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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法臺에서

    法臺에서 리스트

    바빌로프를 위하여

    바빌로프를 위하여

    마음속에 눈물이 번지는 날에는 이네사 갈란테가 부르는 카치니 아베마리아를 듣는다. 음정과 박자가 단순한 곡임에도 이 노래에는 마음속에서 바람이 일어 어떤 통곡도 끄집어내어 놓을 수 있을 것 같은 깊은 페이소스가 있다. 복부 깊숙한 곳에서 명치를 타고 성대를 거쳐 입과 볼, 등 뒤와 머리 위로 울려 나오는 목소리에는 침묵을 넘어서는 고요가 있다. 이 곡의 원작자는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오페라의 발명자이자 이탈리아의 작곡가인 줄리오 카치니(1551~1618)가 아니라 1960년대에서 1970년대에 활동했던 러시아의 류트 연주자이자 기타 연주자, 바로크 음악 연구가였던 블라디미르 바빌로프(1925~1973)라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블라디미르 바빌로프가 사망한 지 2년 후인 1975년 소프라노 이리나 보

    정지원 판사(서울서부지법)
    마침

    마침

    이제 법대에서의 마지막 글이다. 첫 글을 읽은 어느 판사님이 그러다보면 가을이 다 가버릴 텐데 하며 '동정'의 말씀을 하신 것이 아직도 생생한데, 가을뿐 아니라 겨울까지 다 가버렸다. 법대에서에 글을 쓰게 된 것은 아마 '우연'이었다. 책 욕심은 있어 종이책이든 전자책이든 많이 사긴 하지만 끝까지 읽은 책이 별로 없는 사람이, 평소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얘기하는 것을 매우 두려워하는 사람이, 글로써 생각을 표현한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당시 법원 내 한 연구회의 간사를 맡고 있지 않았다면 기고를 과감히 거절했을 것이다. 첫 글을 쓴 다음 그 글이 읽히지 않기를, 법률신문의 어느 한 쪽 사람들의 눈길이 잘 가지 않는 곳에 그 글이 실리기를 기원했다. 누군가 그 서툰 글을 읽고 '잘

    김기영 부장판사 (서울중앙지법)
    가사재판 담당자도 감정 노동자다

    가사재판 담당자도 감정 노동자다

    가사재판 당사자는 분노, 우울, 죄책감 등 모든 감정들을 겪고 있는 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사람들이다. 그런데 판사나 조사관이 그들과 자주, 장시간 만나다보면 그들의 감정이 자신에게 전이된다. 외람되지만 오늘은 법원 입장에서 이야기하고 싶다. 요즘 세상에 감정 노동자가 아닌 직업이 없을 게다. 가사재판 담당자도 감정 노동자다. 판사도 막말을 듣는다. 판사를 비꼬고 비아냥거리거나 법정 밖에서 문신을 드러내놓고 악쓰는 사람, 보호관찰 기간동안 금주하여야 한다는 경고에 "나를 교도소에 넣어라"며 고래고래 악쓰는 사람, "뺨 한 대 때린 것이 그리 잘못한 거냐? 내가 이혼 당하면 당신이 책임질 거냐?"며 소리치는 사람 앞에서 판사는 마음을 다친다. 아이가 엄마를 보고 싶다고 법원에 왔는데 "재혼할 사람이

    판사와 사법행정

    판사와 사법행정

    몇 년 전부터 법원의 최대 화두는 소통, 평생법관제, 상고법원 등이다. 모두 판사로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고 그 중 몇은 실천도 필요하다. 문제는 법원 전체 및 재판에 오랫동안 영향을 미칠 이러한 '화두'의 결정과 실천방안의 선택 및 집행에 일선 판사들이 그다지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혹자는 이와 같은 사항은 사법행정에 관한 것이고, 사법행정은 대법원장, 법원행정처 및 각급 법원의 장(長)이 하는 일이며, 판사는 재판만 잘하면 된다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사법행정에는 법원의 조직, 인사, 운영에 관한 사항이 포함되고, 이러한 사항은 법관이 독립하여 심판함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러한 고려와 역사상 법관의 독립이 법원 내·외부적 요인에 의하여 침해된 역사적 경험 아래 각급 법원에

