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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조프리즘 리스트

    지식의 공유

    지식의 공유

    필자의 전문분야가 '잘 알 것 같은 사람에게 물어보기'라고 이 코너에서 밝힌 바 있으나, 최소한의 양심은 있는지라 그래도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는 이런저런 조사와 연구를 먼저 하려고 한다. 그 과정에서 겪은 일이다. 어떤 쟁점에 관하여 조사를 하다 보니 판례는 없고 이른바 적극설과 소극설이 대립하고 있는데, 그 분야에 저명한 A교수의 교과서에는 적극설을 지지한다고 되어 있었다. 그런데 딱히 논거로 제시한 것은 없으면서 각주에 'B교수의 교과서 몇 면'이라고만 적혀 있었다. 그래서 다시 B교수의 교과서를 찾아 해당 부분을 살펴보았는데, 그 역시 딱히 논거를 제시한 것은 없으면서 각주에 'A교수의 교과서 몇 면'이라고만 적혀 있었다. 동어반복을 겪은 상황인데, 의뢰인에게 'A교수와 B교수가 그렇게 해도

    권순철 변호사(법무법인 지평)
    법조인 말의 가치

    법조인 말의 가치

    최근에 법조인으로서 지인에게 '전화상담 사기'를 당하였다. 오랜만에 전화를 걸어온 지인은 간단한 인사를 나누자마자 주택임대차에 대하여 이것저것 소나기처럼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처한 제반 사정을 다 알려주고 묻는 게 아니고, 중간중간 물어보면서 필자가 그에 대한 답을 주면, 자신도 그 정도는 알고 있다는 듯이 '그게 아니고'라고 말하면서 새로운 조건을 하나씩 더 알려주는 식으로 짜증나는 전화 상담을 하게 만들었다. 10여분의 상담이 끝났다. 그리고 그 지인은 '알았어요'라고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의례적으로라도 '다음에 소주 한잔 하자'는 말도 없었다. 보이스피싱 사기를 당해도 정말 이렇게까지 기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전화를 끊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법조인은 무료로 법률상담을 해줘야

    구길모 교수(충남대 로스쿨)
    인사하기

    인사하기

    다른 변호사님한테서 들은 얘기다. 어느 지원에 재판을 갔는데 재판부가 진행할 때 대리인 이름을 묻지 않더라는 것이다. 그런가 보다 하고 자기 차례가 되어 (역시 호명하지 않고) 변론을 진행하고 있는데, 갑자기 재판장이 '아, 원고 대리인 누구시죠?' 묻더라는 것이다. 그 변호사님 빼고는 그 지역에서 활동하시는 변호사님들이라 재판부도 다 아는 눈치였다는 것. 필자가 나갔던 첫 재판이 뭐였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변호사석에 앉으려 할 때, 먼저 와 계시던 나이 지긋한 변호사님께서 살짝 목례를 해주시던 기억은 선명하게 남아있다. 혹시 상대방 대리인인가 살펴봤으나 아니었다. 신출내기한테도 동료라고 예를 표해주셨을 것이었다. 존함이라도 여쭤봤어야 하는데 그땐 그럴 여유도 없었다. 그 경험 때문

    권순철 변호사(법무법인 지평)
    나의 멘토, 나의 멘티

    나의 멘토, 나의 멘티

    몇 년 전 변호사 모임에서 청년변호사를 위하여 멘토-멘티 프로그램을 실행한다는 반가운 내용의 메일을 읽은 적이 있다. 최근 변호사협회장 선거에서도 같은 내용이 일부 후보들의 공약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 글을 보고 참으로 좋은 아이디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한편으로 '나에게는 멘토가 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프로그램이 조금 늦게 나온 것이 아쉽기도 했다. 대학원에 들어가 공부를 하던 시절, 대학생 때와는 달리 실질적인 지도교수님이 생겼다. 필자의 경우 지도교수님이 대학원 연구지도, 논문지도만 해주신 것이 아니라 취업지도, 더 나아가 주례까지 봐주셨고, 지금에 이르러서도 인생지도까지 하여주신다. 대학에 와서 학생들과 함께 생활하다 보니 필자의 많은 부분이 지도교수님과 닮아 있음을 문득 깨닫

