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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조프리즘 리스트

    하룻밤

    하룻밤

    변호사로 개업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대기업, 국회, 은행, 대학, 시민단체, 연구소, 로타리, 카네기, 무슨 무슨 CEO 과정들, 동창모임, 지역 모임까지, 그동안 거쳐 왔고 또 지금 몸담고 있는 분야의 사람들과 저녁마다 약속이 있었다. 적극적으로 여러 모임에 가입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만큼 사건도 많아졌다. 일정표는 새벽부터 저녁까지 빼곡히 채워지고, 저녁약속은 두세개가 겹치기 일쑤였으며, 심지어 주말에도 경조사, 골프에 워크샵까지 일정이 빽빽했다. 몸과 마음은 점점 지쳐갔고, 피곤해 보인다는 말을 종종 듣게 되었다. 하루는 유독 힘든 의뢰인의 ‘말바꾸기’에 대응하다가 스트레스를 스스로 감당하기 힘든 지경이 되었다. 지금 당장 어디로든 탈출하고 싶었다. 서울 근교의 사찰의 템플스테이를

    정지웅 변호사 (법률사무소 정(正))
    소중하고 중요한 것

    소중하고 중요한 것

    고등학교 3학년 1학기 어느 날이었다. 그날 저녁 난 운동장에 서서 떨어지는 해를 보며, ‘나는 왜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지나간 과거처럼 앞으로의 삶도 금방 흘러갈 텐데, 난 과연 무엇을 위하여 이렇게 애쓰며 공부를 하나’란 생각이 든 것이었다. 그러나 모범생이던 나는 대학 입학 이후 그 고민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러한 고민은 공부에 방해만 될 것이 분명했고, ‘이유는 모르지만’ 일단 공부를 열심히 해 법대에 들어가는 것이 중요했다. 대학 1학년 여름방학이 시작될 즈음 동기 1명, 선배 2명과 함께 자전거 여행을 떠났다. 강릉에서 출발해 부산에 이르는 여정이었다. 셋째 날이었던가, 그날 밤에도 우리들은 교회에 신세를 졌다. 잠자리를 대충 준비하고 대화를 나

    홍승표 변호사 (법무법인 해우)
    크로스체크(cross-check)

    크로스체크(cross-check)

    국회 법사위원장 비서관으로 근무할 때의 일이다. 법사위 전체회의에 아파트 수직증축 리모델링을 가능하게 하는 주택법 개정안이 올라왔다. 원안에는 1차 안전진단을 한 업체가 2차 안전진단까지 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원안대로 하면 건물안전에 대한 크로스체크가 되지 않아 심각한 안전상의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있었다. 다행히 이 부분에 대한 문제점이 지적되어 시행령에 ‘2차 안전진단은 다른 기관으로 하는 걸 원칙으로 한다’는 내용을 넣는 것을 부대조건으로 달아서 통과시켰다. 만약에 이 법안이 그대로 통과되어서, 만에 하나라도 안전상의 문제가 발생하였다면 끔찍한 참사가 벌어졌을 수도 있다.  우리 법률사무소는 고소대리 사건을 수임하면 고소장을 검찰청에 제출한다. 절대 다수의 경찰들은

    정지웅 변호사 (법률사무소 정(正))
    차차 나아 진다

    차차 나아 진다

    몇 해 전 친한 형이 운영하는 한의원에 진료를 받으러 간 적이 있다. 한의원이 지하철역에서 한참 떨어져 있어 지하철에서 내려 다시 마을버스로 갈아타야 했다. "한의원 목이 좋지 않은 것 같다"는 지인의 걱정 어린 말이 떠올랐다. 버스에서 내려 한의원이 있는 건물을 향해 걸어가면서도 주변을 계속 두리번거렸다. 근처에 대단지 아파트는 보이지 않았다. 한의원은 깔끔했으나, 조용했다. 간호사의 안내에 따라 진료실에 들어갔더니 형이 진료실 침대에 눕게 한 후 내 몸을 꼼꼼히 살폈다. 팔을 이리저리 돌려 어깨 관절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고관절과 무릎 관절의 운동 범위를 여러번 확인했다. 그리고는 진단결과를 말해준 다음 치료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침을 놓았다. 진료를 시작한 때로부터 30분이 지나 있었다. 형에

