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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法臺에서

    法臺에서 리스트

    '제대로' 사과하기

    '제대로' 사과하기

    우리는 누구나 실수와 잘못을 저지르기 마련이어서, 때때로 사과를 하여야 할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런데 사람은 스스로를 정당화하려는 습성을 쉽게 떨쳐버리지 못하기에, 사과를 하여야 할 상황임에도 "실수나 잘못을 한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내가 그렇게까지 큰 실수나 잘못을 저지른 것은 아니잖아", "고의로 그런 것은 아니었어", "불가피한 사정이 있었으니깐" 등의 이유를 들며 '제대로' 사과하는 것을 회피하려 하곤 한다. 그러다가 더 큰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기도 하는데, 말과 글로 무수히 많은 '사과의 말'이 오고 가는 형사재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왜 어떤 사과의 말은 사람들을 움직이고, 어떤 사과의 말은 사람들로부터 외면 받을까? 공감을 얻지 못하고 인정받지도 못하는 '사과의 말'에는 몇 가지 특징이

    심활섭 판사 (서울고등법원)
    비밀과 거짓말

    비밀과 거짓말

    가정법원에 오시는 분들은 슬프게도, 비밀이 많다. 특히 자신의 아이들에게. 협의이혼이나 재판상 이혼사건에 반드시 제출되는 가족관계증명서에서 아이들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보면서 '이 아이는 우리 첫째랑 같은 학년이구나', '이 아이는 우리 둘째처럼 유치원에 다니겠구나', '이 아이는 어려서 엄마 아빠를 많이 찾겠다'는 생각이 들면 마음이 저려온다. 부모님의 이혼에 관해 아이들과 서로 이야기한 적이 있는지 물어보지만, 많은 분들이 아이가 크면 천천히 알리겠다고 말씀하셨던 것 같다. 업무로 인해 이 아이들의 부모님에게 이혼을 선언해야 하는 사람으로서, 아이들을 위한다는 이유로,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 아이의 심리검사결과지를 요청한 사건들이 있다. 아이가 어려움을 잘 이겨내고 괜찮은 상태이기를 바라면서, 그리고 설혹

    정용신 판사(서울가정법원)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아남기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아남기

    요즘엔 '빅데이터(Big Data)'란 단어가 낯설지 않다. 인터넷 서점은 고객들이 어떤 책을 샀는지, 또는 보기만 하고 사지 않았는지를 담은 데이터를 활용하여, 고객의 취미나 독서 경향에 맞는 책을 메일이나 홈페이지에서 자동적으로 제시하고, 포털사이트는 이용자의 검색 조건에 따른 맞춤형 광고를 노출시키는데 빅데이터를 사용한다. 스마트폰과 PC가 일상화된 디지털 환경에서 방대한 규모의 데이터가 생성되고 있다. 미국의 저장 장치 업체 EMC가 밝힌 자료에 따르면 2012년 한 해 동안 생성된 데이터양은 2.8제타바이트(ZB)인데, 이는 이전까지 생성된 데이터양을 모두 합친 것보다 많은 것이라고 한다. 미국의 사회비평가 닐 포스트먼은 '죽도록 즐기기'라는 책에서 조지 오웰(1984)과 올더스 헉슬리(멋진

    심활섭판사 (서울고법)
    당신을 미워하지 않는다

    당신을 미워하지 않는다

    한때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격언이 마음으로 이해되지 않아 괴로웠던 적이 있다. 그러다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훈육을 위해서는 아이의 행동과 존재를 분리하여야 한다는 구절을 보는 순간 많은 의문이 해소되었다. 부모는 사랑하는 아이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주기 위해 아이의 잘못된 행동을 고쳐주려 노력한다. 꾸짖는 것은 아이의 행동일 뿐, 부모가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에는 조금의 변화도 없을 것이다. 여러 종교의 성인들께서 우리네 인간을 사랑해주신다면 그런 방식이 아닐지, 법관이 구도자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말은 그런 마음으로 재판에 임하라는 의미가 아닐지 생각해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부모의 사랑을 확신하지 못하는 아이는 부모의 꾸지람을 미움으로 받아들이기 쉬울 것이다. 꾸지람이 잘못된

