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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과 선거

    말과 선거

    많은 법조인들이 그러하듯 필자 또한 법과대학을 졸업하였고, 많은 법대생들이 그러하듯 과 내의 학회 활동에 참여하여 학우들과 친교를 나누고 사회과학에 대해 논의하곤 하였다. 그런 영향때문인지, 90년대 중반부터 학생운동은 저물어갔지만 필자는 여전히 학교 내의 학생회 활동과 대외적인 정치적 활동에 열심인 사람들과 그들의 활동내용을 접할 기회를 적지 않게 가질 수 있었다. 신입생 시절에는 나름대로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지만 언제부터인가 회의감이 들었는데, 아마도 정치적인 수사와 구호가 난무하는 말의 잔치에 휩쓸려 자칫 중심을 잃고 객관적으로 현실을 바라볼 능력이나 입지를 상실할 수 있다는 데 두려움을 느꼈던 것 같다. 어떤 지위나 사정 때문에 뱉었던 나의 말들이 나중에 족쇄로 돌아올 수 있다는 점에

    설지혜 변호사 (법무법인 화우)
    법무한류(K-Law)

    법무한류(K-Law)

    우리나라는 개발도상국일까, 선진국일까. 1996년 세계 29번째로 소위 ‘선진국 클럽’이라고 하는 OECD에 가입하였을 때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상에 대해서 고민을 하였던 적이 있다. ‘developing country’와 ‘developed country’라는 영어 단어의 오묘한 차이를 음미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2009년 11월 OECD 개발원조위원회(DAC)에 24번째 국가로 가입하여 올해 개도국 공적개발원조(ODA) 예산이 3조 4000억원에 달하는 것을 보면 이러한 논의는 이제는 큰 의미가 없는 것 같다.  법무연수원은 이에 발맞추어 1997년부터 개도국 고위 법조인 등을 대상으로 초청연수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2018년까지 112개 과정을 통해 91개국 1750명이

    박영진 과장 (법무연수원 대외연수과)
    소중한 인연

    소중한 인연

    2004년 여름의 어느 날, 안 지 얼마 되지 않은 한국 클라이언트와 뉴욕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다. 이 분도 뉴욕에 부임하신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갑자기 회사이름의 사용을 중지해달라는 편지를 캘리포니아에 있는 미국 회사로부터 받았다고 했다. 일은 그렇게 시작이 되었다. 2014년 12월 추운 겨울, 미국 워싱턴 DC의 미 연방대법원 앞. 아침 11시에 있을 구두 변론을 방청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측 변호사 중 한 명은 초등학교 아이들을 포함한 전 가족을 데리고 왔다. 양측에 주어진 시간은 각각 30분. 법정에 있는 시계가 남은 시간을 보여주고 있었다. 연방대법관 중 여든을 넘긴 긴스버그 대법관은 얼마전 수술을 받았음에도 아픈 몸을 이끌고 힘겹

    김병수 외국법자문사 (쉐퍼드 멀린 서울사무소대표)
    언젠가 독주회

    언젠가 독주회

    서울시내 유일의 입시중학교가 예술학교인 덕분에 약간의 박자치인 내 장래희망은 피아니스트로 정해졌다. 물론 체육학교라면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였을 것이고, 요리학교였으면 장 조지가 되었을 것이다. 월등한 필기 성적 덕에 합격이야 했지만, 연습선생님-중간선생님-큰선생님의 렛슨의 사슬, 연습의 쳇바퀴, 잘해봐야 중간인 실기 등수, 방학마다의 캠프, 학기마다 돌아오는 향상 음악회 모두 싫었다. 손가락을 돌리고 악상을 외워서 미스 없이 치는 것이 연주의 전부 인 줄 알았고, 달리 더 가르쳐 주는 스승도 없었다. 원래 내 것이 아니었던 꿈이었으므로 쉽게 접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피아노를 치고 있다. 이번 계절의 레파토리는 라벨의 ‘물의 희롱’과 ‘소나티네’이다. 가디언지의 편집장을 지낸 앨런 러스브리저는 1년간

    김정연 교수 (인천대)
    초심(初心)

    초심(初心)

