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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라운지 커버스토리] 법무사업계 ‘돌풍의 주역’… 최영승 신임 대한법무사협회장
강한 기자
2018-07-02 17:24
"바꾸지 않으면 바뀌지 않아… 법무사도 이제 바뀌어야"


"제가 당선될지 저도 몰랐습니다." 최영승(55) 제21대 대한법무사협회장에게 당선소감을 묻자 돌아온 답이다. 그만큼 그의 출마는 의외였다. 유권자 중에는 그가 법무사인지도 모르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당선을 점친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법무사가 아닌 형사법학자와 시민활동가, 법과대학과 로스쿨 강단에 선 교육자로 대부분의 커리어를 쌓아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돌풍을 일으키며 지난달 1일 최종 당선했다. 그는 "선거운동을 하며 변화를 바라는 민초 법무사들의 강렬한 눈빛을 봤다. 어깨가 무겁다"며 "공익을 위해 헌신하며 국민의 신뢰를 얻어가는 법무사의 행보를 지켜봐 달라"고 강조했다. 최 신임 협회장을 취임 이튿날인 28일 논현동에 있는 법무사협회 집무실에서 만났다. "올해를 121년 역사를 가진 법무사업계 변혁의 원년으로 삼겠다"는 그의 광폭 행보에 법조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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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진주 출신인 최영승(55) 신임 대한법무사협회장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두메산골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 동무들과 멱을 감고 진달래꽃을 따먹는 개구쟁이였지만, 학교에서만큼은 책을 가까이하며 1등과 반장을 놓치지 않는 모범생이었다. 고등학교 때는 학우들과 순국선열을 모신 사당을 쓸고 닦으며 이타심과 애국심을 키웠다.


검찰직으로 사회 출발

대학원서 형사법 전공

 

"첫 스승은 진주 유생이었던 할아버지였습니다. 집에 책만 500권이 넘었습니다. 손에서 책을 놓지 않던 할아버지께서 학우들과 유학을 공부하고 경전을 토론하는 모습을 보며 자랐습니다. 낮에는 산과 들을 쏘다녔지만 밤에는 호롱불 밑에서 천자문을 외웠습니다. 덕분에 어릴 때부터 독서가 익숙했습니다. 두번째 스승은 독립운동가인 아인(亞人) 박종한 선생입니다. 저는 박 선생이 설립하고 초대 교장을 맡은 진주 대아고에 다녔습니다. 민권(民權)·민주(民主)·민생(民生)·민성(民性)·민복(民福)을 아우르는 오민(五民)사상이 교육이념이었고, 교정에는 유학자이지만 임진왜란이 나자 백성을 지키기 위해 칼을 들고 의병을 이끌었던 김시민 장군의 수호신상이 있었습니다. 대아고는 지금도 충무공 탄신일인 4월 28일에 전교생이 시민들의 응원을 받으며 사천까지 24㎞ 도보행군을 합니다. 국민을 위해 헌신한 위인을 본받으며 충효를 몸깊이 다지라는 가르침을 가슴에 새겼습니다."

 

논문 '피의자 신문과 적벌절차'

