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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미술 이야기 리스트

    (46) 관서악부

    (46) 관서악부

    조선 영조 때에 가난 속에서도 좋은 시를 남긴 석북 신광수(石北 申光洙:1712-1775)란 시인이 있었다. 마흔 가까이 되어서야 진사에 합격하였으나 과거 운이 없었던지 말단 벼슬을 전전하다가 환갑이 되어서야 노인에게만 시험이 허락되었던 기로과(耆老科)에 장원급제하여 단번에 승지에 임명, 당상관이 되어 살만하다 싶어졌으나 얼마 아니 되어 세상을 떠난, 인생역정에 많은 굴곡이 있었지만 그가 남긴 많은 작품은 지금까지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이분이 특히 세간에 널리 알려진 계기가 된 것은 향시(鄕試)인 한성시(漢城試)에 답안지로 낸 관산융마(關山戎馬)란 과시(科試)인데, 이 시가 얼마나 좋았으면 당시에 평양 교방(敎坊)에서 기생들이 이 시를 제대로 읊지 못하면 일류 소리를 듣지 못했다 전해지기

    김영복 KBS 진품명품 감정위원
    (45) 운양의 詩 한수

    (45) 운양의 詩 한수

    운양 김윤식(雲養 金允植: 1835-1920)은 구한말의 정치가이자 문장가이다. 우리 역사에서 가장 가까우면서도 알지 못하는 역사의 사각지대가 운양이 살았던 이 구한말에서 일제 초기이다. 또 인물도 많이 태어났다. 혼란할수록 많은 인물이 나타나서 이 시대를 구원하려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후대 역사가의 평가는 냉정하다. 이런 의미에서 운양의 평가는 아직도 미지수다. 이런 저런 평가는 뒤로 미루고, 여기에서는 학자이자 문장가로서의 운양을, 그의 친구들과 지은 친필 자작시 한 수를 보고 느낌이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운양은 두 사람의 스승을 모셨다. 한 분은 봉서 유신환(鳳棲 兪莘煥: 1801-1859), 또 한 분은 환재 박규수(桓齋 朴珪壽: 1820-1900)다. 두 분 다 유명하지만 환재

    김영복 KBS 진품명품 감정위원
    (44) 송계시권(松溪詩卷)

    (44) 송계시권(松溪詩卷)

    1546년 1월 조선 12대 임금 인종(仁宗: 1515-1545)이 서거하자 명나라 사제천사(賜祭天使)의 부사로 왕학(王鶴: 1516-?)이 온다. 조선에서는 중국에서 오는 사신을 천사(天使)라 하여 매우 정중하게 맞는데, 일단 천사가 오게 되면 의주까지 나가 맞이하게 된다. 이 때 의주까지 나가 맞이하는 사람을 원접사라 한다. 왕학이 왔을 때의 원접사가 호음 정사룡(湖陰 鄭士龍: 1491-1570)이고, 종사관이 만랑 이홍남(漫郞 李洪男: 1515-?)이며, 필찰(筆札)을 담당하던 한리학관(漢吏學官)이 송계 권응인(松溪 權應仁: 1517-1587?)이었다. 조선 초기에는 중국사신이 대부분 글을 잘 모르는 이가 주로 왔지만, 왕학은 장안 사람으로 상당한 식견과 시문에 뛰어났는데, 이 때문에

    김영복 KBS 진품명품 감정위원
    (43) 경진자본 매월당집

    (43) 경진자본 매월당집

    '매월당집'은 조선 전기 금오신화의 저자 매월당 김시습(梅月堂 金時習: 1435~1493)의 시문집이다. 매월당은 당대에도 인기가 높아 그의 사후에는 그를 좋아하는 사대부 지식인들에 의해 시문집이 여러 번 편찬, 간행되었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임진왜란 이전에 세 번이나 간행되었으나 현재 우리나라에는 어떤 판이든 간에 완전한 한질을 가지고 있는 기관이나 소장자가 없고, 일본 봉좌문고(蓬左文庫)에만 1583년에 간행된 책이 한질 남아 있다. 이 봉좌문고본 매월당집은 선조의 명으로 율곡 이이(李珥: 1536-1584)가 지은 '김시습전'을 붙여서 1583년(선조16년) 교서관(校書館)에서 경진자본(庚辰字本:재주 갑인자)으로 간행한 책이다. 매월당집의 편찬은 김시습 사후 18년이 지나 중종의

