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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더 저지' 최영을 기다리며

    '피더 저지' 최영을 기다리며

    미국 연방항소법원의 판사 중 그들 밑에서 근무한 로 클럭 가운데 연방대법원의 로클럭으로 가장 많이 선발되는 판사를 대법원 로클럭 공급책이라는 의미에서 ‘Feeder judge’라고 부른다. 피더 저지가 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자질은 뛰어난 로 클럭을 잘 선발해서 잘 교육하는 실력이라고 한다.  데이빗 S. 타텔(David S. Tatel) 판사는 2009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대법원에 가장 많은 로클럭을 보낸 10인의 피더 저지 중 한 명으로서, 미국 최초의 시각장애인 연방판사이기도 하다(리처드 번스타인, 리처드 타이텔만도 시각 장애인인 주 대법관이다).    시각장애인이라는 현실적 제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리차드 포스너를 비롯한 이름난 항소법원 판사들을 제치고 타텔이

    박영호 부장판사 (서울중앙지법
    재판장의 질문

    재판장의 질문

    가끔 다른 판사의 법정을 방청할 기회가 있는데, 딱딱하고 차가운 방청석 의자에 앉으면 왠지 모를 긴장감이 느껴졌다. 나도 이런데 재판 당사자는 얼마나 긴장될까? 그런데 제대로 재판을 하려면 그 긴장은 풀어야 한다. 내가 배석판사일 때 우리 부장님은 이렇게 했다. 복권에 당첨된 피고가 증인석에 앉았다. 원고는 피고와 같이 조합한 숫자대로 복권을 사서 당첨되면 반반씩 나누기로 했다고 주장했지만, 당첨된 숫자가 그 조합한 숫자라는 점에 대한 마땅한 증거가 없자 피고본인신문을 신청했던 거였다. 피고는 말 한마디로 큰 돈을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인지 심하게 떨면서 원고대리인의 질문조차 알아듣지 못하고 시간만 흘러갔다. 그 때 부장님이 하나 물어보겠다며 마이크를 당기셨다. “피고, 이거 아주 중요

    김미경 부장판사 (부산지법)
    법복 대여의 의미

    법복 대여의 의미

    많은 사람들은 법관들이 입는 법복은 법관으로 임용될 때 그 법관의 신체 사이즈에 맞추어 제작된 후 그 법관에게 영구히 주어지는 것으로 알고 있고, 심지어 일부 법관들도 그렇게 알고 있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법관 등의 법복에 관한 규칙 제3조에서는 법관에게 법복 1착을 대여하고, 그 대여기간은 재판업무를 수행하는 기간으로 하며, 법관이 대여기간 안에 전직, 퇴직 또는 사망하였을 때에는 법복을 반납하여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심지어 2000년 이전에는 그 대여기간이 2년으로 한정되어 있었다. 대법원 규칙에서 법관에게 법복을 대여하도록 규정하는 한편 전직, 퇴직 시에는 법복을 반납하도록 한 것은 법복을 통하여 법관에게 부여되는 재판장으로서의 권한은 어디까지나 법관으로 임명되는 순간 국민으로

    박영호 부장판사 (서울중앙지법)
    들어볼게요

    들어볼게요

    청송(聽訟), 재판은 듣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듣는 귀는 마음에도 있어야 한다. 원고는 돈을 빌려주고 못 받았다고 하고, 피고는 원고를 도와주고 사례로 받았다고 한다. 둘은 친구 사이였다. 피고에게 어떻게 돈을 받게 되었는지 설명해 보라고 했더니, 원고가 끼어들어 ‘쟤는 입만 열면 거짓말’이라며 들을 필요가 없다고 한다. 나는 짐짓 부드러운 말로 "들어볼게요" 했는데, 피고는 대답 대신 하소연을 시작했다. 장사도 안 되고 아이 학원비 낼 돈도 없어 너무 어렵다는 말이 이어진다. 결국 내가 "아유 요즘 안 어려운 사람이 있나요. 다 어렵지요. 근데 돈은 어떻게 받았어요?"라며 재촉하고 말았고, 순간 피고는 얼굴을 굳히고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첫 변론은 판사 덕분에, 그렇게 싸늘하