    구길모 교수(충남대 로스쿨)
    서면실명제

    서면실명제

    전혀 모르는 변호사님한테서 전화가 왔다. 유사한 판례를 찾다 보니 필자가 승소한 사건이 있는데, 자기가 볼 때는 어떻게 승소했는지 이해가 안 되어 직접 물어보려 전화했다는 것이다. 몇 년 지난 사건이라 필자도 구체적인 내용이 기억나지 않아 제대로 답해드리지 못했다(분명 소 뒷걸음 하다 쥐 잡은 경우였을 것이다). 판결문에 담당변호사도 표시된다는 당연한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다가, 모르는 변호사님한테 전화를 받으니 나쁜 짓 하다 걸린 사람처럼 얼굴이 화끈거렸다. 어느 회사 법무실로부터 연락이 왔다. 다른 법무법인에서 작성한 법률의견서를 받았는데 내용이 타당한지 다시 검토해달라는 부탁이다. 다른 법무법인에 먼저 일을 맡겼다는 점에 일단 기분이 상하여, 최대한 비판적 시각으로 의견서를 읽어보았다. 의견서를 실

    권순철 변호사(법무법인 지평)
    꼼수의 유혹

    꼼수의 유혹

    변호사로 일할 당시 가끔 윤리적 상황에서 고민하게 되는 순간이 있었다. 공무원은 아니었던 관계로 누가 선물을 가져다주면서 잘 봐달라고 부탁하는 상황은 없었다. 그러나 재산숨기기, 채권 부풀리기, 채무 부풀리기 등 합법적이지 않은 방법과 관련된 질문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었고, 어떻게 어디까지 설명해주고 도와줘야 하는지 고민하곤 했다. 책임재산에 대하여 집행을 피하기 위한 허위양도, 이혼시 재산분할을 피하기 위한 허위양도, 집행을 피하기 위한 허위이혼, 부동산이나 계좌의 명의신탁, 다운계약서 작성 등 필자가 먼저 이야기 하지 않았음에도 어디서 그런 정보를 들었는지 구체적 계획까지 꼼꼼하게 세워놓고 있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실행에 따른 위험을 점검하기 위해서인지 변호사인 필자에게 좋은 방법이라는 확답을

    구길모 교수(충남대 로스쿨)
    운동

    운동

    낙방하고 늦게 간 군대에서 높은 분 당번병을 한 적이 있다. 토요일 오전 근무가 있던 시절, 내 중요업무 중 하나는 퇴근시각에 맞추어 정확하게 차량대기를 시키는 것이었다. 높은 분부터 계급 순서대로 퇴근이니 모시는 분 차례가 되었을 때 조금도 지체함이 있어선 아니 된다. 또 모시는 분이 퇴근하면 그 밑 참모들에게도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 이유는 대개 토요일 오후 '운동' 약속이 있어서였다. 오래 전 고소대리 사건을 맡아 담당 경찰관과 자주 연락할 일이 있었다. 그런데 가끔 '시골 와 있다'고 대답하고 통화가 끊기는 경우가 있었다. 일할 때 사투리를 쓰는 걸로 보아, 처음에는 고향에 자주 내려가는 효자 경찰관이라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전화를 했더니 또 시골이라 하는데, 옆에서 경쾌한 '깡' 소리

    권순철 변호사(법무법인 지평)
    좋은 습관

    좋은 습관

    예전에 어떤 법조인으로부터 "법조인이 법조인들만 만나면 발전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일정 부분 타당한 이야기라고 생각된다. 발전을 위해서는 다른 직역의 사람들을 많이 만나야겠지만, 다른 직역의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하다보면 다소 불편한 점이 있다. 이에 반해 법조인들을 만나 이야기하다보면 공감할 수 있는 주제가 많아 마음이 편해진다. 최근 법조선배들과 편하게 저녁을 먹으며 대화하다가 '자' 이야기가 나왔다. 법조인들이 고시 공부할 때 사용하던 그 잘 휘어지고, 줄치는 것에 최적화된, 길이를 측정하는 센티미터 표시는 원래부터 되어 있지도 않은 그 '고시생 자' 말이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대부분의 선배들이 그 자를 그대로 갖고 있다고 하였다. 어떤 분들은 여전히 그 자를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다고

