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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法臺에서

    法臺에서 리스트

    미괄식과 두괄식

    미괄식과 두괄식

    민사판결서를 작성하면서 쟁점에 대한 논리적 추론과정을 어떻게 기재할지 고민하다 보면 마치 탱그램(지혜의 판)을 요리조리 맞추는 것 같다. 요건사실을 직접 인정할 증거가 별로 없는 사안이 많아지다 보니 여러 간접사실을 모아 추정하는 기법을 자주 활용하면서 겪는 일이다. 돌이켜 보면 예전엔 '다음과 같은 사정 즉, ~점, ~점, ~점 등에 비추어 보면 ~ 이다'라는 표현이 대세를 이루었다. 이러한 미괄식 구성은 켠켠이 쌓여있다고 해서 '시루떡 문장'이라 불리며 가독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았지만, 결론에 대한 상세한 뒷받침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에 필자의 경우에도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미괄식 논증방식이 선호된 데에는, 서술어가 맨 뒤에 오는 우리말의 구조에서 비롯되었다고도 하고, 판결서의 논증체계가

    최성배 부장판사(서울중앙지법)
    목숨 걸고 하는 재판, 소액·고정재판

    목숨 걸고 하는 재판, 소액·고정재판

    재판장 경력이 10년 정도가 되니 재판준비나 진행에 여유가 생길만도 하건만, 고정재판(형사사건 중 경미한 사건, 주로 몇 십만 원에서 몇 백만 원 사이의 벌금의 당부를 다투는 재판이다)을 진행할 때면 피해액수가 억 단위를 넘어가거나 사회적 이슈가 된 이른바 큰 사건을 맡을 때보다 오히려 더 바짝 긴장하고 집중하게 된다. 이런 습관은 2001년 공익법무관으로 근무하면서 유독 자주 들어가게 되었던 재판부의 재판장이셨던 고 한기택 부장판사님과 딱 한 번의 작은 인연(因緣)에서 비롯되었다. 변호인으로서 그 재판부의 수많은 재판과정을 지켜보면서 '나도 나중에 법관이 되면 저 분처럼 좋은 재판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초대받은 그 재판부의 회식자리에서(아마 내가 수임료 없이 공무로써 업무를

    이현복 부장판사(강릉지원)
    나의 스승, 나의 제자

    나의 스승, 나의 제자

    이른 출근길에 교대역에서 법원 동문을 향해 올라가다 보면 조정센터의 상임조정위원으로 활동 중이신 필자의 사법연수원 시절 지도교수님과 마주칠 때가 있다. 꼿꼿한 예전 모습 그대로이신 교수님께서는 아침인사를 반갑게 건네시고 조정센터 쪽의 지름길로 들어가시기 위해 동문 앞을 지나 지금은 3별관으로 불리는 구 연수원 방면의 인도를 걸어가신다. 그 뒷모습을 보노라면 필자가 연수원에 입소하였던 1992년으로 돌아간 느낌이 들면서, TV의 인문학특강에서 보았던 서울대 최인철 교수님의 강연이 떠올려진다. 1979년 미국 하버드대 심리학과 엘렌 랭어 교수가 '시간 거꾸로 돌리기'라는 연구를 하면서 70대 노인들을 외딴 곳에 모은 후 주변 공간을 모두 그들이 전성기를 보냈음직한 1959년의 풍경으로 꾸며 놓았다. 실내장

    최성배 부장판사(서울중앙지법)
    부모, 스승에 대한 단상

    부모, 스승에 대한 단상

    5월은 어버이날, 스승의 날 등 전통사회와 관련한 기념일이 몰려 있어 해마다 이맘때면 부모와 자녀, 스승과 제자 사이의 관계에 관하여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된다. 칼럼 기고를 맡은 기회에 지금의 내가 존재하게끔 만들어 준 부모와 스승들께 한 번에 감사를 드리는 호사(好事)를 누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어렸을 적 아버지가 해주신 말씀 중 하나가 생각난다. 어떠한 사람에 대한 최고의 찬사와 최악의 모욕은 모두 부모, 스승과 연관되어 있고, 그래서 부모, 스승을 떼어 놓고는 사람의 삶을 생각할 수 없다. '누구 자식인데 저렇게 훌륭하냐', '누구에게 배웠길래 저렇게 훌륭하냐'는 것은 사람에 대한 최고의 찬사가 되고, '누구 자식인데 저 모양이냐', '누구에게 배웠길래 저 모양이냐'는 것은 사람

