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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法臺에서 리스트

    여기는 행정법원입니다

    여기는 행정법원입니다

    재판을 하다 보면 탄원서를 접할 일이 많다. 탄원서의 첫머리는 대개 ‘존경하는 ○○○ 판사님’으로 시작하는데, 종종 ‘재판장님’으로 시작하는 것도 있고 드물게는 ‘주심 판사님’이 함께 등장하기도 한다. 그런데 행정법원에 근무하면서는 ‘행정심판위원장님’을 찾는 탄원서를 자주 보게 된다. 대개 행정심판 단계에서 작성한 것을 한 번 더 사용하느라 생기는 일이니 그 자체로 크게 마음 쓸 일은 아니다. 문제는 본인이 행정법원에서 재판을 받는다는 의미를 정말로 잘 모른다는 데 있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법원과 행정청을, 재판과 심판을 구분하지 못한다. 이의신청과 행정심판, 그리고 행정재판의 차이를 잘 알지 못하여 우왕좌왕하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자칫 제소기간을 놓쳐 버리기도 한다. 다투어야 할

    한지형 판사 (서울행정법원)
    떨리는 지남철

    떨리는 지남철

    북극을 가리키는 지남철은 무엇이 두려운지 항상 그 바늘 끝을 떨고 있다. 여윈 바늘 끝이 떨고 있는 한 그 지남철은 자기에게 지니워진 사명을 완수하려는 의사를 잊지 않고 있음이 분명하며 바늘이 가리키는 방향을 믿어도 좋다. 만일 그 바늘 끝이 불안스러워 보이는 전율을 멈추고 어느 한쪽에 고정될 때 우리는 그것을 버려야 한다. 이미 지남철이 아니기 때문이다(고 민영규 교수가 예루살렘 입성기에서 쓴 글을 고 신영복 교수가 여러 책에서 인용하여 유명해 진 글임). 강형주 전 중앙지방법원장님께서 얼마 전 퇴임하시면서 남기신 마지막 퇴임사에서 이 글을 인용하면서 "떨리는 지남철처럼 사건을, 당사자를, 국민을, 민원인을 대해 주기 바란다"고 당부하셨다. 법관의 역할이 날로 증대하여 오늘날에는 법관들이 재판을

    박영호 부장판사 (서울중앙지법)
    무겁지만 그래도

    무겁지만 그래도

    처음으로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한 날이었다. 일요일 당직 판사 순서가 돌아와 늦잠과 여유를 반납하고 출근했다. 그 날 내가 구속 여부를 결정한 피의자는 10명이 훨씬 넘었는데 그 중 상당수에게 구속영장을 발부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집으로 돌아와 하루 종일 긴장했던 마음을 내려놓고 따뜻한 방에 앉아 있다가 문득 오늘 내가 구속영장을 발부한 그 피의자들은 지금 어떤 모습으로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순간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시 긴장이 몰려왔고 더 이상 편안하게 앉아 있기가 어려웠다. 결정의 옳고 그름을 떠나, 가족 곁에서 따뜻한 밤을 보낼 수 있었던 사람을 구속시켜 구치소 찬 바닥에 가두어 둔 것은 바로 나였으니까. 그 밤 내가 누리던 따뜻한 공기와 앉아있던 푹신한 소파가 무척이나

    김미경 부장판사 (부산지법)
    진정한 형제애와 가족애가 필요한 때

    진정한 형제애와 가족애가 필요한 때

    워터게이트 사건을 특종 보도한 밥 우드워드가 1979년 미국 연방대법원의 여러 가지 내부적인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소개한 ‘지혜의 아홉 기둥’이란 제목으로 국내에 소개된 책의 영어 원제는 형제들이라는 의미의 ‘The Brethren’이다. 미 연방 대법원의 대법관끼리 서로 형제라고 부르는 관습을 반영한 제목이다. 미국 연방 대법관들의 경우 정치적인 성향이 확고하고 뚜렷하기 때문에 1~2명의 swing vote(유동표)를 제외하고 보수적인 공화당 성향의 대법관들과 진보적인 민주당 성향의 대법관들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의 선고를 앞두고 쟁점 사안에 대한 상대방의 생각을 원색적으로 비난하면서 매우 격렬하게 언쟁을 벌이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상대방의 인격 내지는 능력과 법관으로서의 양심을 의심하거나 이를 깎아

