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egalinsight
  • Legaledu
  • 법률신문 오피니언

  • 상시채용
  • 기사제보
  • 고미술 이야기

    고미술 이야기 리스트

    (10) 한역 육법전서 초고

    (10) 한역 육법전서 초고

    2000년쯤으로 기억되는 때에, 경주이씨종친회에서 사무를 보던 이 선생이 찾아 오셨다. 통문관 때부터 책을 수집하던 분으로 집안 관련 책이나 문서, 선조(先祖) 간찰을 그동안 꽤 많이 가지고 있었다. 두 종의 책을 내놓으시는데 한 권은 이순신장군 관련이고 한 첩은 지금 소개하려는 보재 이상설(溥齋 李相卨;1870-1917)이 일본글로 된 국제관계에 관한 법령을 한문(漢文)으로 번역한 초고였다. 보재 이상설이 국제관계 법령을 한문으로 번역한 친필 초고. 일본책이 어떤 책인지는 모르지만 그 책의 제10장 간섭(干涉)과 제11장 국제쟁의조화방법(國際爭議調和方法) 두

    김영복 KBS 진품명품 감정위원
    (9) 다산의 편지

    (9) 다산의 편지

    어느 날 인사동 거리를 아무 생각 없이 지나가고 있는데, 잘 아는 중간상이 무슨 첩을 가지고 간다. "아저씨 그것이 무엇이요"하고 물으니 "별 것 아닙니다"라고 대답한다. 그래도 보고 싶어 "어디 한 번 봅시다"하니 "별것 아닌데…" 하며 보여준다. 1816년 강진 유배시절 다산이 친한 이에게 보낸 편지. 조선 후기에 여러 명인들의 편지를 모아 놓은 간찰첩인데, 그 중 한 통의 편지가 눈에 쏙 들어온다. 간지(干支)는 있지만 이름을 쓰지 않은 편지인데 일견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1762-1836)의 글씨로 여겨졌다. (귀양지에 있을 때는 거의 이

    김영복 KBS 진품명품 감정위원
    (8) 경국대전

    (8) 경국대전

    필자가 고미술 계통에서 일하면서 기쁨을 느꼈던 일 중의 하나가 그 동안 학계에 기록만 존재하고 실물이 발견되지 않았던 한 권의 경국대전(經國大典)을 구입했을 때다. 문우서림을 개업하고 2,3년(1992년)쯤 지나서 통문관 때부터 필자를 도와주던 김 선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귀한 책이 나왔으니 나오라는 것이다. 다방에 들어서니 책을 꺼내놓으시는데 한눈에 봐도 보통 책이 아니다. 책을 펴보니 초주갑인자(初鑄甲寅字)본인 경국대전 제3권으로 호전(戶典)뿐이었다. 깜짝 놀라 "이 책뿐인가요."하고 물으니 "이 사람이, 이런 책이 그리 흔한 책이 아니네. 어찌 전질(全秩)을 바라겠는가." 언뜻 보기에는 성암고서박물관(誠庵古書博物館)에서 소장하고 있는 성종때(1485) 나온 을사대전(乙巳大全)이라 명명하

    김영복 KBS 진품명품 감정위원
    (7) 미술품의 가격

    (7) 미술품의 가격

    사람들은 고미술품하면 먼저 '비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떤 고미술품을 이야기할 때 대부분은 얼마짜리냐에 관심이 집중된다. 고미술품을 말할 때 학술적인 가치를 설명하기보다는 가격이 얼마라고 하는 것이 가치를 이해하기 쉽고, 그렇기 때문에 어느 고미술품이 어느 경매에서 최고가에 팔렸다고 해야 화제가 되는 것이다. 구스타브 클림트가 1907년 油彩와 금, 은으로 그린 '아데레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 Ⅰ' (138×138cm) 지금까지 알려진 최고가의 미술품은 무엇인가. 2007년 6월, 오스트리아 화가인 구스타프 클림트의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초

    (6) 완물상지(玩物喪志)

    (6) 완물상지(玩物喪志)

    골동을 취급하다 보면 엉뚱한 일이 종종 생긴다. 엉뚱한 일이란 전혀 다른 일이 아니라 생각지도 않게 그와 얽혀서 어떤 때는 좋은 쪽으로, 어떤 때는 그 반대로 일이 꼬여 결국은 일생을 등지고 사는 경우도 있다. 20여 년 전의 일이다 통문관에서 근무하다 문우서림으로 독립한 지 얼마 아니 되어, 통문관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던 학계의 유명한 교수님께서 저를 찾아 오셨다. 사연인 즉 가지고 계시는 옛 책뿐만 아니라 그 동안 모아왔던 서화를 정리하고 싶은데, 모은 서화가 그런대로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비치하면 좋을 것 같다고 하신다. 마침 어떤 신생 박물관에서 이런 계통의 서화에 관심이 있어서 나는 왕복하면서 중개를 했고 어느 정도 일이 성사 된 것 같았지만, 일이란 사람이 만들지만 성사는 하늘이 달렸다는

    김영복 KBS 진품명품 감정위원
    (5) 스승의 솜씨 본받아 쓴 추사의 '대련 글씨'

    (5) 스승의 솜씨 본받아 쓴 추사의 '대련 글씨'

