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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삭발자(削髮者)의 변(辨)

    삭발자(削髮者)의 변(辨)

    4·19혁명이 일어난 해인 1960년 서울대학교 학내 신문인 '大學新聞' 12월 12일자에 당시 법학과 3학년 학생이 '삭발자의 변'이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하였다. 학생회 사무실에서 대학동기 십여 명과 함께 머리를 빡빡 깎은 후 그 이유를 편지 형식으로 쓴 글이다.  "(전략) 교회가 썩고 학원이 썩고 사회는 역한 냄새로 가득 찼어도 저는 때때로 마음만 안타까웠지 손 하나 놀려보질 못했습니다. 용기가 없었습니다. 흐름을 거슬러 오를 패기가 없었습니다. 결론이 이미 내려졌는데도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것이 우리 백성의, 특히 지식인이란 사람들의 크나큰 병폐였습니다. 남들이 한다면 나도 하고 주위의 눈치만 살펴왔습니다. 오늘 제가 친구들의 까까머리를 보고 잠자던 영혼이 깨우침을 받아

    김성우 前 부장판사 (서울가정법원)
    뇌전증지원법 도입을 기다리며

    뇌전증지원법 도입을 기다리며

    얼마나 많은 법조인들이 '뇌전증'에 대해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뇌전증(腦電症, epilepsy)이란 만성적인 신경 장애의 하나로, 이유 없는 발작을 특징으로 하며 과거에는 '간질'이라는 병명으로 불리웠다. '간질'이라는 병명 자체가 부정적 인식과 사회적인 편견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2014년 보건당국이 세계 최초로 병명을 뇌전증으로 바꾸었지만, 그 명칭 전환의 의미가 무색하게 그에 대한 홍보는 미흡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뇌전증은 뇌신경 세포의 불규칙한 흥분에 따라 뇌에 과도한 전기적 신호가 발생함으로 인해 발현되는 병증인데, 뇌경색이나 뇌출혈 등 일반적인 병의 합병증이나 사고 등으로 인해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는 병이기도 하다. 뇌전증은 발작을 동반하는 병증에 대한 막연한

    설지혜 변호사 (법무법인 화우)
    신임 검사님들에게

    신임 검사님들에게

    법무연수원 제7기 검사님들이 작년 4월 30일 임관한 지 벌써 10개월이 되었습니다. 2개월간의 입교준비과정까지 포함하면 법무연수원 교육 기간도 1년이 되어 2월말 수료를 앞두고 있네요. 그동안 실무교육, 3개월간 일선 청 실무수습, 3차례의 평가까지 정말 고생이 많았습니다. 특히 이번에 사법연수원 및 법학전문대학원 출신 신임검사 112명을 대상으로 처음 실시한 통합교육은 그 의미와 중요성이 남다르다 생각합니다. 통합교육 찬성 의견이 92.16%에 달하는 설문조사 결과가 이를 보여주는 것이겠지요. 전 세계 어느 나라에도 우리나라처럼 신임 검사들에게 약 1년에 걸쳐 교육을 실시하는 시스템은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만큼 우리나라에서 검사가 담당하는 역할의 중요성을 반증하는 것이니 자부심을 가져도 될 것입니

    박영진 과장 (법무연수원 대외연수과)
    구조조정과 경쟁력 보존

    구조조정과 경쟁력 보존

    최근 상영된 영화 '국가부도의 날'을 보면서 한국기업들이 지난 20여년간 겪었던 구조조정의 과정이 되살아났다. 시카고에서 변호사 생활을 하고 있던 때였다. 1998년 대우그룹이 위기에 처하면서 미국에 진출해 있었던 대우자동차의 정리작업이 시작되었다. 당시 자동차딜러쉽 관련한 부동산, 차량 재고 등의 매각과 관련하여 현지에 파견된 대우 주재원분들과 계속된 협의, 매입자들과의 치열한 협상 등을 눈보라치는 시카고에서 치렀다. 차가운 겨울 날씨만큼이나 정리 작업도 매정하게 진행되었고, 주재원으로 나오신 분들 중 많은 분들이 기약없이 귀국길에 올랐다. 2001년, 그 때는 뉴욕으로 근무지를 옮겨서 일하고 있을 때였다. 조양상선이 정리절차를 시작하였다. 뉴저지에 있는 조양상선 사무실에 근무하시는