    이현복 부장판사(강릉지원)
    변론 갱신, 한 바퀴 돌기

    변론 갱신, 한 바퀴 돌기

    2월 하순 법관정기인사에 따른 사무분담 변경이 있은 후 정신없이 달려온 두 달이 지나고 계절의 여왕인 5월에 들어섰다. 변경된 재판부에서 맞이하는 3월 한 달의 재판일정은 이미 전임 재판장님이 정해 놓은 경우가 대부분이고, 이 때 후임자로서 가장 힘든 것이 속행되어 온 사건의 기록을 검토하고 심리를 준비하는 일이다. 그래서 3월 재판일정을 마치게 되면 속행 사건들에 대한 파악이 거의 이루어지고 숨고르기를 하며 자신의 관점에서 심리방향을 설계해 보는 여유가 생기게 된다. 법관 사이에서는 이러한 신임 재판장의 3월 일정을 가리켜 '한 바퀴 돈다'는 표현을 쓴다. 전임 재판장의 메모를 물려받아 속행 사건을 검토하는 것이 고되기는 하지만 법관에게는 신선한 긴장감을 불어 넣어준다. 그리고 변론 갱신된 법정에 들

    최성배 부장판사(서울중앙지법)
    나누지 않은 죄

    나누지 않은 죄

    법관이 되고 형사재판을 몇 년간 담당하면서 재판과정이나 판결서 작성과정에서 실무상 문제되거나 반복해서 실수하게 되는 쟁점들을 정리한, 개인적으로는 보물 같은 자료(대단한 것은 아니고, 상당한 시간 정리하는 수고만 하면 어떤 법률가라도 쉽게 정리할 수 있는 것이다)들을 꽤나 고생을 하여 만들어 두었다. 이후 한동안 재판업무에서 떨어져 있다가 다시 형사재판 업무를 맡게 되면서 그 보물만 믿고 든든한 마음으로 새 업무를 시작하려는데, 아차! 몇 년간 고생해서 정리해 놓은 그 보물자료를 찾을 수가 없다. 몇 년간의 수고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다. 인사이동 후 이 곤란한 상황을 겪으면서, 문득 중학교(개신교 사립중학교를 다녔다) 시절 배웠던 성경구절 하나가 생각났다. '너희가 지

    이현복 부장판사(강릉지원)
    법원의 '얼굴'

    법원의 '얼굴'

    성적 수치심과 자살에 관한 특수연구를 구상하다 문득 데미안이 보고 싶었다. 내 기억으로는 데미안의 얼굴은 남자도 여자도 아닌 나이를 초월한 얼굴이었다. 찾아보니 '여자의 얼굴도 조금 들어 있는 남자답거나 어린이답지 않지 않고, 나이 들었거나 어리지 않고, 왠지 수천 살은 되게, 왠지 시간을 초월한…' 등으로 묘사되어 있는 얼굴이었다. 내가 누군가의 편이라서기보다는 법원 편도 아니라서 미움을 많이 받는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법원의 얼굴을 그리려다 데미안의 얼굴이 떠오르는 것은 여성이 소수인 법관생활의 결과인 것 같다. 훌륭한 판사가 된다는 것은 초월적 얼굴을 갖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반면 색깔로 보면 판사에게 어울리는 색상은 무색무취라는 의견이 많아서 칼라는 우리가 인지하는 세상이라는

    정지원 판사(서울서부지법)
    업무도 생활도 헌법기관으로...

    업무도 생활도 헌법기관으로...

    작년부터 법원 내 구성원들의 화합과 합리적인 생활문화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한창 진행되고 있고, 그 결과물도 여러 형태로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필자도 합의부 재판장을 맡을 수 있는 상황이 되니 합의부 구성원들의 생활에 관한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된다. 운이 좋게도 필자에게는 선후배 법관들 또는 기자들, 재조나 재야의 법조인들로부터 합의부 구성원들의 생활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좀 더 있었고, 그 이야기 중 하나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그 표현은 부드러웠으나 조금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부장판사들은 '업무는 직장인처럼, 생활은 헌법기관처럼'하는 배석판사들을 싫어하고, 배석판사들은 '업무는 헌법기관으로서, 생활은 직장인처럼 하기를 요구'하는 부장판사를 싫어하니, 필자에게도

