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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조프리즘 리스트

    내가 법정에서 사배(四拜)하는 이유

    내가 법정에서 사배(四拜)하는 이유

    아들이랑 절에 갔다. 완전히 엎드린 채, 전신을 바닥에 바싹 붙여 절하는 오체투지를 하길래, 시범을 보여 가며 한국식 절하는 법을 가르쳤다. 부처님(佛), 그의 가르침(法), 스님(僧)을 생각하며 삼배(三拜)를 한다는 의미도 알려 주었다. 다음 날 변론하러 갔다. 법정 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반배(半拜), 변호인석에 앉기 전 반배, 재판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반배, 법정 문을 열고 나가기 전에 반배하는 습관이 새삼스레 느껴졌다. 항상 법정을 드나들면서 사배(四拜)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한민국의 헌법과 법률에 대하여 한 번, 대한민국 사법부에 대하여 한 번, 헌법 제103조가 규정하는 법관에 대하여 한 번, 당해 사건 재판부에 대하여 한 번. 이렇게 존중과 경의를 담아 사배(四拜

    정지웅 변호사 (법률사무소 정)
    그들은 법률 전문가 아니다.

    그들은 법률 전문가 아니다.

    몇 개월 동안 애를 썼던 형사사건이 있었다. 피고인은 나보다 나이가 어렸고 사회 경험도 많지 않았다. 그는 열심히 공부해 학업을 마쳤고 전공 분야의 자격증을 취득했으며, 취직해 실무 경험을 쌓은 뒤 관련 사업체를 인수·운영하였다. 그런데 그 사업체 인수 및 운영 과정에 법 위반 사실이 있다는 이유로 기소된 것이었다.  피고인이 희망에 부풀어 작성했던 양수도 관련 약정서가 공소사실의 유력한 증거였다. 피고인은 사업체의 온전한 인수만을 의욕하고 그 약정서를 작성했으나, 수사기관은 그가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일부 조항들에 주목했다. 그 조항들은 양도인의 요구로 추가된 것이었는데, 피고인은 해당 조항들에 공소사실과 같은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그 조항들로 인하여 양도인뿐만 아니라

    홍승표 변호사 (법무법인 해우)
    정의없이 조정없다

    정의없이 조정없다

    “원고가 양보하도록 어서 설득하세요.” 이게 무슨 말인가. 1심에서 전부 승소 판결을 받은 후 피고만 항소를 해 잡힌 조정이었다. 의뢰인인 원고는 피고에게 십수 년 간 많은 돈을 빌려줬고, 이자 몇 번밖에 받질 못해 여러 건의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그럼에도 조정위원은 “인척 간인데 어지간하면 합의하라”, “되는대로 깎아서라도 일단 받아라”고 한다. 내가 받아들이지 않자 재판장을 부른다. 이유인즉슨 “원고 대리인이 버티고 있으니 강제조정 결정을 하셔야 할 것 같다”는 것. 어리둥절한 표정의 재판장은 설명을 듣더니 “강제조정 할 사안이라 보기 어렵네요. 변론기일 잡겠습니다”라며 웃으며 금세 자리에서 일어난다. 누구나 한번쯤은 겪는다는 조정에서의 신선한(?) 경험이 바로 이런 것일까. 여전히 당황스

    장희진 변호사 (지음 법률사무소)
    가시밭길, 꽃길

    가시밭길, 꽃길

    시군법원 소액사건의 원고 대리를 맡았다. 피고의 주장을 들으면서 끓어오르기 시작한 의뢰인은 재판 후 폭발했다. 왜 저 XX가 했던 거짓말을 적어 놓은 서류를 내가 들고 있냐는 것이다. 우리 주장은 빨간 종이에 다 있고, 파란 종이는 상대방이 쓴 것인데 나는 그걸 반박하기 위해서 갖고 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의뢰인은 납득하지 못했다. 그는 내 기록을 찢으려고 했고, 나는 필사적으로 지켰다. 의뢰인은 내가 상대방과 내통한 파렴치라며 진정을 냈고, 난 피혐의자로서 조사를 받았다. 또 한 번은, 난치병환자의 보험금사건을 맡았다. 열의를 가지고 변론을 했지만, 의뢰인은 오히려 나를 의심했다. 서면을 이렇게 많이 내는 저의가 무엇이냐고 따졌다. 할 말이 없었다. 억울한 마음을 누르고 최선을 다했지만 결과는 패소였

