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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년법 개정안 재고를"

    "소년법 개정안 재고를"

    소년사법과 소년보호재판을 강의할 기회가 있으면 보호처분은 형벌이 아니며 가장 중한 소년원 송치 처분을 받더라도 범죄전력이 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현재 소년원은 초·중등교육법에 의한 일반 학교로서 운영되고 있으며 학업이 중단된 소년을 위한 다양한 직업훈련과정도 마련되어 있다. 그러나 범죄전력이 되지 않는다고 현실에서 다가오는 보호처분의 경중을 무시할 순 없다. 처분을 받는 소년과 가족이 느끼는 무게가 다르고, 소년에 대한 주위 사람의 시선이 다르다. 지난달 10일 소년법 개정안이 발의되었다. 제안이유는 중간처우시설인 6호 기관의 운영기준이 미흡하고 관리·감독할 전담기관이 없어 이를 법무부가 관리하며 통일적이고 체계적인 집행을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10개의 보호처분을 11개로 늘려 6

    이광우 판사(서울가정법원)
    다른 사람이 되어 본다는 것

    다른 사람이 되어 본다는 것

    조금 용기를 내어 고백하자면, 내 아내는 요리 실력이 썩 훌륭한 편은 아니다. 솜씨를 발휘해보겠다고 한참을 분주하게 준비한 음식을 맛보고 당황스러움을 느끼게 될 때도 있다. 나는 딸과 아들이 하나씩 있는데, 이 녀석들은 자기들 엄마가 해주는 음식이 최고인 줄 안다. 밖에서 신나게 놀다가도 식사 때가 되어 뭘 사줄까 물어보면 빨리 집에 돌아가서 엄마가 끓여주는 야채스프가 먹고 싶다고 말하곤 한다. 내게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국물이 내 아이들에게는 속이 풀리고 기운이 나게 해주는 소울푸드인 셈이다. 겉모습은 나랑 똑 닮은 내 자식들이지만, 어릴 때 무얼 먹고 자랐느냐에 따라 입맛이 이렇게 다른 걸 보면 신기하기까지 하다. 상습절도죄로 기소된 피고인이 써 낸 탄원서에 이런 대목이 있었다. 자기도 판사님

    서동칠 부장판사 (창원지법)
    김장 선서

    김장 선서

    이른 아침 센터로 향한다. 오늘은 센터 식구들이 겨우내 먹을 김치를 담그는 날이다. 소녀들은 아침 일찍 차비하고 옹기종기 모여 있다. 한쪽에는 절인 배추가 수북이 쌓여 있고 김칫소와 무도 준비되어 있다. 김장은 선서와 함께 시작된다. 맛있고 청결한 김치를 위해 장난치지 않고 기쁜 마음, 단결된 모습으로 김장에 임하겠다는 재미있고도 진지한 내용이다. 재잘대는 소리와 함께 각자 맡은 자리에서 김장이 시작된다. 지금은 다른 업무를 맡아 법정에서 만난 소녀는 없지만, 예전 그 소녀들과 함께하는 느낌이다. 또래들과 다름없이 밝은 모습으로 배추에 소를 버무리며 쉼 없이 이야기하던 친구들. 지난번 합격한 검정고시 이야기, 새로 시작한 수학공부 이야기, 센터 선생님 이야기, 문화축제 이야기. 그때 이야기를 떠올리다 보니

    이광우 판사(서울가정법원)
    70만원의 무게

    70만원의 무게

    피고인은 30대 후반의 가정주부였다. 집에 사람이 없다면서 재판 때마다 백일이나 갓 넘겼음직한 아기를 등에 업고 법정에 나왔다. 컴퓨터 부품을 샀다가 마음에 들지 않아 환불을 요청했는데 판매자가 거절하자 그를 비방하는 글을 인터넷에 게시한 행위로 벌금 70만원의 약식명령이 청구되었다가 무죄를 다투어 공판에 회부된 터였다. 그녀는 최후변론에서도 자신은 소비자로서 정당한 권리를 행사했을 뿐이라는 주장을 결코 굽히지 않았다. 변론을 종결하고 판결문 작성을 위해 기록을 검토하던 필자는 피고인이 '진술서'라는 제목으로 보내온 편지에서 뜻밖의 구절을 발견하였다. 남편이 실직한 지 오래되어 아기의 분유값조차 마련하기 힘드니, 혹시라도 자신의 행위가 죄가 된다면 벌금형 대신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해달라는 것이었다.