    정용신 판사(서울가정법원)
    '간명'한 것이 좋아

    '간명'한 것이 좋아

    화산 폭발 영상처럼 사람의 접근이 불가능한 지역의 생생한 현장 영상을 뉴스에서 접하곤 한다. '벌이 윙윙 거린다'라는 뜻을 가진 '드론(drone, 무인비행장치)'이 촬영한 영상이다. 멀지 않은 장래에는 집이나 사무실이 아닌 '지금 있는 곳'으로 택배물품을 배달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뉴스도 종종 접하고, 예능프로그램에서 드론을 이용하여 노을 지는 한강을 촬영하는 모습을 멋진 취미의 하나로 소개되는 것이 화제가 될 정도로,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드론'이 낯설거나 생소한 물건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최근에는 '취미용'으로 대형마트나 인터넷에서도 쉽게 구입할 수 있다. 다만 구입하는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는 드론을 실제로 활용하는 데에는 기존의 여러 법률(항공법 등) 규정의 적용을 받을 수밖에 없어, 취미생

    심활섭 판사(서울고법)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

    도준아, 너는 이렇게 물었지. "우리가 진짜 어른이 되는 방법을 왜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거냐구요! 다른 사람을 착취하지 않고 성공하는 방법, 자신이 누구인지 제대로 들여다보는 방법, 혼자 잘 살기보단 다같이 잘 사는 방법, 제대로 존중해 주는 사람을 가려내는 방법,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 그리고 행복해지는 방법 같은거요…. 한 학년 500명 중에 250등하면 그냥 보통 아니에요? 보통사람인데 그냥 보통으로 살다가 죽으면 안돼요? 왜 우월해져야 해요? 우월하지 않으면 루저취급하는, 보통사람을 바보 만드는 이런 세상에서 나는 날 어떻게 해야 사랑할 수 있어요? 가르쳐주세요 선생님, 선생님이시잖아요!" 여기에 어느 선생님이 답하셨다. "그래. 세상을 살다보면 너에게 불안과 공

    정용신 판사(서울가정법원)
    일상의 착각들

    일상의 착각들

    '보이지 않는 고릴라'라는 흥미로운 제목의 책을 쓴 차브리스와 사이먼스는 동시에 두 가지 일을 따로 집중해서 할 때만큼 잘할 수 있다는 '주의력 착각', 스스로 정확하다고 확신할 때조차 또렷이 남아 있는 부분마저 왜곡하여 기억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는 '기억력 착각', 스스로의 능력을 과대평가하거나 자신감을 다른 사람의 능력이나 기억력을 판단할 수 있는 유용한 신호라고 생각하는 '자신감 착각', 실제로 아는 것보다 더 많이 안다고 생각하는 '지식착각', 잇달아 일어난 두 가지 일을 원인과 결과로 오해하는 '원인 착각', 방법을 알기만 한다면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지적 능력이 아직 남아 있다고 생각하는 '잠재력 착각' 등 6가지의 착각이 우리 삶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일상생활에서뿐만 아니

    심활섭 판사(서울고법)
    다시 태어남에 관하여

    다시 태어남에 관하여

    '부모복이 반(半)복'이라는 옛말이 있다. 존속살해의 형사사건, 존속폭행의 가정보호사건, 존속에 대한 상속재산분할사건, 자녀가 절절한 진술서를 제출한 이혼사건들…. 수많은 사건의 이면을 통해 부모로부터 물려받아 유년기에 형성된 세상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자녀의 인생에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는지 고스란히 지켜보는 일이 직업이다 보니, 그렇다면 인간의 자유의지가 삶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은 어디까지인가 의문이 들었다. '카우아이섬의 아이들'이라는 실험이 있다. 하와이군도 서북쪽 끝에 위치한 카우아이섬은 대대로 지독한 가난에 시달렸으며, 주민 대다수는 범죄자, 사회부적응자, 정신질환자였다. 미국의 심리학자들은 이 섬에서 1955년에 태어난 모든 신생아 833명을 대상으로 태아때부터 30살 이상의 성