    김기영 부장판사 (서울중앙지법)
    가사상담

    가사상담

    이렇게 살 바엔 이혼하자며 이혼 소송을 제기한다. 내가 왜 이혼 당하냐며, 내가 왜 유책배우자이냐며, 저 사람은 부모 자격이 없다며 반소를 제기하고, 피해의식에 서로 비난한다. 법원의 조정 권유도 마다하고 우리는 합의가 안 되니 판결을 해달라고 한다. 재판에 졌다고 생각하는 쪽은 뒤끝이 있다. 면접교섭에 조금이라도 늦으면 아이를 못 만나게 하거나 아이 앞에서 상대방을 비난한다. 아이에게 다른 일정이 있더라도 판결대로 하라며 면접교섭을 강요한다. 면접교섭이 안 되면 양육비를 주지 않는다. 양육비를 주지 않으니 면접교섭도 막는다. 아이를 못 만나게 한다며, 양육비를 안 준다며 이행명령을 신청하고 양육자 변경, 면접교섭 변경도 청구한다. 부모 싸움에 자녀의 정서는 엉망이 된다. 건강하지 못한 이혼의 단적인 예다.

    장창국 판사 (고양지원)
    법관과 법 해석

    법관과 법 해석

    법률로 세상의 모든 현상을 미리 규정하기는 어렵다. 사회현상이 법이나 판례를 훨씬 앞서가는 경우도 많다. 선례가 없는 사건에 대해서도 최선의 답을 제시해야 한다는 데 판사라는 일의 어려움이 있다. 새로운 현상에 기존의 법리를 그대로 대입하다 보면 현실과 규범의 괴리가 발생할 수 있다. 이는 새로운 기술과 아이디어가 끊임없이 나오는 지식재산 분야에서 많으나, 그 분야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있는 한 새로운 유형의 사건은 항상 있게 마련이다. 타인이 상당한 노력을 투자하여 만든 성과나 아이디어를 그대로 또는 매우 유사한 방법으로 사용하였으나 상표권, 저작권 등 '전통적인' 권리로 보호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뭔가 부당하다는 느낌이 드는데 이를 보호할 마땅한

    김기영 부장판사 (서울중앙지법)
    자녀 문제, 부부끼리만 합의할 것이 아니다.

    자녀 문제, 부부끼리만 합의할 것이 아니다.

    "제가 힘들어서 남편에게 이혼하자고 하였고, 아이가 어리지만 제가 능력이 없어서 남편이 기르면 좋겠다고 생각해 양육권을 양보하겠습니다. 남편이 아이를 보여주면 고맙게 만나구요." "아내 말대로 하겠습니다." 조정실의 한 장면이다. 겉으로는 평화로운 조정으로 보이지만, 과연 그 내용이 자녀의 복리에 적합할까? 필자가 가사재판을 담당하면서 가진 의문 중 하나가 '이혼이 부부만의 문제는 아닌데 자녀가 양육 대상이라는 이유로 자녀는 배제하고 양육과 면접교섭 문제를 부모끼리만 합의하는 것이 맞는가?'라는 것이다. 조정이 협의이혼처럼 운영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협의이혼에서는, 부부가 높은 스트레스 상황이기 때문에 자녀의 고통보다는 자신의 고통 해결에 중점을 두고 비합리적인 선택을 할 확률이 높다.

    장창국 판사 (고양지원)
    이사

    이사

    법원에 있으면서 참 많이 옮겨 다녔다. 임지가 바뀌거나 해외연수를 위하여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까지. 아이들이 어릴 때는 임지를 따라 가족도 함께 이사해서 살았다. 아이들이 중학교에 갈 때쯤부터는 임지가 바뀌어도 혼자 지방에 내려가서 '주말부부'를 했지만. 대략 10번 가까이 이사를 한 것 같은데, 어떻게 이사를 했는지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다. 이상하다 생각해보니 이사를 하는 과정에 별로 이바지를 한 것이 없었다. 대부분의 경우 이사를 준비하는 동안 그리고 이사를 하는 당일에도 출근해서 일하다 늦게 들어갔다. 모든 상황이 종료된 뒤에 이사 간 집에 들어가 책장에 꽂힌 책 몇 권의 순서를 바꾸고 쓰레기 좀 치우는 것이 전부였다. 누군가는 이사 간 집을 몰라 이리저리 연락한 다음 간신히 들어갔다는 '전설'