우수도서로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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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찰공무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는 한양대 대학원에 진학해 오영근 교수를 만나면서 사람과 인권을 중심에 둔 형사법학자로 발돋움하기 시작했다. 그는 당시로서는 생경했던 형사소송절차에 적법절차를 받아들이는 내용의 박사학위 논문을 썼는데, 깐깐한 심사위원들로부터 '수작(秀作)'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피의자신문과 적법절차'라는 책으로도 편찬된 이 논문은 조국 대통령 민정수석비서관이 지난 2006년에 쓴 '위법수집증거 배제원칙', 이상돈 의원이 쓴 '인권법' 등과 함께 대한민국학술원 우수도서에 선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지도교수인 오 교수는 "여기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며 자만을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박사학위를 딴 기쁨에 들떠 있을 때 오 교수님은 '이제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며 5년간 공부에 매진할 것을 권했습니다. 그때부터 죽자사자 공부에 매달렸습니다. 논문 한 줄 쓰는 데 1주일밤을 고민했습니다. 공부는 하면 할수록 어려운 것임을 알았습니다. 3년째 접어든 어느날 새벽 공부를 하다 가슴 속에 환희가 물밀듯이 밀려오는 신기한 경험을 했습니다. 이대로 죽어도 좋다는 신기한 감정이 한참이 지나도 가시지 않았습니다. 이후부터는 손에 잡힐듯 잡히지 않던 지식과 지혜가 속으로 차곡차곡 갈무리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에 적어둔 일기장에는 당시의 기쁨이 고스란히 적혀있습니다. 지금도 공부에 대한 열정을 북돋는 동기부여가 됩니다. 공부에 매진하던 시기에는 벌이가 신통치 않았습니다. 한약제약업을 하던 누님이 가족 몰래 생활비를 보태줬습니다."

 

그의 학문적 관심은 피의자·피고인의 인권부터 범죄피해자와 가해·피해소년까지 다양한 범주를 넘나들었다. 한국비교형사법학회, 한국소년정책학회, 한국피해자학회 등에서 상임이사와 감사 등을 맡으며 연구지원활동에도 힘썼다. 무엇보다 형사법학자로서 그는 항상 국민을 중심에 두고 소수자와 약자의 인권을 고민하겠다는 신념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기본권과 형평성에 중점을 두고 형사절차를 깊이 연구한 인권 전문가로 알려지면서 시민활동가로 일하는 기회도 열렸다. 


'약자의 인권' 연구하면서

시민활동가로 진출

 

"인권의식이 사회현실을 넘어서지 못하는 점이 늘 안타까웠습니다. 인간존엄을 바탕으로, 사회인식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연구를 하기 위해 애썼습니다. 석사논문은 간통죄를 비범죄화하면 여성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1998년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내용이어서 언론에 보도되고 일부 여성단체로부터 항의를 받기도 했습니다. 한국사회에서 여성의 지위가 낮은 이유는 경제적 여건과 무관치 않다는 믿음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경제적으로 자립하지 못한 여성은 현실적으로 남편이 바람을 펴도 항의하기 어려웠던 시대를 우리는 다함께 살았기 때문입니다. 서보학 경희대 교수의 추천으로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에 2005년 실행위원으로 합류해 최근까지 활동했습니다. 고되지만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김밥에 컵라면을 먹으며 심야토론을 하고 더운 여름 땀을 뻘뻘 흘리며 공수처 등 법안 작업을 끝냈을 때의 환희가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특히 검찰개혁에 힘썼습니다. 

 

박근혜정부 검찰개혁보고서에서 '검찰만 바로서면 나라가 바로선다'고 쓰기도 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법무부 탈검찰화 △수사권조정 △공수처법안 등을 다뤘습니다. 사법개혁 관련해서는 △전관예우 근절 △법원행정처 개혁을 주장했습니다. 최근에는 검·경 수사권 조정과정에서 간과되기 쉬운 자치경찰 분야를 연구했습니다."

 

그에게 학자로서의 삶이 즐거움이자 일종의 구도(求道)의 길이었다면 참여연대와 시민활동가로서의 삶은 배움을 실천하는 장이었다. 그는 협회장으로서의 앞으로 3년도 이처럼 학행일치를 이루기 위한 한가지 방식이라고 말했다. 또 법무사로서 활동이 뜸했던 점이 협회장으로서는 오히려 강점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해관계에 얽힌 일이 없어 소신있게 정책을 추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명실상부한 법조인으로

인정받기 위해 노력

 


