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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요일언

    목요일언 리스트

    사랑의 굴레

    사랑의 굴레

    나는 관계의 지배를 받고 있다. 거미줄처럼 얽혀진 그 속에서도 정작 몇 개 안 되는 가닥만 겨우 부여잡고 있는 듯 보이지만, 그것만 잡고 있기도 때론 버겁다. 그 중 13살의 우리집 그녀는 나를 완전히 정복하였다. 내 삶은 물리적으로는 상당 부분이 서초동 일대에서 이루어지지만, 물리적 세상 너머에서는 온전히 우리집 그녀 안에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생각한다. 나는 나로서 살고 있는가, 아니면 우리집 그녀로서 살고 있는가.   그런데 나로서의 나만 두고 보더라도, 나는 하나가 아니다. 현재 하루 24시간 기준으로 나는 상당 부분이 판사로 여겨지고, 기대되는 직업적 전문성과 윤리성을 가졌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그런데 그 판사가 나인가? 그마저도 장담할 수는 없지만, 그렇게 보여지려고 노력하고 있는

    박지연 판사 (서울고등법원)
    극일(克日)의 방법

    극일(克日)의 방법

    일본은 막부시절 쇄국정책을 썼으나 나가사키 항구만은 개방하여 제한적이나마 서양문물을 지속적으로 받아들이고, 페리 제독의 문호개방 압력에 굴복한 후 지방의 하급무사들이 주동하여 막부를 타도하고, 메이지유신을 단행하여 서양의 제도를 대대적으로 수용하면서 근대화에 성공한 반면, 조선은 쇄국정책과 민비와 대원군이라는 두 정치세력의 알력 속에 근대화에 실기하고, 청과 러시아를 꺾은 일본에 의해 강제 병합되었다.   즉, 세계사적으로 조선은 약육강식의 제국주의시대에 강대국의 먹잇감으로 전락했다. 근대 이전에는 카리스마를 가진 지도자와 효율적인 군대만 가지고도 강대국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근대 민족국가 시대 이후에는 사회를 떠받치는 각 구성원과 집단의 이성에 바탕한 합리성이 뒷받침 되지

    박근수 법무사 (서울중앙회)
    AI의 활용

    AI의 활용

    8월 29일 서초동 변호사회관에서 열린 ‘알파로 경진대회’의 결과가 화제다. 2인의 변호사로 구성된 ‘변호사팀’ 8개 팀과 변호사나 비변호사 1인과 AI로 구성된 ‘AI팀’ 3개 팀이 근로계약서를 분석, 자문보고서를 작성하여 심사한 결과, AI팀이 1~3위를 휩쓸었다. AI는 근로계약서 전체를 그대로 복사해 넣고 ‘분석’ 버튼을 누르면, 계약당사자, 기간, 금액 등 주요 정보의 요약, 계약서에 누락된 조항, 위험요소 및 그 이유와 대처방안을 제공하고, 관련 법령과 판례를 연결해줬다고 한다.   컴퓨터가 없던 시절 법조인들은 판례를 공부하고 기억해두었다가 잘 모르는 부분은 법전, 주석서, 판례공보 등을 뒤져서 해결했다. 오로지 인간의 기억력에 의존하여 수동으로 정보를 검색하는 방식

    김미연 변호사 (법무법인 바른)
    제주 예찬

    제주 예찬

    '그래, 제주로 가야겠어.' 인생의 가장 찬란한 젊음을 검찰에 헌신하고 새 출발을 하시는 선배님들의 사직인사를 읽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많은 선배님들이 가족에 소홀했던 것을 아쉬워하는 것을 보고, 가족에 대한 마음 빚을 선제적(?)으로 갚기 위해 제주 근무를 지원했습니다.   “제주에서 살게 해줘서 고마워.” 연푸른 곽지해변이었습니다. 제주를 떠나기 얼마 전, 일렁이는 하얀 파도에 종일 몸을 내맡기고, 무료 오션뷰 야외노천탕에서 짠물을 벗겨내고, 보송한 새 옷을 갈아입고 해안가에 차를 세운 후 불그레한 석양을 아내와 함께 바라보던 때였습니다.    “언덕이라꼬 다 같은 기 아이네.” 다랑쉬오름이었습니다. 작년 이맘 때 처음 오른 오름이었습니다. '오

