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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라운지 커버스토리] ‘민변 첫 여성회장’ 정연순 변호사
강한 기자
2018-05-08 15:17
"'Me too'운동은 그릇된 性인식 깨뜨리는 역사적 사건"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리지 않으면 안 된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에 나오는 구절이다. 새가 알에서 나와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듯 사람도 세계로 통하는 자신의 껍질을 부수는 데 사력을 다하면 결국 스스로의 성장과 주변의 발전을 이끌게 된다는 의미다. 정연순(51·사법연수원 23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은 끊임없이 알을 깨 온 법조인이다. 책을 좋아하던 모범생에서 열혈 학생 운동가로, 여성 변호사 수가 채 50명도 안 되던 시절 여성과 사회약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동분서주한 여성 인권변호사로, 민변 첫 여성 사무총장에 이어 첫 민변 여성 회장으로 끊임없이 자신과 주변의 틀을 깨왔다. 그는 "의지와 역량이 있는 전문가들을 지원해줬을 뿐"이라고 몸을 낮췄지만, 우직한 뚝심과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구심점 같았다. 올해로 창립 30주년을 맞는 민변을 이끌며, '민주사회를 위한 신념'을 자신의 동력으로 꼽는 정 회장을 지난달 23일 서초동 민변 본부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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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순(51·사법연수원 23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은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걱정없이 컸다. 경제성장기인 1980년대 서울에서 독서를 즐기는 모범생으로 학창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서울대 법대 신입생이던 1985년 4월 한 장의 사진을 맞닥뜨리면서 그의 기존 세계는 산산히 깨졌다.


"초등학교에서 남녀는 평등하다고 배웠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헌법에 주권은 국민의 것이라고 써있다지만 많은 사람들이 군부 독재를 당연하게 여기던 시절이었습니다. 저 역시 우리나라는 평화롭고 먹고 살만한 '좋은 나라'라고만 여겼습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도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신입생 시절 봄 축제 한 켠에 마련된 광주민주화 항쟁 사진전에서 시민에게 겨눈 군인의 총부리를 보고 세상이 거꾸로 뒤집히는 듯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후 공포정치와 공안정치에 맞서 3년간 시위를 하며 최루탄 가스를 마셨습니다. 1987년 6월 항쟁의 결과에 실망하고 뻥 뚫린 가슴을 메우기 위해 택한 것이 사법고시였습니다. 떨어질 대로 떨어진 학점으로는 취직도 어려우니 3년만 시간을 달라며 부모님을 설득했습니다."


독서 즐기던 모범생…

대학 진학 후 열혈 운동가로

 

막연하게만 생각하던 법조인의 길은 선배 변호사들을 만나면서 구체화됐다. 정 회장은 1994년 사법연수원을 졸업하자마자 민변에 가입하고 인권변호사의 길을 걸었다. 사법시험 합격자 300명 중 여성이 10명 남짓, 우리나라 여성변호사 수가 50명에도 미치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정 회장은 이후 민변에서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사무총장(2010~2012년)과 회장(2016~현재)을 맡았다. 여성위원회 위원장(2001~2003년), 부회장(2014~2016년) 등 요직도 거쳤다. 남편인 백승헌(55·15기) 변호사는 7~8대 민변 회장(2006~2009년)을 지냈다.

 

"민변 선배인 조용환(59·14기) 변호사에게서 스스로에게 엄격함을 유지하며 사건을 철저하게 다루는 법조인의 자세를 배웠습니다. 평소에는 인자하고 여유롭지만 업무에서 만큼은 빈틈 없는 이석태(65·14기) 변호사에게서 귀감이 되는 삶의 방식을 엿봤습니다. 형사소송의 대가인 김형태(62·13기) 변호사 곁에서 무죄를 다투는 소송을 돕다 나도 저런 변호사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가졌습니다. 소수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에 대한 차별을 없애는 것은 당사자들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함이지만 결국 그 사회와 공동체의 행복과 발전을 위한 것이라고 믿습니다. 사회 구성원들의 사회적 지위와 관련된 권리와 의무를 다루는 영역에 있는 법조인의 역할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정 회장은 여성 관련 사건을 많이 다루고 성폭력 피해여성이나 성매매여성들에 대한 상담도 많이 맡았다. 그는 지금도 여성과 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만연하다며 민주주의가 다시 후퇴하지 않기 위해 사회구조적·문화적으로 소수자인 여성의 권익이 증진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여성이 가까스로 성매매 업소에서 탈출했습니다. 남편을 만나 가정을 꾸리고 아기도 가졌습니다. 그런데 포주가 그녀를 도로 잡아가 감금하고, 낙태시키고, 다시 성매매를 시켰습니다. 이 여성은 다시 탈출했지만 이번에는 포주가 그녀를 차용사기로 고소했습니다. 제가 이 사건을 맡았는데, 윤락행위로 인한 채무가 무효라는 관련법에도 불구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적용하는 수사기관이나 무죄를 선고한 판례가 거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항소심에서 무죄를 받기까지 3년이 걸렸습니다. 그때의 기록과 경험을 바탕으로 민변 후배들이 성매매여성법률지원가이드를 제작했습니다. 장자연씨의 죽음 등 시간이 흘러도 꼬리를 잇는 안타까운 유사 사건에서 가이드라인으로 쓰이기를 바랍니다."


사회적 약자·소수자 위해 일하는

변호사 늘어 다행

 

정 회장은 이 같은 경험을 바탕으로 참여정부 시절인 2006년부터 3년간 국민인권위원회 첫 차별시정 분과장에 임명돼 성희롱 진정사건과 장애·나이·성별 등 다양한 차별에 대한 조사업무를 맡았다. 정 회장은 최근 사회 곳곳에서 일고 있는 성폭력 피해자들의 '미투(Me too, 나도 당했다)' 운동은 그동안 금기로 취급되어 온 그릇된 인식을 깨뜨리는 도전이자 역사적 사건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투 운동에서 먹이사슬이라 불리는 인격적 착취구조를 극복하기 위한 법조계의 역할과 리더십을 강조했다.

