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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걸림돌(Stolperstein)

    걸림돌(Stolperstein)

    독일 도시의 거리를 걷다보면 곳곳에서 ‘걸림돌(Stolperstein)’을 찾아볼 수 있는데, 이는 걸려 넘어지게 바닥에 설치한 거친 돌이라는 의미로 나치 강제수용소에 끌려간 희생자들의 이름을 새겨 넣은 명판이다. 1992년 독일의 행위예술가인 귄터 뎀니히가 나치 정권에 의해 희생된 유대인 등을 추모하며 발에 걸리는 돌처럼 이들의 비극을 영원히 기억하겠다는 취지에서 보도블록을 깨고 그 자리에 희생자들의 이름이 새겨진 명판을 설치하면서 시작된 것으로, 2015년 6월까지 독일을 포함한 유럽 18개국에 총 5만 3천 개 이상의 걸림돌이 설치되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독일 국민들은 도시 곳곳에 설치된 걸림돌로 인해 적지 않은 불편을 느끼면서도 이를 불편하다 말하거나 걸림돌을 제거하려 하지 않는다고 한다. 희생자

    이은혜 판사 (서울동부지법)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

    영국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의 지하에는 많은 훌륭한 사람이 묻혀 있다. 그들은 한결같이 좋은 대리석에 비문을 적었다. 그런데 정작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비문은 화강암으로 된 초라한 한 주교의 비문이다. 그 비문의 내용이 감동적이기 때문이다.  그 비문에는 '내가 젊고 자유로워서 상상력의 한계가 없을 때 나는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크나큰 꿈을 가졌다. 좀 더 나이가 들고 지혜를 얻었을 때 나는 세상이 변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내 넓은 시야를 조금 좁혀 내가 살고 있는 국가를 변화시키겠다고 결심을 한다. 그러나 그것 또한 불가능한 일이었다. 황혼의 나이가 되었을 때 나는 마지막 나의 자존심으로 나의 가장 가까이 있는 내 가족을 변화시키겠다는 마음을 정했다. 그러나 아무도 달라지는

    강영호 원로법관 (서울중앙지법)
    이모티콘의 사회학

    이모티콘의 사회학

    최근 SNS(Social Network Service) 사용이 보편화되면서 재판에도 당사자들 사이에 스마트폰 메시지나 카톡으로 주고받은 대화내용이 증거자료로 자주 등장하곤 한다. 심지어 요즘에는 차용증이나 계약서를 서면으로 작성하지 않고 주요내용을 문자 메시지 등으로 주고받은 후 그 대화내용을 증빙자료로 남겨 놓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증거자료로 제출된 SNS 대화내용을 보면 ‘텍스트’ 못지않게 자주 등장하는 것이 바로 이모티콘(Emoticon)이다.  공통된 학습체계도 없고, 표준 사용규칙도 없이 간단한 문자나 기호로 구성된 이모티콘은 이미 우리 사회 안에서 언어적 특성을 함유한 채 활발히 통용되고 있다. 이모티콘은 기성 언어에 비하여 표정과 행위, 감정을 간단한 문자나 기호로 형상화함으

    이은혜 판사 (서울동부지법)
    품격있는 사회

    품격있는 사회

    작년 12월 5일 미국에서 조지 H. W. 부시 대통령(미국 41대 대통령)에 대한 장례식이 있었다. 미국은 그 날을 공휴일로 지정하였다. 정치인으로 부시 대통령의 일생은 행복하지 않았다. 1992년 11월 대통령선거에서 빌 클린턴에게 패배해 4년 만에 백악관을 떠났다. 그러나 그는 품격이 있는 대통령이었다. 그는 퇴임 전 손수 쓴 편지를 빌 클린턴에게 남겼다. ‘빌’에게로 시작한 편지는 “부당하게 느껴지는 비판(criticism you may not think is fair)으로 힘들 때가 많겠지만, 그로 인해 용기를 잃는 일이 없기 바란다. 당신의 성공이 나라의 성공이므로 당신을 굳건하게 지지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 편지로 인해 전임자가 후임자에게 대통령직의 신성함을 일깨우며 성공을 기원하