    권상대 부장검사 (법무부 공안기획과장)
    힘겨루기

    힘겨루기

    나는 겁이 많다. 일상 중에 자주, 작게 또는 크게 경계심을 작동시킨다. 주변을 경계하려니 삼감이 예민하다. 안 맡아도 될 냄새를 잘 맡고, 들을 필요 없는 소리도 잘 들리며, 맛에도 민감하다. 부족한 시력은 계속 수련 중인 촉으로 보완할 예정이다.   무서운 것에는 피하는 방법과 맞서는 방법이 있다. 나는 일상에서 자연스럽고 아주 쉽게, 피해도 되는 것은 피하는 쪽을, 피할 수 없는 것은 맞서는 쪽을 선택해왔다. 이 기회에 곰곰 생각해 보니, 피해도 되는 것과 피할 수 없는 것은 결국 내 의지에 의한 선택으로 정해졌을 뿐, 미리 정해진 것은 없었다.    그런데 우리집 그녀에게는 내 선택의 전략이 통하지 않는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회피할 길 없는 운명적 상대이고, 맞서

    박지연 고법판사 (서울고법)
    헌법적 가치와 안보

    헌법적 가치와 안보

    얼마 전 영어로 된 미국의 헌법 제정과정에 관한 유튜브를 보았다. 영국으로부터 독립에 성공한 식민지 13개주는 연합으로 느슨하게 결속되어 있었으나, 중앙정부 존재의 필요성에 따라 1787년 각 주의 지도자들이 필라델피아에 모여 연방헌법의 제정을 논의했다. 헌법에는 당연히 기본권에 관한 내용이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오늘날 상식이나, 세계 최초의 성문헌법인 미국헌법 제정과정에 기본권은 없었다. 이후 각 주가 헌법을 비준하는 과정에서 반연방주의자들의 의견이 반영되어 수정헌법의 형태로 권리장전 즉, 개인의 기본권규정이 헌법에 포함되었다.    또다른 유튜브에서는 브렉시트를 둘러싼 영국하원에서의 메이 전 총리와 반대당 당수의 토론을 볼 수 있었다. 총리도 일반 의원과 똑같은 자리

    박근수 법무사 (서울중앙회)
    변호사와 의뢰인

    변호사와 의뢰인

    우리 사회에서 ‘법대로 하라’는 말은 최후의 수단을 사용하겠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법과 소송을 다루는 변호사는 늘 분쟁 속에서 살아가는 직업이다. 변호사에게 찾아오는 의뢰인들은 대부분 어떤 갈등상황에 놓여있거나 중요한 거래를 앞두고 있어서 긴장도가 높고 예민해져 있다. 그러한 분쟁이 의뢰인의 일상이나 업무의 한 부분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의뢰인이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의 거의 전부를 송두리째 뒤흔들만큼 중대한 문제일 때도 있다.   법률문제에 대한 상담을 하다 보면 상담의 주제가 되는 문제 외에도 그 배경이 되는 사실에 대하여 듣게 된다. 그러한 분쟁에 이르기까지, 의뢰인과 상대방의 관계는 어떻게 형성되고 어떤 과정에서 서로 신뢰를 쌓게 되었는지, 그러다가 무슨 일로 삐그덕거리고

    김미연 변호사 (법무법인 바른)
    고독과 공감(下)

    고독과 공감(下)

    ‘나는 이 책을 지금은 어른이 된 어린 시절의 레옹 베르트에게 바친다. 어른들도 누구나 처음에는 어린이였다.’   작가가 어른에게 바치는 책이라고 했음에도 어른이 되기 전에 한번쯤 읽어 보는 책, ‘어린왕자’의 가슴 뭉클한 헌사입니다. 저 같은 경우 사실 법상 미성년을 벗어난 직후에 처음 읽었기 때문에 어른이 되고 읽은 것은 맞습니다. 그렇지만, 불어 공부를 한답시고 불어로 된 책을 읽었기에 속뜻도 모른 채 아이처럼 그림 위주로 읽었던 것을 늘 아쉬워하고는 했습니다.   그날 오전, 오후 내내 단절과 가식에 대한 이야기들로 인해 푸석한 초록사과를 씹는 느낌이었는데, 헌사를 읽자마자 갓딴 서늘한 레드향 한알을 입속에 터뜨린 느낌이 들었습니다. 헌사에도 감동하여 작가에게