    변호사 업무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대기업 계열사에서 대규모 횡령사고가 발생하여 피해자인 회사를 자문한 일이 있었다. 차장급 직원이 몇 백억원을 장기간에 걸쳐 횡령한 사건이었다. 물론 중간에 고비는 있었다. 부하직원인 과장이 눈치를 채고 차장에게 횡령이니 고발하겠다고 한 것이다. 그런데 차장이 사실은 본인이 그룹 비자금 담당자라고 둘러대며 과장도 함께 비자금 관리 업무를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하자, 과장은 출세길에 접어 들었다고 판단하고 적극 협조를 해서 결과적으로는 오히려 범행이 더 쉬워졌다고 한다. 구치소에서 만난 과장은 "돈 한푼 챙긴 것이 없고 오로지 회장님과 그룹을 위해 일했다"고 하며 통곡을 하는 것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내가 만약 그 과장이었으면 그 때 정말 다른 선택을

    김상곤 변호사 (법무법인 광장)
    거짓말과 사법방해

    거짓말과 사법방해

    외국 영화나 미국드라마를 볼 때면 범죄 수사를 하는 과정에서 피의자들이 불리한 상황이 되는 경우 진술을 거부하고 침묵하는 장면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변호인도 피의자에게 진술을 거부할 것을 조력하는 모습이 나온다. 근대 형사사법에서는 피의자나 피고인에게 진술을 거부할 권리를 인정하고 있다. 우리나라 형사소송법도 ‘미란다 원칙’이라고도 불리는 피의자의 진술을 거부할 권리에 대해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와 관련하여 사건 수사를 하거나 재판 관여를 할 때 가끔 드는 생각이 있다. '피의자나 피고인에게 법이 인정하는 진술을 거부할 권리는 있지만, 과연 거짓말을 할 권리가 있는가'이다. 즉, 피의자나 피고인은 범죄 혐의를 인정하지 않을 수 있고, 그 내용에 대해 진술을 하지 않을 수는 있다. 그러나,

    박성민 지청장 (속초지청)
    가족끼리 왜 이래

    가족끼리 왜 이래

    판결문 읽기가 취미인 박민제 기자로부터 그가 쓴 책을 선물 받았다. 엊그제 발간된 책 제목이 ‘가족끼리 왜 이래’이다. 자식들을 위해 헌신한 홀아비가 시한부 선고를 받고나서 자신의 삶만 소중히 여기는 자녀들을 상대로 불효소송을 제기한다는 줄거리의 수년 전 방영된 드라마 제목과 같다. 그 드라마 속 아버지 차순봉은 가족을 위해 온갖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았는데 자식들은 제 살길만 챙기고 아버지의 험난한 삶을 보듬지 않았다. 가족끼리 그러면 안 되는데 말이다. 이 책의 저자는 방대한 양의 판결문에 등장하는 가족의 해체 과정을 통계와 법리를 곁들여 가며 치밀하게 분석했다. 자신의 책에서 가족이 파국에 이르지 않을 조그만 단서라도 얻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모든 사례들이 실화인 까닭에 현실감이 있고, 10년을 훌쩍

    김대현 고법판사 (서울고법)
    외국어 공부에 관하여

    외국어 공부에 관하여

    마침 독일 주식회사법 책을 다 읽었다. 3월부터 수요일마다 지도교수님 연구실에 모여 두시간 반씩 강독을 한 것인데, 300쪽 남짓 되는 간략한 수험서이긴 해도 독일어 ABC를 배우기 시작한 지 2년 반 만에야 전공서적 한 권을 뗀 미련함을 이렇게 알린다.  역사학자 토니 주트는 두 번의 이혼 끝에 찾아온 중년의 위기를 극복하려고 그 어렵다는 체코어를 배웠다더니 (‘기억의 집’) 동·서유럽사를 아우르는 ‘포스트워’를 남긴 위대한 역사가가 되었다. 내 경우는 그저 박사논문을 쓴 직후의 일시적 허전함, 리트 가사를 아는 척하려는 허영심, 영어나 불어를 지렛대 삼아 쉽게 마스터 하리라는 오판, 어학공부의 루틴이 안겨줄 안도감에 홀려서 발을 들였다. 지도교수님은 법학연구자로서 당연한 기본기를 갖추도

