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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병 유감

    합병 유감

    필자는 산업통상자원부 사업재편심의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경험상 합병은 과잉공급 해소나 구조조정을 위하여 꼭 필요한 제도다. 그런데 이러한 합병이 최근 과잉규제로 인하여 오히려 점점 더 활용하기 어려워져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자본시장법은 상장법인 합병의 경우 합병 가액을 시가로 정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현실에선 시가가 회사 가치를 항상 적정하게 반영하는 것은 아니어서 회사에 이상한 루머가 돌거나 돌발 사고가 발생하면 시가가 회사의 순자산 가치보다 훨씬 하회하기도 한다. 자본시장법은 주주보호를 위해 합병의 결의 요건을 특별결의로 강화하고, 합병에 반대하는 주주에게는 법원에 적정가치를 정해 달라는 소송을 통해 주식을 현금화할 수 있는 주식매수청구권도 인정하고 있다. 이런 주주보호 장치를

    김상곤 변호사 (법무법인 광장)
    검이불루(儉而不陋) 화이불치(華而不侈)

    검이불루(儉而不陋) 화이불치(華而不侈)

    삼국사기 중 백제본기에 '작신궁실(作新宮室), 검이불루(儉而不陋) 화이불치(華而不侈)'라는 기록이 있다.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는 백제 궁궐 건축미에 대한 평이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저자인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이 미학은 오늘날에도 계승 발전시켜 우리 일상 속에서 간직해야할 소중한 한국인의 미(美)라고 한다. 부여 정림사지오층석탑(국보 제9호)은 이러한 한국의 미를 대표하는 상징물이라 할 수 있다. 단단한 화강암 재질의 돌 사용은 석탑의 강건함을 느끼게 한다. 지붕돌 모서리마다 하늘을 향해 살짝 올려진 버선코 곡선은 목탑의 섬세함을 드러낸다. 탑 전체에 수리적 비례 적용은 균형과 정제미를 보여준다. 바라보고 있노라면 검이불루 화이불치의 미를 고스란히

    김남순 지청장 (논산지청)
    "VAR! Bullshit!"

    "VAR! Bullshit!"

    "VAR! Bullshit!(헛소리를 뜻하는 비속어)" 모로코 축구선수 노르딘 암라바트가 경기 후 카메라를 보면서 네모를 그린 뒤 외마디 던진 말이다. 이번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을 뒤흔들고 있는 주인공은 다름 아닌 Video Assistant Referees, 비디오 보조심판이 아닐까. 우리 형 호날두도 아닌, 게다가 주심도 아닌 보조심판이라니 말도 안 된다고 손사래 칠 수도 있겠다. 아무튼 반복되는 편파 판정이나 오심 논란을 줄이고자 도입되었다는 VAR. 정작 그 효과가 있는지는 아직 모르겠다. “판단기준이 오락가락한다.” “판정논란이 더 많아졌다.” 연일 뭇매만 맞고 있는데 FIFA는 통계를 들이밀며 이전보다 오심이 훨씬 줄었다고 강변한다. 어디에선가 많이 보던 풍경이 아닐 수 없다.

    김대현 고법판사 (서울고법)
    뒷모습

    뒷모습

    오래전 미국 보스턴에 있는 존 F. 케네디 도서관 겸 박물관에 들른 적이 있다. 전시자료를 둘러보던 중 한쪽 벽면에 프린트된 사진 한 장을 만났다. 백악관의 집무실 앞 주랑 끝에 서 있는 대통령의 뒷모습을 찍은 흑백사진이었다. 그 큰 벽을 채운 사진이 하필이면 뒷모습이라니. 아마도 박물관 측은 누군가를 기억 속에 남기고 추억하게 하는 것은 그의 앞모습이 아니라 뒷모습이라고 여겼는지 모른다. 프랑스의 소설가 미셸 투르니에와 사진작가 에두아르 부바의 사진 에세이집 ‘뒷모습’은 아예 사람들의 뒷모습을 찍은 수십 장의 사진과 그에 관한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투르니에는 부바가 촬영한 사진 옆에 “뒤쪽이 진실이다”, “뒷모습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라고 적었다. 뒷모습은 앞모습과 달리 치장과 허

    김봉원 고법판사 (서울고법)
    사티의 '짐노페디'

