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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法臺에서

    法臺에서 리스트

    법관평가와 명단공개

    법관평가와 명단공개

    얼마 전 필자가 진행한 재판에 관한 모니터링 결과를 점검하다 보니, 매년 연말과 연초에 반복해서 언론에서 화제가 되는 지방변호사회의 법관평가 및 우수법관, 하위법관 명단공개에 관한 문제가 생각난다. 법관 및 재판도 국민의 평가 대상이 된다는 점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법관 및 재판에 대한 평가를 한다는 것'과 '특정 법관 및 재판의 잘잘못에 대한 방(榜)을 붙이는 것(우수법관, 하위법관으로 규정하여 그 명단을 공개하는 것)'은 구분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하위법관으로 평가받은 재판장이 자신의 재판을 담당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떤 당사자도 그 재판을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고, 어떤 수단과 방법을 통해서라도 재판부를 변경하려고 하거나 재판 자체를 거부할 것은 너무나 자명

    이현복 부장판사(강릉지원)
    길마다 이름을 붙이듯이

    길마다 이름을 붙이듯이

    2014년부터 도로명 주소 표기가 전면적으로 시행되면서 법원 재판서의 당사자 표시 부분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내비게이션과 스마트폰이 발달한 시대에 굳이 지번 주소를 폐기할 필요가 없어졌고 새 주소는 생소하다 보니 불편함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재판서를 작성하다 보면 지역특성을 반영한 개성 있는 도로명을 발견하는 쏠쏠한 재미가 있다. 제도변화를 기회삼아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 지역의 전통과 관련한 도로명을 만들어 주민들의 소속감을 고취시키려는 지방자치단체의 노력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또한, 필자는 모든 길에 이름을 붙인다는 것의 의미에 주목한다. 오늘날 길은 고속도로에서부터 동네 골목길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의 인연처럼 서로 엮어져 생활흐름의 중심이 되었는데도, 큰 도로를 제외하고는 그저 '어

    최성배 부장판사(서울중앙지법)
    판결문의 본질과 오해

    판결문의 본질과 오해

    형사판결문을 작성하던 중, 내가 진행하는 사건의 참고자료로 제출된 판결문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법관으로서의 사명감이나 실력, 인성 뭐하나 흠 잡을 데 없어 평소 존경하는 어느 선배 법관의 판결문이었는데, 특별히 명문이거나 의미 있는 판결이라고 하긴 어려운 그 판결문을 보면서 그 선배가 판결을 하던 상황, 그 고민과 정성이 판결문을 통해 그대로 나에게 전해지면서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최근 판결이 당사자들만의 관심영역에 그치지 아니하고, 기사화되거나 공론화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판결문에 대한 일반 시민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는데, 판결 결과에 초점이 맞춰진 기사와 그 공론화 과정에서, 판결문의 본질에 대한 설명이나 논의는 묻히면서 오해가 생겨나는 것 같아 매우 안타깝다. 판결문은 재판당사자

    이현복 부장판사(강릉지원)
    삼국지 '방통의 재판'

    삼국지 '방통의 재판'

    전국의 법원들이 여름 휴정기를 앞두고 있다. 휴정기에도 사건접수는 계속되니 사건이 어느 정도 쌓이는 것은 피할 수 없다. 그래도 다시 정상 일정으로 돌아왔을 때에 밀렸던 사건들이 기적처럼 해결되기를 꿈꾸다 보면 소설 삼국지에 나오는 봉추선생 방통의 재판 이야기가 떠올려진다. 적벽대전 후 형주를 얻은 유비를 방통이 찾아갔을 때 볼 품 없는 용모에 실망한 유비가 시골 현령 벼슬을 주자, 불만스러운 방통이 매일 술만 마시며 일을 하지 않아 송사가 쌓여만 갔다. 이러한 소문을 들은 유비는 확인차 장비를 보냈는데, 방통은 하루만에 모든 송사를 처리하겠다고 장담하더니 실제로 다음날 모든 재판을 끝냈고, 결국 유비도 방통을 중용하게 되었다. 이 에피소드는 방통의 비범함과 아울러 겉만 보고 사람을 평가해서는 안