    정용신 판사(서울가정법원)
    같은 말 '같게' 해석하기

    같은 말 '같게' 해석하기

    미국에서 1969년에 처음 출간되었다가 1970년대에 절판된 '경영의 모험(Business Adventures)'이란 책이 2014년에 다시 발간되어 화제다. 빌 게이츠가 자신의 홈페이지와 '월스트리트저널'을 통해 책 내용을 소개하고, '내가 읽은 최고의 경영서'라고 추천한데다가, 빌 게이츠에게 '경영의 모험'을 빌려준 사람이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워렌 버핏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져 '억만장자의 바이블'이라는 별칭을 얻었기 때문이다. 저자 존 브록스는 의회 청문회 보고서를 바탕으로 1950년대 전기 산업 분야에서의 가격담합행위에 관하여 분석하면서, '가격담합행위'가 '같은 말을 다르게 해석'하는 회사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생긴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 흥미롭다. 브록스는

    심활섭 판사(서울고법)
    여한이 없기를

    여한이 없기를

    요즘도 학교에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정서를 묻는 시험문제가 나오는지 모르겠다. 망설임 없이 답이 떠오른다. 그것은 한(恨)이라고. 부끄럽게도 그 뜻이 무엇인지 깊이 헤아려보지 못한채, 우리민족의 반만년 역사와 지정학적 위치에 따른 수많은 외침과, 일제강점기의 고난과 6.25 전쟁의 상흔, 그리고 이어진 군부독재와 민주화 운동을 국사교과서의 페이지들로 기억해왔다. 그러나 법원에서 만나는 분들의 가슴 깊은 곳에 새겨진 상처와 그 근원을 탐색할 때마다, 강물처럼 도도히 후대로 흘러오는 감정의 눈물과 마주쳐 마음이 먹먹하다. 전쟁으로든, 독재로든 혹은 그 무슨 이유로든 저항할 수 없는 거대한 폭력 앞에 분노를 느꼈으나 무기력할 수밖에 없었고, 그러한 자신을 미워할 수밖에 없었던 어느 아버지는 억눌린 분노를 쉬

    정용신 판사(서울가정법원)
    몰입의 즐거움

    몰입의 즐거움

    완연한 봄이 되니 프로야구 페넌트레이스가 시작되었다. 야구는 규칙 개정을 가장 꺼리는 스포츠라는데, 올해는 ①투수 교체는 2분30초 내에 완료하고, ②타자의 두 발이 타석에서 벗어나면 벌금을 부과한다는 내용의 '스피드업' 규정이 강화되어 화제가 되고 있다. 야구경기를 보다보면 어떤 선수는 장갑을 고쳐 끼고, 헬멧을 벗었다가 다시 쓰고서야 타석에 들어선 후에도, 방망이로 홈플레이트 근처에 선을 긋고 스윙을 두 번 한 후에야 타격자세를 취한다. 그러곤 투수가 공 하나를 던질 때마다 같은 동작을 반복한다. 처음에는 '신중한 타자구나'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왠지 경기의 흐름을 끊고 선수와 팬들이 경기에 몰입하는 것을 방해하는 동작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사실 시간을 재보면 불과 8초 내외에 불과한데도. 아

    심활섭 판사(서울 고법)
    고통에 직면한다는 것

    고통에 직면한다는 것

    4월을 맞이하며 얼마 전 읽었던 글이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다. 1998년 독일 에쉐대(Eschede)역에서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 최악의 참사라는 열차사고로 101명이 사망하였다. 바퀴 손상과 부실한 열차 점검이 원인이었다. 유가족들은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철도청을 상대로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재판을 진행하면서, 트라우마를 떠올리는 기차역에 가지 못하고 기차를 타지도 못하는 회피 반응을 보였다. 생존자와 유가족이 회피 반응을 이기고 트라우마의 장소에 머무는 것은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 위해 참으로 중요한 일이지만, 내적인 치유력 없이 사건장소를 찾아가는 것은 오히려 상처를 악화시킬 수 있다고 한다. 독일 정신과 의사들과 심리학자들은 사고 직후부터 생존자와 유족들의 심리치료를 장기간 진행하였고,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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