    사티의 '짐노페디'

    혼자서 이 음악을 가만히 듣고 있다고 생각해 보라. 한 음 한 음, 심장을 톡톡 두드리듯이 고독한 소리의 울림이 밀려온다. 슬픔이 가슴을 두드리고 그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피아노 소리는 두드림을 반복한다. 풀어주지 않고 차곡차곡 쌓인다. 벗어나고 싶은데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반복, 이 반복은 어디서 끝나는 것일까. 그는 애써 위로하려 들지 않는다. 사람들은 언제 관용이라는 것을 생각할까? 결국 관용은 일이 다 끝난 다음에나 가능한 것인가? 관용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결혼식 날 자신의 친지와 동료와 자신의 소중했던 모든 사람들이 피를 흘리고 죽어 나갔을 때 앙리 4세의 마음속에는 관용이라는 단어가 들어설 틈이 없었을 것이다. 그가 반대파를 포용하는 낭트 칙령을 반포했을 때는 모든 것이 마무

    전현정 변호사 (법무법인 KCL)
    블록체인과 빅데이터 사이

    블록체인과 빅데이터 사이

    인류의 발전은 고립사회에서 연결사회로 가는 과정이다. 인간 간의 연결을 넘어 사물인터넷을 통한 사물 간의 연결도 가능해졌다. 연결사회가 고도화될수록 빅데이터가 더욱 많이 축적된다. 빅데이터가 특정인에 집중되면 빅브라더가 등장한다. 현재 빅브라더 후보자는 빅데이터를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자일 것이다. 하루를 살면서 내 정보가 수집되지 않는 시간은 과연 어느 정도일까? 내 폰은 아침에 알람을 울려주며 빛 감지 기능을 통해 수면시간이 얼마였는지부터 수집한다. 출근길은? 차를 타면 블랙박스, 도로 위의 각종 정보수집 카메라, 대중교통은 정류장과 교통수단 내의 CCTV가 모두 나의 정보를 수집한다. 핸드폰의 위치 기능까지 켜 있으면 데이터 수집 업체로는 금상첨화다. 사진을 찍으면 사진을 찍은 시

    김욱준 부장검사 (대전지검)
    모른다고 말 할 수 있는 용기

    모른다고 말 할 수 있는 용기

    업무를 하다보면 미국이나 유럽 등 해외 사례 조사에 대한 의뢰를 종종 받는다. 그런 의뢰를 받을 때 마다 "무엇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 "있다"고 말하는 것에 비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무엇이 있다"는 말은 소수의 사례만 찾아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없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살펴본 영역과 그 사례나 법을 찾기 위해 기울인 노력을 일일이 열거하여 이러이러한 노력을 기울였으나 아직 발견하지 못하였다고 제한적으로 말 할 수 밖에 없다. 전문가에게 일반인이 그 전문가의 분야에 대한 질문을 하였을 때 무지를 인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권위에 손상을 입을 수 있다는 염려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전지적인 존재가 아닌 우리가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는 노릇이다.

    김용상 외국법자문사 (오멜버니 서울사무소 대표)
    첫날의 약속

    첫날의 약속

    가끔 법원을 견학하러 온 학생들과 대화하는 경우가 있다. 그중 어느 대학생이 던졌던 질문 하나가 기억에 남는다. “처음 판사라는 직업을 시작하실 때 어떤 마음이셨나요?” 그 질문은 마치 내게 어떠한 소명의식을 가지고 판사라는 직업을 시작했는지, 아직도 그것을 잘 지켜가고 있는지 묻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가볍게 대답할 수가 없었다. 알랭 드 보통의 말처럼 우리의 직업 생활은 ‘밥벌이’와 ‘소명’ 사이 어디쯤엔가 놓여 있다. 대개 직업을 시작할 때의 마음은 ‘소명’ 쪽에 가까워서 미래를 향해 여러 가지 다짐과 약속을 하기 마련이다. 그 후로 오랫동안 그 다짐과 약속을 꿋꿋이 지켜가는 예도 있겠지만, 부지불식중에 ‘소명’과 멀찌감치 떨어져 ‘밥벌이’ 근처에 머물러 있는 상황을 발견하기도 한다