    김정연 교수 (인천대)
    관계 인지 감수성

    관계 인지 감수성

    얼마 전 대법원에서 하급심이 무죄를 선고한 성범죄 사건을 '성 인지 감수성'이 부족하였다는 이유로 파기 환송하여, 한동안 성 인지 감수성이라는 말이 인구에 회자된 일이 있다. 성 인지 감수성은 성별 간의 차이로 인한 일상생활 속에서의 차별과 유·불리함 또는 불균형을 인지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 들여지는데, 어찌된 일인지 이 판결에 대한 상당수의 술 자리 의견은 남자로 살기 힘들어졌다는 것이니 성 인지 감수성을 제고할 필요가 있긴 한 것 같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인지 감수성이 성별의 다름에만 필요한 것일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사회라는 틀 안에서 생활할 수밖에 없는데, 완벽하게 수평적이고 평등한 관계는 사회 속에 존재하기 어렵다. 그러다보니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불평등한

    김상곤 변호사 (법무법인 광장)
    “모든 걸 거꾸로 생각해 봐”

    “모든 걸 거꾸로 생각해 봐”

    올해 여름 역대 최초로 ‘쌍천만 관객 영화’라는 타이틀을 기록한 ‘신과 함께’라는 영화를 보았다. 작년 첫 번째 영화가 개봉했을 때에는 돌이켜 보면 영화 한 편 볼 시간이 없는 것은 아니었을 텐데, 바쁘고 여유가 없다는 이유로 '요즘 영화관은 영화를 왜 이리 빨리 내리는지'라는 푸념 섞인 생각을 하면서 당시 많이 회자되던 그 영화가 어떤지 궁금하여 TV로 화면 크기, 음향 등을 아쉬워하며 보았었다. ‘신과 함께’ 영화는 웹툰을 바탕으로 제작되어서인지 내용이 참신한 면이 있었고, 이제 우리나라도 이 정도 수준으로 CG를 사용해서 화려한 환타지 세계를 보여주는 영화 제작이 가능한 시대가 되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이 영화가 천만 관객을 영화관으로 불러 모은 것은 단순히 CG가 화려해서만은 아니고

    박성민 지청장 (속초지청)
    애정남의 애정회복법

    애정남의 애정회복법

    모처럼 오랜만에 법원을 찾아 온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판사와의 대화'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멀리 경남에서 온 계창 초등학교 학생들이었다. “평소에 판사에게 궁금했던 게 무언가요?”라는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한 아이가 번쩍 손을 들고 “판사가 하는 역할은 뭐에요?”라는 질문을 던진다. "음, 그래요. 판사가 하는 일은 사회의 갈등과 분쟁을 해결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는 재판을 하는 거랍니다." 설명이 쉽게 와 닿지 않은지 여기저기서 아리송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하는 수 없이 6년 전 의정부지법에서 견학프로그램을 도맡아 진행할 때 즐겨했던 레퍼토리를 써먹기로 했다. "여러분, 혹시 애정남이라고 아세요?" 철 지난 유행어인데도 고맙게 아이들이 기억해주며 "개콘!, 개콘!" 하고 외친다

    김대현 고법판사 (서울고법)
    또 봅시다, BIFF! 

    또 봅시다, BIFF!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BIFF)에 다녀왔다. 부산은 내가 말과 걸음을 배운 곳이고, 1992년 이후 야구를 끊겠다는 결심을 백번도 더 하게 한 롯데자이언츠의 홈그라운드이자, ‘암수살인’과 ‘허스토리’의 배경이 아니던가. 매년 영화제 소식에 엉덩이가 들썩거리긴 해도 실제로 찾은 것은 세 번째이다. 12년 전 외무고시 동기들과 문화적 소양에 넘치는 외교관이 되겠다는 핑계로, 내심은 밤새 해운대를 헤매다가 정우성도 이정재도 마주치고 말리라는 배포를 안고 여관방하나 잡지 않고 내려갔던 것이 마지막이었다. 올해는 정상화 원년이라 하였고, 나와 나의 고향과 함께 나이 들어가는 BIFF가 궁금했다. 시대가 다르고 풍경이 다르니 마음의 자리 또한 다르다는 섭리를 굳이 영화제까지 쫓아가서 확인하여야 하는 일인지는

    김정연 교수 (인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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