    몇 년 전 일본에서 한국에 있는 중국서화를 조사하여 몇 권의 책으로 출판한 적이 있다. 이 책을 펴보다 개인 소장의 '竹齋燒藥 花嶼讀書牀'(죽재소약조 화서독서상:대나무 숲 집에는 약 달이는 부엌이요. 꽃 핀 동산에는 글 읽는 책상이라)이라는 「대련 글씨」를 보고 깜짝 놀랐다. 바로 추사 김정희의 스승 청나라의 대학자 소재 옹방강(蘇齋 翁方綱)의 글씨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친필 글씨가 아니고 혹 쌍구전묵본(雙鉤塡墨本) 글씨가 아닌가 의심을 하고는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 밑에 추사 글씨로 협서가 적혀있었지만 사진판이 너무 적어 잘 보이지 않아서 자세한 내용을 알 수가 없었다. 항상 마음속에 이 글씨가 떠나지 않았는데 2010년 7월 '(주)옥션 단' 경매에 이 「대련 글씨」가 나왔다. 「대련 글씨」의 협서(夾

    김영복 KBS 진품명품 감정위원
    (4) 추사의 스승 옹방강 詩集 ‘복초재시집’

    (4) 추사의 스승 옹방강 詩集 ‘복초재시집’

    어느 날 A씨에게서 전화가 왔다. 추사 김정희 도장이 많이 찍혀있는 옹방강(翁方綱 1733~1818)의 시집인 「복초재시집(復初齋詩集)」 6책이 나왔는데 보겠느냐는 내용이었다. 즉시 찾아갔다. 살펴보니 「세한도(歲寒圖)」를 일본에서 찾아온 서예가이자 추사연구가인 손재형(孫在馨)이 소장했던 책으로, 일본인 후지츠카 치카시(藤塚 1879~1918)의 추사연구서 「청조문화동전의 연구」에서 언급한 3종의 「복초재집」 중의 하나인 바로 그 책이었다. 약간 흥분이 됐다. 이 책은 곧바로 나의 소개로 B씨에게로 옮겨졌다. 한데 이 책을 살펴보고 손재형이 소장하기 이전에는 추사에게서 어디로 흘러갔을까 궁금해졌다. 이리저리 추적해보니 이 책은 추사가 대흥사에 보관하게 한 책으로, 그 해답은 바로 대흥사에 걸려있는 추사

    김영복 KBS 진품명품 감정위원
    (3) 추사 김정희의 세가지 유물Ⅰ

    (3) 추사 김정희의 세가지 유물Ⅰ

    요즈음 미술학계의 관심사는 이름있는 유물의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내어 유물을 일반인이 쉽게 접근하게 하는 일이다. 이런 유물의 알려진 대표적인 유물이 안견의 「몽유도원도」,추사 김정희의 「세한도」, 이중섭의 「은지화」일 것이며, 최근에 발견된 다산 정약용의 「하피첩」은 이런 모든 요소를 갖춘 대표적인 유물일 것이다. 추사는 많은 사람과 또 국제적으로 사귐을 가졌고, 시대의 풍파를 겪을 만큼 겪었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가 있는 작품이 꽤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 중의 한 가지가 2004년 과천시에서 주관하고 「소치연구소」에서 주축이 되어 「추사글씨탁본전」을 한 적이 있었는데, 이때 해남 대흥사에 걸려 있던 <소영은(小靈隱)> 현판 탁본이 발견되었다. 이 현판의 글을 읽어보고 깜짝 놀랐다. <세

    김영복 KBS 진품명품 감정위원
    (2) 추사의 작품가격은?

    (2) 추사의 작품가격은?

    어느 날 천안에서 골동업을 하는 분께 전화가 왔다. 추사(秋史; 金正喜) 선생 편지가 나왔는데 사라는 것이었다. 일단 팩스로 내용을 보내 달라하고, 팩스로 받아보니 추사글씨가 아니라 추사 제자인 우봉(又峰) 조희룡(趙熙龍; 1797~1859)의 글씨였다. 가격을 물어보니 150만 원이란다. 하여 그 가격에 바로 샀다. 그 분은 지금까지 그 편지가 우봉 글씨인지 모르고 추사의 가짜 편지를 내가 샀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150만 원이면 우봉의 편지 값으로는 조금 비싼 듯하지만, 내용이 좋기 때문에 나로서는 괜찮게 샀다고 여겼다. 우봉은 추사편지를 그대로 모방하여 쓴 것이 시중에 많이 나돈다. 옛날에는 글씨나 내용을 배우고자 스승이나 존경하는 이의 글씨를 이렇게 많이 임모(글씨를 그대로 베껴 쓰는

    김영복 KBS 진품명품 감정위원
    (1) 추사對聯에 대한 추억

    (1) 추사對聯에 대한 추억

    1970년대 말쯤 일이다. 어느 표구사에 갔더니 추사(秋史, 金正喜; 1786~1856 젊어서는 추사를, 노년에는 阮堂이란 호를 주로 썼다) 글씨 대련 한 쌍을 누가 팔아 달라 가져왔다. 통문관에 근무한지 5년쯤, 그때 내 나이 스물이 조금 넘을 때다. 지금 생각하면 어슴푸레 글씨를 알까, 말까한 사이비한 때이지만, 그 때는 꽤나 자신 있다고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나한테 소개해 달라하고 인사동에서 추사글씨에 가장 권위가 있다는 어떤 원로 분께 자문을 구해 급히 샀다. 그때나 지금이나 싼 게 비지떡이라고 너무 싸게 산 것이 마음에 꺼림칙하였다. 그러나 그 당시로는 내가 처음으로 거액의 돈을 주고 산 것이다. 얼마 후 군대에 가게 되어 자취하던 집을 비워야 했다. 액자가 되어있던 추사 글

    김영복 KBS 진품명품 감정위원
    1. 1
    2. 2
    3. 3
    4. 4
    5. 5
    6. 6
    7. 7
  •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