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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法臺에서 리스트

    다른 곳에서 바라보기

    다른 곳에서 바라보기

    얼마 전 아이들과 축구를 하다 과도한 몸놀림 끝에 그만 정형외과 신세를 지게 되었다. 혈기 왕성하던 젊은 판사가 이젠 어느새 중년을 향해 달려와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은 탓이다. 그래서 결국 잠시나마 휠체어도 이용하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바라본 세상은 한참 달랐다. 무엇보다 휠체어에 의지해 나선 도로는 너무도 무서웠고, 목발을 짚고 나선 길은 정말로 멀게 느껴졌다.    최근에는 재판부간 자유로운 조언을 위해 법정방청을 할 기회가 생겨 법대가 아닌 방청석에서 법대를 바라보게 되었다. 매번 찾는 법대이고 또 법정방청이 처음은 아니건만, 역시나 법대 아래에서 바라보는 재판부의 모습은 그 자체로 멀고 어렵게 느껴졌다. 이렇게 다른 곳에서 일상을 바라보았을 때 비로소 내가 잊고 있었던 것이

    김영기 판사 (서울중앙지법)
    공정함에 관하여

    공정함에 관하여

    보통 공정하다고 하면, 누구에게나 노력과 기여에 비례하여 상응한 보상이 주어지는 것을 제일 먼저 떠올릴 것이다. 뿌린 만큼 거둔다는 이 원칙을 비례 원칙이라 부른다. 반면 인간이라면 누구나 보편적으로 평등한 권리와 대우를 보장받는 것이 진정한 공정함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구조적 불평등이나 차별에 노출된 집단이 있다면 혜택을 주어 이를 보정하는 것이 옳고, 그러지 못할 때 오히려 불공정하다고 느끼는 직관이다. 이를 보편 원칙이라고 한다.        두 원칙은 공정성을 이루는 두 축으로 모두 옳지만, 서로 충돌한다. 법정에서도 그렇다. 판사라면 누구나 자신의 법정이 그 어느 곳보다 공정하기를 바란다. 그런데 개개 사건에서 실질적으로 공정함을 지키는 것은

    이주영 부장판사 (서울남부지법)
    세상에서 제일 높은 사람

    세상에서 제일 높은 사람

    판사가 재판만 하는 것은 아니다. 학술회의에 참가해 연구결과를 발표하기도 하고, 외부 위원회에 참석해 중요한 의사결정에 함께하기도 한다. 올곧은 재판에 헌신하라는 소명을 받은 법관으로서 오롯이 재판에만 집중하고 싶다가도 가끔은 그러한 외출이 상쾌한 기분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즐거웠던 경험은 법원을 방문한 어린 학생들과 대화하는 일이었다. 이 사회에서 법이 왜 있어야 하고, 법원은 어떠한 역할을 하며, 그 과정에서 판사는 실제 어떠한 일을 하는지 맑은 눈망울의 어린 아이들에게 쉬운 말로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모의법정에서 원·피고석과 법대를 오가며 잠시 심취하여 일인삼역을 하면서, “이 법정에선 대통령도, 누구도 오로지 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재판을 받게 된다

    김영기 판사 (서울중앙지법)
    대화의 방법

    대화의 방법

    재판은 일방적인 절차로 여겨지기 쉽지만, 실상은 검사, 피고인과 재판부, 또는 양 당사자와 재판부 사이의 대화에 가깝지 않나 생각된다. 물흐르듯 서로의 맥을 짚으며 마땅한 결론으로 수렴되어 가는 재판도 있고, 힘은 엄청 드는데 제자리에서 맴맴 돌며 참가한 사람이나 구경하는 사람 모두가 갑갑한 경우도 있다. 그러다 한 정신과 의사 선생님의 글을 접하였다. 대화의 방법을 설명한 글인데, 좋은 재판으로 바꿔 보아도 어색함이 없었다.   대화가 잘 되지 않는 경우를 보면, 대개 서로가 자신의 견고한 틀을 세우고 고집하는 경우라고 한다. 부모와 자녀 간에 벌어지는 설전이 보통 그런데, 부모가 학생의 본분은 공부이니 마땅히 공부를 함이 옳다는 결론을 정해 놓았고, 자녀는 도저히 못하겠다는