    홍승표 변호사 (법무법인 해우)
    미안하다

    미안하다

    서울 소재 법과대학에서 2년 동안 강의를 했다. 겸임교수로 법학개론, 가족법, 민사소송법 등을 가르쳤다. 변호사 일을 하면서 동시에 가르친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강의 준비가 잘 되지 않았던 날은 강의 내용과 관련이 있는 사건들 이야기를 해 주면서 시간을 때운 적도 있었다. 중간고사, 기말고사는 정답시비가 없게끔 조문이나 판례위주로 출제했다. 학생보다 교수의 편의를 먼저 생각했음을 고백한다. 배움에 목말라 있는 초롱초롱한 수많은 눈들을 생각하면 “나는 부끄럼 없이 강의했노라”고 말할 정도로 뻔뻔하지는 못하겠다. 실력도 인품도 부족한 사람이 겸임교수라는 이름을 달고 살았다. 그때 내 강의를 들었던 학생들에게 “잘못 가르쳐서 죄송합니다”라고 진심으로 참회한다.  모교 변호사시험 합격률이 전국

    정지웅 변호사 (법률사무소 정(正))
    고생했다

    고생했다

    늦은 밤이었다.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고 집에 왔으나 쉽사리 잠이 오지 않았다. 신림역까지 걷기로 하고 자취방을 나섰다. 걸어도 걸어도 불안감은 가시지 않았다. 예정했던 신림역은 벌써 지나쳤지만 난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정처 없이 계속 걸었다. 사법시험 2차 시험일이 얼마 남지 않은 초여름 밤이었다.  시험일이 다가올수록 불안감은 커져만 갔다. 그 불안감 속에서 난 더욱더 강도를 높여가며 지난 수험 기간을 검열했다. 난 그동안 무얼 하며 지냈던가, 내가 공부를 하기는 하였던가. 지난 수험 생활은 불성실로만 가득차 있었다. 고시 공부를 했다고 말하기 부끄러웠다. 그러한 검열 끝에 ‘불성실한 나는 시험에 합격할 자격이 없다’고 결론 내렸다. 나같은 녀석이 시험에 합격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았다

    홍승표 변호사 (법무법인 해우)
    법의 날 단상(斷想)

    법의 날 단상(斷想)

    '파벌망한(派閥亡韓)'이라는 말이 평창올림픽 이후 체육계 일부에서 나왔다. 뜻은 '이 나라는 파벌 때문에 망할 것이다' 정도가 되겠다. 실제로 나라가 파벌과 파벌이 부딪히는 소리로 시끄럽지 않은 날이 없다.  "너는 누구 편이냐"를 끊임없이 묻는다. 중앙이든 지방이든 차이가 없고, 공직이든 민간 영역이든 다를 바가 없다. "나는 당신 편이야"라고 일단 줄을 서야지 운이 좋으면 이너서클에 들어갈 수 있다. 일부 종목에서는 국가대표로 선발되려면 실력보다는 파벌이 중요하고, 학부모들은 좋은 파벌에 들어가야 일류대에 들어갈 수 있는 고급 정보를 얻을 수가 있다. 법치국가 성립 이전의 원시 수렵시대 부족들의 공동사냥, 공동분배와 다를 바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파벌이 내세우는 명분은 구성원들

    정지웅 변호사 (법률사무소 정(正))
    다들 하는 고민

    다들 하는 고민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집에서 몇 달 동안 쉬었다. 아내가 차려주는 밥을 먹으며 TV 드라마를 보고 인터넷을 하면서 빈둥거렸다.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서도 가끔 생각했다. 일단 변호사 업은 아니어야 했다. 다툼의 한가운데 서서 소리치고 싶지 않았다. 내 시간을 충분히 확보하면서 돈은 풍부히 벌고 싶었다. 카페 창업이 매력적으로 보였다. 맛나는 커피를 만들고 인테리어를 깔끔하게 하면 손님들이 몰릴 것 같았다. 맛카페와 멋카페가 곳곳에 널렸지만, 내가 차리면 유독 잘 될 것만 같았다. 시스템에 의해 카페는 굴러갈 것이고, 난 카페에 앉아 커피를 홀짝이며 창밖을 구경하면 될 것이다. 부동산 거래 앱 개발도 괜찮아 보였다. 부동산 불패이니 부동산 거래부터 이사, 청소까지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홍승표 변호사 (법무법인 해우)
    11살 아이

