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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사부장!

    천사부장!

    최근 사무분담의 변경으로 민사항소 재판부의 부장으로 보임을 받게 되면서, 주변 사람들의 의견을 두루 섭렵하여 취합한 천사부장이 되기 위한 행동요령은 다음과 같다. 1. 배석판사님들과 사이에서는 출, 퇴근 인사를 생략하는 한편 칼 퇴근을 하여 저녁 식사를 같이 할 기회 자체를 만들지 말고, 신건메모는 직접 작성하며, 조정사건은 부장이 직접 처리하되 복잡하고 어려운 사건일수록 조정으로 종국해서 작성할 판결문 수를 최소화할 것. 2. 법원 직원들과 사이에서는 정확한 시간계산을 토대로 한 적정한 기일지정과 신속한 재판진행으로 퇴근 시간 이전에 재판을 종료하고, 휴가 및 출장계획은 미리 공유하며, 분기에 1번씩 뮤지컬 감상, 야구장 단체 관람 등 기억에 남을 이벤트를 열어 줄 것. 그런데 실제

    박영호 부장판사 (서울중앙지법)
    판사라는 마음으로

    판사라는 마음으로

    명색이 판사인데, 틀리면 어쩌나. 얼마 전 ‘당신이 판사입니다’라는 온라인 양형 체험을 해보면서 든 생각이다. 반드시 그것만 정답이랄 수도 없는 일이고 누가 알 것도 아니지만 왠지 걱정되어 주위를 살피며 몰래 해보았다. 양형위원회가 출범한 지 10년이 지났고 대부분의 범죄 유형에 양형기준이 마련되었지만 '솜방망이', '고무줄' 등 양형에 관한 비판 기사의 단골 용어들에는 변함이 없다. 오히려, 가끔 댓글을 보면 일반 국민들이 ‘어이없다’고 생각하는 경우는 점점 많아지는 것만 같다. 분위기를 어떻게든 바꿔보려고 재미난 프로그램을 만든 모양이다. 양형은 판사에게도 어렵다. 요소 하나하나 확인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저마다의 기준으로 그 요소들을 저울질하는 일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양형기준

    한지형 판사 (서울행정법원)
    법대는 trench(참호)가 아니라 bench입니다

    법대는 trench(참호)가 아니라 bench입니다

    근래에 벌어지고 있는 법원 내부의 사태는 필자로 하여금 도무지 어떠한 글도 쓰기 힘들 정도로 마음과 몸을 아프게 만들었다. 필자는 “내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가 내 삶의 10가지 철학 중 하나일 정도로 ‘법관’이라는 직업이 주는 가오를 소중히 여겨 왔는데(서울중앙지방법원 법원칼럼 2017. 5. 1.자 참고), 근래의 사태로 인하여 필자를 비롯한 주변 판사들의 가오는 땅 바닥에 떨어진 듯하다. 법관으로서 가오 하나만을 근거로 법관 경력 기간 동안 가족들과의 행복한 시간을 희생해가면서 재판 기록과 사건 이면에 숨어 있는 진실과 묵묵히 씨름하였던 대부분의 평범한 법관들의 허망함과 허탈함은 도대체 누구로부터 어디에서 어떻게 보상받으라는 것인지 참으로 안타깝다.  영어로는 판사가

    박영호 부장판사 (서울중앙지법)
    혼자서는 어려워요

    혼자서는 어려워요

    “꺼야 꺼야 할꺼야 혼자서도 잘할꺼야!” 어린 시절 많이 듣던 동요 속 한 구절이다. 올해 7살이 된 딸아이는 요즘 부쩍 혼자 할 수 있다는 말을 많이 한다. 때로는 도와주려는 걸 오히려 싫어하는 눈치여서 머쓱할 때도 있다. 이런 상황은 법정에서도 펼쳐진다. “제가 다 찾아보고 왔는데 무슨 말씀이십니까?” 원고의 주장이 법리에 맞지 않는 것 같다고 하자 반발하며 서류를 한 묶음 내보인다. 읽어보니 모 지식 포털 사이트 검색 결과다. 정확한 것이 아니니 법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보시는 게 좋겠다고 하자 혼자서도 잘 할 수 있다며 도리어 화를 낸다. ‘나홀로 소송’이 많아졌다. 차분하게 말씀도 잘 하고 제 때 필요한 증거를 제출하는 분이 없지 않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훨씬 많다. 준비해 와야 할 것

