회사 정관이나 주주총회 의사록 파일에 전자공증을 받은 후 곧바로 전자등기 신청을 할 수도 있다. 디지털시대에 전자공증으로 법률관계의

    김윤섭 부장검사 (법무부 법무과장)
    보이는 것의 허상

    보이는 것의 허상

    얼마 전 지인이 사무실에 와서 하소연을 한 적이 있다. 살고 있는 집이 너무 오래돼 내부 인테리어를 할 마음으로 인테리어 업체와 공사계약을 하고, 계약서에 공사계약에 관한 내용, 인테리어에 사용할 업체 등을 빠짐없이 정하고 내부공사를 맡겼다고 했다. 그런데 공사를 마친 단계에서 보니까 욕실 겉모양은 깨끗하게 하였는데 가장 중요한 방수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다시 공사를 하게 하였고, 실내에 설치한 수납장도 계약내용과 다르게 다른 업체 것으로 설치하여 이를 철거하고 계약대로 다시 설치할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또 신발장도 설치과정에서 잘 보이지 않는 내부에 못이 튀어나와 문짝을 떼어내고 다시 설치하는 등 여러 차례 걸쳐 보수공사를 했다는 것이다. 지인으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으면서 우리 사회는

    황정수 법무사 (대한법무사협회 법제연구위원)
    Passion. Connected.

    Passion. Connected.

    필자는 원주에서 태어나 정선에서 학창시절 대부분을 보낸 감자바우다. 그래서 이번에 강원도 평창에서 열리는 동계올림픽은 가급적 챙겨 보고 있다. 감동적이었던 퀸연아의 등장, 정성과 배려가 느껴졌던 바흐 IOC위원장의 개회사, 설산과 멋진 조화를 이뤘던 드론 오륜, 충격적 비주얼의 인면조 등이 기억에 남는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여자 쇼트트랙 3,000m 계주 준결승에서 받은 신선한 충격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아 우리 선수가 넘어졌다. 메달은 고사하고 17살 어린 선수 마음에 깊은 상처가 남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해설자들은 넘어질 때 "괜찮다, 따라잡을 수 있다"고 말했지만 월드컵 때마다 속아 왔던 해설자들의 말은 믿지 않은 지 오래다. 그런데 왠걸, 선수들은 포

    임형주 변호사 (법무법인 율촌)
    습설

    습설

    습기를 머금은 눈은 보통 눈보다 3배 정도 무겁다. 습설(濕雪)이다. 난분분 난분분 팔랑이는 눈발은 보기와 달리 조용하지만, 젖은 눈은 소란스럽다. 챠르륵 챠르륵 우산을 두드리며 이야기를 건넨다. 습설은 사연 많은 눈이다. 큰 눈 내린 날, 우산을 받치며 법원을 들어서다 사람들과 눈이 마주쳤다. 눈도 제대로 털지 못하고 아침부터 법원을 드나드는 이들 역시 사연 많은 사람들이다. 각자의 이야기를 품안 가득 안고, 각자의 법정으로 뿔뿔이 흩어진다. 잿빛 얼굴의 저 남자는 한동안 집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고, 눈이 퀭한 저 여자는 한참을 잠 못 이룰 것이다. 볼이 움푹 팬 저 노인은 벌금을 못 구해 노역을 살 것이고, 아들을 잃은 저 노파는 재판이 끝나기를 하염없이 기다릴 것이다. 눈물과

    박주영 부장판사 (대전지법)
    법치국가의 상소권 행사

    법치국가의 상소권 행사

    지난 달 23일 서울고검에서 제1회 국가송무 상소심의위원회가 열렸다. 작년 11월 전국 5대 고검에 중대 국가소송사건의 상소 여부를 심의하는 위원회가 설치된 후 부산·대전고검에 이어 3번째 열린 위원회였다. 이날 위원회에서는 ‘유럽간첩단’ 사건으로 사형을 당한 고 박노수 교수의 유족들에 대한 일부 손해배상을 인정한 제1심 판결에 대해 위원 전원일치로 국가의 항소포기를 의결하였다. 유럽간첩단 사건은 1960년대 발생한 대표적인 공안조작사건 중 하나로, 당시 박 교수는 해외유학 중 간첩활동을 하였다는 혐의로 중앙정보부에 불법체포·감금된 후 국가보안법 등 위반 혐의로 기소돼 결국 사형까지 집행당하였다. 그 사건은 2015년 비로소 재심으로 무죄판결이 확정된다. 위원회에서 심의된 사건은 그 후 그 유족들이

    김윤섭 부장검사 (법무부 법무과장)
    수주대토(守株待兎)

    수주대토(守株待兎)

    이탈리아 시인 마리네티(Marinetti)는 프랑스 '피가로'지에 발표한 미래주의 선언에서 기계의 위력으로 출현한 새로운 세계를 환영하고 과거에 대한 모든 집착을 거부할 것을 주장했다. 미래의 진보에 대한 희망과 믿음이 없다면 우리는 현실의 문제 자체가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도록 기다릴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 해결이 가능할까? 이미 지나간 시절을 운운하며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조직과 사람은 수주대토와도 같다. 그루터기(株)에 지키고(守) 앉아 토끼(兎)가 오기를 기다린다(待)는 의미이다. 지나간 행운을 못잊어 새롭게 변한 상황을 인정하지 않고 과거 방식만으로 대처하려는 송나라 농부의 어리석음을 비웃는 이야기이다. 이 고사가 나온 춘추전국시대는 변화와 불확실성

    황정수 법무사 (대한법무사협회 법제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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