    권상대 부장검사 (법무부 공안기획과장)
    언론의 자유

    언론의 자유

    안녕하세요.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한편, 이 칼럼을 빌어 여러분을 뵈옵는 이 순간까지 제 마음은 편치 않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목요일언과 함께할 올해 연말까지 제 마음은 편치 않을 것 같습니다. 아무런 형식과 내용의 제한도 없는 글을 여러분께 내보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기고하기로 약속한 후 이미 늦어버린 시점에 깨달았습니다. 완전한 자유는 저에게 해방감이 아니라 그 어떤 보호 장치도 없이 벌판에 놓인 느낌으로 왔습니다.   자유가 없다고 느낄 때에는 자유를 갈구해 왔습니다. 그런데 제가 갈구해 온 자유는 완전한 자유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조건과 제한 뒤에 몸을 둘 수 있어 편안했다는 것을 몰랐던 모양입니다.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편의적 자유를 희망

    박지연 고법판사 (서울고등법원)
    영국이란 나라

    영국이란 나라

    거의 30년만에 경제학원론을 볼 일이 있었다. 그동안 경제학이 많이 발전한 것 같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중상주의를 비판하고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을 중시했던 애덤 스미스, 20세기 대공황의 원인을 유효수요 부족으로 진단하고 재정정책 등 국가의 개입을 강조했던 케인즈가 경제학이라는 족보책의 시조와 파조로서 대접받고 있었다. 다만 그때는 알고도 지나친 부분이 있다면 이들이 모두 영국인이라는 사실이다. 영국은 의회주의의 나라였다. 의회가 국가권력의 최고중심이었다는 점에서 19세기 영국의 의회주의는 보통명사가 아닌 고유명사적 개념이라 할 수 있다. 당시 디즈레일리의 보수당, 글래드스턴의 자유당이 번갈아 집권하며 팍스-브리타니카 시대를 열었는데, 초선의원 시절 글래드스턴이 아편전쟁을 반대하면서 한 의회에서의

    박근수 법무사 (서울중앙회)
    관심과 예의 사이

    관심과 예의 사이

    사회생활 초년차 시절 처음 만나는 선배들, 어르신들에게 거의 항상 듣게 되는 질문이 있었다. 나이가 몇이냐, 집은 어디냐, 형제는 몇이냐, 애인은 있느냐, 결혼은 했느냐, 아이는 몇이냐, 남편은 무엇을 하는 사람이냐 등등. 당시에는 이런 호구조사식 질문이 첫 만남에 묻기에는 너무 개인적인 이야기가 아닌지, 질문을 듣는 사람의 본질과 크게 관계없는 것이 아닌지 하여, 겉으로 대놓고 불만을 표시하지는 못하였지만 마음 속으로 조금 불평하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 이제 신입, 후배들을 받고 인턴까지 마주하게 된 지금, 막상 친하지 않은 사람과 앉아서 대화를 시작하려니 창의적인 질문이나 화젯거리가 떠오르지를 않고, 결국은 호구조사식 질문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대화를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김미연 변호사 (법무법인 바른)
    고독과 공감(上)

    고독과 공감(上)

    고독과 공감에 관한 네 가지 경험이 뒤섞인 특이한 하루였다.   그날 오전, 콜롬비아 출신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을 읽고 있었다. 마지막 50페이지가 남아 있었다. 마꼰도 마을을 개척한 부엔디나 가문 6세대의 백년에 걸친 삶과 외로움에 관한 이야기다.    만연체에다 한 문장에서도 과거∼현재∼미래가 오가고, 현실∼비현실을 넘나드는 독특한 어법이라 ‘읽어 내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우리 시대 100인의 지식인이 가장 많이 추천한 소설이라는 기사를 2주간 떠올리며 인내했다.    읽을 때는 힘든데 기억에 남는 책이 이런 책인가 했다. 고립되어 평화롭던 마꼰도 마을이 보수파와 자유파의 내전으로 파괴된다. 내전 후

    권상대 부장검사 (제주지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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