    강영호 원로법관 (서울중앙지법)
    좋은 재판, 좋은 사람

    좋은 재판, 좋은 사람

    법관은 분쟁 또는 이해의 대립을 법률적으로 해결, 조정하는 판단(재판)을 내리는 권한을 가진 사람이다. 따라서 법관의 본분은 좋은 재판을 하는 데 있다. 그렇다면 좋은 재판은 어떤 재판인가. 2400년 전 소크라테스는 좋은 재판을 위한 법관의 자질로 “겸손하게 잘 듣고(to hear courteously), 현명하게 말하며(to answer wisely), 냉철하게 판단하고(to consider soberly), 치우치지 않게 결정해야 한다(to decide impartially)”는 4가지 덕목을 들었다. 김명수 대법원장님 역시 취임식에서 “좋은 재판은 투명하고 공정해야 하고, 적정하고 충실해야 하며, 쉽고 편안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여기에 덧붙여 누구는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재판이 좋은

    이은혜 판사 (서울동부지법)
    브레이크 없는 삶

    브레이크 없는 삶

    “일만 알고 휴식을 모르는 사람은 브레이크가 없는 자동차와 같이 위험하기 짝이 없고, 쉴 줄만 알고 일할 줄 모르는 사람은 모터가 없는 자동차와 마찬가지로 아무 쓸모가 없다.” 자동차의 왕이라고 불리는 헨리 포드의 말이다. 적정한 일과 휴식이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말이다.  최근 5년 동안 업무상 재해로 인정된 과로사 사망자는 1572명이라고 한다. 과로사는 말 그대로 과로, 장기간 노동, 스트레스 등으로 인해 질병에 대한 저항능력이 떨어져 사망에 이르는 것을 일컫는다. 과로사로 숨진 이들의 공통점은 대부분 뇌, 심혈관 질환으로 사망했다는 것이다. 우리의 심장과 뇌는 하루 24시간 유일하게 수면시간에만 휴식을 취할 수 있어 수면에 불편을 초래하는 것은 심장과 뇌의 건강도 위협받고 있다는 것이

    강영호 원로법관 (서울중앙지법)
    12월의 카이로스(kairos)

    12월의 카이로스(kairos)

    '다시 살아도 또 이 삶을 살고 싶도록 나는 살고 있는가' - 니체 - 헬라어에는 시간을 뜻하는 말로 크로노스(kronos)와 카이로스(kairos)가 있다. 크로노스는 가만히 있어도 흘러가는 자연적인 시간으로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객관적인 시간을 의미하는 반면에 카이로스는 나에게만 허락된 시간으로 나의 선택에 의해 특별한 의미가 부여된 주관적인 시간을 의미한다. 그런데 기회의 신이라고도 불리는 카이로스의 외모를 보면, 앞머리는 길고 무성한 곱슬머리인데 반해 뒷머리는 민머리이고, 왼손에는 저울을, 오른손에는 날카로운 칼을 들고 있으며, 발뒤꿈치와 등에는 날개가 달려있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이다. 앞머리가 무성한 이유는 사람들이 보았을 때 쉽게 붙잡을 수 있게 하기 위함이고, 뒷머리가 민머리인 이

    이은혜 판사 (서울동부지법)
    배드 파더스(Bad Fathers)

    배드 파더스(Bad Fathers)

    인터넷 사이트 '배드 파더스(Bad Fathers)'에 양육비를 주지 않는 전 배우자 150명의 신원을 공개한 일이 있다는 뉴스를 최근 접하였다. 이 사이트에는 이름과 얼굴 사진은 물론이고 출신 학교나 직장, 주지 않는 양육비 금액까지 명시된 사람도 있다고 한다. 사이트에 신원이 공개된 사람은 망신이 아닐 수 없다. 이같이 한 이유는 양육비를 주지 않는 부모를 압박하기 위한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4년간 소송으로 양육비 이행의무가 확정된 배우자 중 70%가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뉴스를 접하면서 오래전에 읽었던 조창인의 소설 '가시고기'가 생각났다. 주인공인 아버지는 부인과 이혼한 후 백혈병을 앓고 있는 아들을 키우면서 그의 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한다. 골수

    강영호 원로법관 (서울중앙지법)
    여백(餘白)과 공백(空白)

    여백(餘白)과 공백(空白)