    박종명 변호사 ([유]딜리버리히어로 코리아)
    베개 밑으로 오는 봄

    베개 밑으로 오는 봄

    뉴스를 보니 남녘에 매화가 피었다고 한다. 올해는 유독 봄꽃이 빠를 것이라고도 한다. 가족들과 꽃놀이를 갈 생각을 하면 설레는 마음도 든다. 이렇듯 매년 올 것 같지 않던 봄은 겨울옷에 어깨가 뻐근해지고 그 무채색에 질려갈 때쯤이면 어김없이 온다. 이렇듯 재촉하지 않아도 봄은 오고, 거기에서 새해를 다시 한 번 느끼건만 여전히 서초동 법조는 겨울이다. 어둡고 냉하며 거칠고 답답하다. 며칠 사이로 이어진 굵직한 인사들의 충격적인 법정구속은 또 어떠한지. 뿐만 아니다. 구치소 접견을 다녀오는 변호사들마다 명사(名士)들을 어깨너머로 알현(?)한 경험들을 심심찮게 털어놓는다. 이름만으로도 추상같고 나는 새도 떨어뜨리실 분들이 아니었던가. 도대체 접견을 간 것인지 뉴스를 본 것인지 모르겠다는 씁쓸한 목격담만

    장희진 변호사 (지음 법률사무소)
    그녀의 권리

    그녀의 권리

    한국어는 물론 영어도 서툰, 가난한 이주여성이 찾아왔다. 뜻밖의 임신을 하게 되었는데 남자가 나몰라라 하니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지금 당장 생활도 어렵거니와 너무 불안하니 하루빨리 확인받고 싶다고 했다. 남자는 특수한 신분의 외국인이었다. 법률적 조력이 절실했다. 수임료는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법률구조제도를 활용해서 해결해주겠다고 약속하고 사건을 맡았다. 당연해 보이는 사건이었는데 법전을 펴 보니 간단하지 않았다. 우리 민법은 태아의 권리에 관하여 독일,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개별적 보호주의를 취하고 있다. 즉, ①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청구권(제762조) ② 상속권(제1000조) ③ 유증(제1064조)의 경우에 한하여 태아의 권리능력을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태아가 원고가 되는 것은 불가능했다.

    박종명 변호사 (법무법인 강호)
    생어우환(生於憂患)

    생어우환(生於憂患)

    생어우환(生於憂患)은 '어렵고 근심스러움이 오히려 나를 살린다'라는 뜻으로 맹자 '고자하'편에 나오는 말이다. 개인적으로 가히 살인적인 일정이 1월이었다. 서면은 밀린 채 쌓여만 가고, 이미 합의로 끝난 사건의 당사자도 아닌 상대방들이 찾아와 불만을 토로하거나 괴롭히기도 했다. 아이의 돌이 코앞, 워킹맘의 무게는 여전하건만 아이의 감기는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송무에 육아 그리고 대외활동까지 범벅이 된 1월, 가히 잔인한 달이다. 그러면서도 새벽이면 잠이 오지를 않았다. 매일이 말 그대로 근심이었다. 살얼음을 걷듯이 기일을 확인하고, 상담 내용을 기억하고 그밖에 처리할 잔업들의 우선순위를 정했다. 30분 단위로 하루를 계획해 지켜나간다는 모 판사님을 떠올려보기도 했다. 그러면서 마치 하루살이처럼,

    장희진 변호사 (지음 법률사무소)
    선의(善意)

    선의(善意)

    법학에서 중요한 개념으로 선의(善意)와 악의(惡意)가 있다. 선의는 ‘돕고자 하는 착한 마음’을 의미하지만, 법에서는 ‘법률상의 효과에 영향을 주는 사실을 모르는 상태’를 의미한다. 악의는 ‘남을 해치려 하거나 미워하는 나쁜 마음’을 의미하지만, 법에서는 ‘법적으로 중요한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뭘 알아야 도울 수 있으므로 착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사정이나 마음을 알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친구의 생일인 줄 모르고 내가 바빠서 전화를 받지 못한 날 미안했고, 늘 밝은 모습이기에 아픈지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서 미안했다. 상황설명도 없이 다짜고짜 화를 낼 때면 저렇게 힘들 때까지 내가 알지 못했다는 것이 미안했다. 내가 해결해줄 수 없을