    김미경 부장판사 (부산지법)
    모범(?) 재판

    모범(?) 재판

    각자의 인생은 각자가 사는 것이고, 사람들은 저마다의 가치관과 철학이 있기 때문에 인생에는 객관적인 정답이 없다고들 한다. 따라서 사람들은 각자가 추구하는 인생의 목표나 가치관에 따라 롤 모델이 다를 수밖에 없고, 누군가에게는 모범적인 인생을 사는 것처럼 인식되는 사람이 다른 이에게는 그냥 평범한 인생을 사는 것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으며, 심지어 누군가의 롤 모델인 사람들 중 상당수가 자신의 인생에서 여러 구석들을 후회하면서 아쉬워한다. 그래서 “60이 되어도 몰라요, 이게 내가 처음 살아보는 거잖아. 나 67살이 처음이야. 인생이 처음 살아보는 것이기 때문에 아쉬울 수밖에 없어.” 탤런트 윤여정씨가 꽃보다 누나라는 프로에서 한 이 발언이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어록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박영호 부장판사 (서울중앙지법)
    평생 한 번 있는 재판

    평생 한 번 있는 재판

    법정 뒷문이 빼꼼히 열리더니 보라색 카디건을 맵시 나게 입고 다홍빛 립스틱을 곱게 바른 할머니가 조용히 들어와 앉는데, 그 모습이 좋아 시선이 머문다. 할머니의 작은 창고가 경계를 넘었다고 옆 토지 소유 회사가 철거를 청구한 사건이었다. 재판 진행을 마치고, 돌아서는 할머니에게 조심히 가시라고 인사하며 연세를 여쭤봤다. 여든여섯. 너무 고우시다고 했더니, 내내 조용하시던 할머니가 수줍게 뒤돌아 나에게 미소를 보여주신다. 같이 온 딸이 말한다. "좋은 옷 입고 가야 한다며 아침 내내 골라 입으신 거예요. 판사님 보신다고 화장도 예쁘게 하셨어요. 아흔 평생 처음 재판을 하게 되었는데 바르게 해서 가야 된다고요." 할머니의 그 마음이 참 감사했다. 그런데 나는 오늘 무슨 마음으로 옷을 골랐을까

    김미경 부장판사 (부산지법)
    손가락 이야기!

    손가락 이야기!

    법관들이 가장 받고 싶어 하는 재판 당사자나 대리인의 행동은 아마도 재판 진행이나 판결이 최고였다는 의미에서 해주는 '엄지 척'일 것이다. 원·피고 중 일방이 법관으로부터 가장 받고 싶어 하는 제스쳐(법관들이 청각 장애인이나 외국인 등과 같이 언어나 한국말로 소통하기 어려운 사안에서 제스쳐를 함께 사용하는 경우에) 또한 당신이 재판에서 이겼다는 의미에서 '승소'라는 말과 함께 해주는 '엄지 척'일 것이다. 법관뿐만 아니라 원·피고 쌍방 당사자 모두가 좋아하는 손가락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새끼손가락일 것이다. 쌍방 당사자 간에 조정이 성립된 후 그 조정을 성실히 이행하겠다는 의미에서 새끼손가락을 걸면서 약속할 때야 말로 당사자뿐만 아니라 법관까지도 즐거운 순간이기에 새끼손가락은 재판

    박영호 부장판사 (서울중앙지법)
    영화 같은 재판, 게임 같은 재판, 그냥 재판

    영화 같은 재판, 게임 같은 재판, 그냥 재판

    회심의 미소를 날리며 검사가 제출하는 녹음파일. 범행 중임이 드러나는 피고인의 뻔뻔한 목소리가 법정에 울려 퍼진다. 이 영화에서는 유죄가 확실하다. 법원에 재판하러 오는 당사자는 이처럼 극적인 결말을 기대할지도 모르겠다. 혹은 치열한 논쟁 가운데 똑 부러지는 판사가 얼른 결론을 콕 찍어 줄 것이라고 기대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영화는 영화일 뿐, 그동안 없던 증거가 소송이 되었다고 짠하고 나타나는 일은 없다. 중요하지 않은 내용은 서류로 작성했지만 중요하고 결정적인 약속은 구두로 했고, 본 사람은 없고, 돈은 현금으로 지급했단다. 판사는 증거를 제출하라고 할 수밖에 없고, 원고는 이런 판사가 야속하다. 확실한 증거가 있었으면 왜 여기까지 왔겠냐고…. 치밀하게 추궁해서 결정적 증거를 찾는 영