"지방법무사회 현직 회장도 아니고 또 회장 출신이 아니어서 선거를 뒷받침할 인적 네트워크와 조직력이 부족했습니다. 하지만 표가 아닌 마음을 얻는다는 생각으로 진정성 있게 회원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동안 변화를 갈망해왔던 부동층의 바람을 현실화하고 싶습니다. 협회장 선거 출마 당시에도 국민 법률생활의 편익을 도모하고 사법제도의 건전한 발전에 기여하는 법무사업계를 위해 봉사해달라는 주위의 간곡한 권유가 있었습니다. 법무사협회는 이익단체이기 이전에 법률을 기반으로 국민에게 봉사하는 공익적 단체라고 믿습니다. 평생을 추구해온 공익·인권과 협회장으로서의 3년이 서로 조화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법무사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고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아픔을 어루만지기 위한 법률서비스를 많이 내놓겠습니다. 법무사는 그 중요성에 비해 여러 환경적 요인으로 업계 위상과 사기가 많이 떨어져 있습니다. 법조사륜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회원들의 자긍심부터 고취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법무사가 명실상부 법조인으로 인정받고 제 역할을 하기 위해 안팎의 불합리를 개선하고 국민의 신뢰를 얻겠습니다. 사법기관 및 변호사단체와 수평적 협력관계를 모색하겠습니다."

 

법무사의 공익적·사회적 역할

점차 확대 추진


그는 전문자격사인 법무사는 국민의 믿음과 신뢰를 바탕으로 바로서야 한다는 굳건한 믿음을 갖고 있다. 올해 사상 처음 열린 협회장 후보 선거방송토론에서는 "불합리한 기존 관행을 고쳐나가지 않으면 법무사업계에 미래는 없다"며 열변을 토하기도 했다. 

 

"바꾸지 않으면 바뀌지 않습니다. 시대가 바뀌면 법무사도 바뀌어야 합니다. 지방회장 출신이 아닌 무명인 제가 협회장에 뽑힌 것은 '법무사업계 이대로는 안 된다'는 민초 법무사들의 절박한 바닥민심이 반영된 결과입니다. 위상 강화를 위해서는 우선 법무사의 존재감과 효용감이 높아져야 합니다. 법무사법 제1조를 개정해 공익 및 인권규정을 추가하고 법무사의 공익적·사회적 역할을 점차 확대할 것입니다. 법무사·언론·학계·시민운동가 등 각계각층이 참여한 법무사발전시민위원회를 구성해 법무사업계와 사회 현안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낼 계획입니다. 


법무사협회는 이익단체 이전

공익단체라 믿어

 

업계 현안 해결에도 힘을 쏟을 것입니다. 최대 현안 중 하나인 전자등기 적폐를 청산하기 위해 이미 법무사 1100여명과 함께 헌법소원을 제기한 상태입니다. 법원과 정부는 전자등기·계약시스템을 만들면서 전문가인 법무사의 목소리를 등한시하고 당장의 실적에 치중해 내실을 다지는 데 실패했습니다. 그 피해는 장기적으로 누적돼 결국 국민 모두에게 돌아갈 것입니다. 비송사건 신청 대리는 법무사들이 현업에서 사실상 수행하고 있어 법제화가 되는 것이 맞지만 가로막혀 있습니다. 법무사법 개정안 통과 등 업계 현안 해결을 위해 국회·정부와도 활발히 소통하겠습니다." 


회원 자부심 고취시키고

불합리한 관행 개선

 

당선과 함께 참여연대 실행위원에서 사퇴하고 로스쿨 교수직에서도 물러난 그는 협회장으로서 소임을 마친 뒤 참여연대와 학계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오동은 천년이 가도 가락을 잃지 않고 매화는 일생 추워도 향기를 잃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얼마전까지 저의 카카오톡 배경화면은 소나무 곁을 잔잔히 흐르는 푸른 강이었습니다. 항상 사진을 옆에 두고보며 물질보다는 정신과 무형적 가치에 무게를 둔 삶을 살고자 했습니다. 3년 간은 참신하고 열정적인 협회장으로서 업계 발전에 앞장서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돌멩이처럼 보잘 것 없는 사람입니다. 다시 보통사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다만 소망이 있다면 그냥 돌멩이가 아니라 달밤 강가의 조약돌처럼 희미하게 나마 은은한 빛을 밝히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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