    어떤 삶인들, 누구의 인생인들 바쁘지 않고 힘들지 않겠는가마는 내 삶조차 제대로 건사하지 못한 채로 타인의 삶에까지 관여해야 하는 법조인의 일상은 누구보다 분주하고 여유가 없다. 대부분의 법조인들은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일분, 일초를 아껴가며 쉴 틈 없이 일하기 마련이고, 잠시의 공백이라도 주어질라치면 불안한 마음에 혹시 오늘 할 일 중 무언가 놓친 것은 없는지 고민하느라 결국 그 공백마저 꽉꽉 채워 하루를 보내곤 한다. 판사들의 경우에도 10분 단위로 오전, 오후에 빽빽하게 재판기일을 지정한 다음, 수 십여 건의 사건들을 빈틈없이, 완벽하게, 일사천리로 진행한 후에야 비로소 한 숨 돌릴 여유가 생긴다. 일반적으로 법조인은 으레 사건을 완벽하게 파악하여 정확한 결론을 내린 다음, 상대

    이은혜 판사 (서울동부지법)
    "저를 사형에 처해 주십시요"

    "저를 사형에 처해 주십시요"

    최근 어머니를 죽인 아버지를 사형시켜 달라고 딸이 청와대 게시판에 청원을 한 일로 인해 사회에 큰 파문이 일었다. 오죽했으면 딸이 친아버지를 사회에서 영원히 격리시켜 달라고 청원했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형사합의 사건을 재판할 때이다. 두 아이를 죽인 어머니가 살인죄로 기소되어 재판받기 위하여 법정에 나왔다. 이 여인은 법정에 나오자마자 인정신문도 하기 전에 손을 번쩍 들더니 판사님 저에게 말을 할 시간을 달라고 요청하였다. 이에 허락하였더니 갑자기 방청석 쪽으로 몸을 돌리더니 “저는 두 아이를 죽인 엄마입니다. 저를 사형에 처해 주십시요”라고 절규하는 것이었다. 지금도 그 장면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사정은 이렇다. 한때 직장생활을 잘하였던 여인이 결혼도 하고 아이 2명을 낳

    강영호 원로법관 (서울중앙지법)
    도로무익(徒勞無益)

    도로무익(徒勞無益)

    목에 힘주다 보면 문틀에 머리 부딪혀 혹이 생긴다 우리는 아픈 생각만 하지 혹 생긴 연유를 모르고 인생을 깨닫지 못한다 낮추어도 낮추어도 우리는 죄가 많다 뽐내어본들 도로무익(徒勞無益) 시간이 너무 아깝구나 - 박경리 ‘우리들의 시간’ - 법원의 11월은 언제나 분주하다. 결론이 쉽게 나지 않는 장기미제도 올해 안에는 어느 정도 정리해야 하고, 상반기 내내 치열하게 다투던 까다로운 사건들도 하반기에는 결론지어야 하는 판사의 마음은 누구보다 분주할 수밖에 없다. 비단 사건처리뿐만 아니라 통상 1~2년 단위로 사무분담이 변경되고 인사이동을 하게 되는 판사에게 있어서, 11월은 지난 한해를 되돌아보고 새로운 시작을 준비해야하는 유독 생각이 많아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은혜 판사 (서울동부지법)
    좋은 판결

    좋은 판결

    솔로몬 왕 앞에 창기 두 여인이 섰다. 두 여인은 한집에 사는데, 사흘 간격으로 아이를 낳았다. 잠을 자다가 한 여인의 아이가 깔려 죽었다. 둘 사이에 분쟁이 발생했다. 산 아이가 자기 아이라는 것이다. 왕 앞에까지 와서 재판을 받는 것을 보면 이 사건은 사회적으로 큰 이슈였던 것 같다. 당시에는 유전자감식 등 친자를 구별하는 방법이 없으니 그 아이의 친어머니가 누구인지 분별해 내는 것은 참으로 어려웠을 것 같다. 솔로몬 왕은 칼을 가져와서 그 칼로 아이를 반으로 나누어 절반씩 주라고 명한다. 그러자 그 아이의 친어머니가 “그 아이를 저 여인에게 주시고 죽이지 말라”고 절규한다. 솔로몬 왕은 절규하는 여인이 친어머니이니 산 아이를 그 여인에게 주라고 판결한다. 이것이 그 유명한 솔로몬이 한

    강영호 원로법관 (서울중앙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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