    김미경 부장판사 (부산지법)
    하모와 갯장어

    하모와 갯장어

    가을에는 전어. 그럼 여름은? 부산에 근무하며 알게 되었는데, 여름에는 하모회가 제 맛이다. 지난 여름, 하모 사건을 맡았다. 거래장부가 증거로 제출되었는데 끝까지 넘겨도 하모는 안 보인다. 첫 변론기일, 멀리 남해에서 올라온 원고에게 물었다. 장부에 광어, 전어, 갯장어 등등은 있는데 하모는 없네요 하니까, 원고가 동그란 눈으로 “갯장어가 하모 아닙니꺼…”한다(하모는 갯장어의 일본 이름). 법정에 실소가 터져 나오더니 이내 한숨소리가 들린다. 원고와 피고의 눈에는 불안함, 실망감을 감출 수 없다. 변호사는 자신이 그렇게 말한 듯 부끄러워한다. 재판을 진행하다 보면 좀 속된 표현이긴 하지만 이렇게 탈탈 털리는 날이 있다. 이 날도 그랬다. 하모가 갯장어라는 것이 쟁점은 아니었지만, 저

    김미경 부장판사 (부산지법)
    존경받는 법조인의 기준

    존경받는 법조인의 기준

    젊은 법조인들을 상대로 존경하는 법조인을 꼽으라고 하면 김병로 전 대법원장, 조무제 전 대법관 등을 주로 거론하면서 그 이유로 이 분들이 매우 청렴결백한 분이었다는 점을 꼽는다. 이에 반하여 미국에서는 흑인의 교육받을 권리 등을 인정한 브라운 판결과 체포 시 피의자의 권리를 선언한 미란다 판결을 선고한 얼 워렌 대법원장과, 원치 않는 임신에 대한 여성의 권리를 확립시킨 로 대 웨이드 판결을 선고한 해리 블랙먼 대법관을 존경하는 법조인으로 많이 꼽는다. 워렌과 블랙먼의 공통점은 공화당 소속의 보수적 대통령들이 이들의 과거 행적으로 미루어 보수적인 내용의 판결을 선고해 줄 것으로 믿고 임명하였는데, 그런 기대와는 달리 흑인의 권리 보호와 여성의 권리 보호라는 진보적인 가치를 지지하는 파격적인 판결을 선고

    박영호 부장판사 (서울중앙지법)
    손녀딸의 재판

    손녀딸의 재판

    외할머니에게 나는 첫 손주였다. 첫 손주가 판사가 되었다고 하니 할머니는 그 재판이 무척 보고 싶으셨다. 대구에서 지내시던 할머니는 서울 이모댁에 오시기만 하면 내 재판을 보러 오겠다고 하셨다. 그런데 매번 나는 "할머니 지금 말고 나중에, 내가 재판 더 잘하게 되면 그 때 오세요"라며 못 오시게 했다. 결국 우리 할머니는 내 재판을 보시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몇 해가 지난 지금도 어머니가 가장 속상해 하시는 일이다. 나도 그렇다. 뭐가 그렇게 준비가 안 됐기에 보여드릴 수 없었을까?   선고할 판결문은 다 썼고, 진행할 사건 기록은 미리 검토했고, 제출된 서면과 증거는 놓치지 않고 메모에 빼곡히 기재해 두었다. 재판 전날에는 약속 없이 조용히 보냈고 재판 날에는 더 일찍 출근해

    김미경 부장판사 (부산지법)
    진정한 배려

    진정한 배려

    박시호 님의 편저인 행복편지 10권에는 진정한 배려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등병이 겨울 날 찬물로 빨래를 하고 있는 것을 본 소대장은 그 모습이 안쓰러워 "취사장에 가서 뜨거운 물 받아 와서 빨래를 하라"고 시켰고, 이등병은 그 지시를 따랐다가 취사장에 있던 고참에게 얼차려만 받고 돌아와 계속 빨래를 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중대장이 같은 내용의 지시를 했으나 이등병은 고참의 얼차려가 두려워 지시를 무시하고 그냥 찬물로 계속 빨래를 하였다. 이를 목격한 인사계는 "내가 세수를 하려고 하니 뜨거운 물을 받아와라"고 한 다음 이등병이 취사장에서 물을 받아오자 그 물에 언 손을 녹일 것을 지시해 이등병이 비로소 손을 녹일 수 있었다는 내용의 이야기입니다. 누구든지 자신의 입장에

    박영호 부장판사 (서울중앙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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