    박영호 부장판사 (서울중앙지법)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60대의 오빠가 세 여동생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또박또박 적은 소장에는 뾰족한 미움이, 법정에 나온 그의 눈에는 매서운 분노가 배어 있었고, 그의 말은 한없이 날카로웠다. 어렸을 때부터 사고를 치던 그는 부모가 자신을 탐탁지 않게 여겨 재산을 남겨주지 않았다고 생각했고, 부모 사망 후 여동생들을 상대로 줄 소송을 벌이며 미움을 키워왔다. 결국 그는 온 종일의 시간과 얼마 남지 않은 재산을 전부 소송에 쏟아 부었고, 견디지 못한 아내와 자식들은 그의 곁을 떠났지만, 그의 미움은 여전했다. 오빠의 모진 공격에 동생들은 그저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몇 해 전 4남매가 계곡에 놀러가 사이좋게 웃으며 찍은 사진. 그들은 원래 그런 사이였다. 이 오빠뿐이랴. 우리 사회를 뒤덮고 있는 요즘

    김미경 부장판사 (부산지법)
    이판사판 야단법석

    이판사판 야단법석

    추가진상조사 위원회의 발표로 법원 전체가 뒤숭숭하다. 추가진상조사 위원회가 발표한 자료 중에는 법원행정처에서 소장 판사들이 주된 회원인 ‘이판사판 야단법석’이라는 다음(Daum) 카페에 대한 현황을 보고한 자료도 있는데, 아이러니 하게도 그 카페 이름처럼 법원의 상황이 실제로 이판사판에다 야단법석한 형국이다. 원래 이판사판과 야단법석은 모두 불교에서 나온 용어이다. 야단법석은 '야외에 자리를 마련하여 부처님의 말씀을 듣는 자리'라는 용어이다. 이판(理判)은 속세와의 인연을 끊고 도를 닦는 일을 말하고, 그런 일을 하는 스님을 이판승이라고 하며, 사판(事判)은 절의 재물과 사무를 맡아 처리하는 일을 말하고, 그런 일을 하는 스님을 사판승이라고 한다. 이판승들이 수행정진에 몰두할 수 있도록 여러 행정업무

    박영호 부장판사 (서울중앙지법)
    안 그런 척 하기

    안 그런 척 하기

    18살 소녀가 이번만 용서해 주면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힘없는 목소리로 최후 진술을 마쳤다. 그러나 그 소녀의 아버지는 자기 딸을 기어이 구속시켜 달라고 방청석에서 울먹였다. 벌써 몇 번 처벌을 받았으나 딸은 나아질 기미가 없다. 어느 밤 아파트 주차장 한 구석에서 검은 비닐봉지에 머리를 박고 본드를 마신 채 아빠도 알아보지 못하는 딸을 발견하고는 더 이상 자신이 딸을 지킬 수 없을 것 같았다며, 교도소에서는 본드를 할 수 없으니 제발 구속시켜 달라는 것이었다. 그 소녀도, 그 아버지도 서로를 쳐다보지 못한 채 소리 내어 울기만 했다. 뽀얀 얼굴에 맑은 눈빛을 하고 있는 그 예쁜 딸을 구속시켜 달라는 아버지의 절규는 곧 내 눈시울도 뜨겁게 만들 것 같았다. 판사도 동참하여 법정에서 같이 한

    김미경 부장판사 (부산지법)
    대법원장이 되고 싶었던 대통령

    대법원장이 되고 싶었던 대통령

    미국 역사상 대통령과 대법원장을 모두 역임한 사람이 유일하게 있다. 우리에게 가쓰라 태프트 밀약으로 유명한 윌리엄 태프트이다. 그는 1908년 루스벨트의 추천으로 경선을 거치지 않고 공화당 대통령후보로 지명되었고, 민주당 후보를 꺾고 제27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하지만 주 법원 판사, 연방항소법원 판사 등으로 근무하면서 대법원장이 되는 것이 인생의 소원이었던 그는 대통령 선거에서 압승한 뒤에도 “내가 지금 대법원장이라면 무척 편안했을 것인데, 대통령이 된 나는 물 밖으로 나온 물고기 같은 느낌이다”라고 말하면서 그다지 기뻐하지 않았다고 한다. 태프트 대통령이 에드워드 화이트를 대법원장에 지명하면서도 “내가 가고 싶은 자리에 딴 사람을 지명해야 하는 아이러니를 보고 있다”고 말했을 정도로 그는 대법