    서동칠 부장판사 (창원지법)
    사랑의 언어

    사랑의 언어

    처음 가정법원에서 근무하게 되었을 때 소개 자리에서 다른 포부와 더불어 이곳에서 근무하며 조금 더 좋은 아빠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한 기억이 있다. 당시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큰 아이를 생각하며 나와 아버지의 관계에서 부족했던 것들을, 그래서 내가 잘 알지 못하던 것들을 배우고 함께 나누고 싶었던 마음이었다. 우리는 자녀와의 관계뿐 아니라 부부, 친구, 직장동료, 그 밖의 많은 장면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유지하려 하지만 가끔은 만족스럽지 못한 상황도 만나게 된다. 게리 채프먼은 사랑을 갈망하는 인간의 본성을 이야기하며 우리 내면의 사랑 탱크에 충분한 사랑을 채워 일정한 수준으로 유지시켜 주는 것이 서로의 관계를 지속하는 길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이 사랑을 표현하고 이해하는 방법은

    이광우 판사(서울가정법원)
    판사들이 공단으로 간 까닭

    판사들이 공단으로 간 까닭

    필자가 근무하는 창원에는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기계공업단지가 형성되어 있다. 시내 어디서든 조금만 높은 곳에 올라가 공단 쪽을 바라보면 푸른 지붕을 맞댄 공장 건물들이 시야가 닿는 곳 끝까지 줄지어 늘어선 풍경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선 수만 명의 근로자들이 구슬땀을 흘리며 쉴 새 없이 기계를 돌리고 있다. 처음 시작은 이 도시의 특성에 맞는 법 교육 방법이 어떤 것일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하였다. 법률 분야에 대한 관심과 지적 욕구는 있지만 빡빡한 일과 속에 하루하루를 살아가기 바쁜 근로자들과 함께 하려면 그들의 일터로 직접 찾아가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찾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판사 10명이 2개 조로 나누어 5개의 법률 분야에 대하여 10개의 기업체를 순회하면서 릴레이 강의를

    서동칠 부장판사 (창원지법)
    서약

    서약

    사법시험 결과가 발표된 그해 겨울 어느 날 선생님은 우리를 연구실로 불러모으셨다. 그동안 쌓아온 노력의 결과를 축하하고 격려하는 덕담이 오간 후 선생님은 서류 한 장씩을 내미셨다. 주홍색 덮개로 감싼, 제법 격식을 갖추어 만든 서약서에는 '나는 모교에서 공부한 법률지식과 사법시험에 의하여 취득한 법률가로서의 사회적 지위를 남용하는 일이 없도록 일생 동안 노력할 것을 다짐합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이제 막 법조에 첫발을 내딛는 제자들에게 가슴으로 전해주신 충고를 새기며 새내기 법조인으로서 마음을 다지는 의식이라는 생각이 들어 경건하게 서명한 기억이 난다. 지난달 28일 청탁금지법이 시행되었다. 아직 법의 해석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고 연일 주무부처의 유권해석에 대한 불합리성이 지적되고 있다. 국민의 입장에

    이광우 판사(서울가정법원)
    정답과 진실

    정답과 진실

    2000년대 초반 배석판사 시절 필자와 같은 재판부에서 근무한 어느 부장님께서는 종종 "기록을 보고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을 때라도 무조건 반복해서 읽다보면 결국 정답이 떠오르게 되어 있다"고 말씀하곤 하셨다. 법관으로 임용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여러모로 미숙한 신출내기 배석판사에게 기록을 좀 더 꼼꼼히 챙겨보라는 격려 내지 질책으로 하신 말씀이었을 테지만, 실력은 둘째치고 눈치까지 없었던 필자는 그 말씀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곧바로 실무에 적용하기로 하였다. 그러다가 실제로 당사자는 물론이고 나오는 증인들마다 엇갈린 진술을 해서 도무지 사실관계를 확정하지 못하고 있던 사건에서, 기록만 읽고 또 읽다가 어느 순간 사안의 실체가 또렷하게 보이는 것 같은 신비한 현상을 경험한 후로는 한동안 이 이론의