    한지형 판사 (서울행정법원)
    가상의 하루가 아닌 현실의 하루

    가상의 하루가 아닌 현실의 하루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핸드폰에 설치해 놓은 대한민국 법원 내부자용 앱을 켜고, 접수 문건과 알림설정을 해둔 사건들을 일일이 확인한다. 어젯밤 잠들 때까지만 해도 원고가 동일하고 피고만 다른 5건 모두 당사자 쌍방이 이의신청을 하지 않아 화해권고가 확정되는 줄 알고 기쁜 마음으로 숙면을 취했는데, 5건 모두 이의신청서가 들어와 있다. 아침부터 기분이 살짝 나빠지기 시작한다. 출근길 지하철 안, 법원 관련 기사를 모아 놓은 핸드폰 앱인 MNC Viewer를 통하여 법원 관련 기사를 다 훑어보아도 시간이 남는다. 무료하여 대한민국 법원 내부자용 앱을 켜고 보니, 기일지정 신청서가 접수되어 있다. 당해 사건 기록 전체를 띄워서 보니 석명준비명령이 필요해 보여 법원 전자메일에 접속하여 석명준비명령

    박영호 부장판사 (서울중앙지법)
    '각하'의 눈물

    '각하'의 눈물

    어느 날 사고로 남편을 잃은 부인이 임시로 수급자 지위를 인정해 달라는 신청을 해 왔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 적용되는 근로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유족급여를 받지 못하게 되어 당장 생계가 막막하다고 한다. 사정은 딱하지만 각하(却下) 사안이다. "우리나라에서 허용되지 않는 소송을 본안으로 하는 가처분 신청은 불가능하다"는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지만 언뜻 눈물이 보인다. 늦기 전에 취소소송을 접수하라고 넌지시 알려드리지만, 그 소송에서 승소를 하더라도 인과관계가 문제되어 다시 산업재해 인정을 받지 못할 수도 있음을 잘 알기 때문에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우리나라에서는 행정청에 어떠한 의무를 부과하여 달라는 식의 의무이행소송이 허용되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이다. 의무이행소송이 인정되지 않으니 이를

    한지형 판사 (서울행정법원)
    목숨과 바꾼 한 턱

    목숨과 바꾼 한 턱

    한 턱을 내겠다고 했을 때 한 턱은 과연 얼마일까? 1997년 서울남부지법 박해식 판사님은 한 턱은 맨 처음 주문한 것의 금액만을 의미하고, 그 이후에 추가 주문된 것은 참석자들이 나누어서 부담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조정을 하였고, 그 이후 한 턱을 내겠다고 한 사람은 밥 한 그릇과 소주 한 병만 먼저 주문을 하는 것이 유행한 적이 있다. 필자에게도 한 턱과 관련해서 지금도 기억나는 가슴 아픈 조정 사건이 1건 있다. 시골에 살던 친구 A가 그해 배추 값이 엄청 좋아서 대박이 났다며 배추 판 돈을 들고 상경하여 친구 B에게 한 턱을 내겠다고 제안을 하였고, 그 후 실제 A와 B가 서울 어느 좋은 음식점에서 상봉하여 맛난 음식과 술을 마음껏 먹었다. 그런데 A가 화장실을 가면서 계산을 하려고 가격을 물

    박영호 부장판사 (서울중앙지법)
    'ㄴㄴ'의 추억

    'ㄴㄴ'의 추억

    “친구한테는 만졌다고 해놓고 이제 와서 아니라는 건가요?” 강제추행 사건 피고인에게 묻자 그렇게 말한 적이 없단다. 빤한 거짓말을 한다는 생각에 채팅 기록을 스크린에 띄우고 다그쳤다. 언성도 높아졌다. “여기, 친구가 물으니까 본인이 ‘ㄴㄴ’썼네요. ‘네네’란 거잖아요!” 순간 법정이 조용해졌다. 피고인은 이것도 모르냐는 눈빛으로 말했다. “판사님, 그거 ‘노노’인데요.” 민망함, 미안함, 다행스러움과 함께 이런 생각이 들었다. ‘미리 알려 주셔야 알죠.’ 판사가 모르는 건 초성체만이 아니다. 대부분의 전문용어도 모르기는 매한가지다. 지금 담당하는 행정사건 기록 곳곳에도 처음 들어보는 용어들이 가득하다. 사건에서 판사가 자주 접하는 것은 법령이지 그 사건 속 세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산업재