    박영호 부장판사 (서울중앙지법)
    그 삶을 상상하기

    그 삶을 상상하기

    아무리 그래도 집주인인 원고의 행동은 심한 것 같았다. "원고,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해 보세요. 피고가 오죽 답답하면 그랬겠어요?" 자기를 상대방의 상황에 놓고 자신의 행동을 이해해 보라고 주문해봤다. 그렇다면 법대에 앉아 있는 나는 그렇게 해 보았나? 수많은 타인의 삶을 앞에 두고 있는 것이 재판이다. 찰나에 일어난 사건으로 법정에 오게 되었더라도 삶이 아닌 사건은 없다. 마사 누스바움은 책 ‘시적 정의’에서 재판관은 타인의 삶을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수많은 법령과 축적된 판례에서 나온 법리는 객관화된 기준일 뿐, 개인의 삶 하나하나를 설명해내는 공식이 될 수는 없다. 당사자의 주장을 표면적으로만 이해할 것이 아니라, 그 삶과 그 사건이 발생한 상황으로 들어가

    김미경 부장판사 (부산지법)
    어둠을 물리치는 새해 태양아 힘차게 솟아라!

    어둠을 물리치는 새해 태양아 힘차게 솟아라!

    판사는 어떤 사실관계를 직접 목격하거나 경험하지 못한 채 다른 사람이 목격하거나 경험한 것을 전해 듣거나, 시간이 지나서 변질되거나 퇴색된 자료들을 종합하여 원·피고나 검사가 주장하는 가설 중 어느 것이 더 맞는지 손을 들어주는 역할을 수행하는 직업이다. 사건을 직접 목격하거나 경험한 당사자 본인조차도 종종 사실을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왜곡하여 인식하기 때문에 재판에서 인정되는 사실관계가 실제 사실관계와 다르거나 부정확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그래서 필자는 재판이란 천막을 가리고 천막 뒤에 숨어 있는 물건이 무엇인지 가려내는 일과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천막이 물건을 가리고 있어 정확하게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천막 뒤에 코뿔소가 숨어 있는데도 다수의 사람들은 코 부분을 간과

    박영호 부장판사 (서울중앙지법)
    자존심 지켜주는 재판

    자존심 지켜주는 재판

    사업주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면서 여러 주장을 하는 원고에게 이건이래서 저건저래서 어려울 것 같다고 설명하며 주장을 하나씩 정리해 나갔다. 원고는 차분하게 설명을 듣고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거의 다 정리되어갈 무렵 요것도 요렇게 하는 게 어떠냐고 했더니, 원고는 지금과는 다른 태도로 "판사님, 안 됩니다. 그건 제 자존심입니다"라고 했다. 자존심. 더 이상 그에게 정리하라고 할 수 없는 선이었다. 다 버려도 이거 하나만은 지키고 싶은 자존심이지만, 지키며 살기가 쉽지 않다. 물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고집과는 구별해야 한다. 자존심은 스스로 '나'답다고 느끼는 마지노선이다. 충실한 재판을 못했다는 생각이 들 때, 진실과 정의 앞에서 머뭇거렸구나 싶은 순간이 있을 때, 판사로서

    김미경 부장판사 (부산지법)
    칭송받는 정치적인 재판

    칭송받는 정치적인 재판

    미국의 대공황 시대에 빵 한 덩어리를 훔쳐 기소된 노인과 재판장 자신에게 10달러의 벌금형을 선고하여 벌금을 대신 내주고, 방청객들에게도 50센트의 벌금형을 선고하여 $47.5을 거둬들여 노인을 도와주는 재판을 한 것으로 유명한 라과디아 ‘판사’의 일화는 매우 유명하다. 이 일화에서 라과디아를 ‘판사’로만 칭하고 있기 때문에 대다수 법조인들조차도 라과디아가 ‘판사’로 재직하면서 이 재판을 한 후 그 인기로 3선 뉴욕시장이 된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실제 미국에서 전해지는 이야기에 의하면 이 재판은 라과디아가 뉴욕시장으로 재직하던 1935년에 있었고, 당시에는 시장에게 치안판사의 권한도 주어졌는데, 그가 야간 법원을 순회하다가 당직 치안판사를 집에 보내고 대신 재판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라과디아

    박영호 부장판사 (서울중앙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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