    김병수 외국법자문사 (쉐퍼드 멀린 서울사무소대표)
    이별사자(使者)의 이혼주례

    이별사자(使者)의 이혼주례

    이혼사건 첫 기일이면 필자가 확인하는 내용이 있다. ① 당사자들의 이혼의사 ② 별거여부 ③ 사전처분의 필요성 ④ 자녀양육안내(부모교육) 이수여부. 1기 가사전문법관이었던 대구가정법원의 모 부장판사는 두(頭)문자를 따서 이를 ‘이, 별, 사, 자’라고 불렀다. 드라마 ‘도깨비’에 망자를 저승으로 안내하는 꽃미남 저승사자(使者)가 있다면, 가정법원에는 이혼으로 부부관계를 정리해 주는 이별사자(使者), 가정법원 판사들이 있다. 이별사자가 하는 중요한 업무 중 하나가 협의이혼의사확인이다. 평일 오전 10시 서울가정법원 1층 협의이혼실 앞.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는 많은 남녀가 어두운 얼굴로 휴대전화에 애써 시선을 주고 있다. 이별사자 앞에 선 그들은 이렇게 간단하게 이혼이 되는 것이냐고 묻기도 하고 절차가

    김성우 부장판사 (서울가정법원)
    말과 선거

    말과 선거

    많은 법조인들이 그러하듯 필자 또한 법과대학을 졸업하였고, 많은 법대생들이 그러하듯 과 내의 학회 활동에 참여하여 학우들과 친교를 나누고 사회과학에 대해 논의하곤 하였다. 그런 영향때문인지, 90년대 중반부터 학생운동은 저물어갔지만 필자는 여전히 학교 내의 학생회 활동과 대외적인 정치적 활동에 열심인 사람들과 그들의 활동내용을 접할 기회를 적지 않게 가질 수 있었다. 신입생 시절에는 나름대로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지만 언제부터인가 회의감이 들었는데, 아마도 정치적인 수사와 구호가 난무하는 말의 잔치에 휩쓸려 자칫 중심을 잃고 객관적으로 현실을 바라볼 능력이나 입지를 상실할 수 있다는 데 두려움을 느꼈던 것 같다. 어떤 지위나 사정 때문에 뱉었던 나의 말들이 나중에 족쇄로 돌아올 수 있다는 점에

    설지혜 변호사 (법무법인 화우)
    법무한류(K-Law)

    법무한류(K-Law)

    우리나라는 개발도상국일까, 선진국일까. 1996년 세계 29번째로 소위 ‘선진국 클럽’이라고 하는 OECD에 가입하였을 때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상에 대해서 고민을 하였던 적이 있다. ‘developing country’와 ‘developed country’라는 영어 단어의 오묘한 차이를 음미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2009년 11월 OECD 개발원조위원회(DAC)에 24번째 국가로 가입하여 올해 개도국 공적개발원조(ODA) 예산이 3조 4000억원에 달하는 것을 보면 이러한 논의는 이제는 큰 의미가 없는 것 같다.  법무연수원은 이에 발맞추어 1997년부터 개도국 고위 법조인 등을 대상으로 초청연수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2018년까지 112개 과정을 통해 91개국 1750명이

    박영진 과장 (법무연수원 대외연수과)
    소중한 인연

    소중한 인연

    2004년 여름의 어느 날, 안 지 얼마 되지 않은 한국 클라이언트와 뉴욕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다. 이 분도 뉴욕에 부임하신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갑자기 회사이름의 사용을 중지해달라는 편지를 캘리포니아에 있는 미국 회사로부터 받았다고 했다. 일은 그렇게 시작이 되었다. 2014년 12월 추운 겨울, 미국 워싱턴 DC의 미 연방대법원 앞. 아침 11시에 있을 구두 변론을 방청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측 변호사 중 한 명은 초등학교 아이들을 포함한 전 가족을 데리고 왔다. 양측에 주어진 시간은 각각 30분. 법정에 있는 시계가 남은 시간을 보여주고 있었다. 연방대법관 중 여든을 넘긴 긴스버그 대법관은 얼마전 수술을 받았음에도 아픈 몸을 이끌고 힘겹