    이주영 부장판사 (서울남부지법)
    판사의 가치

    판사의 가치

    판사라는 자리에 있는 사람은 적어도 성실성은 검증받은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수험시절의 각종 유혹을 이기고 국가고시를 거쳐 임용되고, 그 이후에도 아무런 추가 보수나 지시 없이도 내면화된 책임감과 자기 절제로 임무를 감내해 나간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판사는 종종 다른 직역의 인사 리쿠르팅 대상이 된다. 대형 로펌, 기업 법무팀, 로스쿨, 심지어 행정부 비서실까지….   그렇다면, 그런 판사를 스카우트할 수 있는 자릿값은 얼마나 될까? 어떤 조건이면 판사의 직분을 성실히 수행하던 사람이 그 자리를 툴툴 털고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있을까? 정답은 간명하게도, 판사마다 다르다! 해당 판사가 가지고 있는 판사라는 직분에 대한 소명감과 직업적 만족도, 그리고 이직의 필요성, 나아가 새로운

    김영기 판사 (서울중앙지법)
    당신도 보이스피싱범 될 수 있습니다

    당신도 보이스피싱범 될 수 있습니다

    보이스피싱 범죄가 갈수록 기승이다. 형사단독 법정은 세상의 거울이라는데, 요즈음 절도 사건보다 보이스피싱 관련 사건이 더 많으니 말이다. 범행에 사용된 통장과 카드를 대여하였다가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분들이 있고, 돈을 인출하거나 카드를 운반하다가 사기 공범으로 기소된 분들이 있으며, 보이스피싱 조직과 연루되어 사기뿐 아니라 범죄단체 가입, 활동으로까지 기소된 분들도 있다. 심지어 최근 한 구속 피고인의 반성문에는 같은 방에 수용된 분들의 70%가 보이스피싱 관련 범죄더라는 내용도 있었다. 유사한 범죄를 저지른 분들을 일부러 함께 수용한 것이 아니라면, 정말 우려스러운 수치가 아닐 수 없다.   보이스피싱범이 되는 것은 그 피해를 당하는 것만큼이나 쉽다. 우선 통장이

    이주영 부장판사 (서울남부지법)
    약속

    약속

    4남매를 기르신 아버지는 내가 어린 시절 약속의 중요성에 대해 무척 진중하게 말씀하셨었다. 지금도 또렷이 기억되는 말씀의 요지는 이랬다. “한번 한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그래서 더욱 중요한 것은 지키지 못할 약속은 아예 하지 않는 것이다.”    이 말씀은 나의 성장기에 많은 영향을 미쳤고, 내가 세 아이를 키우는 아버지가 되어서는 아이들에게 이런 가르침을 전달하려고 애쓰게 되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작은 약속을 하기 전에도 우선 지킬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지키지 못할 요청인 경우에는 아무리 애교를 부리며 애원해도 단호하게 거절을 하곤 했다.    하지만 매번 약속을 틀림없이 지킨다는 건 말처럼 쉽지가 않다. 한 번은 물놀이에 맛을 들이기 시

    김영기 판사 (서울중앙지법)
    실수에 대처하는 법

    실수에 대처하는 법

    누구도 실수를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이 하는 일에 실수가 없을 수는 없다. 그동안 단 한 차례도 실수를 하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이는 자신의 실수를 아직 인지하지조차 못하였다는 말의 다른 말 아닐까 싶다. 법원의 일은 특히나 실수와 멀어야 하지만, 법 제도는 인간의 실수를 당연히 예정하고 있고, 이를 대처하고 시정할 수 있는 각종 제도를 두고 있다. 작게는 각종 경정 제도부터 항소나 상고, 재심 제도, 배상 제도 등이 모두 이를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이로써 실수가 일응 바로잡힌다 하더라도, 이미 생겨버린 모든 상처까지 다 함께 없던 일로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다.    100% 선의에 가득 차 최선을 다하였더라도, 일말의 실수는 있을