    박종명 변호사 (법무법인 강호)
    선거 유(有)관심

    선거 유(有)관심

    '현실왜곡장'(reality distortion field)이라는 말이 있다. SF영화에 나온 말이긴 하지만 애플의 CEO였던 스티브 잡스의 경영방식을 설명하는 유명한 말로 '리더의 구상과 확신이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쳐 그것이 가능할 것이라는 믿음이 생기면서 실제 결과를 만들어내는 리더십'을 뜻한다. 굳이 '현실왜곡장'을 떠올려 보는 것은 또다시 변호사회 선거 시즌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유독 선거에 다들 무관심한 느낌이다. 변협회장 선거의 경우 단독 출마라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는가 하면 법조계 전체에 산적한 난제들을 누군가는 해결해야 함에도 여전히 선거 분위기는 차갑다. 유감스러운 일이다. 이런 와중에 한 사람의 유권자로서 변호사회의 수장이 어떤 모습이

    장희진 변호사 (지음 법률사무소)
    신학기 강의계획서

    신학기 강의계획서

    나에게 피아노를 가르쳐줬던 고향선배가 있다. 선배는 군대를 다녀온 뒤 음악에 대한 열정이 끓어올라, 마을에서 피아노를 칠 줄 아는 유일한 사람에게 가르침을 부탁했다. 선생님은 선배를 열심히 지도했다. 다만 선생님은 ‘바이엘(상)’ 단계에서는 시범을 보여주었지만, ‘바이엘(하)’단계에서는 선배 혼자 치도록 하고 말로만 지도했다. 선배는 급속히 실력이 늘어 ‘체르니’를 칠 단계에 이르렀는데 선생님은 이제 그만 하산하라고 했다. 청천벽력이었다. 선배가 선생님께 매달리며 이유를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실은 나는 바이엘(상)까지 밖에 칠 줄 모른다. 바이엘(하)까지는 듣고 지적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더는 도저히 못 하겠다. 내가 알지도 못하는 것을 나보다 나은 사람을 상대로 가르치는 게 얼마나 힘

    박종명 변호사 (법무법인 강호)
    세밑 상념

    세밑 상념

    ‘닥터 스트레인지’라는 영화는 불의의 사고로 절망에 빠진 천재 외과의사 닥터 스트레인지가 영적 수련을 통해 세상을 구원할 강력한 능력을 얻게 되는 내용의 SF히어로물이다. 영화의 재미 유무는 별론으로 하고, 닥터 스트레인지가 수련하는 과정에서 육체는 잠들었지만 영혼이 깨어 책을 읽는 장면을 보면서 부러움에 탄식하고야 말았다. 세상을 구할 수 있는 막중하고도 무서운 능력과 모험은 바라지도 않으니, 저렇게 두 가지를 한꺼번에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충분히 누워 잠을 자면서도 영혼이 일어나 상고이유서를 쓴다든가, 아이를 봐준다든가. 그 정도면 충분하니 다른 즐거움을 누리는 것 같은 것은 바라지도 않는다. 이렇듯 마블 히어로의 능력을 부러워하며 다가오는 휴정기에는 반드시 끝내야 할 일들에 대한 계

    장희진 변호사 (지음 법률사무소)
    법으로 사랑하다

    법으로 사랑하다

    “제가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법대에 앉으신 분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말이 바로 이 말 아닐까. ‘한 말씀’의 주제와 길이를 가늠할 길이 없다. 변호사도 마찬가지다. 밑도 끝도 없이 계속되는 의뢰인의 이야기를 끊자니 마음 상할 것 같고 계속 듣자니 내가 지친다. 내가 궁금한 ‘요건사실’은 안 알려주고, 왜 이렇게 못 알아들을 말씀만 계속 하실까. 그가 직접 쓴 서면도 어렵기는 매한가지다. 첫 문장을 읽기도 전에 엄청난 분량과 특유의 편집이 면역반응을 일으킨다.  피곤과 졸음이 몰려오지만 쉴 수가 없다. 그가 중간중간 나에게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질문을 하는 이유는 본인이 몰라서가 아니라 내가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당신의 파란만장한 삶을 이제 몇 시

    박종명 변호사 (법무법인 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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