    김봉원 고법판사 (서울고법)
    생명의 가치

    생명의 가치

    한국여성변호사회의 생명가족윤리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다. 생명·가족·윤리, 이 모든 것은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다. 삶은 곧 생명의 문제이자 죽음의 문제이다. 세상 사람들이 요즘에는 죽음에도 관심이 많아지고 이른바 웰다잉법이 시행되기에 이르렀다. 중국인보다 중국을 더 사랑했다는 ‘대지’의 작가 펄 벅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생명의 가치에 대하여 깊이 고민한 작가이다. 그녀는 생후 3개월만에 선교사인 부모를 따라 중국에 갔다. 농경제학자인 남편과 사이에 자라지 않는 아이가 있었다. 사람이란 존재는 무언가에 쓸모가 있어야만 할까. 그렇지 못한 삶은 가치가 없는 것일까. 이 문제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자신의 고통, 절망과 방황을 ‘자라지 않는 아이(The CHILD who neve

    전현정 변호사 (법무법인 KCL)
    주지상표와 저명상표 사이

    주지상표와 저명상표 사이

    소비자들은 상품을 고를 때 상표를 본다. 상표에 따라 비슷한 상품도 몇 배씩 더 비싼 값을 지불하기도 한다. 유명상표일수록 보통 상품가격이 더 비싸다. 그럼 유명상표란 무엇인가? 대충은 주지저명한 상표다. 상표법은 '수요자들에게 현저하게 인식되어 있는 상표'로 표현한다. 부정경쟁방지법은 '국내에 널리 인식된 상표'로 표현한다. 하지만, 지식재산 관련 법률종사자들은 모두 주지상표와 저명상표를 구별한다. 즉 유명상표도 급을 나누어 보호한다. '주지상표'는 국내 전역 또는 일정한 지역 범위 안에서 '수요자들 사이'에 알려지게 된 상표다. 주지상표와 동일·유사한 상품·시설·활동에만 효력을 발한다. 상표법은 이를 동일·유사한 상품에서만 상표등록을 받을 수 없는 상표로 규정한다. 부정경쟁방지법은 주지

    김욱준 부장검사 (대전지검)
    아랫사람에 대한 예의

    아랫사람에 대한 예의

    미국에서 경쟁법 변호사로 활동하던 시절, 기업결합전 신고인 HSR filing이나 민사집단소송을 수행할 때 의뢰인의 태도와 미 법무부의 형사조사 건에서의 의뢰인의 태도에 큰 차이가 있는 것을 느꼈다. 변호사에 대한 의존 및 협력의 정도가 확연히 달랐다. 인신구속 등 형사처벌의 가능성이 그러한 차이를 만들지 않았나 추측한다. 미국에서만 직장생활을 한 탓에 갑을 문화를 경험해 보지 못했는데, 그 경험을 통해 누가 더 간절한지 여부에 따라 갑을이 바뀌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정도의 차이가 전혀 없지는 않겠으나 미국에서는 나이 혹은 지위에 따라 사람을 대하는 기준이 크게 바뀌지 않는다. 이 방식을 우리나라에서도 그대로 적용하면 동료나 아랫 사람들에게서는 배려 많고 사려 깊은 사람으

    김용상 외국법자문사 (오멜버니 서울사무소 대표)
    봄밤

    봄밤

    권여선의 단편소설 ‘봄밤’의 주인공이 톨스토이의 '부활'을 읽던 중 ‘노보드보로프라는 혁명가는 남보다 이지력(그의 분자)은 뛰어나지만 자만심(그의 분모) 또한 강해서 결국 별 쓸모없는 인간이다’라는 대목에서 문득 떠오른 생각을 말한다. “이 비유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시킬 수 있을 것 같아. 분자에 그 사람의 좋은 점을 놓고 분모에 그 사람의 나쁜 점을 놓으면 그 사람의 값이 나오는 식이지.” 실제로도 우리가 다른 사람을 평가해온 방식이 이런 식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분자에 그 사람이 남보다 우월하게 가진 것들, 이를테면 사회적 지위와 능력, 경제적 부, 권력, 학벌 등을 놓고, 분모에 그 사람의 인격적 결함을 놓아 그 사람의 값을 매긴다. 이때 1보다 큰 값이 되면 좋은 사람이라

    김봉원 고법판사 (서울고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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