    김병수 외국법자문사 (쉐퍼드 멀린 서울사무소대표)
    언젠가 독주회

    언젠가 독주회

    서울시내 유일의 입시중학교가 예술학교인 덕분에 약간의 박자치인 내 장래희망은 피아니스트로 정해졌다. 물론 체육학교라면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였을 것이고, 요리학교였으면 장 조지가 되었을 것이다. 월등한 필기 성적 덕에 합격이야 했지만, 연습선생님-중간선생님-큰선생님의 렛슨의 사슬, 연습의 쳇바퀴, 잘해봐야 중간인 실기 등수, 방학마다의 캠프, 학기마다 돌아오는 향상 음악회 모두 싫었다. 손가락을 돌리고 악상을 외워서 미스 없이 치는 것이 연주의 전부 인 줄 알았고, 달리 더 가르쳐 주는 스승도 없었다. 원래 내 것이 아니었던 꿈이었으므로 쉽게 접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피아노를 치고 있다. 이번 계절의 레파토리는 라벨의 ‘물의 희롱’과 ‘소나티네’이다. 가디언지의 편집장을 지낸 앨런 러스브리저는 1년간

    김정연 교수 (인천대)
    초심(初心)

    초심(初心)

    변호사 업무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대기업 계열사에서 대규모 횡령사고가 발생하여 피해자인 회사를 자문한 일이 있었다. 차장급 직원이 몇 백억원을 장기간에 걸쳐 횡령한 사건이었다. 물론 중간에 고비는 있었다. 부하직원인 과장이 눈치를 채고 차장에게 횡령이니 고발하겠다고 한 것이다. 그런데 차장이 사실은 본인이 그룹 비자금 담당자라고 둘러대며 과장도 함께 비자금 관리 업무를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하자, 과장은 출세길에 접어 들었다고 판단하고 적극 협조를 해서 결과적으로는 오히려 범행이 더 쉬워졌다고 한다. 구치소에서 만난 과장은 "돈 한푼 챙긴 것이 없고 오로지 회장님과 그룹을 위해 일했다"고 하며 통곡을 하는 것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내가 만약 그 과장이었으면 그 때 정말 다른 선택을

    김상곤 변호사 (법무법인 광장)
    거짓말과 사법방해

    거짓말과 사법방해

    외국 영화나 미국드라마를 볼 때면 범죄 수사를 하는 과정에서 피의자들이 불리한 상황이 되는 경우 진술을 거부하고 침묵하는 장면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변호인도 피의자에게 진술을 거부할 것을 조력하는 모습이 나온다. 근대 형사사법에서는 피의자나 피고인에게 진술을 거부할 권리를 인정하고 있다. 우리나라 형사소송법도 ‘미란다 원칙’이라고도 불리는 피의자의 진술을 거부할 권리에 대해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와 관련하여 사건 수사를 하거나 재판 관여를 할 때 가끔 드는 생각이 있다. '피의자나 피고인에게 법이 인정하는 진술을 거부할 권리는 있지만, 과연 거짓말을 할 권리가 있는가'이다. 즉, 피의자나 피고인은 범죄 혐의를 인정하지 않을 수 있고, 그 내용에 대해 진술을 하지 않을 수는 있다. 그러나,

    박성민 지청장 (속초지청)
    가족끼리 왜 이래

    가족끼리 왜 이래

    판결문 읽기가 취미인 박민제 기자로부터 그가 쓴 책을 선물 받았다. 엊그제 발간된 책 제목이 ‘가족끼리 왜 이래’이다. 자식들을 위해 헌신한 홀아비가 시한부 선고를 받고나서 자신의 삶만 소중히 여기는 자녀들을 상대로 불효소송을 제기한다는 줄거리의 수년 전 방영된 드라마 제목과 같다. 그 드라마 속 아버지 차순봉은 가족을 위해 온갖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았는데 자식들은 제 살길만 챙기고 아버지의 험난한 삶을 보듬지 않았다. 가족끼리 그러면 안 되는데 말이다. 이 책의 저자는 방대한 양의 판결문에 등장하는 가족의 해체 과정을 통계와 법리를 곁들여 가며 치밀하게 분석했다. 자신의 책에서 가족이 파국에 이르지 않을 조그만 단서라도 얻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모든 사례들이 실화인 까닭에 현실감이 있고, 10년을 훌쩍

    김대현 고법판사 (서울고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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