    김영복 KBS 진품명품 감정위원
    (42) 청음과 지천

    (42) 청음과 지천

    여기 소개하는 한 장의 유묵은 병자호란 때에 척화파를 대표하는 청음 김상헌(淸陰 金尙憲: 1570-1652)과 백강 이경여(白江 李敬輿: 1585-1657, 鳳巖이란 호도 썼다). 주화파의 지천 최명길(遲川 崔鳴吉: 1586-1647)이 심양에 잡혀가 같은 감옥에 있을 때 서로 주고받았던 시고(詩稿·사진)이다. 병자호란의 치욕이 1636년에서 1645년까지 심양에 볼모로 잡혀 갔던 세자가 돌아오면서 어느 덧 일단락이 지어진다. 때는 심양에 같이 잡혀간 청음과 지천 그리고 백강은 처음에는 북관(北館: 심양에 있던 사형수 들을 수용하는 감옥, 보통 추위가 40~50도나 되는 곳)에 있다가 북관보다는 조금 편하고 질자관(質子館: 세자가 볼모로 잡혀 있던 곳)에 가까운 곳에 있던 남관으로 옮기고 난 그

    김영복 KBS 진품명품 감정위원
    (41) 황산의 괴석도

    (41) 황산의 괴석도

    조선후기에 오면 전문 화가보다는 문인(사대부)들이 여기(餘技)로 그림을 그리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서 작가를 알 수 없는 작품이 많이 보인다. 과거를 보고 벼슬살이를 한 사람은 그 행적을 알 수 있지만, 산림(山林)에 숨어 학문에만 몰두하게 되면 작가를 쉽게 알기 어렵다. 요즘 말로 하면 문인화(文人畵)인데 문인화라고 일컬을 수 있는 좋은 작품도 있지만 거개가 그리 뛰어난 것은 아니다. 그런데 학문이 높거나 인품이 있는 분의 그림 중에는 작품 수준이 뛰어난 것은 아닌데도 묘하게 운치가 있는 작품이 종종 보인다. 또 이런 분일수록 이런 저런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꼭 한 가지 항목의 그림에만 마음을 썼다는 특징이 있다. 풍고 김조순(楓皐 金祖淳: 1765-1832)은 대나무 그림만 그렸고, 추사 김정희

    김영복 KBS 진품명품 감정위원
    (40) 팔괘매화연적

    (40) 팔괘매화연적

    요즘 북촌미술관에서 사랑방전을 하고 있는데, 그 곳에서 매우 운치 있는 연적 한 점을 보았다. 이름하여 백자청화팔각팔괘매화문연적(白磁靑畵八角八卦梅花文硯滴: 높이 9.2cm, 폭 14cm·사진)이다. 다소 이름이 길지만 연적치고는 꽤 크고 높다. 연대는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전반으로 여겨진다. 조선시대 문방구가 선비의 멋을 극명하게 보여 준다고는 하지만 이처럼 조선시대 학자라면 꼭 갖고 싶어할 팔괘와 매화그림이 있는 연적은 처음 본다. 하얀 빛깔에 팔각으로 살짝 각을 하고 그 한 면마다 청화(靑畵)로 이중으로 굵은 선과 가는 선으로 둥글게 줄을 치고 그 안에다가 학문으로는 가장 으뜸으로 치는 주역(周易)의 기본 괘인 팔괘(八卦)를 또 청화로 넣고, 위에는 팔각의 청화로 얇은 선을 하고

    김영복 KBS 진품명품 감정위원
    (39) 조객록

    (39) 조객록

    선조 연간에 진주 유(柳)씨로 문장이 뛰어나고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에 잘 대처했던 서경 유근(西坰 柳根: 1549-1627)이란 분이 있다. 이 분의 형님이 정언(正言)을 지낸 유격(柳格)인데, 이 조객록(弔客錄·사진)은 바로 유격의 부인 전주 이씨가 1614년(광해군 6년) 9월29일 남문 밖 약현(藥峴)에 있던 집에서 70세로 돌아갔을 때 문상 온 사람들의 명단이다. 뒤에는 표암 강세황(豹菴 姜世晃: 1713~1791), 혜환 이용휴(惠? 李用休: 1708~1782), 해암 유경종(海岩 柳慶種: 1714-1784)의 친필로 쓴 발문이 붙어 있다. 발문을 쓴 세 사람은 모두 실학자인 성호 이익(星湖 李瀷)의 제자이며 표암과 해암은 처남 매부지간이다. 모두 안산 주변에 살았던 관계로 여기에 같이