    이주영 부장판사 (서울남부지법)
    상추밭에서 나오는 인심

    상추밭에서 나오는 인심

    드디어 주말 아침이 밝았다. 주말이라 늦잠을 더 자고 싶기는커녕 나는 일찍 잠에서 깨어 주말농장으로 향한다. 그리고 지난 주에 옮겨심은 어린 모종들이 부쩍 더워진 날씨를 잘 이겨냈을지 걱정스러운 마음에 발걸음이 빨라진다. 그러다 그새 잘 자라 밭을 푸르게 수놓은 상추며 깻잎, 아욱, 가지를 보고는 반갑고 대견스러운 마음에 안도감이 밀려온다. 그리고 금세 밭으로 달려가 잡초를 뽑아주고 흙을 북돋아 주고 시원한 물을 한가득 뿌려주고 나면 녀석들이 싱그러워 춤을 추는 듯한 모습에 흐뭇한 미소가 차오른다.    그렇게 한참을 주말농장에서 땀을 흘리고 상추며 각종 야채를 들고 돌아오는 길은 더없이 행복하다. 초여름 야채 소출이 풍성해 장모님 댁은 물론 아파트 옆집, 아랫집에 더해

    김영기 판사 (서울중앙지법)
    택시 안에서 생긴 일

    택시 안에서 생긴 일

    몇 년 전 일이다. 아침에 택시를 타게 되었다. 출근 시간에 택시를 타면 평소 목적지로 맞은 편 00아파트를 이야기하는데, 그날따라 그만 법원으로 가 달라는 말이 바로 나와 버렸다. 아니나 다를까 기사님이 잠시의 침묵 뒤 “판사님이시죠?” 하신다. 아차 싶었지만 유독 피곤하였던 탓인지, 거짓말에 서툰 안타까운 주변머리 탓인지, 그만 "아~ 예" 하고 웃고 말았다. 판사임이 알려지고 편안한 소리 듣기가 쉽지는 않을 터라 약간 긴장하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몇 마디 감탄사 후 바로 물어보신다. “혹시 000 판사님이라고 아세요?” 알아도 모르고, 마땅히 몰라야 할 일이다. “예, 모르는 분이네요.” 그래도 아랑곳없이 말씀을 이어 가신다. “제가 그분한테 재판이 있었거든요.”  말씀인즉슨, 재

    이주영 부장판사 (서울남부지법)
    한국 법정에서 웬 영어를

    한국 법정에서 웬 영어를

    외국에서 차를 운전하다 교통경찰 사이렌 소리라도 듣게 되었을 때 잔뜩 긴장하였던 기억은 많이들 가지고 있을 것이다. 판사라고 예외는 없다. 만일 작은 실수로 소송절차에 휘말리게 되는 경우 어색한 외국의 법정에서 언어마저 외국 말로 임해야 한다면 나와 내 가족의 권리를 충실히 지킬 수 있을지 걱정을 넘어 공포가 밀려온다.  작년에 OECD의 초청으로 카자흐스탄에 방문하여 흥미로운 국제 법원을 소개받았다. 카자흐스탄은 최근 영국의 은퇴한 법관들을 판사로 임명하여 법원을 구성하고 상사 관련 투자분쟁의 경우 당사자들이 원하는 경우 그 법원에서 재판받을 수 있게 하였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카자흐스탄은 영어가 보편화되어 있지도 않고 보통법 국가도 아니며 사법제도도 소련의 영향을 많이 받았음에도 국제

    김영기 판사 (서울중앙지법)
    이게 언제적 일인데

    이게 언제적 일인데

    “이게 언제적 일인데 아직 안 보셨다뇨. 너무한 거 아니에요?” 공공기관에서 폭언을 하고 소란을 피워 업무방해로 기소된 분이다. “형사재판을 시작합니다. 불리한 진술은 거부할 수 있으시고…” 하는데 바로 호통이시다. 상대방이 괜찮다고 했는데 왜 재판은 시작하며, 판사는 그걸 왜 아직 모르냐는 취지시다. "음… 일단 법원으로는 뭐 들어온 게 없어서 못 봤고요, 증거기록에 있는 걸 판사가 보려면 일단 증거조사 단계까지는 진행해야 하는데요." 그러나 이럴 때 공소장 일본주의가 다 무슨 소용 있으랴. 실무관에게도 벌써 전화하여 내가 왜 법원에 가야 하느냐 호통을 치셨다는데, 일단 뵙고 판단해야겠다 싶어 기일을 열었더니 이렇다.  “나는 마음이 아픈 사람이에요. 나쁘게 하면 안돼요. 힘들게 하지 마

    이주영 부장판사 (서울남부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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