    서동칠 부장판사 (창원지법)
    양육비부담조서

    양육비부담조서

    화신(가명)은 작은 회사에서 일하며 월 180만 원을 벌었다. 협의이혼하며 월세 보증금을 아내의 몫으로 넘겨주고, 아이를 위하여 100만 원의 양육비를 약속하였다. 고시원에서 생활하며 열심히 일했다. 몸이 아파 퇴사한 후 식당일을 하며 양육비를 보냈다. 수술 후에는 일용직으로 일하며 돈을 모으는 대로 약속을 지키려 노력했지만 결국 양육비 미지급을 이유로 한 이행명령이 청구되었다. 양육비 지급의무 불이행을 이유로 한 이행명령 신청사건을 진행해 보면 협의이혼절차에서 합의된 양육비가 비슷한 소득수준을 가진 부부가 재판을 통하여 인정받는 양육비보다 상당히 높은 사례를 보게 된다. 이유를 물어보면 "이혼을 하더라도 자녀에게는 모든 것을 해주고 싶었다. 어차피 소득도 재산도 없어 양육비를 주지 못할 것이므로

    이광우 판사(서울가정법원)
    판결문과 과잉품질

    판결문과 과잉품질

    산업계에는 '과잉품질'이라는 용어가 있다. 제품의 프리미엄화를 앞세우며 작은 품질의 차이에 집착하다가 시장의 변화를 놓치는 경우를 일컫는데, 품질지상주의를 내세워 세계 시장을 주름잡던 일본의 기업들에게서 그 사례가 종종 발견된다. 기존 휴대폰의 디자인과 기능을 높이는 데 몰두하다가 스마트폰 시대의 도래를 간과한 소니 등 휴대폰 제조업체들이나, 우주복용 지퍼를 공급할 정도로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던 YKK가 고가·고품질만을 지향하다가 비약적으로 성장한 패스트패션 시장에서 외면받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형사단독을 맡고 있는 필자는 재판에 참고할 요량으로 유사 사례의 판결문을 자주 검색해보는 편인데, 단어 하나, 문장 한 줄에서 판사의 땀 냄새가 배어나올 것 같은 충실한 판결문을 접할 때면 저절로 존경하는 마음

    서동칠 부장판사 (창원지법)
    '브레이크(BRAKE)'

    '브레이크(BRAKE)'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은따(은근한 따돌림)에서 방관자는 없습니다. 모두 가해자일 뿐이죠. (중략) 매일매일 마음에 총알이 박히는 피해자를 안타깝게 바라보던 방관자도 어느새 무뎌집니다. (중략) 그리고 믿고 싶지 않은 사실 하나는 이 은근한 피해자와 무언의 방관자는 학교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 사회에도 만연해 있습니다. 천천히 먼 길을 달리는 이 자동차의 브레이크를 아무도 밟으려고 하지 않은 채 말이죠." 지난 6일 양재동 가정법원 청사에서 상연한 연극 브레이크(BRAKE) 중 방관자 역 애린의 독백이다(9월 8일자 법률신문 9면 참고). 모범생 혜주는 태현으로부터 소희가 자신의 험담을 하였다는 말을 듣고 소희를 학교생활에서 은근히 따돌린다. 태현은 부지불식중에 이에 동참하게 되고 그 과정을

    이광우 판사(서울가정법원)
    ‘벙커’식 사고습관

    ‘벙커’식 사고습관

    얼마 전에 라디오 뉴스에서 들은 내용인데, 지난 해 발표된 연구결과에 따르면 과거에 특정한 문제를 극복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동정심을 적게 느끼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사람들은 보통 과거에 겪은 문제를 피상적으로 기억하고 구체적인 고통의 수준을 잊어버리기 때문에 같은 문제로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이 문제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사실에만 주목하여 비난하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필자가 임관하던 무렵에는 대다수의 판사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였거나 혹은 조금 불편하더라도 그냥 참고 견뎠던 문제들, 가령 같은 재판부에 소속된 판사들은 늘 함께 식사를 하여야 하는지, 합리적이고 공평한 사무분담 및 업무배분 방법은 무엇인지 하는 것들이 요즘에는 법원 내에서 진지한 논

    서동칠 부장판사(창원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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