    김영복 KBS 진품명품 감정위원
    (38) 문목공 시첩

    (38) 문목공 시첩

    오불부군군불여(吾不負君君不余) 양잠신서일성허(良箴信誓一成虛) 귀시중천군즉락(歸時重泉君則樂) 위군하불소주저(爲君何不少躊躇) 나는 그대 저버리지 않았는데 그대 나를 떠났으니/ 좋은 말 굳은 맹세 모두 부질없구려/ 저 세상에서 어버이 모시고 즐겁겠지만/ 나를 위해 조금 더 있질 그랬소. 필자가 좋아하는 조선 중기 학자 오원이 부인이 죽었을 때 지은 애도시이다. 이 시를 지은 오원이 자작시 수십 편을 손수 쓴 것을 손자가 정리해 놓은 시첩이다. 월곡 오원(月谷 吳瑗: 1700-1740, 시호 文穆)의 친필시고 3책과 취몽헌 오태주(醉夢軒 吳泰周: 1668-1716, 시호가 文孝)의 유묵 1책 합하여 4책으로 손자인 약암 오연상(約庵 吳淵常: 1765-1821

    김영복 KBS 진품명품 감정위원
    (37) 남창잡고

    (37) 남창잡고

    남창(南窓)은 문장가이자 글씨로 석봉 한호(石峯 韓濩; 1543-1605)와 이름을 나란히 했던 김현성(金玄成; 1542-1621)의 호다. 그러니 남창잡고(南窓雜藁·사진)란 남창 김현성이 지은 잡다한 글 모음이란 말이다. 그러나 이 책은 문(文)은 한 편도 없고 오언(五言)과 칠언(七言)의 절구(絶句)와 율시(律詩)만 백여 편이 수록된 적은 분량의 시집이다. 정확히 말하면 서문 3장, 시 43장 합하여 46장이다. 그렇지만 이 시집이 특별한 이유는 남창이 친히 쓴 당신 친필시고(親筆詩稿)를 제자인 천파 오숙(天坡 ; 1592-1634)이 친필 그대로 목판에 새겨 발간하였기에 이만큼 남창 글씨의 진면목을 보기 쉽지 않다는 것이요. 또 남창은 어우 유몽인(於于 柳夢寅; 1559-1623)이나 천파

    김영복 KBS 진품명품 감정위원
    (36) 노천 방윤명 화첩

    (36) 노천 방윤명 화첩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1856)는 학문과 예술에 뛰어나기도 했지만, 당시의 잘못된 풍습이나 관습에도 상당히 유연하게 대처했던 분이었다. 그 중에서도 교육문제에 있어서는 특히 그러했다. 당시에 양반은 양반이 아닌 다른 계급, 특히 중인(中人)들과 어울리는 것을 매우 창피하게 여겼으나, 추사는 그걸 알면서도 아전, 역관이나 화가들과 아무 거리낌 없이 대했고 그들이 혹 찾아오면 마다하지 않았던 당시에는 진보적인 지식인이었다. 아마도 왕실의 사위집이란 것도 있고 집안이 당대에 이름을 떨쳤기 때문인 것도 있었겠지만, 그래도 다른 양반들은 그리 쉽게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던 일이였다. 여기 소개하는 노천 방윤명(老泉 方允明: 1827-1880)은 자는 노천, 호 역시 노천이며 또는 운남(

    김영복 KBS 진품명품 감정위원
    (35) 능양시집

    (35) 능양시집

    글을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손뼉을 치고 웃음이 절로 날 때가 종종 있다. 옛글 중에는 사마천의 사기열전(史記列傳)이나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도 있겠지만, 필자 같은 경우는 명말(明末), 청초(淸初)의 서위(徐渭), 이탁오(李卓吾), 장대(張岱) 등의 글을 읽을 때가 가장 흥이 났다. 그 후에 연암 박지원(燕巖 朴趾源: 1737-1805)의 글을 읽으면서 우리나라에도 이런 사람이 있었구나 하여 감탄하며, 이해도 제대로 못하면서 그의 글들을 열심히 찾아 읽었었다. 그 중에 자주 떠오르는 글 중의 하나가 능양시집서(菱洋詩集序)였다. 달사(達士)와 속인(俗人)으로 시작되는 이 글은 조카 능양 박종선(朴宗善:1759-?)의 시집에 쓴 서문이다. 하여 얼마나 시를 잘 지으면 이런 찬사를 들을까 하여 한번

    김영복 KBS 진품명품 감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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