    최성배 부장판사(서울중앙지법)
    민사재판과 형사재판, 그리고 진실

    민사재판과 형사재판, 그리고 진실

    재판을 하다 보면, 드물기는 하지만 민사재판에서 확정된 사실과 다른 사실을 인정하여 무죄판결을 하거나, 형사재판에서 확정된 사실과 다른 사실을 인정하여 민사판결을 하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대부분 이런 상황에서, 종전 재판에서 불리한 결과를 받았던 당사자는 뒤늦게나마 진실이 밝혀졌다고 좋아하고, 반대 당사자는 판사 마음대로 진실을 왜곡했다고 비난하고 분노를 표출한다. 사회에서 끊임없이 발생하는 민·형사적 분쟁에 대하여, 소송제도를 똑같이 운영할 것인지, 달리 운영할 것인지는 공동체가 정책적으로 결정할 문제이다. 우리 헌법과 법률은 형사소송에서는 무죄추정과 적법절차원칙을 선언하면서 유죄의 입증책임을 검사에게 부여하고, 명확하지 않으면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판단하도록 정하고 있다. 반면 민사소송에서는

    이현복 부장판사(강릉지원)
    이공계를 전공했더라면

    이공계를 전공했더라면

    지난 봄 출퇴근길에는 지하철역 구내 LED 광고판을 유심히 보면서 다니곤 했다. 그런 광고판들의 함체에 장착되는 모듈의 소자 제작 하자 사건을 담당하고 있던 때였다. 쟁점은 광고판 내부에 있기에 표면을 바라본다고 묘안이 떠오를 것은 아니지만, 광고판 내부의 구성 및 색상발현원리를 더 잘 이해하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주변에선 20년 가까이 재판을 했으니 베테랑이라 하겠지만,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기술을 반영한 분쟁들은 늘 낯설기만 하다. 특히 건설사건 전담재판부에 근무할 때에는 남들은 그냥 지나칠 건물 외벽, 지하주차장 크랙, 아파트 조경수에도 눈길이 가고, 아이 체험학습을 위해 찾은 에너지재생시설에서는 작동원리를 쉽게 설명해 놓은 전시관을 꼼꼼히 살펴보기도 했다. 알지도 못하면서 재판했다는 비난이 나

    최성배 부장판사(서울중앙지법)
    고정재판과 불이익변경금지

    고정재판과 불이익변경금지

    검사는 경미사건에 관하여 서면심리에 의해 벌금 또는 과료 형을 정하도록 하는 약식기소를 할 수 있고, 법원은 약식명령을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피고인이 불복하는 경우, 일반사건과 같이 공판정에서 정식 증거조사를 거치는 심리를 다시 하게 되는데, 이를 고정재판이라 한다. 약식명령과 정식재판청구제도는 우리나라, 독일, 일본 등이 운영하고 있는데, 다른 나라와 달리 우리나라는, '피고인이 정식재판을 청구했다가 과중한 판결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 때문에 정식재판청구를 꺼린다'는 이유로, 1997년부터 심급 변동이 아닌 약식명령에서 고정재판으로 넘어가는 단계에서까지 불이익변경금지원칙을 적용하고 있다. 고정재판에 불이익변경금지원칙을 적용하는 것에 대하여, 이미 수많은 문제점이 제기되어 18, 19대 국회에

    이현복 부장판사(강릉지원)
    소음과 집중

    소음과 집중

    무더위가 일찍 찾아오면서 필자도 사무실 창문을 열어놓은 채 근무하는 시간이 많다. 사무실이 대로변에 접해 있어 차량 통행 소음이 끊이지 않아 높은 데시벨 수치가 측정될 터이지만, 그런 소음이 묘하게도 업무에 집중하게 하는 효과가 있음을 느끼곤 한다. 적절한 소음이 집중력을 높여준다는 이론은 이미 실험들을 통하여 알려져 있다. 특히 여러가지 빛을 섞으면 흰색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로, 공기청정기 소리, 바람 소리, 빗소리 등과 같이 여러 주파수의 소리가 골고루 섞여 있는 '백색 소음'은, 작업에 방해됨이 없이 오히려 거슬리는 주변의 소음을 덮어주는 작용을 함으로써 집중력과 창의력을 높인다고 한다. 백색 소음을 들려주는 앱까지 나오고, 웅성거리는 카페 소음 속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도 이를 방증한