    이현복 부장판사(강릉지원)
    자살위험군의 관리

    자살위험군의 관리

    "그 슬픔이 다 지나갈 날이 올 겁니다." "네?" 반신반의하던 그 당사자는 잘 있는지 궁금하다. 그 당사자는 가족의 사망이 얼마나 슬펐던지 전형적인 피해자 과실이 일부 포함된 교통사고에 대한 보험회사의 상속된 구상금 청구를 받아들일 생각이 전혀 없이 재판정이 떠나가도록 화를 내고 있었다. 미국 정신과 협회에 1996년 등록된 'Hwabyeong(화병)'은 한국어 유래의 국제표준어이다. '잔인한 4월'에 맞는 주제를 생각하다 자살에 대해 쓰기로 결심하고 자료를 뒤적이던 중 가장 맘에 와 닿은 분류는 유서 있는 자살과 유서 없는 자살이었다(1897년에 쓰여진 뒤르캠의 자살론도 샀건만). 요즘은 법원에서 과로로 인한 자살도 산재로 인정하는 흐름이 있고, 인구 10만 명당 몇 명이라는 자살률 통계

    정지원 판사(서울서부지법)
    소라껍데기 같은 판사

    소라껍데기 같은 판사

    '소라껍데기 같은 부모님은 소라게 같은 아이들의 몸을 보호하고, 사탕껍질 같은 부모님은 사탕 같은 아이들이 더러워지지 않게 지켜주며, 샤프 같은 부모님은 샤프심 같은 아이들이 부러지지 않게 지켜준다.' 초등학생인 필자의 아이가 작시(作詩) 수업에서 쓴, 부모를 주제로 한 시이다. 아이가 쓴 시를 보고 기특하다는 생각과 함께, 한편으로는 그동안 소라껍데기가 되어주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든다. 이어 이제는 늙어버린 어머니께 소라껍데기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한 죄송한 마음이 이어지고, 생각은 꼬리를 물어 재판 당사자인 국민들과 판사의 관계에 대한 것에까지 이른다. 무언가 억울해서, 또는 스스로 범죄를 저지르거나 이를 당해서, 또는 타인의 분쟁에 휘말려 난생 처음 법정에 서는 당사

    이현복 부장판사(강릉지원)
    2015 한일외교장관 합의에 관한 단상

    2015 한일외교장관 합의에 관한 단상

    위안부 할머니들이 돌아가시기 시작했기 때문에 헌법재판소가 2011년 8월 30일 전향적인 행정부작위 위헌결정을 했다는 누군가의 분석이 그럴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지난해 12월 28일 한일 외교장관 합의를 보니 탈식민적 법과 외교를 관철시키지 못한 오래된 역사적 무기력 앞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법이란 결국 식민지배와 전쟁을 없던 일로 만드는 4차원적 이데아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군 위안부가 일본 내에서 결정적으로 문제가 된 것은 1991년 12월 김학순 할머니를 필두로 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한국여성 3명이 도쿄지방재판소에 일본 정부의 사죄와 개인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하면서 부터이다. 일본 법원은 유사사건 10건에 대해 한일협정에 의해 한국의 배상청구권이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소

    정지원 판사(서울서부지법)
    척하지 않기, 소통

    척하지 않기, 소통

    "불우한 환경 속에서 여러 비행을 저질러 더 이상 어찌할 대안이 없어 보이는 소년에게 (법률가가 아닌) 누군가 다가가 '우리 같이 법원에 한번 가보자, 아무리 방법이 없어 보여도 법원이라면 무언가 좋은 대안을 제시해 줄 수 있을 거야'라고 말하는 미국 영화의 한 장면을 보면서, 우리 법원도 국민으로부터 최소한 그 정도의 신뢰는 얻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런 법원을 만들기 위해 여러분들과 함께 노력해 나갔으면 좋겠다." 양승태 대법원장께서 최근 초임 지방법원 부장판사들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하신 말씀이다. 대법원장의 말씀은 필자가 17년 전 사법연수생으로서 처음 법정을 방청하면서 받았던 느낌과 오버랩되면서 신뢰받는 재판을 하기 위해서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는지에 관한 생각을 정리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현복 부장판사(강릉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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