    11살 아이

    9년 전 성탄전야에 아들이 유도분만으로 태어났다. 원래 출산예정일은 다음 해 1월 초·중순이었으나, 마침 그 즈음 아기 엄마는 의사국가고시에 응시해야 했고, 아빠는 제1회 변호사시험을 봐야 하는 등 접시 3개를 동시에 돌리는 것 같은 아슬아슬한 시기였다. 엄마는 산후조리원에서 누워서 공부하다가 시험장에 들어갔다. 그해 아빠는 변호사가, 엄마는 의사가 되었다. 8년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아빠는 변호사로 여러 가지 성과를 거두고 있고, 엄마도 어엿한 대학병원 전문의가 되었다. 그해 변호사시험 합격률과 의사 국시 합격률이 50%도 안 되었더라면, 아빠는 변호사가, 엄마는 의사가 될 수 있었을까? 제1회 변호사시험 합격률(87.2%)이 높아서 변시 출신들이 실력이 부족하여 우리 사회에 악영향을 미쳤다는

    정지웅 변호사 (법률사무소 정(正))
    개업 변호사로서 내 상상의 방향

    개업 변호사로서 내 상상의 방향

    지난 2월 중순 군대 동기와 후임, 대대장님을 만나 저녁 식사를 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개업을 했다고 알리며 새로 만든 명함을 건넸다. 오랜만에 만나 내 근황을 들은 후임은 나에게 “변호사 형님이 생겨서 든든합니다. 사건 생기면 바로 연락하겠습니다”고 말했다.  그는 단순히 축하 인사를 한 것이었지만, 나는 그 순간 어떻게 답할지 고민했다. 개업 변호사로서 ‘사건 생기면 연락 달라’고 대답해야 했으나, 그 말은 그 후임에게 법적 분쟁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제로 한 것 같아 꺼려졌다. 변호사는 법적 분쟁을 다룬다. 그리고 대체로 분쟁이 무르익을 즈음 사건에 개입한다. 사람들은 먼 미래에 일어날지도 모를 분쟁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기에, 분쟁이 발생하고 불안감이 증폭될

    홍승표 변호사 (법무법인 해우)
    사면의 미래

    사면의 미래

    얼마 전 삼일절 특사 관련 라디오 인터뷰를 했다. 현재 재판 진행중인 전직 대통령들에 대한 특별사면 가능성을 묻길래, "형이 확정된 이후 사면 여부를 논의할 때에는 과거의 사면 사례에 대한 심도 깊은 검토가 선행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광주지법에서 진행되는 피고인 전두환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사건, 일부 극우 인사들의 북한군 개입설 등의 망언을 보면서, 과연 전두환에 대한 사면은 옳은 일이었는가에 대한 깊은 의문이 생겼다. 수많은 피해자들이 존재하고 당시에도 여전히 고통 받고 있었는데, 피해자들의 의견수렴 절차는 거쳤을까? 반성하지 않는 자를 용서하는 것이 국민적 통합에 기여하리라고 예상했을까? 치열한 법리 다툼 끝에 용기 있고 정의로운 판결을 내린 사법부에 대한 고려는 있었을까? 

    정지웅 변호사 (법률사무소 정(正))
    그들은 나와 다를 수 있다.

    그들은 나와 다를 수 있다.

    2010년 7월 군에 입대했다. 신병교육대 입소 첫날 조교들의 삼엄한 감독 아래 총을 수령했다. 건네받은 총은 무겁고 묵직했다. 달리 특별한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다음 날부터 훈련이 시작되었다. 훈련은 수월했고 체력적으로도 견딜 만했다. 다만 훈련 내내 총을 휴대해야 하는 점이 불편했다. 팔과 어깨가 뻐근했다. 걸리적거리기만 하던 총이었으나 제 몫을 할 날이 왔다. 사격 훈련 날이 된 것이다. 동기들은 실탄을 쏜다는 사실에 흥분했다. 설렌 우리 조 동기들과 함께 사격장으로 향했다. 사격장이 다가올수록 선행 조의 사격 소리가 크게 들려왔고, 사격장 앞 공터에 도착했을 때 그 소리는 굉음으로 발전해 있었다. 가까이서 듣게 된 총소리에 나도, 다른 훈련병들도 모두 놀랐다. 그리고 그 순간 나

    홍승표 변호사 (법무법인 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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