    최성배 부장판사(서울중앙지법)
    좋은 조정의 출발점

    좋은 조정의 출발점

    지방 도시에 내려와 근무를 하게 되니, 서울이나 수도권 등 인구 수백만의 대도시에 비하여 미국의 사회학자 쿨리(C.H. Cooley)가 개념정의한 가족이나 이웃 등 1차 집단 내에서의 분쟁 사건이 상대적으로 많고(그것이 이유의 전부라고 단언할 수는 없겠지만), 그런 이유에서인지 강릉지역에는 조정이 상당히 활성화되어 있다. 이곳에서 민사분쟁을 종국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야근을 밥 먹듯 하는 동료 법관들, 자신의 생업보다도 조정업무에 더 열의를 갖고 봉사하는 많은 조정위원들을 보면서 필자가 작년 서울중앙지법이 발간한 '조정마당 열린대화'에 글을 기고하면서 정리했던 조정과 판결에 관한 생각들 중 하나가 떠올랐다. 당사자 쌍방이 진정으로 승복하고 감동을 받는 조정을 좋은 조정, 당사자에게 감동을 주지 못하

    이현복 부장판사(강릉지원)
    미괄식과 두괄식

    미괄식과 두괄식

    민사판결서를 작성하면서 쟁점에 대한 논리적 추론과정을 어떻게 기재할지 고민하다 보면 마치 탱그램(지혜의 판)을 요리조리 맞추는 것 같다. 요건사실을 직접 인정할 증거가 별로 없는 사안이 많아지다 보니 여러 간접사실을 모아 추정하는 기법을 자주 활용하면서 겪는 일이다. 돌이켜 보면 예전엔 '다음과 같은 사정 즉, ~점, ~점, ~점 등에 비추어 보면 ~ 이다'라는 표현이 대세를 이루었다. 이러한 미괄식 구성은 켠켠이 쌓여있다고 해서 '시루떡 문장'이라 불리며 가독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았지만, 결론에 대한 상세한 뒷받침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에 필자의 경우에도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미괄식 논증방식이 선호된 데에는, 서술어가 맨 뒤에 오는 우리말의 구조에서 비롯되었다고도 하고, 판결서의 논증체계가

    최성배 부장판사(서울중앙지법)
    목숨 걸고 하는 재판, 소액·고정재판

    목숨 걸고 하는 재판, 소액·고정재판

    재판장 경력이 10년 정도가 되니 재판준비나 진행에 여유가 생길만도 하건만, 고정재판(형사사건 중 경미한 사건, 주로 몇 십만 원에서 몇 백만 원 사이의 벌금의 당부를 다투는 재판이다)을 진행할 때면 피해액수가 억 단위를 넘어가거나 사회적 이슈가 된 이른바 큰 사건을 맡을 때보다 오히려 더 바짝 긴장하고 집중하게 된다. 이런 습관은 2001년 공익법무관으로 근무하면서 유독 자주 들어가게 되었던 재판부의 재판장이셨던 고 한기택 부장판사님과 딱 한 번의 작은 인연(因緣)에서 비롯되었다. 변호인으로서 그 재판부의 수많은 재판과정을 지켜보면서 '나도 나중에 법관이 되면 저 분처럼 좋은 재판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초대받은 그 재판부의 회식자리에서(아마 내가 수임료 없이 공무로써 업무를

    이현복 부장판사(강릉지원)
    나의 스승, 나의 제자

    나의 스승, 나의 제자

    이른 출근길에 교대역에서 법원 동문을 향해 올라가다 보면 조정센터의 상임조정위원으로 활동 중이신 필자의 사법연수원 시절 지도교수님과 마주칠 때가 있다. 꼿꼿한 예전 모습 그대로이신 교수님께서는 아침인사를 반갑게 건네시고 조정센터 쪽의 지름길로 들어가시기 위해 동문 앞을 지나 지금은 3별관으로 불리는 구 연수원 방면의 인도를 걸어가신다. 그 뒷모습을 보노라면 필자가 연수원에 입소하였던 1992년으로 돌아간 느낌이 들면서, TV의 인문학특강에서 보았던 서울대 최인철 교수님의 강연이 떠올려진다. 1979년 미국 하버드대 심리학과 엘렌 랭어 교수가 '시간 거꾸로 돌리기'라는 연구를 하면서 70대 노인들을 외딴 곳에 모은 후 주변 공간을 모두 그들이 전성기를 보냈음직한 1959년의 풍경으로 꾸며 놓았다. 실내장

    최성배 부장판사(서울중앙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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