    구길모 교수(충남대 로스쿨)
    서면의 길이

    서면의 길이

    영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보면, 선생님이 아이들을 모아 놓고 엄석대의 만행을 밝히라는 장면이 나온다. 겁먹은 아이들 중 누구도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는데, 갑자기 조그만 아이 하나가 교실 밖으로 뛰쳐나가며 외치는 말. "저 XX 순 나쁜 XX에요!"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다. 엄석대는 끝이다. 몇 년 전 화제가 된 환경소송을 친구네 사무실에서 맡았다고 하여 전화를 해봤다. 곧 기일인데 상대방 서면 때문에 정신 없다면서, 500~600장 정도 반박서면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네가 혼자 다 쓰냐 물었더니, 변호사 3명이 쟁점 하나씩 맡아 각자 150~200장 내외로 작성하고 취합한다고 했다(그러면서 친절하게 재판부 보기 편하도록 50장 내외의 '요약'서면도 따로 낼 것이라고 했다). 상대방 서

    권순철 변호사(법무법인 지평)
    내 등의 짐

    내 등의 짐

    스스로 생각하기에 독서량이 적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최근 읽었던 책은 95% 이상이 전공서적이었다. 가끔 처세술, 돈, 성공에 관한 베스트셀러를 읽은 적이 있다. 문학작품이라면 아주 가끔 재미있는 소설 정도를 읽었을 뿐이다. 시라는 것과는 정말 오랜 시간 동떨어져 지내왔다. 시집이란 것을 사서 천천히 음미하며 시를 읽은 것이 언제이던가. 아마도 대학생 때 읽었던 류시화 시인의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이라는 시집이 마지막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그런데 최근 우연히 시를 읽게 되었다. 건강검진을 위해 종합병원에 들렸다가 화장실에서 벽에 붙어있는 시를 읽게 되었다. 정호승 시인의 '내 등의 짐'이라는 시의 한 구절이었다. 가슴 깊은 공명을 느꼈고, 문학소년처럼 그 구절을 단박에 외워두고 싶었다. 그러나 알콜의

    구길모 교수(충남대 로스쿨)
    "변호사님 바쁘시죠?"

    "변호사님 바쁘시죠?"

    기억하시는 분도 많겠지만, 고등학교 시절 보았던 문제집 중 'Reader's Bank'라는 것이 있었다. 짧은 단문이 실린 영어책이었는데, 기억에 남는 글은 이런 것이다. '새내기 변호사가 사무실을 연 첫날 아침 누가 찾아왔다. 이 변호사는 찾아온 사람을 세워둔 채 전화기를 들고 한참 중요한 통화를 하는 척 했다. 전화기를 내려놓고 어떻게 오셨는지 묻자, 찾아온 사람은 전화 연결하러 온 전화국 직원이라고 대답한다.' 통화를 하거나 회의에서 만날 때 고객의 첫마디 인사가 "변호사님 바쁘시죠?"인 경우가 많다. 요즘의 나는 대체로 웃으며 "별로 안 바쁩니다"라고 대답한다. 그러면 상대방은 또 대체로 "아이고 겸손의 말씀은…" 이런다. 속으로 가끔은, '정말 안 바쁘다니까요!' 정색하고 싶을 때

    권순철 변호사(법무법인 지평)
    진짜 칭찬

    진짜 칭찬

    대놓고 면전에서 다른 사람을 비판하기는 쉽지 않다. 잘못하면 그 사람과 원수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판하는 사람이 상대방 기분 좋으라고 비판하지는 않을 것이다. 진심으로 비판하고 싶은 생각에서, 또는 상대방을 위하여 그런 말을 할 것이다. 그에 반하여 칭찬은 접대성인 경우가 많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책이 한때 크게 유행 하였다. 이 책 때문인지 필자도 정말 의례적 칭찬을 많이 하게 되고, 때로 그런 칭찬을 듣고 있다. 그런데 이런 칭찬하는 말만 믿다가는 자기 발전을 이루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오히려 비판을 자주 듣고 그에 대하여 귀와 마음을 여는 것이 자기 발전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진짜 칭찬과 예의상 칭찬을 구별할 줄 알아야한다. 의례적인 칭찬을 진짜

    구길모 교수(충남대 로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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