    한지형 판사 (서울행정법원)
    나의 건배사, 우문현답

    나의 건배사, 우문현답

    법관은 현장을 목격하지 않은 채 당사자나 증인의 간접적인 증언만을 토대로 재판을 하기 때문에 한순간이라도 방심하면 오판이라는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법관들은 현장검증을 하거나, 최소한 네이버나 다음과 같은 포털사이트에서 제공해주는 위성사진이나 로드 뷰, 지적 편집도, 교통 CCTV 영상 등을 통하여 현장 상황을 간접적으로라도 파악하여 최대한 사건의 실상을 파악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간혹 그런 노력을 게을리 하는 바람에 오판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필자가 상급심으로 처리한 사건 가운데 피고인이 좌회전 대기 차량 줄에 서 있다 유턴을 시도하다가 직진해 오던 피해 오토바이를 충돌한 사건에서, 다른 차량들은 피고인 차량이 유턴할 당시에도 계속 좌회전 대기 중이었기 때문에 피고인 차

    박영호 부장판사 (서울중앙지법)
    판사의 눈물

    판사의 눈물

    “판사들은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것 같다”라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법정에서 표정 변화도 별로 없고 무슨 말을 해도 맞장구를 쳐 주지 않아서 그렇단다. 무엇보다, 최고의 공감 표현은 함께 울어주는 것이라는데 법대에 앉은 판사들은 여간해선 눈물을 보이지 않으니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다. 눈물 섞인 슬픈 사정을 듣고 나서도 그저 간단한 위로의 말을 건넬 뿐 눈시울을 붉히는 일은 많지 않다. 오히려 “이해는 하지만 동의한다는 뜻은 아닙니다”라는 말로 애써 선을 긋기 일쑤다. 어린 시절부터 산타할아버지 선물을 못 받는 ‘우는 아이’는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태어날 때를 제외하고는 부모가 돌아가셨거나 나라가 망했을 때만 울어야 한다는 고리타분한 가르침 탓이기도 하겠다. 그러나 판사가 눈물을

    한지형 판사 (서울행정법원)
    쓸개 빠진 여자

    쓸개 빠진 여자

    일반인이 생각하는 상식과 전문가의 결론이 다른 경우가 꽤나 많다. 환자의 신체 부위에 손상이 발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신체 부위의 특성상 인체 기능에 아무런 지장이 없어 환자에게 아무런 노동능력상실이 없다는 이유로 재산상 손해배상을 못해주는 경우도 그런 경우에 속한다. 이런 경우에 통상의 당사자들은 욕설 및 고성으로 판사와 상대방 및 그 변호사를 괴롭히게 마련인데, 필자가 담당하던 사건 중에 당사자 본인의 위트 넘친 기지로 피고 측이 제법 고액의 금액을 손해배상금으로 자진해서 주겠다고 하여 원만하게 조정된 사건이 지금도 기억난다. 그 사건에서 환자는 담낭에 담석이 있다고 해서 담낭을 일부 절제하였음에도 담석이 나오지 않자 소송을 제기한 후 손해배상액을 산정하기 위해 대학병원에 신체감정을 촉탁하였다. 그런

    박영호 부장판사 (서울중앙지법)
    얼짱 각도

    얼짱 각도

    얼짱 각도란 말이 있다. 45도 오른쪽 위에 렌즈를 놓고 고개를 조금 숙인 채 눈을 살짝 올려 뜨면 실물보다 멋지게, 예쁘게 나온다고 한다. 형사 법정에도 얼짱 각도가 있다. 법대보다 낮은 곳에, 법대와 직각으로 놓여 있는 피고인석 이야기이다. 판사의 눈에, 고개를 숙이고 있는 피고인의 얼굴은 어지간하면 잘못을 깊이 뉘우치는 선한 인상으로 보이기 마련이다. 재판 내내 그런 줄 알다가 선고할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정면에 선 피고인의 얼굴을 바로 보고 아차 싶을 때도 있다. 그대로 선고하기 머뭇거려질 정도여서 선고기일을 연기한 적도 있었다. 10여 년 전에는 법대 정면에 피고인석이 있었다. 변호인석은 지금처럼 법대와 직각인 채로 검사석과 마주해 있었다. 그러다 보니 피고인이 재판 중에 변호인의 도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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