 

"성희롱이 법적제재 대상이 된 지 20년이 넘었습니다. 형법에 정조에 관한 죄라는 표현이 사라진 지도 오래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성폭력·성희롱 사건에서 피해를 받은 여성이 오히려 스스로 위축되고 스스로 감추는 일이 만연합니다. 여성은 태어날 때부터 소수자의 지위에 처해 있고 여성이나 성폭력에 대한 그릇된 인식이 사회에 여전하기 때문입니다. 세계 유수의 연구소나 기관에서도 한국 사회의 발전은 여성의 성평등지수를 높이는 데 있다고 수차례 권고한 바 있습니다. 여성들이 편견과 차별·남성들의 시각에서 벗어나 존엄한 개인으로서 목소리를 내기를 바랍니다. 한 검사의 용기 있는 폭로에 힘입어 여성들이 저항의 목소리(empowerment)를 높이길 바랍니다. 특히 법조는 누구보다도 소수자,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감과 감수성, 권리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여성변호사들뿐만 아니라 남성을 포함한 법조 전체가 우리 사회 여성들의 주장을 경청하고 고민하기를 소망합니다."

 

정 회장은 더 성숙한 민주사회가 이루어지려면 공동체를 이루는 개개인이 곧 사회의 주인이라는 믿음이 커져야 한다며 법조인들이 실질적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은 역사적 비극입니다. 하지만 헌법과 법률이 정하는 절차에 따라 평화롭고 민주적으로 과정이 진행됐다는 점에서 위대한 승리라고 생각합니다. 이 과정에서 민변이 국정농단 사태 초기부터 문제의 본질과 법적 쟁점을 국민들에게 알리는 일을 하며 변호사만 할 수 있는 일을 중요한 시기에 적절히 수행했다는 점에서 자부심을 느낍니다. 우리 사회는 일제강점과 남북분단, 독재로 오랜 세월 고통을 겪었습니다. 단기적으로는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큰 흐름 속에서는 주권자인 국민들의 현명한 선택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제는 각종 차별과 편견을 배제하고, 사회적 양극화를 극복하며, 존엄한 삶의 질을 보장하기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고민할 때입니다."

 

정 회장은 공익인권변론센터를 출범해 체계적으로 공익소송 변론을 기획하는 등 민변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는 한편 2016년 가을 이후 숨막히게 이어진 국정농단 사태와 일련의 검찰·사법부 개혁 과정에서 탄탄하게 조직을 운영해 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부는 비판하는 국민의

소리도 겸손하게 경청해야

 

민변이 창립 30주년을 맞는 이달 25일 정기총회에서 임기를 마치는 정 회장은 "그동안 쉴 틈 없이 달려왔다. 이제는 푹 쉬고 싶다"고 했지만, 이미 다음 과제를 고민하고 있었다. 민변과 법조계가 보다 성숙한 민주주의를 위해 더욱 깊어지고 튼튼해져야 한다는 제언도 내놨다. 

 

"2010년 사무총장에 추대된 이후 8년간 쉴새없이 달려왔습니다. (회장 임기를 마치면) 일단은 여행을 다니고 꽃을 돌보며 조용히 지내고 싶습니다. 민변 회원으로서 공부모임에 참여하면서 기회가 되면 위원회 활동에 참여하고 공익소송도 맡을 계획입니다. 소망이 있다면 아직 개발되지 않은 다양한 주권들이 결합된 영역인 '빈곤문제'를 제대로 공부하고 싶습니다. 선배들은 지사적 관점에서 변론하고 희생을 감수하며 민주주의를 발전시켜왔습니다. 하지만 성숙해진 우리 사회에 따라가려면 선도그룹 변호사의 헌신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다행히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을 위해 일하는 젊은 변호사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시민 속에 뛰어들어 함께 하는 변호사 활동이 필요합니다. 다양한 영역에서 발휘될 후배들의 열정과 의지를 적극 지원하는 법조계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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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4·27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다시 한 번 우리 사회가 껍질을 깨고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숙하고 건전한 의식을 가진 시민들의 힘 없이는 언제든 사회가 후퇴할 수 있다고 정 회장은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이때문에 정 회장은 문재인정부에 대해 "비판하는 국민들의 목소리도 겸손하게 경청하고 반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민주주의는 사회나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개개인이 주인인 사회입니다. 이명박정부, 박근혜정부 9년은 분명 인권과 민주주의의 후퇴였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22조원을 쏟아부은 4대강 사업의 비참한 종말이나 자원외교 등도 이제 그 진상이 밝혀질 것입니다. 특히 세월호참사는 국민의 안녕과 행복이라는 국가 존재 이유를 저버렸다는 점에서 그동안 우리나라가 제대로 된 나라였느냐는 의문을 품게 합니다.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지난 1년은, 과거 9년간의 그릇된 일들을 바로 잡는 과정이었다는 점에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하지만 아쉬움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2016년 광화문 광장을 석달 동안 달군 결과 어렵게 되찾은 민주주의도 언제든 후퇴할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국민이 어리석은 대중으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공동체가 주권자인 개개인의 존엄성을 믿는 신념에서 출발해 주권자의 의사가 건전한 집단지성으로 표출되어야 합니다. 건전한 비판의식이 살아 있으면서도, 우리 사회가 서로가 서로를 이끌어주고 도와주는 배려가 넘치는 공간으로 만들어야 할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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