    김기영 부장판사 (서울중앙지법)
    갈등이 갈등을 지배한다

    갈등이 갈등을 지배한다

    인간은 부정적인 감정 상태에서는 부정적인 것만 보고 기억하며, 긍정적 감정 상태에서는 긍정적인 것만 보고 기억하려 한다. 갈등상황에서도 자신의 감정과 편견에 일치하는 것만 보고 기억하며 같은 상황도 자기에게 유리하게 해석한다. 당연히 두 사람의 기억은 다를 수밖에 없다. 상대방이 처음 한 행동에 대해서도 "저 사람은 '항상' 그렇다"고 일반화시키기도 한다. 갈등의 원인은 자신이 아닌 상대방에게 있다고 단정하고 점점 신경질적으로 변한다. '상대방의 감정도 이해해 달라,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라는 조언은 이들에게 사치다. 자신의 공격적인 행동은 생각하지 않고 상대방의 행동에 대해서만 자신을 피해자로 여기고 피해자인 자신이 상대방을 공격하는 것은 정당한 행위로 평가한다. 갈등 상황이 깊어지면 퇴행행동(반항, 충동

    장창국 판사 (고양지원)
    감정절차와 공정성

    감정절차와 공정성

    법원에서 민사재판을 진행하다 보면 다양한 신청을 접하게 된다. 그중 저작권 관련 사건에서 저작물의 창작성 및 실질적 유사성에 관한 감정, 영업비밀 관련 사건에서 침해 여부 판단을 위한 기술에 관한 감정 신청은 감정인 선정, 감정물 및 감정사항 확정 등에 있어 재판부에 많은 과제를 던져준다. 우선 새로운 기술 또는 지식에 관한 사건의 경우 감정인의 풀이 어느 정도라도 정해져 있지 않은 것이 어려운 점이다. 누가 관련 기술 분야의 전문가인지가 명확하지 않고, 전문가의 수가 적은 경우에는 그 전문가가 원고 또는 피고 측과 관련이 있다는 주장이 흔치 않게 등장한다. 법원이 스스로 감정인을 찾기 어려운 경우, 원피고 쌍방에 같은 수의 감정인을 추천하도록 하고, 쌍방이 공정성에 관하여 이의하지 않는 사람을

    김기영 부장판사 (서울중앙지법)
    가족의 부정적 정서

    가족의 부정적 정서

    이혼하는 부부에게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정서불안이다. 장점보다 단점을 먼저 보고 비판하는 사람, 상대방에게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 사람, 지나치게 불안감이 높아 배우자를 만나거나 법원에 오는 것조차 두려워하는 사람, 상대방의 말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람, 흥분을 잘하고 욱하는 사람, 만성적으로 우울한 사람, 이성에게 막연한 혐오감을 갖고 있는 사람, 자신감 부족으로 우유부단하고 의존적인 사람, 과거의 부정적인 기억만 떠올리는 사람, 감정이 메말라 차가운 사람 등 다양한 사람을 이혼재판에서 만난다. 이런 사람은 대개 자존감이 낮고 분노감이 높다. 아이러니하게도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사람은 자신처럼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사람을 배우자로 선택한다.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사람 간에 일어나는 심리적 역동은 결혼 생

    장창국 판사 (고양지원)
    판사와 전문성

    판사와 전문성

    지난 5일 법원 내 2개 연구회와 외부 학회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외국인근로자의 노동권'에 관한 세미나에 참석하였다. 주로 노동법 관련 쟁점이 다루어졌고 발표자와 토론자는 모두 이 분야에 관하여 오랫동안 연구를 하거나 실무를 담당한 경험이 있는 분이었다. 노동법 분야 전문가의 '내공'을 느낄 수 있었다. 판사가 국제인권규범, 헌법, 민사, 형사, 노동법 등 모든 분야에 관하여 폭넓은 지식을 가진 사람(generalist)이어야 하는지, 아니면 특정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사람(specialist)이어야 하는지에 관하여는 여러 견해가 있다. 사건에 따라서는 일반적 지식이 널리 필요한 경우도 있고, 특정한 지식이 요구되는 경우도 있다. 사건의 복잡화, 지식과 기술의 빠른 변화에 따라 판사 한 사람이 모

    김기영 부장판사 (서울중앙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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